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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시 기본자세와 공부과정
 
 
 宗道師 道訓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주문을 읽는 방법은 마음을 바르게 갖고

단정하게 앉아 성경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니라.”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공부할 때 몸을 떨고 허령에 빠지는 것은 마음 속에 부정한 생각이 있고,
척을 많이 지어 그러하니라.”하시고

올바른 공부 방법을 모르고 시작하면 난법의 구렁에 빠지게 되느니라.”하시니라.

 (道典 9:48:1∼3)
 

어드러헌 문화권을 신앙하든지 간에,

수련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心法)을 연마하는 것이다.

 

상제님의 공사 내용을 보면, 어떤 한 노처녀가 도통하고 싶어서

수도하는 이웃사람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문이 뭐냐고 물으니까,

 

그 노부부가 귀찮아서 “아무 것도 싫다.”고 대답한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처녀는 만날 ‘아무 것도 싫다.

 

아무 것도 싫다’하고 일심으로 외우고 다녔다.

아, 그러니 식구들이 오죽이나 싫어했겠나.

하루는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데, 그 아버지가 밉다고 도리깨로 물동이를 후려쳐 버렸다. 해서 돌 위에 넘어졌는데, 동이도 성하고 물도 쏟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이게 다 일심(一心)을 강조하신 것이다.

어드러헌 곳에서 성신감화니 뭐니 그런 소릴 해도 그것이 진리 때문만은 아니다.

진리 이전에 일심이 있다.

또 참선이라 하든 수도라 하든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그것도 다 일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오늘은 내가 그러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수도문제를 얘기하려고 하니

잘 들어봐라.
 

조용한 방을 마련해서 한 대여섯 명씩 모아 놓고,

거기서 지금 제군들 같이 수련을 시켰다.

먼저 입공치성을 모시고 하는데,

쪼그만 방안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벽을 향해 쪽 돌려 앉혀 놓고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해서 한 일주일을 한도로 수련을 시키는데,

어지간하면 사흘이면 다 개안(開眼)이 됐다. 개안이라 함은

신명세계를 보는 걸 말한다.

 

전통적으로 우리 상제님 단체에서는 그걸 ‘개안’이라고 한다.

개안이 되면 신명을 본다. 동시에 상제님 계신 데를 간다.

 

옥경(玉京)이라고 할까, 천상에 올라가서 상제님을 배알할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신명을 보고, 영(靈)으로 대전에서

부산 누구의 가정도 찾아갈 수 있다. 개안이라 하는 것이 도통하는 첫 관문이다.
 

허면 개안되는 과정이 어떠냐?

아주 일심으로 앉아서 주문을 읽을 것 같으면 먼저 자기도취가 된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느라고 자기도취라고 하는데,

앉아서 한 마음 한 뜻, 일심 정성을 갖고 주문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잊어버린다.

 

옛날 사람들은 그걸 학술용어로 ‘망형망재(忘形忘在)’라고 표현했다.

잊을 망(忘)자 형상 형(形)자 있을 재(在)자, 망형망재란 형상도 잊어버리고

자기 존재도 잊어버리는 걸 말한다.

즉 이 세상에 내 몸뚱이가 있는지 없는지, 내 존재 자체를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없을 무(無), 나 아(我), 갈 지(之), 지경 경(境)

무아지경(無我之境)에 간다.

망형망재나 무아경이나 같은 소리다.

무아경에 도달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시의 세간이 아닌 딴 세상이 보인다.

 

딴 것이 뵈면 신명이라 하는 것도 생동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보여지는 물체를 따라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런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수(師首)가 필요하다.

수련 지도하는 사람을 사수라고 하는데, 사수의 능력에 따라

지도하는 방법이 다르다.
 

헌데 이제 제군들도 앉아서 수련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가령 어렸을 때 내가 자꾸 우니까 어머니가 누나에게 나를 업어주라고 하셨다.

 

헌데 누나가 업고 다니다 힘드니까 내 볼기짝 어디를 꼬집었다.

그래 아파서 울었더니, 애를 못 보겠다고 하면서 팽개쳐버렸다.

바로 그런 것까지도 다 생각난다.

평상시에는 잊어버렸던 게 정신이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가라앉고 맑은 물만 남는 거와 같다.

 

사발에 물 떠놓고 보면 맑은 물만 남고 찌꺼기 같은 물 앙금은

그릇 밑바닥에 가라앉지 않는가.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한다.

 

화식(火食), 즉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잡념에 휩싸이는데,

그런 게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다 없어져야 한단 말이다.
 

첫째로 인체의 구조라 하는 것은 수화(水火)로 되어져 있다.

사람은 물기운과 불기운, 두 가무형인 정신은 그렇게 되는데,

체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육신에는 오장육부(五臟六腑)라는 게 있다.

수도를 하면 인체의 이목구비(耳目口鼻), 오장육부(五臟六腑), 삼초(三焦) 등에서

변화작용이 일어난다.
 
지 기운을 가지고 산다. 사람의 콩팥이 양쪽으로 하나씩 붙어 있는데 콩팥 하나는

물을 맡고 있고, 하나는 불을 맡고 있다. 불을 맡고 있는 콩팥은 비장(脾臟)과 직결돼

있다. 저 소 돼지 같은 것 잡으면 혀같이 기다랗게 생긴 것 있잖은가.

 

그러고 물을 맡고 있는 콩팥은 간(肝)하고 직결돼 있다. 간이라고 하는 것은 나무(木)다. 사람 몸에는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 오장(五臟)이 있는데, 그걸 다시 오행으로

정리해보면 간장이라 하는 것은 음목(陰木)이고, 쓸개, 즉 담은 양목(陽木)이다.

간은 나무고, 심장이라 하는 것은 불(火)이고, 폐장이라 하는 것은 금(金),

신장은 수(水)다.
 
헌데 간이 나무라면 나무에서 불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 목생화(木生火)인데

심장이 화(火)다. 그리고 화생토(火生土)인데 비장이 토(土)고, 토생금(土生金)인데

폐장이 금(金)이다.

 

그 다음 금생수(金生水)인데 신장이 물이고, 수생목(水生木)인데 간이 나무다.

다시 얘기해서, 간장의 어버이는 신장이고, 심장의 어버이는 간장이고,

비장 위장의 어버이는 심장, 또 폐장의 어버이는 비장이고, 신장의 어버이는 폐장이다. 이렇게 해서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로, 상생(相生)으로 되어져 있다.
 
이건 생리학이 되놔서 한두 시간 해서는 끝도 안 난다. 그걸 자세히 얘기하자면

오운육기(五運六氣)까지 나와야 하고, 육부 문제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한이

없다. 오늘은 그저 수련하는 과정에 필요한 대략적인 얘기만 해주는 것이다.
 

불을 맡고 있는 콩팥이 비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장의 불기운을 받아

비장은 뜨겁고 색깔도 붉고 거무티티하다. 불이라 하는 게 시뻘겋고 뜨겁지 않은가.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먼저 위장이 받아들이지만 소화작용은 비장이 맡아서 한다.

 “음식을 먹으면 비장이 맷돌처럼 냅다 갈아서 소화를 시킨다”하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은 비장이 뜨겁기 때문에 소화가 되는 것이다.
 
그걸 다시 간추려 얘기하자면, 신장이라 하는 것은 진액의 곳집(곳간)이다.

위장이 튼튼해야 음식의 진액을 섭취해서 신장에 저장해 둘 수 있다. 사람이 굶고도

며칠씩 활동도 하고, 호르몬을 배출할 수 있는 것도 신장의 진액 때문이다.

신장에 진액을 저장해 뒀다가 활동할 때에 전부 꺼내 쓰는 것이다.

인체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신(腎)은 위지근(胃之根)이요”, 신장이라 하는 것은 위의 뿌리요,

“위(胃)는 신지구(腎之口)라”, 위라 하는 것은 신장의 입이라고 했다.

왜 위장이 신장의 입이냐?

위장에서 잔뜩 음식을 먹어야 신장이 진액을 저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장을 위장의 뿌리라고 하는 이유도 사람이 뭘 먹으면 그 진액을 신장에 갈머두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순간에도 입에서 자꾸 침이 나오잖는가.

침을 학술 용어로 옥지(玉池)라고 한다. 구슬 옥자, 못 지자.

이 침은 신장에서 나온다. 침은 신장의 진액이다.

그 과정을 자세히 얘기하자면 간장이 섭취하는 것이지만.
 
또 사람이 호흡하는 것은 어떠냐? 숨을 내쉬는 것은 심장과 폐장에서 관장하고

“흐읍∼”하고 숨을 들이쉬는 것은 신장과 간장에서 작용한다. 다시 얘기해서

호흡작용은 심, 폐, 신, 간에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구조라 하는 것이 그렇게 돼 있다.

그걸 모르면 약사고 의원이고 제 노릇을 못한다. 사람 하나를 다루려면 약리학,

생리학, 병리학을 다 알아야, 그 사람 병이 어떻게 되고 무슨 약을 써야 된다

하는 게 나온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을 다스릴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말짱 헛장난이다.
 
지금 현대의학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작금의 서양의학이라는 게 단적으로 얘기하면, 엑스레이 찍어서 그 결과만 본다.

원인을 모른다. 반면에 동양의학은 음양오행 원리를 가지고 병의 밑뿌리를 본다.
 
알아듣기 쉽게 하나 예를 들면, 신장염은 양방에서는 못 고치는 병이다.

근래 서양학설이, 신장에서 염증이 생겨 몸이 붓는데, 왜 염증이 생겼는지를 모른다.

그 원인치료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른단 말이다.

신장염은 불을 맡고 있는 콩팥이 고장 난 것이다.

 

불기운을 맡고 있는 콩팥 하나가 병들어서 염증이 생기고 자꾸 붓는 것이다.

불기운이 없으면 습하게 돼서, 물기운 하나만 가지고는 인체의 기혈 순환작용이 안된다. 그러니 몸이 부을 수밖에 더 있는가.
 
그렇게 되면 양방에서는 이뇨제를 쓴다.

부기 빼는 하제(下劑), 내리는 재료를 써서 부종만 빼는 것이다.

허면 속에서는 자꾸 붓는데 자꾸 빼기만 한다고 되는가?

붓고 빼고, 붓고 빼고, 붓고 빼고 하다가 어떤 한도에 가면 생명이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 진액이 고갈돼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죽는다는 말이다.

양방은 그러다가 만다.
 
허면 한방으로는 어드러헌 방도가 있느냐?

그럴 때는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을 바탕으로 약을 쓴다.

 

육미라 하는 것은 신장과 간장을 다스리는 약이다.

계수나무 두꺼운 껍질을 육계(肉桂)라고 하는데 그 육계, 부자 같은 걸로

간과 신장의 진액을 보충해주고, 동시에 불을 맡고 있는 콩팥의 불기운을 보충해 준다.

 

그렇게 해서 콩팥과 간을 좋게 하고,

또 불을 맡고 있는 콩팥이 기능 발휘 못하는 것을 약으로써 대치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게 쭉 약을 쓰면 신장염이 완전하게 나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동양의학에는 어떠한 단점이 있느냐?

예를 들면, 병 중에 교장증(交腸症)이라는 게 있다.

창자가 꼬이는 병이다. 우리 몸속에 보면 작은창자가 있다.

그 놈이 어쩌다 잘못되면 서로 꼬이는 수가 있다.

 

창자가 꼬이면 풀어지질 않는다.

그걸 오래 두면 통하질 못하니까 썩어버린다. 허면 죽는 것이다.

창자가 막혔으니 어떡하나. 아니, 입으로 먹으면 대장 소장을 통해서

똥을 싸야 되는데, 꽉 막혔으니 결과적으로 죽는 수밖에 없잖은가.
 
한방에서는 그걸 어떻게 고치느냐?

들것 같은 데에다 사람을 반듯이 뉘어 놓고서 두 사람이 양쪽에서 냅다

들었다가 놓으면 그 탄력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진다.

간혹 그렇게 해서 꼬인 장이 풀어지는 수가 있다.

 

헌데 그렇게 해서 다행히 꼬여진 게 풀어지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그냥 가는 것이다.

칼 가지고 배를 째서 창자 썩은 걸 끊어내든지 다시 잇든지 해야 하는데,

한방에는 수술하는 방법이 없으니 그걸 못한다.

한방은 그런 단점이 있다.
 
한마디로 양방, 한방이 다 절름발이 학문이다.

철인들이 볼 때 지금 의학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앞세상엔 양방과 한방을 병행해야 한다.

양방만 알고 한방을 모르면 의사가 될 수 없고, 한방만 알고 양방 모르는 사람도 의사 노릇을 할 수 없다. 완전한 의학이 개발돼야 한다.

지금의 문화라는 게 아직까지도 초보단계다.

 

지금 이 자리가 무슨 생리학이나 약리학, 병리학을 강의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자세한 얘기는 않겠다만, 사실이 그렇다. 수련하는데 필요한 인체의 체질 개선 문제를 얘기하다 보니 참고로 이런 얘기도 나온 것이다.

 

출처: 월간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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