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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link>https://magic.ne.kr</link>
		<description>세계 구원의 뿌리장사</description>
		
				<item>
			<title><![CDATA[그래서 기존의 배움은 자기도 모르면서 가르치어 엉터리 사고방식을 형성 되도록  인간의 사고를 형성시켜 왔던것입니다ㆍ]]></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9]]></link>
			<description><![CDATA[천지공사의 대의(大義)

증산 상제님께서 
선천개벽 이래로 상극의 운에 갇혀 
살아온 뭇 생명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주시고

후천 오만년 지상 선경세계를 
세워 온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니

이것이 곧 
인존상제님으로서 
9년 동안 동방의 조선땅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라.

이로써 하늘 땅의 
질서를 바로잡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신도(神道)와 인사(人事)를 조화(調和)시켜

원시반본(原始返本)과 
보은(報恩)·해원(解寃)·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지나간 선천상극(先天相克)의 운(運)을 끝막고 후천 새 천지의 
상생의 운수를 여시니라.

신명정부(神明政府)를 건설하시고 앞세상의 역사가 나아갈 이정표를 세우심으로써

상제님의 대이상이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우주촌의 
선경낙원(仙境樂園)이 건설되도록 물샐틈없이 판을 짜 놓으시니라.
(증산도 道典 5:1)

장차 병겁이 들어오는데

장차 세계 각국이 있는 
재주를 다 내어 싸우리니 재주가 가장 뛰어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당래에는 병겁(病劫)이 
들어와 천하를 진탕으로 만들 것인데 뉘라서 
활방(活方)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오.

이제 서양에서 넘어오는 
무기에는 대항할 자가 없으니 전쟁을 멀리하고 
의통(醫統)을 알아 두라.
동서양의 전쟁은 병으로 판을 고르리라.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이 
조선에서 개벽 기운을 받아 가 저희 
나라에 퍼뜨리게 되리니
그 때에 너희들이 천하를 추수하리라.

사람을 많이 살리면 
보은줄이 찾아들어 영원한 복을 얻으리라.
(증산도 道典 7:32)

도통자가 나온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해를 끼치면 
해를 받았지만

이 뒤에 도통한 사람이 나오면 
해를 끼치다가는 제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이 뒤에 도통자가 나오면 조심조심하라.” 하시니라.

종통맥이 사는 맥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 
도는 그 도(道)가 있고, 땅은 그 땅이 있느니라.

시속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잘 바루라.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증산도 道典 6:128)

수행의 결론을
 ‘은혜와 보은’으로 잡아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보은의 흐름이 이 말씀에서 완성됩니다.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 『도전』 2:23

도를 닦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엄청난 은혜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비추고,
공기가 있고 물이 있으며,
곡식과 온갖 생명이 있고,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천지인이 우연히 생겨나서 굴러가는
존재가 아니며 

무한한 공덕을 드리며
자전 공전을 하며 공기와 산소 그리고
여기에서 생성된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것입니다ㆍ

그런데 인간은 
대개 받는 것은 알면서도 받은 은혜의 근원을 잊어버립니다.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증산도 道典 2:34)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홍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홍은’은 작은 은혜가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근본 자체가 천지의 은혜 위에 놓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수행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행을 단순히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라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됩니다.

더 높은 능력, 더 깊은 경지, 
도통 같은 것을 자기 성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수행의 근본 방향을 잃게 됩니다.
참공부는 반대로 갑니다.

천지의 은혜를 깨닫는다.
↓
내가 무엇을 받아 살아왔는지를 안다.
↓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
자신을 바르게 닦는다.
↓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
↓
마침내 천지에 보은한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말씀,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가 결정적으로 연결됩니다.

도통의 목적까지도 ‘보은’입니다.
도통을 자기 영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이치를 통하여 
천지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도통의 방향입니다.

“천지의 홍은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오히려 수행자에게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받은 것을 어떻게 갚고 있는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보은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많이 얻었다고 보은한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오래 했다고 
자동으로 보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받은 생명과 
천지의 은혜를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돌려주고 있는가. 
바로 여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보은은 
수행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수행의 목적을 결정하는 중심축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은혜를 모르고 하는 수행은 자기수련에 머물고, 
은혜를 알고 하는 수행은 보은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도통의 귀결은 ‘천지보은’이다.

도를 닦으려면 
결론은 은혜와 보은이다”**라는 
정리가 정확히 이 두 구절을 관통합니다.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의 홍은을 깨달음 → 천지보은.
**「도를 닦는 궁극의 목적 — 
도톰천지보믄이며 은혜와 보은 입니다ㆍ

다시 말하면  
3자 주문의 시천주 주문의 참뜻인데 
설명을 하면 시천주 조화점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인데  천지의 부모를 
잘 모시면

소원성취하는 온갖 조화가 일어나며  
민사지 즉 만사를 아는 은혀를 도통을 한 은혀를 
영세토록 잊지 못하고 잊지 않는 지극한
은혜를 내려 달라는 지극한 염원이 담게있는 
주문의 뜻입니다 ㆍ

그래서 동학의 최수운대신사 깨서는
동경대전에서 13자 지극하면 만권 시서 무엇하리 
하셨던것입니다ㆍ

인생은 살아가고 목숨을 유지하는 순간 
우리는 천지부모로 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빚을지고 
살아가고 있는것인데  이것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의 없다는 것입니다 ㆍ그래서 쓸어버리고 마는데 이것이 
생사지도의 질서로 현실에 나타나는것입니다 ㆍ

그리하여 천지에서 보은을 하지 않는자는 배신자가 되는것이며 배신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생게 난 것입니다 어차피 천지 만에 있는 모든것믄 도통의 세계에서 나온것입니다ㆍ

그래서 기존의 배움은 
자기도 모르면서 가르치어 엉터리 사고방식을 형성 되도록  인간의 사고를 형성시켜 왔던것입니다ㆍ
그리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선악의 개념이 왼전히 다른것입니다ㆍ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a0faa4041e5084501.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9:36: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 결과 사회에는  수많은 분파와 갈등이 생기고, 근본적인 하나의 기준을 잃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선천의 큰 구조적 문제로 보신 것입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8]]></link>
			<description><![CDATA[배은망덕만사신
(背恩忘德萬死身)’이니라.
(증산도 道典 2:28)

단순히 스승을 잘 섬기라는 
윤리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은혜를 어떻게 인간 사회의 질서 속에서 
실현할 것인가, 

그리고 후천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사회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까지 말씀하십니다.

도를 닦는 궁극의 길 — 은혜와 보은
군사부일체의 후천 문화
상제님께서는 먼저 선언하십니다.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후천 문화의 출발점이 나옵니다.

인간은 천지의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부모의 은혜를 받고, 스승의 은혜를 받고, 사회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선천의 인간은 받는 데 익숙했지만 갚는 법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후천의 인간은 달라져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인간에서
은혜를 갚는 인간으로.
이것이 수행의 방향이며, 
이것이 새로운 인간상의 출발입니다.

1. 선천의 문제 — 
성(聖)과 웅(雄)이 갈라졌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도정이 문왕과 무왕에서 그쳤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옛적에는 신성이 하늘의 뜻을 이어 바탕을 세움에 성웅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하였으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여기에는 문명의 아주 
중요한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원래 정치와 교육·교화가 하나의 큰 방향을 가져야 하는데, 역사 속에서 그것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교화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과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결과 사회에는 
수많은 분파와 갈등이 생기고, 근본적인 하나의 기준을 잃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선천의 큰 구조적 문제로 보신 것입니다.

2. “이제 원시반본이 되어 군사위가 한 갈래로 되리라”
여기가 후천 문화의 핵심입니다.

**군(君)**은 
사회의 질서를 책임지는 자리이고,

**사(師)**는 
사람을 가르치고 바르게 하는 자리입니다.
선천에서는 이 둘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천에는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
고 하십니다.

이것을 단순히 “정치 지도자가 동시에 스승이 된다”는 좁은 의미로만 보면 안 됩니다.

핵심은 통치와 교육, 권한과 책임, 사회질서와 인간의 성숙이 하나의 원리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책임을 모르고,
가르치는 사람이 현실의 책임을 외면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스림에는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에는 책임이 있어야 하는 사회.
이것이 군사부일체가 지향하는 후천 문화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3. “앞세상은 만수일본의 시대”
萬殊一本
수많은 것이 있지만 근본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후천은 획일적인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그 모든 다양성이 하나의 근본 원리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시대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다양성은 살리고
근본은 하나로 한다.
이것이 만수일본입니다.

선천은 서로 다른 것을 이유로 갈라지는 방향이 강했다면, 후천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근본에서 하나가 되는 문명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4. 그래서 “배사율”이 나온다
상제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선천에는 도수가 그르게 되어서 제자로서 스승을 해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 뒤로는 그런 불의를 감행하는 자는 배사율을 받으리라.”

이 말씀도 단순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핵심을 놓칩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사강육륜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하나의 **도륜(道倫)**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스승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주는 자는 책임을 다하고 
배우는 자는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관계. 이것이 핵심입니다.

5. 사강육륜 — 
후천에는 스승의 관계가 완성된다
선천의 삼강오륜에는 군신·부자·부부 등의 관계는 있지만, 말씀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독립적인 강륜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삼강오륜을 보전하니 앞으로는 사강육륜의 도륜이 나오리라.”
고 하십니다.

그 내용은
夫爲婦綱
父爲子綱
師爲弟綱
君爲臣綱

그리고
夫婦有別
父子有親
師弟有禮
君臣有義
長幼有序
朋友有信
입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師弟有禮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예(禮)**가 있어야 합니다.

즉 스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고, 제자라고 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에게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관계입니다.

6. 그런데 왜 이것이 “은혜와 보은”으로 연결되는가?
바로 여기서 앞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사람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고,
스승에게서 배움을 받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천지로부터 삶의 터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는 수많은 은혜의 관계망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어떻게 됩니까?

배은망덕이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이것을 매우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일반지덕을 필보하라.”
보통은 한 끼 밥을 얻어먹은 은혜도 반드시 갚는다고 하는데,
“나는 반반지은도 필보하라 하노라.”
고 하십니다.
한 그릇이 아니라 반 그릇의 은혜조차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절교육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수행의 원리입니다.

7. “반 그릇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천지의 은혜를 안다
생각해 보면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작은 은혜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천지의 거대한 은혜를 기억하겠습니까?

오늘 내가 먹은 한 끼의 밥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 있습니다.

농부가 있고,
땅이 있고,
비와 햇빛이 있고,
운반하고 가공하는 사람이 있고,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작은 은혜를 기억하는 훈련 자체가 수행입니다.

한 사람에게 받은 작은 도움을 기억하고,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람과 사회의 도움을 기억하고,
마침내 천지의 홍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이 커져야 비로소 보은의 인간이 나옵니다.

8. 그래서 도통의 결론이 “천지보은”이다
앞에서 살펴본 말씀을 다시 연결해 봅시다.
상제님께서는
“참공부는 지성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또
“일심 공부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통에 대해서는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에서는
“천지의 홍은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연결하면 놀라운 수행의 구조가 나옵니다.

참공부
→ 지성
지성
→ 일심
일심
→ 도통
도통
→ 천지의 은혜를 앎
은혜를 앎
→ 보은

보은
→ 인간관계와 사회질서를 바로 세움
사회질서의 완성

→ 군사부일체·사강육륜의 후천 문화
즉 수행과 문명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닦는 것에서 시작해서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갚는 인간이 되고,
그 인간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9. 진정한 수행자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선랑,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하나 뽑는다면 저는 이것이라고 봅니다.

수행의 깊이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은혜를 알고 얼마나 성실하게 보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도통을 말하면서 사람을 업신여기고,
스승의 은혜를 잊고,
부모의 은혜를 잊고,
자기가 받은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도통천지보은의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진정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자기가 얼마나 많은 은혜 속에서 살아왔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해지고,
그래서 책임이 생기고,
그래서 갚으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10. 후천 문화의 인간상
결국 후천이 요구하는 인간은 받기만 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은혜를 아는 인간
→ 은혜를 잊지 않는 인간
→ 은혜를 반드시 갚는 인간
→ 자기가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다시 전하는 인간
입니다.

이것이 이어지면 사회 전체가 달라집니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자식에게 전하고,
스승에게 받은 것을 제자에게 전하고,
사회에서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천지에서 받은 생명을 천지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은은 과거의 은혜를 갚는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결론 — “받은 자가 갚는 세상”
선천의 인간은 천지의 홍은을 받고도 그 은혜를 온전히 갚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후천의 인간은 달라져야 합니다.
천지의 은혜를 알고,
부모의 은혜를 알고,
스승의 은혜를 알고,
사람의 은혜를 알고,
작은 은혜 하나도 잊지 않고,
받은 만큼 반드시 갚는 인간.
그것이 바로 보은의 인간입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군사부일체와 사강육륜은 바로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새로운 인간관계의 질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개의 말씀을
한 줄로 연결하면 아주 강력합니다.

“천지의 홍은을 깨닫고 → 참공부와 일심으로 자신을 닦고 → 도통하여 천지의 이치를 통하고 → 그 은혜를 현실에서 갚아 나가는 것.”
이것이 도를 닦는 궁극의 방향입니다.

도를 얻기 위해 닦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알기 위해 닦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닦는 것.

그리고 그 보은이 개인의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가정·스승과 제자·사회·천지로 확장될 때,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후천의 새로운 인간문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a26a3cb80a8073826.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9:31: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래서 동학의 최수운대신사께서는 동경대전에서 13자 지극하면 만권 시서 무엇하리 하셨던것입니다ㆍ]]></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6]]></link>
			<description><![CDATA[천지공사의 대의(大義)

증산 상제님께서 
선천개벽 이래로 상극의 운에 갇혀 
살아온 뭇 생명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주시고

후천 오만년 지상 선경세계를 
세워 온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니

이것이 곧 
인존상제님으로서 
9년 동안 동방의 조선땅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라.

이로써 하늘 땅의 
질서를 바로잡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신도(神道)와 인사(人事)를 조화(調和)시켜

원시반본(原始返本)과 
보은(報恩)·해원(解寃)·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지나간 선천상극(先天相克)의 운(運)을 끝막고 후천 새 천지의 
상생의 운수를 여시니라.

신명정부(神明政府)를 건설하시고 앞세상의 역사가 나아갈 이정표를 세우심으로써

상제님의 대이상이 
도운(道運)과 세운(世運)으로 전개되어 

우주촌의 
선경낙원(仙境樂園)이 건설되도록 물샐틈없이 판을 짜 놓으시니라.
(증산도 道典 5:1)

장차 병겁이 들어오는데

장차 세계 각국이 있는 
재주를 다 내어 싸우리니 재주가 가장 뛰어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당래에는 병겁(病劫)이 
들어와 천하를 진탕으로 만들 것인데 뉘라서 
활방(活方)을 얻어 멸망하는 인종을 살리리오.

이제 서양에서 넘어오는 
무기에는 대항할 자가 없으니 전쟁을 멀리하고 
의통(醫統)을 알아 두라.
동서양의 전쟁은 병으로 판을 고르리라.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이 
조선에서 개벽 기운을 받아 가 저희 
나라에 퍼뜨리게 되리니
그 때에 너희들이 천하를 추수하리라.

사람을 많이 살리면 
보은줄이 찾아들어 영원한 복을 얻으리라.
(증산도 道典 7:32)

도통자가 나온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해를 끼치면 
해를 받았지만

이 뒤에 도통한 사람이 나오면 
해를 끼치다가는 제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이 뒤에 도통자가 나오면 조심조심하라.” 하시니라.

종통맥이 사는 맥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 
도는 그 도(道)가 있고, 땅은 그 땅이 있느니라.

시속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잘 바루라.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증산도 道典 6:128)

수행의 결론을
 ‘은혜와 보은’으로 잡아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보은의 흐름이 이 말씀에서 완성됩니다.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 『도전』 2:23

도를 닦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엄청난 은혜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비추고,
공기가 있고 물이 있으며,
곡식과 온갖 생명이 있고,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천지인이 우연히 생겨나서 굴러가는
존재가 아니며 

무한한 공덕을 드리며
자전 공전을 하며 공기와 산소 그리고
여기에서 생성된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것입니다ㆍ

그런데 인간은 
대개 받는 것은 알면서도 받은 은혜의 근원을 잊어버립니다.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증산도 道典 2:34)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홍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홍은’은 작은 은혜가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근본 자체가 천지의 은혜 위에 놓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수행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행을 단순히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라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됩니다.

더 높은 능력, 더 깊은 경지, 
도통 같은 것을 자기 성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수행의 근본 방향을 잃게 됩니다.
참공부는 반대로 갑니다.

천지의 은혜를 깨닫는다.
↓
내가 무엇을 받아 살아왔는지를 안다.
↓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
자신을 바르게 닦는다.
↓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
↓
마침내 천지에 보은한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말씀,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가 결정적으로 연결됩니다.

도통의 목적까지도 ‘보은’입니다.
도통을 자기 영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이치를 통하여 
천지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도통의 방향입니다.

“천지의 홍은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오히려 수행자에게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받은 것을 어떻게 갚고 있는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보은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많이 얻었다고 보은한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오래 했다고 
자동으로 보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받은 생명과 
천지의 은혜를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돌려주고 있는가. 바로 여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보은은 
수행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수행의 목적을 결정하는 중심축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은혜를 모르고 하는 수행은 자기수련에 머물고, 은혜를 알고 하는 수행은 
보은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도통의 귀결은 ‘천지보은’이다.

도를 닦으려면 
결론은 은혜와 보은이다”**라는 
정리가 정확히 이 두 구절을 관통합니다.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의 홍은을 깨달음 → 천지보은.
**「도를 닦는 궁극의 목적 — 
도톰천지보믄이며 은혜와 보은 입니다ㆍ

다시 말하면  
3자 주문의 시천주 주문의 참뜻인데 
설명을 하면 시천주 조화점 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인데  천지의 부모를 
잘 모시면

소원성취하는 온갖 조화가 일어나며  
민사지 즉 만사를 아는 은혀를 도통을 한 은혀를 
영세토록 잊지 못하고 잊지 않는 지극한
은혜를 내려 달라는 지극한 염원이 담게있는 
주문의 뜻입니다 ㆍ

그래서 동학의 최수운대신사께서는
동경대전에서 13자 지극하면 만권 시서 무엇하리 
하셨던것입니다ㆍ

인생은 살아가고 목숨을 유지하는 순간 
우리는 천지부모로 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빚을지고 
살아가고 있는것인데  이것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의 없다는 것입니다 ㆍ그래서 쓸어버리고 마는데 이것이 
생사지도의 질서로 현실에 나타나는것입니다 ㆍ

그리하여 천지에서 보은을 하지 않는자는 배신자가 되는것이며 배신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생게 난 것입니다 어차피 천지 만에 있는 모든것믄 도통의 세계에서 나온것입니다ㆍ

그래서 기존의 가르침인  멍터리 사고방식을
가르쳐며 형성 시켜 왔던것입니다ㆍ그리하여 
선악의 개념이 왼전히 다른것입니다ㆍ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a0faa4041e5084501.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8:45: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세상사람들이 도통이라는 말도 생소하게 들리며 또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ㆍ또한 가르치지 못하고 아는자도  더뭅니다ㆍ]]></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5]]></link>
			<description><![CDATA[세상사람들이 도통이라는
말도 생소하게 들리며 또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ㆍ또한 가르치지 못하고 아는자도 
더뭅니다ㆍ

그래서 세속에 
도통을 모르겠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도통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도통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합니다ㆍ

그리하여 도통에 관한 이야기를
천지 주인이신 천지부모로 부테 말씀을
듣고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 보아야 겠습니다
그래서 도통에 관하여 링크를 걸어 둡니다ㆍ

https://www.dojeon.org/?r=dojeon&amp;m=ci3&amp;cc=dojeon&amp;mm=search&amp;a_area=1&amp;a_keyword=%EB%8F%84%ED%86%B5&amp;a_logic=and&amp;a_keyword1=

앞에서 살펴본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보은의 흐름이 이 말씀에서 완성됩니다.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 『도전』 2:23

도를 닦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엄청난 
은혜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비추고,
공기가 있고 물이 있으며,
곡식과 온갖 생명이 있고,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천지인이 우연히 생겨나서 굴러가는
존재가 아니며 

무한한 공덕을 드리며
자전 공전을 하며 공기와 산소 그리고
여기에서 생성된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것입니다ㆍ

그런데 인간은 대개 받는 것은 알면서도 
받은 은혜의 근원을 잊어버립니다.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증산도 道典 2:34)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홍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홍은’은 작은 은혜가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근본 자체가 천지의 은혜 위에 놓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수행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행을 단순히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라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됩니다.

더 높은 능력, 더 깊은 경지, 
도통 같은 것을 자기 성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수행의 근본 방향을 잃게 됩니다.
참공부는 반대로 갑니다.

천지의 은혜를 깨닫는다.
↓
내가 무엇을 받아 살아왔는지를 안다.
↓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
자신을 바르게 닦는다.
↓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
↓
마침내 천지에 보은한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말씀,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가 결정적으로 연결됩니다.

도통의 목적까지도 ‘보은’입니다.
도통을 자기 영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이치를 통하여 
천지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도통의 방향입니다.

“천지의 홍은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오히려 수행자에게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받은 것을 어떻게 갚고 있는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보은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많이 얻었다고 보은한 것도 아닙니다.

수행을 오래 했다고 
자동으로 보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받은 생명과 
천지의 은혜를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돌려주고 있는가. 바로 여기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보은은 
수행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수행의 목적을 결정하는 중심축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은혜를 모르고 하는 수행은 자기수련에 머물고, 
은혜를 알고 하는 수행은 보은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도통의 귀결은 ‘천지보은’이다.

도를 닦으려면 
결론은 은혜와 보은이다”**라는 
정리가 정확히 이 두 구절을 관통합니다.

참공부 → 일심 → 도통 → 
천지의 홍은을 깨달음 → 천지보은.
**「도를 닦는 궁극의 목적 — 
은혜와 보은 입니다ㆍ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a14fcbe2f64100153.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8:25: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를 따르는 자는 49일 수행 공부를 하라.”  :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부를 49일 동안 계속하라는 것은 결국 일심을 몸에 익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2]]></link>
			<description><![CDATA[도전속의 수행 말씀 링크
https://www.dojeon.org/?r=dojeon&amp;m=ci3&amp;cc=dojeon&amp;mm=search&amp;a_area=1&amp;a_keyword=%EC%88%98%ED%96%89&amp;a_logic=and&amp;a_keyword1=

상제님께서 하루는 
김경학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심(一心) 
공부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시니

경학이 “그러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거늘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일기가 청명(淸明)하고 바람 없이 고요한 날, 
깊은 물에 돌을 넣으면 소르르 들어가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 시간만 나아가도 
공부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49일 수행 공부를 하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자는 49일 수행 공부를 하라.” 하시고

“너희들 공부하려면 욕볼 것이다. 
코에다 마늘씨를 박아야 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202)

선랑, 이 두 대목을 함께 놓으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참공부’가 무엇인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핵심은 단순히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심·지성·보호성신·지속적인 수행입니다.

1. “공부를 어찌 등한히 알겠느냐”
신원일이 공부할 때 지방신들이 호위하여 떠나지 못했다는 일화는 수행의 가치를 매우 강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수행이 자기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부안 신명을 부르셨는데도 응하지 않았고, 살펴보니 신원일이 공부할 때 그 지방신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공부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니 참공부는 지성으로 해야 하느니라.”

즉 참공부의 첫 번째 조건은 **지성(至誠)**입니다.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호기심으로 잠깐 해보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정성을 다해 들어가는 공부입니다.

2. “일심 공부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이 말씀은 수행의 가장 어려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일심(一心)**은 단순히 
집중력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이 이리저리 흩어지지 않고,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욕망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하나의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경학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묻자 상제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비유를 주십니다.

“깊은 물에 돌을 넣으면 소르르 들어가는 그러한 마음”
이것이 수행의 핵심 이미지입니다.

돌을 깊은 물에 넣으면 물결을 크게 일으키며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소르르 깊이 가라앉습니다.
수행자의 마음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힘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온갖 생각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도 아닙니다.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  마음이 깊이 가라앉는 것.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놀랍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한 시간만 나아가도 공부가 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시간의 양보다  마음의 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래서 “49일 수행 공부”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49일 수행 공부를 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한 번 깊이 들어가는 것과
그 상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맑고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부를 
49일 동안 계속하라는 것은 결국 일심을 몸에 익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너희들 공부하려면 욕볼 것이다. 
코에다 마늘씨를 박아야 하리라.”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욕본다’는 말은 
수행이 결코 편안하고 낭만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졸음과 싸우고, 산란한 생각과 싸우고, 욕심과 싸우고, 조급함과 싸우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4. 그리고 보호성신의 의미
첫 번째 구절의 지방신의 호위와 49일 수행을 함께 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참공부를 하는 사람은 
공부 자체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신원일의 공부를 보시고 
지방신들이 그를 호위하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은, 

수행이 단순한 개인 취미가 아니라 
천지와 인간, 신명 세계까지 
연결되는 중대한 일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시간에는 잡념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일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5. “그 재미에 
똥구멍이 옴쏙옴쏙 하느니라”
이 말씀은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깊습니다.
상제님께서는 공부를 고통만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욕을 보고 어렵지만, 
제대로 공부가 들어가면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수행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공부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공부가 나를 끌고 갑니다.
그때는 억지로 앉는 것이 아니라, 앉고 싶어집니다.

한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짧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똥구멍이 옴쏙옴쏙”한다는 
아주 생활적인 표현으로 공부에 깊이 빠져드는 생생한 
재미를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두 구절을 하나로 묶으면
이 두 대목에서 상제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공부의 
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성(至誠)
↓
고요하고 맑은 마음
↓
일심(一心)
↓
지속적인 수행
↓
공부가 깊어짐
↓
공부 자체의 재미를 체득함
그리고 그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보호성신의 일화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참공부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지성으로 지속하여 자기 자신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공부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심 공부가 죽기보다 어렵다”**는 말씀은 수행의 문턱을 과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8/202608/6a79fb2fb476a3617025.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6:36: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2"><![CDATA[율려화 수행]]></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 보아라.  그 재미에 똥구멍이 옴쏙옴쏙 하느니라.” 하시니라.]]></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70]]></link>
			<description><![CDATA[수행 공부와 보호성신

또 이르시기를 
“내가 부안(扶安) 신명을 불러도 
응하지 않으므로 살펴보니

신원일(辛元一)이 
공부할 때에 그 지방신들이 호위하여 떠나지 못한 까닭이라. 

이 일을 볼진대 
공부를 어찌 등한히 알겠느냐. 공부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니 
참공부는  지성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 보아라. 
그 재미에 똥구멍이 옴쏙옴쏙 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77)

이 구절은 수행 공부가 
단순히 개인의 마음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천지의 신명 질서와 
연결되는 공부라는 것을 아주 강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신원일이 공부할 때 
지방신들이 떠나지 못했다
상제님께서 부안 신명을 부르셨는데 응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신원일이 공부할 때에 그 지방신들이 
호위하여 떠나지 못한 까닭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한 사람을 지방의 신명들이 
호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수행자가 
제대로 공부에 들어가면 
그 공부는 개인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공부하는 장소와 
주변의 신명 질서까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2. 그래서 상제님께서 
“공부를 어찌 등한히 알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직선적입니다.

사람들은 공부를 쉽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나면 하고, 바쁘면 쉬고, 
기분이 좋으면 하고,  싫으면 놓아버립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그 반대의 현실을 보여주십니다.
참공부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그것을 호위하는 
신명까지 붙어 있다.

그러니 공부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결론을 
주십니다.

“참공부는 지성으로 해야 하느니라.”
여기서 **지성(至誠)**이 핵심입니다.

지성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뜻을 넘어, 
마음과 행동을 한곳에 모아 흐트러짐 없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공부를 대하는 자세의 진실함이라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마지막 말씀이 더 재미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 보아라.
그 재미에 똥구멍이 옴쏙옴쏙 하느니라.”

상제님께서는 
참공부의 즐거움을 아주 파격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억지로 
참고 견디는 공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부가 제대로 들어가면 사람이 스스로 빠져듭니다.
궁금증이 생기고, 하나를 알면 또 하나를 알고 싶어지고,

막혀 있던 것이 
풀릴 때 큰 희열이 생깁니다.
그래서 몸까지 들썩거릴 정도로 공부 자체가 
재미있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억지로 하는 공부 →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지성으로 들어간 참공부 → 
공부 자체가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이 차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4. “보호성신”이라는 제목으로 보면 더욱 선명합니다
이 구절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참공부를 시작한다
↓
지성으로 공부한다
↓
공부의 기운과 질서가 형성된다
↓
그 공부하는 사람을 신명이 호위한다
↓
공부가 깊어지면 공부 자체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내가 혼자 공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공부가 깊어질수록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신명 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마지막에 **“제대로 한번 해 보아라”**라고 
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말로 공부하지 말고,
형식으로 공부하지 말고,
실제로 한번 깊이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상제님께서 
**“참공부는 지성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공부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참공부에는 천지의 신명 질서까지 응감하며,

지성으로 깊이 들어간 사람은 
마침내 공부 자체에서 생명의 
큰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이 「수행 공부와 보호성신」
이라는 제목에 가장 잘 맞는 
해석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9f72b31c7e6656728.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6:10: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인간 세상의 기존 질서가 뒤집히며 → 상제님이 우주의 주재자로서 드러나시는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69]]></link>
			<description><![CDATA[가을 대개벽기 구원 : 
열 사람에 한 사람 산다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열 사람 가운데 한 명 살기가 어려우리니 내 자식이라도 어찌 될지 모르느니라.

그 때에 내가 높이 앉으면 
너는 눈이 무거워서 쳐다보지도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311)

갖은 욕을 당한 내성

내성이 공부하는 방으로 쳐들어와 
내성에게 ‘나가라.’며  갖은 욕을 보이되 내성이 꼼짝도 
하지 않으매  궁리 끝에 내성이 앉은 자리만 
남기고 방구들을  전부 파 놓고 돌아가니라.

그만 살려 주어라

이 날 밤, 내성이 수도를 하는데 
큰 키에 눈이 부리부리한 신장(神將) 둘이 찾아왔거늘

한 신장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또 한 신장은 한 손에는 큰 도끼를, 다른 손에는 ‘박씨 청년’을 백회에서 항문까지 창으로 
꿰어 거꾸로 들고 있더라.

신장들이 내성에게 절을 하고는 
“이놈을 동해로 보낼까요,  서해로 보낼까요?” 하며 
명을 기다리니

내성이 꾸짖으며 “무슨 짓이냐. 
몰라서 한 것인데 무슨 죄가 되느냐. 
당최 그러지 말라.” 하고 만류하니라.

한편 청년의 집에서는 
멀쩡하던 아들이 갑자기 실신하여 새카맣게 타들어 가며 
숨이 넘어갈 듯 경련을 일으키는지라

그 아버지가 짚이는 데가 있어 
한밤중에 내성을 찾아와 “선생님, 제 아들놈이 
금방 죽게 생겼습니다.

선생님 공부하시는데 
방구들을 파더니만 급살을 맞았는지 
저렇게 새카맣게 타 죽게 생겼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거늘

내성이 “살려 줄 테니 걱정 마시오.” 하고 
안심시키니  그 아버지가 재차 확답을 받고 집으로 
뛰어가니라.

이에 내성이 
“그만 살려 주어라.” 하니 그제야 
신장들이 청년의 몸에서 창을 뽑고 절하고 돌아가거늘

다음날 아침 박씨 부자가 
찾아와 백배사죄하고 방구들을 복구하니라.

그 뒤로는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고 내성과 모친에게 친절하더라.
(증산도 道典 10:93)

이 구절의 중심은 
시대 변화 자체가 아니라 
상제님의 위격과 인간이 그 참모습을 대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높이 앉으면」의 참뜻
상제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높이 앉으면
너는 눈이 무거워서 쳐다보지도 못하느니라.”

여기서 **“높이 앉으면”**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제님은 우주의 주재자, 
곧 천지의 질서를 맡아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상제님을 
정말로 우주의 주인으로 알아보는 순간, 

지금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평범한 인식으로는 감히 그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눈이 무거워서”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호연에게 하신 이 말씀은 아주 깊습니다.

평소에는 인간이 
상제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말씀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의 참된 위격이 
드러나는 때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의 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네가 지금처럼 나를 바라볼 수 있겠느냐?” 하는 뜻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눈이 무겁다”는 것은 
단순히 눈꺼풀이 무겁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제님의 실체와 위격 앞에서 
인간의 눈을 함부로 들 수 없는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말씀과 연결해야 합니다

“장차 열 사람 가운데  한 명 살기가 어려우리니
내 자식이라도 어찌 될지 모르느니라.”

이 말씀도 단순히 숫자 10명 중 1명만 
살아남는다는 식으로만 읽으면 안 됩니다.

천지의 큰 변국이 닥칠 때는 혈연이나 
인간적인 관계가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 때에 내가 높이 앉으면” 이라고 하십니다.

즉 큰 변국의 때가 오고 → 인간 세상의 기존 질서가 뒤집히며 → 상제님이 우주의 주재자로서 드러나시는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 내가 평소에 뵙던 그분이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었구나.

우주를 주재하는 참 주인이셨구나.”
그 순간에는 감히 눈을 들어 바라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구절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0/202608/6a79f1e18bcbe7858994.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5:45: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0"><![CDATA[無極大道]]></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대한민국 문화의 힘. 지금 한류가 마지막 세대의 장벽마저 넘어선 실제 상황을 전해드립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65]]></link>
			<description><![CDATA[대한민국 문화의 힘. 
지금 한류가 마지막 세대의 장벽마저 
넘어선 실제 상황을 전해드립니다.

https://youtu.be/DdSCAxqY2QE?si=PceoBaAkwOl9hKSp

BTS 파리 공연 울지마 정국ㆍ

https://youtube.com/shorts/PaF6_EjJAtQ?si=3vA_9BVqvoCcqjRd

프랑스 소녀ㆍ한국 방문을 위해 10년 준비

https://youtu.be/3c4W4eUql78?si=jWQB7GxwCUu2sgOc]]></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01:02: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9"><![CDATA[아리랑의 비밀]]></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빛을 가진 인간에서,  빛을 만들어 내는 인간으로 ᆢ인간으로ᆢ호모 루미너스(Homo Luminous)’]]></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63]]></link>
			<description><![CDATA[호모 루미너스

― 빛을 가진 인간에서, 
빛을 만들어 내는 인간으로

여러분,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모 루미너스(Homo Luminous).
‘빛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빛,
통찰의 빛,
창조의 빛,
생명의 빛,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내면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면서 만들어 내는
정신적·문명적 밝음을 말합니다.

호모 사피엔스.
우리는 스스로를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질문을 하나 던져봅시다.
지혜로운 인간 다음에는 어떤 인간이 등장해야 하는가?

많이 아는 인간인가?
아니면
자신이 아는 것을 가지고
세상을 더 밝게 만들 수 있는 인간인가?
바로 여기에서

호모 루미너스라는 개념이 시작됩니다.

1.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까지 왔는가
인류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과학을 만들었습니다.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까지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이어진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의 능력은 엄청나게 확장되었습니다.

손으로 돌을 깨던 인간이
우주선을 만들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 바라보던 인간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고
망원경으로 은하를 바라봅니다.

계산하던 인간이
이제는 기계에게 계산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인간의 지혜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가?
기술은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인간상이 필요합니다.

2. 빛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호모 루미너스는
머리가 좋은 인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인간도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인간도 아닙니다.
유명한 인간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호모 루미너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넓은 생명과 문명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인간입니다.

많이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아는 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
강한 힘을 가지고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

기술을 가지고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
자신의 성공만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사람.

이런 인간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입니다.

3. 빛은 지식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빛은
앎의 빛입니다.
무지한 상태에서는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합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과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인간을 공부하고,
기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반드시 통찰로 발전해야 합니다.

4. 두 번째 빛은 통찰이다
통찰이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서
하나의 구조를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역사를 보고,
과학을 보고,
경제를 보고,
기술을 보고,
인간의 심리를 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발전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가 등장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육의 방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일의 방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기업의 구조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정의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한 질문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현상에서
더 큰 흐름을 읽는 능력.
그것이 통찰입니다.

5. 세 번째 빛은 창조다
아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창조해야 합니다.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새로운 교육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회의 운영 방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창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만들고,
문자를 만들고,
인쇄술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인터넷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창조의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모 루미너스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닙니다.
문명의 창조자입니다.

6. 그러나 창조에는 책임이 따라온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능력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져야 합니다.
칼을 가진 사람보다
더 강한 무기를 가진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개인의 지능보다
사회를 움직이는 기술이 더 강하다면
그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요구됩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제
엄청난 계산 능력을 가진 도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7. 호모 루미너스는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
가장 어려운 통치는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욕망이 생겼을 때
그 욕망에 끌려가지 않는 것.
화를 느꼈을 때

그 감정이 판단을 지배하지 않게 하는 것.
칭찬을 받았을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
실패했을 때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힘을 얻었을 때

힘을 남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진짜 성숙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강력한 기술을 손에 넣는다면
그 기술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능력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자기통제입니다.

8. 호모 루미너스와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인간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강력한 협력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입니다.
AI에게 지식을 맡길 수 있습니다.

계산을 맡길 수 있습니다.
자료를 분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인간에게 남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인간은
AI와 경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AI를 활용하여 자신의 사고와 창조 능력을 확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빼앗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기계와 협력하여
더 높은 문명을 만드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9. 인간의 진화는 무엇인가
인간의 진화를
단순히 신체적 변화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명도 진화합니다.

언어가 발전하고,
지식이 발전하고,
사회제도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도 발전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의 진화는
무엇일까요?
더 큰 몸?
더 빠른 계산?
더 강한 힘?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진화는
더 깊은 이해,
더 넓은 시야,
더 높은 책임,
더 큰 창조력
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름이
바로 호모 루미너스입니다.

10. 빛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빛’이라는 말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빛은
자기 혼자만 밝히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등불이
다른 사람의 길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배운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좋은 생각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성장을 다른 사람의 성장과 연결합니다.

내가 많이 알게 되었다면
그 지식을 나누고,
내가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도 그 길을 볼 수 있게 하고,

내가 기술을 익혔다면
그 기술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빛의 본질은 확장입니다.

11.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문명의 중심에는 결국 인간이 있습니다.
왜 기술을 만드는가?

왜 사회를 발전시키는가?
왜 지식을 쌓는가?
왜 우주를 탐구하는가?
결국 인간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미래 문명의 목표는
기술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은 수단입니다.

목표는
인간과 생명과 사회가
더 성숙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 인간.
그 인간이
호모 루미너스입니다.

12. 호모 루미너스는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호모 루미너스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새로운 종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상입니다.

오늘 무엇을 공부하는가.
무엇을 믿기 전에 무엇을 확인하는가.

어떤 기술을 배우는가.
어떤 사람을 존중하는가.
어떤 욕망을 통제하는가.
어떤 미래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가.
이러한 선택이 모여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갑니다.

13. 지금은 인간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인류는 오랫동안
인간을 이렇게 정의해 왔습니다.

Homo sapiens.
지혜로운 인간.
그런데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지식을 가지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모 루미너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4. 호모 루미너스의 네 가지 조건
제가 생각하는 호모 루미너스의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깊이 아는 인간
표면적인 정보에 머물지 않고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는 인간.

둘째, 넓게 보는 인간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명과 미래까지 바라보는 인간.

셋째, 스스로를 다스리는 인간
욕망과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인간.

넷째, 창조하는 인간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간.
이 네 가지가 합쳐질 때
인간의 빛은 더욱 강해집니다.

15.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생명을 함부로 대한다면
그 지능은 문명을 밝히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해도
약한 존재를 짓밟는다면
그 힘은 문명을 발전시키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강함은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고

더 큰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16. 이제 인간의 시간이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로봇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AGI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 시대에 인간은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
”
이 질문을 놓치면
기술의 발전만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붙잡으면
인간 자신의 발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17. 호모 루미너스는 미래의 인간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이다
호모 루미너스는
먼 미래에 갑자기 나타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오늘 공부하는 사람이
호모 루미너스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
그 길을 열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작은 선택이 모여 탄생합니다.

18. 위대한 결단과 호모 루미너스
앞서 우리는
‘위대한 결단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결단의 내용이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미래가 아닙니다.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입니다.
과거의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변화에 끌려가는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이해하고,
기술을 활용하고,
지식을 지혜로 바꾸고,
자신을 다스리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이것이 진짜 결단입니다.

맺는말
여러분,
인류는 지금
아주 거대한 문명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로봇이 있습니다.

양자기술이 있습니다.
생명과학이 있습니다.
우주개발이 있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도구들이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강력한 기술은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책임과 창조력이 함께 성장한다면

기술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것인가만 묻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우리는 호모 루미너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진 인간.
통찰하는 인간.
자신을 다스리는 인간.
창조하는 인간.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더 큰 생명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인간.
그 인간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인간상입니다.

호모 루미너스
어둠을 탓하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만드는 인간.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인간이 아니라
변화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인간.

지식을 자랑하는 인간이 아니라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인간.

강한 힘을 원하는 인간이 아니라
강한 힘을 책임질 수 있는 인간.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시대를 밝히는 인간.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호모 루미너스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먼 미래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오늘 무엇을 배우는가.
오늘 무엇을 선택하는가.
오늘 어떤 행동을 하는가.
바로 그것이
미래의 인간을 결정합니다.

호모 루미너스는 미래의 종명이 아니라
인류가 선택해야 할 새로운 방향입니다.

.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86d3fdb9fe4017289.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5:41: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4"><![CDATA[AI문명 기계仙]]></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위대한 결단의 시간  ― 지금 흔들리는 자와 준비된 자]]></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61]]></link>
			<description><![CDATA[위대한 결단의 시간

― 지금 흔들리는 자와 준비된 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보고,
휴대전화를 보고, 뉴스를 보고,
내일을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면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문턱을 지나고 있습니다.

문명의 구조가 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을 다루는 방식이 변하고 있고,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으며,
교육의 방식이 변하고 있고,
경제의 구조가 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활동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로봇과 자동화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으로만 이야기하던 기술들이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바로 여기에서
오늘 이야기할 위대한 결단이 시작됩니다.

1. 지금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다
역사에는 평범한 시대가 있고
전환의 시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대에는
기존의 질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정해진 방식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전환기가 오면
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기준이 흔들립니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현실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에는 낡은 기술이 됩니다.
어제의 직업이
내일에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중요했던 능력이
내일에는 기계가 훨씬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가?”
이 질문이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2. 인공지능 시대의 진짜 질문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질까?”
물론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지능을 사용하는가?”

아무리 뛰어난 계산 능력이 있어도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능력은 방향을 잃습니다.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혼란이 커집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는 남습니다.

결국 문명의 핵심에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
판단할 수 있는 사람,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3.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여기에서 공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부란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무엇이 원인인가?
이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앞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러므로 큰 시대를 앞둔 사람에게는
큰 공부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과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기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인간을 공부해야 합니다.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해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4. 지식의 시대에서 판단의 시대로
과거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정보를 가진 사람이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보는 넘쳐납니다.

검색하면 수많은 자료가 나오고,
AI에게 질문하면 순식간에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중요한가?
정보를 얻는 능력보다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무엇이 사실인가?
무엇이 왜곡인가?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어떤 선택이 미래를 만드는가?
이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공부는
암기 중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각하는 공부, 연결하는 공부,
검증하는 공부, 창조하는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5. 진짜 시험은 위기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평온할 때 자신을 잘 모릅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면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손해를 보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하는가.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가.

바로 그 순간이
자신을 시험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 역시
하나의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가 왔을 때
두려움에 빠질 것인가,
남을 탓할 것인가,
과거만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새로운 준비를 시작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6. 흔들리는 사람과 준비된 사람
같은 폭풍을 만나도
모든 배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준비된 배는
파도가 높아져도 견딥니다.

준비되지 않은 배는
작은 파도에도 흔들립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준비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준비의 차이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7. 결단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단이란 무엇입니까?
결단은 단순히
“나는 이렇게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은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공부하기로 결단했다면
실제로 공부해야 합니다.
자신을 바꾸기로 했다면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로 했다면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책임을 지기로 했다면
불편한 순간에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이 결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결단을 증명합니다.

8. 가장 어려운 결단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결단은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버리는 결단이 더 어렵습니다.

오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리는 것.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는 것.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것.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손에 과거를 가득 쥐고 있으면서
미래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9.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구분합니다.

좋은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수정하고,
낡은 것은 내려놓고,
새로운 것은 검증하여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무조건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과거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전환기의 지혜입니다.

10.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앞으로의 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요?

남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을 끌어내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은
많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줄 알고,
틀렸다면 수정할 줄 알고,

옳다고 판단한 것은 끝까지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문명은 결국
사람의 능력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1. 문명의 수준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책임감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강력한 기술에는
강력한 책임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지능에는
강력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문명에는
강력한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히 더 똑똑한 기계만이 아닙니다.

더 성숙한 인간과
더 책임 있는 문명입니다.

12. 결단의 기준을 세워라
앞으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이것은 사실인가?

둘째.
이 선택은 나를 성장시키는가?

셋째.
이 선택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넷째.
당장의 이익만 보는가, 아니면 긴 미래를 보는가?

다섯째.
내가 이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습관처럼 던지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13. 위대한 결단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결단을
어떤 역사적인 날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한 결단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 속에 있습니다.

오늘 한 시간 공부하는 것.
잘못된 정보를 확인하고 바로잡는 것.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쌓여
사람의 수준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의 수준이 쌓여
문명의 수준이 됩니다.

14.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검증해야 합니다.
넷째, 실천해야 합니다.
다섯째, 사람과 사회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15. 마지막 결단
여러분.
인류는 지금 새로운 문명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문명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집착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깨어 있는 정신,
깊은 공부,
정확한 판단,
그리고 행동하는 결단입니다.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내가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남이 무엇을 하는지 바라보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어떤 시대를 만들기 위해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것입니다.

지식만 쌓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사람이 될 것인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시대가 만들어 주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공부가 결단이고,
오늘의 실천이 결단이며,
오늘의 책임이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다릴 때가 아닙니다.
준비할 때입니다. 생각할 때입니다.
배울 때입니다.

그리고 행동할 때입니다.
위대한 결단의 시간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묻겠습니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이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단은 오늘입니다.
준비도 오늘입니다.
시작도 오늘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8673b5a1da2781102.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1:40: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위대한 결단의 시간대가 다가왔다  ― 시대가 바뀔 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60]]></link>
			<description><![CDATA[위대한 결단의 시간대가 다가왔다

― 시대가 바뀔 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평범한 하루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의 역사를 길게 바라보면
문명의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는 언제나 특별한 징후가 나타난다.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며,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때가 결단의 시간이다.

결단이란 단순히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1. 역사는 결단하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역사를 돌아보면 거대한 변화의 순간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기존의 질서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누군가는 현실에 안주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문명의 전환은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의 질서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지식보다 판단력,
말보다 실천력,
안정보다 책임감이 중요해진다.

평범한 시대에는
조금 늦게 결정해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전환기에는 다르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 된다.
시대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만 과거에 머무르는 것 역시 선택이기 때문이다.

2. 지금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통찰이다

큰 변화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두려움이다.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나는 어떻게 되는가?”
“기존의 것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또 하나는 탐구다.

“왜 변화가 일어나는가?”
“어떤 원리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가?”

“그 변화 속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간다.

두려움에 붙잡힌 
사람은변화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통찰하는 사람은
변화의 구조를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구조를 이해한 사람은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변화를 활용할 수 있다.

3. 거대한 기술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인류는 이전과 전혀 다른 변화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식을 대신 처리하기 시작했고,
로봇은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했으며,

양자기술과 생명공학은
기존의 인간 능력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기계가 얼마나 똑똑해지는가?”
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기계가 점점 강해지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본질적인 능력은 무엇인가?”

지식을 외우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산만 잘해서도 부족하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큰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판단하고,
통찰하고,
창조하고,
책임지는 능력이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인간의 정신적 수준과 
문명적 책임은 더욱 중요해진다.

4. 진짜 시험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평온할 때는 누구나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불확실성이 커질 때,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올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갈 때,
그때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그 사람의 실제 수준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위대한 
결단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말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5. 결단은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결단이라고 하면
인생을 뒤흔드는 어떤 특별한 선택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결단은 
훨씬 작고 구체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오늘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어떤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을 사실로 확인할 것인가.
어떤 행동을 반복할 것인가.
어떤 욕심을 내려놓고
어떤 책임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의 선택이 모여
한 시대의 문명을 만든다.

따라서 위대한 결단이란
오늘의 작은 선택을 바꾸는 것이다.

6. 아는 사람과 준비된 사람은 다르다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변화에 실제로 준비된 사람은 많지 않다.

정보를 아는 것과
그 정보를 삶의 능력으로 만드는 것은 다르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판단력이 깊어지는 것도 다르다.

좋은 말을 하는 것과
어려운 순간에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대에는
공부가 더욱 중요하다.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원인을 찾고,
서로 다른 사실을 연결하고,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이다.

7. 큰 시대에는 큰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것은
한 분야의 지식만이 아니다.

역사를 보고,
자연의 질서를 보고,
문명의 변화를 보고,
인간의 정신을 보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고,
미래 사회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각각의 지식을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해서 보는 능력이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기술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변하고,
사회 구조가 변하고,
기술이 변하면서
문명의 운영 방식도 변한다.

그러므로 큰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은
작은 정보에 매몰되지 않는다.
전체 흐름을 본다.

8. 결단의 기준은 하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선택이 나와 세상을 함께 성장시키는가?”
나만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가족과 공동체와 
미래 세대까지 생각한 선택인가?
당장의 이익만 보는가?
아니면 긴 시간을 보는가?

두려움 때문에 선택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선택하는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9. 시대는 준비된 사람을 요구한다
전환기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같은 변화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적응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차이는 준비에서 나온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공부하라.
생각하라.
질문하라.
확인하라.
사람을 넓게 보라.
기술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해하라.

그리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라.

10. 위대한 결단은 오늘 이루어진다
우리는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결단의 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 무엇을 배우는가.
오늘 어떤 생각을 선택하는가.
오늘 누구와 함께하는가.

오늘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세우는가.
그 하나하나가 미래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한 사람의 변화가
가족을 바꾸고,
가족의 변화가 공동체를 바꾸며,
공동체의 변화가
새로운 문명의 기반이 된다.

마지막으로
시대가 바뀌는 순간에는
모든 사람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누군가는 과거를 붙잡을 것이다.
누군가는 변화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시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공부하고 준비하여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바로 그 선택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대도 아니고 불안도 아니다.

깨어 있는 판단, 
깊은 공부, 흔들리지 않는 실천이다.

위대한 시대는
위대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여
시대의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결단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오늘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거대한 선언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서 시작된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8665f08e501185564.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1:38: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핵심은  스승의 죽음 자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남긴 가르침이  실제 삶에서 얼마나 굳건하게 작동하는가에  두겠습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9]]></link>
			<description><![CDATA[핵심은 
스승의 죽음 자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남긴 가르침이 
실제 삶에서 얼마나 굳건하게 작동하는가에 
두겠습니다.

스승이 돌아가신 뒤,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스승이 돌아가셨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에게 
스승의 죽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난 
사건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공부의 시작일 수 있다.

살아 계실 때에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스승의 모습을 보고,

스승에게 의지하여 
자신의 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승이 떠나신 뒤에는
그동안 배운 것이 과연 내 안에 무엇으로 
남아 있는지가 드러난다.

말씀이 남아 있는가?
수행이 남아 있는가?
체험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기준이 
남아 있는가?

이것이 스승이 떠난 뒤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큰 질문이다.

1.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에도 역사는 계속되었다
도전의 말씀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
성도들이 상제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제님을 직접 뵙던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그 가르침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성도들의 믿음과 공부가 실제로 시험되었다.

직접 보고 듣는 시대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같다.
스승이 곁에 계실 때의 믿음과
스승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믿음은 다르다.

누군가 옆에서 이끌어 주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직 자신의 공부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중심을 세우고
말씀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의 체험을 돌아보면서
현실 속에서 바르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2. 지금은 말이 
아니라 공부가 시험받는 때다

스승이 떠나셨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의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의심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고,
허무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지나친 기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어느 한쪽으로 쉽게 치우쳐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전의 말씀을 다시 읽는 것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그 말씀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나왔는가?

성도들은 실제로 어떤 일을 겪었는가?
그때 그들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이것을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믿음이란 아무것이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은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역사를 살펴보고,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검증하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3. 스승의 경지는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승을 높이 평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대단한 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수행자의 경지는
그 사람이 무엇을 말했는가만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공부를 했으며
어떤 현실을 견뎌냈는가를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의 전통에서는
옛사람들의 공부도 함께 살펴본다.

진묵대사와 같은 
인물의 수행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단순히 신비한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디까지 닦을 수 있는가를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스승의 공부 역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남긴 말씀과 
삶과 수행의 흔적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존경이 
맹목적인 추종이 되지 않는다.

4. '돌아오심'이라는 
말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스승이 다시 오신다는 말을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수행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스승의 가르침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는가 
하는 문제다.

스승이 남긴 공부가 
제자들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그분이 가르친 원리가 현실 속에서 구현되고,

그분이 강조했던 수행의 기준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진다면,
그것 역시 스승의 뜻이 다시 살아나는 
하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만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승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먼저 무엇을 이루고 있어야 하는가? 
바로 이것을 물어야 한다.

5. 수행 중 체험했던 
신도를 다시 생각하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수행하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그때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평소와 다른 의식의 상태를 경험했
는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체험이 일시적인 감정이었는지,
아니면 이후의 삶까지 변화시킨 실제 
공부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체험 하나를 가지고 
모든 것을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체험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체험은 공부의 자료다.

그것을 기록하고, 비교하고, 
성찰하고, 현실에서 검증해야 한다.

그렇게 쌓인 공부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6. 신도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신도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믿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깊이 공부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도전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천지의 변화 원리를 살피고,
스승이 남긴 말씀을 검토하고,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고,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해 보았기 때문에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자기 기준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중심이다.

7. 스승을 진정으로 기리는 방법

스승을 진정으로 기리는 방법은
스승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데 있지 않다.
그분이 가르친 공부를
내 삶에서 얼마나 이루어 내느냐에 있다.

말씀을 읽고,
수행하고,
사람을 대하고,
가정을 바로 세우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배운 것을 다음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하는 것.그것이 살아 있는 계승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큰 공부를 이야기하려면 
더 이상 "누가 더 높은가"라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가.
얼마나 깊이 공부했는가.
얼마나 현실을 꿰뚫어 보는가.
얼마나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가.
이것이 수행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가 우리의 공부다
스승은 떠나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분이 남긴 말씀과 공부와 
수행의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슬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두려움에도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막연한 기대에도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도전을 다시 읽자.
상제님 이후 성도들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자.

스승이 남긴 말씀을 다시 공부하자.
우리가 직접 경험했던 수행의 과정도 
다시 돌아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보자.

스승의 진정한 계승자는
스승의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스승이 가르친 공부를
자기 삶 속에서 가장 깊이 이루어 
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먼저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닦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바로 서게 될 때,

스승이 남긴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현실의 힘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스승이 떠난 뒤에도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공부의 시작이라는 것을.ᆢ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0/202608/6a784c341f0a58878812.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준홍]]></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9:47: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0"><![CDATA[無極大道]]></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대변혁기에 인간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묻는 현실 공부로 읽어야 합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8]]></link>
			<description><![CDATA[일본의 국가 운명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는것은 이미 이치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

https://youtu.be/L6yfuKEag14?si=z4KZvObox1VO4qty


장차 서양은 큰 방죽이 되리라.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세상을 불로 칠 때는 
산도 붉어지고 들도 붉어져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 잡아 끌어낼 겨를이 없으리라.

앞으로 세계전쟁이 일어난다.
그 때에는 인력으로 말리지 못하고 
오직 병이라야 말리느니라.

상씨름 종결 대전쟁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난리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나간다.” 하시고

문득 크게 호통치시기를
불칼로 쳐도 안 들을거나!”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대란지하(大亂之下)에 
대병(大病)이 오느니라.

 아동방(我東方) 삼일 전쟁은 있어도 동적강(銅赤江)은 못 넘으리라.

서울은 사문방(死門方)이요, 
충청도는 생문방(生門方)이요, 
전라도는 둔문방(遁門方)이니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

○○은 불바다요 
무인지경(無人之境)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무명악질이 돌면 미국은 가지 
말라고 해도 돌아가느니라.

신이 떠난 미국 
땅은 물방죽이 되리라.” 하시고

일본은 불로 치리니 
종자도 못 찾는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406)

이 말씀은 
상극 질서의 마지막 국면, 
세계전쟁, 대병, 그리고 한반도에서 
시작되는 결정적 변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봐야 합니다.

핵심은 먼저 이것입니다.
전쟁이 끝판을 만들지만, 
전쟁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말씀에는 분명히 
“앞으로 세계전쟁이 일어난다”라고 하고, 
이어서 “그때에는 인력으로 말리지 못하고 
오직 병이라야 말리느니라”라고 합니다.

즉 인간의 정치·외교·군사적 
힘만으로는 이미 폭주한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전쟁보다 더 큰 변수인 
대병이 개입하여 판 자체를 바꾼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대란지하에 
대병이 오느니라”는 말은 순서를 
분명히 합니다.

먼저 대란, 곧 큰 혼란이 
있고 그 아래에서 대병이 닥칩니다.

이것을 문명적으로 보면, 
전쟁으로 물류와 생산과 행정이 
무너지고, 국가 간 이동과 공급망이 끊기고, 

사회 전체의 대응 능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질병이 겹치면 
피해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구조입니다. 

전쟁과 질병이 서로 따로가 아니라 
문명 시스템 전체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 위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나간다”는 대목도 중요합니다. 
이 말씀의 관점에서는 한반도가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세계 질서가 
충돌하는 결절점입니다. 
북방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히고, 
중국·러시아·일본·미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
는 말씀과 바로 연결됩니다.

북방에서 시작되는 
움직임이 한반도로 들어오고, 
그것이 단순한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질서 전체의 충돌과 연결되면서 
상씨름의 마지막 판이 전개된다는 구조입니다.

또 “삼일 전쟁”이라는 
표현은 매우 짧고 급박한 국면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날짜를 기계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시작되면 기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판세가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대전은 과거와 다릅니다. 
미사일, 항공전력, 사이버전, 통신망 공격, 
전력망 마비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의 초기 몇 시간과 
며칠이 결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현실적으로 공부할 때는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취약성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은 사문방, 
충청도는 생문방, 전라도는 둔문방,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는 부분은 
공간의 문제까지 제시합니다.

여기서 태전은 대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어왔고, 
말씀 속 구조에서는 단순한 도시 이름보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 

어느 지역이 상대적으로 위험하고 
어느 지역이 피난과 생존에 유리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만 이런 구절은 오늘날의 실제 안전 판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현대의 군사기술과 도시구조, 
교통망, 재난 대응체계는 당시와 크게 
다르므로 현실 대응은 반드시 
현재의 객관적 정보와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는 말씀도 상징과 
실제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일본은 지진·화산·대형 화재·
전쟁 위험과 연결해 해석되어 왔고, 

서양의 ‘물’은 홍수·해수면·
폭풍·대규모 침수와 같은 재난 이미지와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특정 날짜와 
특정 사건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불과 물이라는 
두 극단적 자연·문명 재난이 세계질서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대목이 있습니다.
“무명악질이 돌면 미국은 가지 말라고 
해도 돌아가느니라.”

세계 중심부가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안전지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사람과 
자본이 강대국으로 몰립니다. 
그러나 대병과 대란이 닥치면 흐름이 반대로 바뀝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중심부에서 빠져나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말씀 전체가 
보여주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북방의 움직임 → 한반도의 난리 → 세계전쟁 확대 → 대란 → 대병 → 기존 세계질서의 붕괴 → 새로운 질서로의 전환

하나하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큰 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상씨름’이라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작은 싸움들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세력들이 
맞붙는 최종 경쟁입니다. 

씨름판에서 
마지막 두 사람이 붙어 
승부를 결정하듯, 세계사에서도 
여러 세력의 경쟁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공부하는 목적은
 “언제 전쟁이 나느냐”를 맞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실제로 왔을 때 나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준비했고, 
누구를 살릴 수 있는가.

천하대세 공부가 
단순한 예언 공부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정세를 읽고, 
경제와 전쟁 구조를 알고, 
질병과 재난의 원리를 공부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생존력을 높이고, 
위기 속에서도 판단력을 잃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공포의 언어가 아니라 
대변혁기에 인간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묻는 현실 공부로 읽어야 합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상극시대의 마지막 판은 
북방에서 시작된 전쟁이 세계적 
대란으로 확대되고, 

그 전쟁을 대병이 멈추면서 
기존 질서가 끝나는 구조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는 힘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때를 알고 
준비한 사람의 판단력과 실행력이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808c090b8c3115567.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4:58: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7]]></link>
			<description><![CDATA[북쪽에서 넘어와야 된다
https://youtu.be/PmLZDVEgEG4?si=Yk59ucwJPOLpjDX7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전쟁으로 세상 끝을 맺나니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상씨름 대전(大戰)의 대세

또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나리니 
중국은 세계의 오고 가는 발길에 채여 
녹으리라.” 하시고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

그 때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이기고 지는 
쪽 없이 멸망하리라.

그 때가 되면 천하대세가 
너희들에게 돌아가리니 내 일이 일시에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사에 주인 없는 공사가 있느냐.

각국에서 와서 
오선위기 도수로 바둑을 두다가 
갈 적에는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도로 
주고 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415)

이 말씀은 상극 질서의 마지막 
국면과 천하대세를 읽는 관점으로 
풀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는
말은, 세상이 이미 갈등과 경쟁으로 극한까지 차올라도 마지막 판을 결정짓는 변화는 북방에서 
시작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쪽’을 단순한 방위 하나로만 보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동양의 변화 원리에서 
북방은 수(水), 겨울, 저장, 극점, 
다음 순환을 준비하는 자리와 연결됩니다. 

생장염장으로 보면 장(藏)의 자리입니다. 
모든 변화가 끝까지 진행되어 한 주기가 마감되고, 동시에 다음 질서가 태동하는 경계입니다.

그래서 **“북쪽에서 넘어온다”**는 
것은 북방의 역사적 움직임과 함께, 
변화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여 
기존 질서를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나타난다는 의미까지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상극시대의 특징은 경쟁입니다. 
국가와 국가, 계층과 계층, 개인과 개인이 
서로 앞서려 하고 충돌하면서 
문명이 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산업·경제는 
크게 발전하지만 동시에 전쟁, 빈부격차, 
환경파괴, 패권경쟁과 같은 모순도 
함께 누적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꽉 찼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명의 성장도 극점에 이르고,
갈등도 극점에 이르고,

기존 제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도 차오른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극점에 이르렀다고 저절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질서를 
결정적으로 흔드는 사건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을 **“끝판”**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천하대세다”라는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하대세란 
어느 개인이나  정치세력이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인구·경제·군사·기술·지정학·문명 변화가 
한 방향으로 몰리면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역사 흐름입니다.

따라서 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사건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만들어 내는 장기적인 흐름을 보아야 합니다.

북p방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어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조, 
한반도의 분단, 중국·러시아·미국·
일본의 세력관계, 세계 패권의 변화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는 바로 
그 거대한 세력들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현실적으로 읽으면 
결국 하나의 경고가 됩니다.

세계의 끝판 변화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이 아니라, 
동북아와 한반도의 운명과 직접 맞물릴 
가능성을 항상 냉정하게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대세를 
공부한다는 것은 공포를 기다리는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변화가 시작되는가,
왜 그 변화가 발생하는가,
세계 질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그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공부입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상극의 질서가 극점까지 차오르면 
북방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변화가 기존 세계질서의 
마지막 판을 흔든다. 

그 거대한 
흐름을 읽는 것이 
천하대세를 아는 것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7fd30159ab4369561.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준홍]]></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4:08: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그 때 사람들이  ‘아, 저 도인들이 진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하시니라.]]></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6]]></link>
			<description><![CDATA[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 속에

 7월에 제비창골 삼밭에서 
공사를 보신 뒤에 성도들을 거느리고 
서전재 꼭대기 십자로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손사풍(巽巳風)을 불리시며 
장질부사 열병을 잠깐 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만하면 사람을 고쳐 쓸 만하도다.” 하시고

손사풍을 더 강하게 불리신 후에 
“손사풍은 봄에 부는 것이나 나는 동지섣달에도 
손사풍을 일으켜 병을 내놓느니라.

병겁이 처음에는 약하다가 
나중에는 강하게 몰아쳐서 살아남기가 어려우리라.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病) 속에 들어 있노라.” 하시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

이에 갑칠이 여쭈기를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치병을 하시면서 병 속에 운수가 있다 
하심은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병목이 없으면 너희들에게 
운수가 돌아올 수가 없느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이니 
장차 병으로 사람을 솎는다.” 하시고

“내가 이곳에 
무명악질(無名惡疾)을 가진 
괴질신장들을 주둔시켰나니

신장들이 움직이면 
전 세계에 병이 일어나리라.

이 뒤에 이름 모를 
괴질이 침입할 때는 주검이 
논 물꼬에 새비떼 밀리듯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이 한바탕 크게 시끄러워지는데 
병겁이 돌 때  서신사명 깃대 흔들고 들어가면 
세계가 너희를 안다.

그 때 사람들이 
‘아, 저 도인들이 진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291)

베네수엘라의 참상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https://youtu.be/MJ_inSQ2WRw?si=TUzMwIqs5BfQEykA

베네수엘라의 참상,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때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급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로 부러움을 샀습니다. 

자원이 부족해서 
무너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도 국가 운영이 흔들리면
국민의 삶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현재도 상황은 가볍지 않습니다. 
유엔 인도주의기구는 2026년 초 베네수엘라에서 
약 790만 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베네수엘라인이 
나라를 떠난 것도 이 위기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UNHCR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세계적인 
대규모 난민·이주 문제로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UNHCR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몰락을 
단순히 **“어떤 한 정치이념 때문에 망했다”**
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면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경제가 무너지면 경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다
국가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정책 실패처럼 보입니다.
재정을 조금씩 무리하게 사용합니다.
국가 부채가 늘어납니다.

돈을 풀어 문제를 덮습니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정치가 경제 논리를 압도합니다.
전문가보다 권력에 유리한 사람이 중용됩니다.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오랫동안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국가 시스템 전체가 임계점을 
넘어갑니다.

그때부터는 국민 개개인이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국가 시스템의 
실패를 혼자 힘으로 막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것이 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무서운 교훈입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국민이 국가 운영에 
무관심하면 결국 그 대가는 국민 자신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도 자기 편이니까 눈을 감고, 

불편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몰고, 숫자와 현실보다 진영 논리를 
앞세우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의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국가를 지키는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닙니다.

현실을 사실대로 보는 
국민의 집단적 판단력도 국가의 중요한 
생존 능력입니다.
대한민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떤 나라도
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생산보다 분배만 앞세우고, 
국가재정을 끝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고, 

정치가 전문성과 법을 압도하며, 
국민이 진영으로 갈라져 사실 자체를 보지 
못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이 아니라 판단력의 붕괴다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우리가 가장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한 나라의 몰락은 
경제통계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현실을 현실대로 보지 못하는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잘못되어 가는데도 
잘되고 있다고 말하고, 
실패한 정책을 고치기보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서로 편을 갈라 싸우면서 
국가 전체의 장래를 보지 못하면 문제를 
수정할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국가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방향이 조금 틀렸을 때 고치면 작은 
조향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벽 가까이까지 
간 다음 핸들을 돌리면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겪은 실패를 우리가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베네수엘라 국민도 처음부터 
오늘과 같은 현실을 원했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더 잘살 수 있다는 
약속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은 
약속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를 내세웠는가가 아니라 
국민을 실제로 잘살게 했는가, 
산업을 성장시켰는가, 
화폐의 가치를 지켰는가, 
법을 지켰는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국가를 넘겨주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참상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은 공포를 조장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에서 배우자는 것입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를 보며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에게도 
위기가 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위기가 오기 전에 그것을 알아보고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가.

그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공부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9/202608/6a77f9d42dbad3589845.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준홍]]></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3:52: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9"><![CDATA[위대한 결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지천태괘(地天泰卦)입니다. 멱사적으로는  다시 여신의 시대 여성 상위시대가 펼쳐집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5]]></link>
			<description><![CDATA[**정음정양(正陰正陽)**
이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지천태괘를 단순히 
음양이 서로 만나는 괘로만 보면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음이 바르게 서고 양이 바르게 서서, 서로 충돌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정음정양입니다.

그래서 정음정양은 
남녀의 문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음과 양, 여성과 남성, 
땅과 하늘, 안과 밖, 위와 아래가 각각 
제 역할을 바로 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질서를 말합니다.

지천태가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음도 바로 서고 양도 
바로 서서 서로 살리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후천의 이상세계는 한마디로 
정음정양의 세계, 곧 음양이 바르게 자리 잡아 
태화(太和)를 이루는 세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마니산 정상의 제단도
지천태쾌를 형상하여 지방과 천원으로
이루져 있는것이다ㆍ

지천태 세상이 온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앞으로 여자가 위에서 합궁(合宮)하는 
때가 오느니라.” 하시니

내성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맷돌과 같다. 
맷돌 돌아가는 이치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190)

일음일양이 뜻하듯이
문장도 앞과 뒤가 있는데
일양보다 일음이 앞서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ㆍ
즉 역사는 여자가 앞서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여자가 주도하는 여신의 시대인 율국이 환국 앞
전에 있었는데 남자가 주권을 잡은지가
얼마 되지를 않은것이다ㆍ

지천태괘(地天泰卦)입니다.

주역에서 여성·땅·수용·
생성의 상징은 곤(坤)**이고, 
남성·하늘·창조의 상징은 건(乾)입니다.

그런데 지천태괘는
위에 곤(坤☷), 아래에 건(乾☰)
이 놓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으니 거꾸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서로 통합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므로 두 기운이 
가운데에서 만나 교류합니다.

그래서 지천태는 
단순히 “여성을 상징하는 괘”라기보다, 
건과 곤, 남성과 여성, 

하늘과 땅이 서로 막히지 않고 
통하여 생명을 이루는 가장 조화로운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주역》 태괘의 
핵심도 바로 **통(通)**입니다.
천지가 교통하면 만물이 생성되고,
상하가 교통하면 뜻이 하나로 모입니다.

그래서 태(泰)는 
평안하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두 힘이 제대로 만나 생명과 
문명을 낳는 질서입니다.

반대가 천지비괘(天地否卦)입니다. 

건이 위에 있고 
곤이 아래에 있으면 겉보기에는 
자리가 정상 같지만, 

하늘의 기운은 위로만 가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만 내려가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통·분열·
막힘이 됩니다.

따라서 아주 
중요한 역설이 생깁니다.
자리만 보면 비(否)가 안정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혀 있고,

자리만 보면 
태(泰)가 뒤집혀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통합니다.

이것이 지천태괘가 
이상적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성의 상징성을 여기에서 
더 깊게 보면, 곤은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받아들이고, 품고, 기르고, 현실로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건이 창조의 원동력이라면 
곤은 그것을 생명과 현실로 완성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상세계는 어느 한쪽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건과 곤이 통하고,
천과 지가 통하고,
남과 여가 통하고,
위와 아래가 통하고,
정신과 현실이 통하는 세계입니다.

이 의미에서 지천태괘는 
태화(太和)의 세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괘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도합일 
태화세 와도 연결됩니다. 
태화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 
제 위치와 역할을 가지면서도 
막힘 없이 통하는 
상태입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1/202608/6a77d15190cab6823489.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1:03: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1"><![CDATA[우주변화의 원리]]></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자의 안빈낙도(安貧樂道)란  인간이 못할 일이니, 나는 만물을 해원시키노라.” 하시니라]]></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4]]></link>
			<description><![CDATA[천지의 대운수를 만났다

상제님 성탄치성을 마치고 
태모님께서 가곡조(歌曲調)로 
온화하게 창하시기를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순(堯舜), 우탕(禹湯), 
문무(文武), 주공(周公) 같은 
만고성현(萬古聖賢)도 때 아니면 될 수 있나.

전무후무 천지운도(天地運度) 
우리 시절 당한 운수 성경신이 결실이니

삼도합일(三道合一) 
태화세(太和世)를 그 누가 알쏘냐.

달은 가고 해는 오네. 지천(地天)의 운수로다.
운이 오고 때가 되어  만물이 해원이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공자의 안빈낙도(安貧樂道)란 인간이 못할 
일이니, 나는 만물을 해원시키노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220)

이 말씀의 핵심은 
인간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큰 변화와 그때를 
만났을 때 비로소 크게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복희·신농·황제·
요순·우탕·문무·주공 같은 
만고성현도 때 아니면 될 수 있나.” 
이 한마디가 전체의 중심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시대가 요구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인물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큰 조건은 때와 운수입니다. 

역사적 인물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전환되는 결정적인 시점과 만나면서 등장합니다.

그래서 “전무후무 천지운도 
우리 시절 당한 운수”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에게 
좋은 운이 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지의 질서가 
크게 전환되는 시기와 인간의 삶이 
맞물린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작은 성공을 넘어 
문명 전체의 방향이 바뀌는 시기를 만났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때를 
만나도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다음에 “성경신이 결실”이라고 했습니다. 

성(誠)은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힘이고, 
경(敬)은 자신이 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이며, 

신(信)은 한번 세운 뜻과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는 힘입니다. 

결국 큰 운수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성경신이라는 것입니다.

삼도합일과 태화세
“삼도합일(三道合一) 태화세(太和世)”는 
서로 갈라져 발전해 온 여러 사상과 
문명의 성과가 더 큰 틀에서 통합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역사를 보면 
인간 문명은 계속 분화되어 왔습니다. 
철학·과학·정치·경제·의학·천문·역법 등이 
각각 전문화되었습니다. 

분화는 문명을 성장시키지만, 
지나치게 갈라지면 전체를 보는 눈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문명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더 많이 쌓는 것보다 
분리된 지식을 다시 하나의 원리로 
묶어내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삼도합일을 크게 보면 
이런 문명의 통합과 조화라는 문제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달은 가고 해는 오네”
이 구절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은 가고 해는 온다.
지천(地天)의 운수다.
여기에는 기존 질서가 물러가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다는 변화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지천’이라는 표현은 
위아래의 위치와 질서가 달라지는 
큰 전환의 구조를 생각하게 합니다.

즉 역사는 똑같은 상태로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면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넘어갑니다.

생장염장의 원리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생(生) → 장(長) → 염(斂) → 장(藏)
태어나고, 성장하고, 거두고, 
다시 새로운 질서를 준비합니다.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만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결실과 정리의 
단계가 옵니다.

그래서 “성경신이 결실”
이라는 말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마지막에는 하나의 결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운이 오고 때가 되어 만물이 해원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물입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한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명과 자연 전체에 누적된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을 말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경쟁하고 빼앗고 억압하고 
전쟁하며 살아왔습니다.

개인에게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쌓이고,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역사적 문제가 누적됩니다. 
산업문명이 발전하면서 자연환경에도 
엄청난 부담이 축적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것은 단순히 새 기술이 나온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모순과 갈등을 풀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 마지막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자의 안빈낙도란 
인간이 못할 일이니, 나는 만물을 해원시키노라.”

이것은 인간에게 
가난과 어려움을 참고 만족하며 
살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현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강한 지적입니다.

사람에게 무조건 참고 
만족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가난한가, 왜 억울한가, 왜 갈등이 생기는가, 

왜 사회구조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가를 실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현실을 떠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먹고사는 문제, 경제, 사회질서, 
인간관계, 역사적 갈등까지 현실 속에서 
풀어내야 한다는 방향입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말하는 
**“천지의 대운수를 만났다”**는 것은 
큰 행운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큰 시대가 왔으니 그 시대를 
감당할 인간이 되라는 뜻입니다.

때를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며, 자기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신으로 
자기 일을 끝까지 완성해야 합니다.

복희·신농·황제·요순 같은 인물도 
결국 사람과 때가 만났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성공에는 세 조건이 있습니다.

때를 만나는 것,
때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때에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

첫 번째는 시대가 주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인간의 몫입니다.
그래서 천지의 대운수를 만났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이것입니다.

위대한 시대를 
만났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인간으로 자신을 
만들어 놓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인간 성공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와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인간 성공은 
자기 혼자 잘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큰 변화 속에서 
자기 생명을 완성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현실에서 이루어 내는 
데 있습니다.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7cd41cd9006517995.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0:47: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인간 성공의 목적은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생명을 완성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3]]></link>
			<description><![CDATA[인간 성공의 목적은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생명을 완성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돈·지위·명예·지식은 
성공의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목적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이 한평생 무엇을 깨닫고, 
어떤 기준을 세우고, 어떤 책임을 다하며, 
자신의 정신과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는가는 
그 사람 존재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인간 성공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것. 

둘째, 자신의 능력을 
현실에서 올바르게 쓰는 것. 

셋째, 자기 삶이 다른 사람과 
사회와 문명의 발전에 실제로 도움이 
되게 하는 것.

도 공부의 관점에서 
보면 더 분명합니다. 성공은 
세상에서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라

또 인간은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가정, 사회, 국가, 문명이라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참된 성공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감당할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인간 성공의 목적은 자기 생명을 완성하고, 
그 완성된 힘을 세상에 올바르게 
쓰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성공은 
자기만 잘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방향을 알고 사람을 살리고 
새로운 질서를 여는 데 기여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 원리를 모르고 있도다

하루는 태모님께서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공사를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억조창생이 ‘인생의 근본 
원리’를 모르고 있도다.” 하시며 
고민환에게 명하여 “내가 설법(說法)하는 
공사 내용을 적어라.” 하시고

다시 “그 이치를 상세히 
기술하여 온 인류에게 알리도록 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인생을 위해 천지가 원시 개벽하고

인생을 위해 일월이 순환 광명하고

인생을 위해 음양이 생성되고

인생을 위해 
사시(四時) 질서가 조정(調定)되고

인생을 위해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창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 성현이 탄생하느니라.

인생이 없으면 
천지가 전혀 열매 맺지 못하나니
천지에서 사람과 만물을 고르게 내느니라.

진실로 여자 성인이로다

이어 민환에게 명하여 
“기록한 공사의 설법 내용을 
낭독하라.” 하시므로 낭독하니

태모님께서 그 글을 받아 
불사르시며 하늘에 고하신 다음 
동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조용히 기도하시니라.

이 때 성덕면장 
강필문(姜弼文)이 참석하여 
공사를 지켜보다가 놀라 말하기를 

“이 분은 진실로 여자 성인이로다!” 
하고 찬탄하며 돌아가니라.
(증산도 道典 11:118)

천지에서 사람 쓰는 이 때에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形於天地하여 生人하나니
형어천지생인

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也니라
만물지중 유인 최귀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天地生人하여 用人하나니
천지생인 용인

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何可曰人生乎아
불참어천지용인지시 하가왈인생호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23)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6/202608/6a77c96da61dc4463470.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김 주인장]]></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0:27: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6"><![CDATA[초급반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아바타 수행자의 필수영화입니다]]></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2]]></link>
			<description><![CDATA[속도 때문에
모두 링크 처리합니다
양해 해주세요^^

아바타 수행자의 필수영화
https://youtu.be/1WdmA5M6m3M?si=JwiLkbn5jmNt9__l

도를 닦은 자와 닦지 않은 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道)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 성령의 천수

한 성도가 여쭈기를 
“저의 수한(壽限)은 얼마나 됩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만 년 동안 살게 되리라.” 하시니

그 성도가 다시 여쭈기를 
“선생님의 수한은 얼마나 되시옵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천지와 더불어 동행하노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76)

도 공부의 목적이 
단순히 오래 사는 법이나 
지식을 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영원한 생명으로 굳히는 데 
있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상제님께서는 
도를 잘 닦은 사람과 닦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정혼(精魂)이 뭉치는가,
흩어지는가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정혼은 단순한 정신이나 
기억 정도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살아오며 
형성한 생명의 정수, 정신과 혼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겉으로 종교적 형식이나 지식을 많이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로 모이고, 
욕망과 감정에 끌려다니던 흩어진 정신을 
바로 세우며, 천지의 도와 자기 삶을 일치시키는 
공부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닦으면 
인간의 정신과 혼백이 점차 하나의 중심으로 
응집됩니다. 

그래서 말씀에 
“정혼이 굳게 뭉친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도를 닦지 않는 삶은 
정신이 끊임없이 밖으로 흩어집니다. 

돈을 좇고, 명예를 좇고, 
감정과 욕망을 좇고, 세상의 정보에 
끌려다니면서 자기 생명의 중심을 만들지 못합니다. 

육신은 한평생 살아도 그 안에 영원성을 감당할 정신적 중심축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뒤에는 
“연기와 같이 흩어진다”고 표현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문제도 
살아 있을 때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죽은 뒤 갑자기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자기 정신과 영혼을 단련하고 
완성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이어지는 
“너는 일만 년 동안 살게 되리라”는 
말씀도 단순히 육체가 만 년 동안 산다는 
의미로만 보면 본뜻을 좁힐 수 있습니다. 

도를 닦아 굳어진 정혼이 
천상에서 오랜 세월 존재하는 
신명의 생명 수명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자신의 수한을 묻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천지와 더불어 동행하노라.”
여기에서 차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도에게는 ‘일만 년’이라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시간의 단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상제님의 생명은 
숫자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존재하는 것과 함께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는 
생명의 세 단계가 드러납니다.
닦지 않은 생명 — 정신과 혼이 흩어져 
사라지는 존재

도를 닦아 성숙한 생명 
— 정혼이 응집되어 천상에서 
장구하게 존속하는 존재

천지와 하나 된 생명 
— 시간의 한계를 넘어 천지와 
더불어 존재하는 경계

결국 도 공부의 본질은 
**‘무엇을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내 생명을 얼마나 단단한 존재로 만들어 놓느냐’**
에 있습니다.

공부란 머릿속 지식을 
증가시키는 작업만이 아니라, 
흩어진 인간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입니다. 

정신을 모으고, 기운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마침내 
정혼을 굳게 만드는 공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행의 현실적 의미도 생깁니다. 
세상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도 닦는 전부가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욕심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책임을 다하고, 사람을 살리고, 

천지의 때를 공부하고, 
자기 생명의 중심을 세워 가는 모든 과정이 
도 닦음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도는 죽은 뒤 
천당에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흩어지는 인간을 영원히 
흩어지지 않는 생명으로 
만드는 공부다.”

그리고 최종적인 
도의 경계는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천지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고, 

천지의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으로 성숙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전속의 수행 성구 

증산도 도전 (Jeung San Do Dojeon) - 
한글 - 검색: 수행 - https://www.dojeon.org/?r=dojeon&amp;m=ci3&amp;cc=dojeon&amp;mm=search&amp;a_area=1&amp;a_keyword=%EC%88%98%ED%96%89&amp;a_logic=and&amp;a_keywor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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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at, 08 Aug 2026 23:39: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magic.ne.kr/?kboard_redirect=12"><![CDATA[율려화 수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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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동방신선학교 : 부로는 네 몸 사는  길을 꾀할 수 없나니 재물에 빠져 죽느니라.]]></title>
			<link><![CDATA[https://magic.ne.kr/?kboard_content_redirect=150]]></link>
			<description><![CDATA[동방신선학교
https://healing.stb.co.kr/

누가 신선의 길을 찾으리오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옛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靑龍皇道大開年에 
王氣浮來太乙船이라
청룡황도대개년 왕기부래태을선

誰能勇退尋仙路리오 
富不謀身歿貨泉이라
수능용퇴심선로 부불모신몰화천

청룡의 황도가 크게 열리는 해에
왕도(王道)의 운기 태을선을 띄워 오네.

누가 용감히 부귀영화 
물리치고 신선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오.

부로는 네 몸 사는 
길을 꾀할 수 없나니 재물에 빠져 죽느니라.
(증산도 道典 7:62) <img src="https://magic.ne.kr/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202608/6a77b72bcadaa5544322.pn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주인장]]></author>
			<pubDate>Sat, 08 Aug 2026 23:09:4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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