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미스테리 공개 (DeiL 개인용)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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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대원출판, 이리유카바 최),

기독교의 고뇌(평민사, 우나무노),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동국출판,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고려원, 홀거 케르스텐), 성약성서(대원출판, 리바이 도우링),

신약외경(성인사, 일본 성서학 연구소), 성서의 뿌리(산방, 민희식), 숨겨진 성서(문학수첩, 윌리스 반스토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아침이슬, 엘마그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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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은밀한 모순과 신비로운 거짓말의 기록인가?

1) 크리스마스(12월 25일)와 예수의 진짜 생일은 언제인가?

역사적으로 예수 사망 이후 4세기(A.D 300년)까지는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로 알고 생일 잔치를 했다.

기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영세를 받게 됨으로써 종교를 바꾼 사람이다. 서기 313년,

그는 기독교(基督敎)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기독교는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신앙의 교리나 의식, 제도, 관습 등을 대부분 모방하거나 그대로 수용하였다.

결국, 예수님의 생일을 페르시아의 지방의 축제일을 모방하여 12월 25일이라고 했고,

서기 353년,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Liverius)는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제도화시켰다.

한편, 태양신을 믿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는 12월 25일은 곧 축제일이자

조로아스터의 생일이었다. 12월 25일은 동지(12월 22일)를 지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 라고 생각했다.

 

이 날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축제일이었다.

2002년 대원출판에서 출간된『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라는 책자를 보면,

여러 가지 잘못된 성경의 역사와 모순된 기독교의 진리들이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2)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인가? 유대민족의 민족신이며 전쟁신인가?

유대인의 초창기 민족신은 “엘(El)”이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Mose)”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Jehovah)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할 수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호와(Jehovah)는 창세기 첫 장부터 나오지 않고,

출애굽기에서 부터 (구약성서 3:15) 등장한다. 여호와(Jehovah)는 유대민족의 전쟁신이었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도록 지시한 자가 바로 여호와이며 (출애굽기21:23-25),

끔찍한 살인을 예사로이 지시하고, 여인을 강제로 탈취하여 동침까지 한다.

(민수기 31:25-40).

 

여호와는 사람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고,

유대민족에게 다른 민족을 침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할 것을 지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신(神)이다.

(사무엘기상 15:2-3, 신명기 17:2-5, 19:1, 민수기 15:32-36, 출애굽기 21:20-21, 22:18, 22:20, 레위기 20:27).




3) 노아(Noah)의 홍수 때, 노아 가족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당하였는가?

구약성서의 창세기 편을 보면, 노아(Noah)의 홍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노아(Noah)의 홍수는 B.C 2,348년경에 발생했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내용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는 40일간 계속되었고,

노아 가족 8명과 각 동물의 대표들만 살아 남아, 전 세계 인류가 전멸한 것처럼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노아(Noah)의 홍수 때와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지구의 다른 지방에서 인류가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세계적으로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및 서적들에서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구약 성서는 유대 민족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노아(Noah) 가족 8명 이외에는

지구상에 전혀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방간에 서로 교류가 적었고, 교통 수단도 없었으며,

지금과 같은 정보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촌의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죽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2. 기독교는 지상 최대의 잘못된 진리인가?

성경의 역사에는 중국이나 한국, 또 다른 대륙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고,

전 지역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유대인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예수(Jesus)의 행적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억압하고 재판했으며, 사람은 환생(還生)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Giodano bruno) 같은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이단들을 마녀사냥이란 미명(美名)아래 처형했다.

기독교의 틀을 벗어나면 마녀(魔女)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전성시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중동지역에서부터 이집트까지를 영토로 만들었으며

고대 희랍 지역(유럽)은 차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86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 민족의 메시아로서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이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예수 이 후 로마제국은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만 들어도 잡아 가두고 죽였다.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는 네로(Nero) 황제 때 극에 달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이후의 역사는 반대로

크리스천들의 이방인과 합리적 사상가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로 점철되어 왔다.

한편, 성경은 또한

수학, 과학, 철학, 심령학, 고고학, 인류학 등 많은 현대의 학문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6,000년으로 못 박아 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라는 성경의 내용과 서로 모순(矛盾)된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 보다 먼저 인류는 지구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종주인 바티칸에서는 수학을 몹시 싫어하여 계산하는 산수(算數)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수학(數學)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고,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라 하여 생각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뉴튼 (Isaac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重力)이라는

자연법칙을 찾아냈을 때에야 겨우 영(零)의 관념을 허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零, zero)을 수학이나 철학의 중요한 인자(因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지하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편, 현대의 신학자들은 세례(洗禮)의 목적에 대해 비관(悲觀)해 하며,

세례의 효과와 결과에 대해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교회에 가서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렸다고

천당에 갈 자격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물 몇 방울을 뿌리지 않았다고

죽은 후 평생 지옥에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신학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미국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크리스천들은 그 사람이 잉태한 요일과 같은 요일에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일요일에 성교를 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성교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3. 예수가 곧 하나님인가?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사실인가?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곧 하나로 똑같다.”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진리 왜곡의 표본인가?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였다.

우선 성경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나 어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이 즐겨 쓰는 언어는 인자(人子)이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인자가 말하노니” “진실로 인자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라고 예수는 말하곤 했다.

 

2세기 중엽부터 로마에서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가 쇠퇴하고,

기독교가 중.상류층까지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후 로마 교회에서는 예수가 인간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동등한가? 라는 논쟁이 일어났고,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분열된 국론을 규합하고,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교리가 필요했다.

서기 313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교회의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서기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처음 사용했고,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제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의 지위를 격상시켜야 하므로 “예수는 하느님과 같다” 라고 일방적으로 의결했다.

 

그 후, 악의 폭군 “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서기347~395)”는 제 2차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신관(神觀)”을 확정했다.

 

강력한 로마 제국 건설을 위해 소모적인 종교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론(國論)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로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며, 예수님이 곧 하느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힘의 논리로 사람이 만든 것이다.




4.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궤변인가?

구약(舊約)성서의 창세기에서는

“아담(BC 4004년 탄생)이 잠잘 때에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 갈비뼈가 여자 갈비뼈 보다 숫자가

하나 적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 갈비뼈는 12개씩이다.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유대인 신화』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을 빚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동시에 만들었고, 남자는 아담(Adam), 여자는 릴리스(Lilith)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성교(性交)를 하면서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릴리스는 아담 밑에 깔리지 않겠다며 꼭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라고 대꾸했으나, 릴리스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고 하면서

조물주에게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욕지꺼리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아담은 이 사실을 하느님에게 보고했다. 하느님은 3명의 천사를 보내 릴리스를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돌아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릴리스는 천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귀와 사탄들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유대인 풍속에 릴리스는 밤의 마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릴리스를 포기한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담에게 절대 복종하는 여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담(Adam)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고 "이브(Eve)"라고 하였다.

 

유대인의 문화에는 이런 신화 때문에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때 이런 남성 우월적인 신화가 마음에 들어서

성경 속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야 한다” 라는 사상을 집어 넣었다.



5. 성경 속의 다음 기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1) 뱀이 이브 즉 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겨났는가?

성경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서 뱀이 이브(Eve,여자)에게 유혹을 걸어 죄악의 씨를 전염시켰고,

그 후 여자 때문에 이 세상이 오염되고 혼란과 파괴의 아수라(阿修羅)장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왜 여자에게만 모함(母艦)과 누명(陋名)의 화살을 던지는 것일까?

창세기 1, 2장은 제사문서(priest writing)라고 불리우며, 서기 전 400년 전후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모두 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실의(失意)에 잠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왜 해야 하고, 왜 망했는지 대해 스스로 자탄(自歎)하던 때였는데,

이런 심리 상태에서 희생(犧牲)제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여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2장)에 의하면,

태초에 하느님이 인류의 시조 아담(Adam)과 이브(Eve,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였는데,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는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나무가 울창하였으며,

들에는 짐승이 뛰어 놀고, 하늘에는 새가 날았다.

 

여기에서 강이 발원하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비손. 기혼의 4개 강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하느님이 창조한 것으로 아담에게,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으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에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가르쳤으나,

아담(Adam)은 아내 이브(Eve,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국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과연, 구약성서 창세기(2장)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아담은 그날 죽지 않았고, 아담은 계속 살았다고 한다.




2) 아담과 이브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B.C 4004년 탄생)과 이브는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기독교의 얘기처럼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 고고학과 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들을 들춰내고 있다.

약 300~400만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고,

약 250~150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으며,

이 때, 구석기의 전기(前期) 문화가 등장했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었다.

약 150~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가 출현했으며,

약 2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네안델탈인, 자바인, 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한다.

 

약 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현생 인류는 약 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 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3) 천지(天地) 창조설은 옛 바빌로니아 신화의 모방이다.

천지 창조설은

서기전 6세기(2,500년전)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에리슈 신화”에서 비롯되었고,

모방된 신화(神話)의 구절은 “위로는 하늘의 이름이 없고, 아래로는 땅의 이름이 없을 때에..”이며,

창세기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제사학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천지 창조설은 옛 신화인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에누마 에리슈 신화”를 모방했던 것이다.

한(韓)민족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담긴『환단고기(桓檀古記)』“삼성기(三聖記)”에서는

큰 교화, 즉 우주의 법칙이 만물을 낳았다고 한다.

 

서양의 가치관은 만물(萬物)이 유일신(唯一神)에 의해 창조(創造)되었다고 하지만,

동양의 가치관은 우주의 법칙과 이치에 의해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되었다고 말한다.




4)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인가? 수메르인의 건축기술 대한 질투인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Sumer)인들은 높은 고산지대에 살면서 진흙을 빚어

그것을 구워 인조산(artificial mountain)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언덕 성전(hill temple)이라고 했고,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벨탑(tower of Babel)이다.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의 상징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인들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보여 주며,

그들의 종교적 정열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메르(Sumer)인들은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 사람들의 후손이다.

수밀이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Sumer)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 주는 무수한 점토판들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수메르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사용했었다.

또한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과 그들이 남긴 유적들에게서

우리 문화와 같은 문화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5) 업(業,인과 응보) 즉 카르마(karma)와 삶과 죽음의 관계는 무엇인가?

모든 질병, 사건, 사고를 전부 자신의 업(業)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가지 일에도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과거 혹은 전생의 업(業)과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生)의 목적, 삶의 큰 틀은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상황이다.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이나 내가 당한 사고들은 알고 보면 원인과 결과의 산물이며,

자신의 업(業), 즉 카르마(karma)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남을 살상하고, 음해하고, 사기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하고 나면, 그 순간 곧 바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의 저장 창고에 그대로 기록되어 남아 있고, 언젠가는 거기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카르마(karma)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카르마로써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그 결과도 그 자신이 겪는 것이며,

둘째는 사회적인 카르마(共業)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심어지고,

그 결실도 다같이 거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숙명적으로 묶이어 함께 울고 웃는 공동 운명체에 의해 삶의 큰 틀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업(karma)은 어떠한 사소한 일을 행하더라도 그 모두는 나중에 행위를 한 사람에게 똑 같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선한 행동은 선한 것으로 돌아오고, 나쁜 행동은 나쁜 것으로 돌아온다.

 

업(karma)의 개념은 살아 있을 때의 일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당신에게 일어났다면 그것은 당신이 전생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업(karma)은 종종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도 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불행이 닥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실제로는, 행한 만큼 받는 것이다.

카르마의 법칙에 의하면 모든 고통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당연한 것들이다.




6) 기독교는 왜 진화(進化)를 인정하지 않는가?

창조(創造)는 진화(進化)를 목적으로 하고, 진화(進化)는 창조(創造)를 바탕으로 한다.

 ‘진화'의 반대말은 ‘창조'가 아니다. ‘불변'(Unchangeability)이 진화(進化)의 진정한 반대 의미를 가진다.

우주 생명(生命)은 창조(創造)되고 진화(進化)하는 객체(客體)이다.

 

인류는 미시(微示)적인 창조(創造)활동과 거시(擧示)적인 진화(進化)활동을 동시적으로 거듭해 온 것이다.

모든 생명 활동은 짧게는 창조(創造)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거시적으로는 진화(進化) 활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창조(創造)를 거듭하며, 거시적으로 진화(進化)하도록 되어 있다.

창조(創造)와 진화(進化)의 거시론적 고찰은 간결하고 명확하며 억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가장 큰 억지를 부리는 쪽은 일방적인 창조론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의 주장일 것이다.

 

일방적인 창조론은 과학적으로도 잘못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어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확신이나 지식에 따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에 입각한 가치관과 세계관이 필요한 때이다.




7)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분쟁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아브라함(B.C 2,000년경)은 사라(Sarah)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사라(Sarah)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Abraham)은 이집트 출신의 종(從)인 하갈(Hagar)과

동침하여 이스마엘(Ishmael)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라(Sarah)도 임신하여 이삭(Isaac)을 낳게 된다.

그 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가 낳은 이삭이 적자(嫡子)임을 주장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한다.

나중에, 이삭(Isaac)에게서는 “유대족”이 나오고, 이스마엘(Ishmael)에게서는 “아랍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아랍족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로부터 2류 민족으로 취급되었다. 서기 570년경, 마호메트가 나타나서

아랍 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이슬람교(회교)를 창도(唱導)하였다.

마호메트는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박해받는 아랍족의 무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에 대한 아랍 이슬람교의 반목은 계속되었다.

중동(中東)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아브라함(Abraham)의 적자(嫡子) 자손인 유대인과

서자(庶子) 자손인 아랍 민족 간의 분쟁이며, 역사적으로 4,0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6.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과연 동정녀였는가?

예수(Jesus)가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많은 처녀들을 두고, 남편(요셉)이 있는 성모 마리아(Maria)를 택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성경의 내용들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가나안, 시리아, 고대 희랍 등의 신화들 중에서 모방해 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고대 신화들을 모방한 것이다.

 

흰두교의 크리슈나(Krishna)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메소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Zoroaster)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이브의 어머니 소피아(Sophia)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Jesus)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 라고 둔갑시켜 놓았다.

 

고대 신화나 고대 종교를 모방한 것이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제국 당시, 중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하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한편, 초창기의 기독교 교부들은 “옛날에는 신화에 지나지 않던 형상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 안에서 되살아난다.” 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모방의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경의 내용이 옛 신화에게서 모방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7.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라는 부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의 결혼(結婚)이나 그의 성(性)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랍비(rabbi, 율법사)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랍비 훈련은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결혼 상태에 대해서는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유대인의 풍습을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結婚)은 당연한 사회조건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독신 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성경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선교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 지방까지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예수 당대의 풍습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 혼자 한 남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는 좋지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사원(寺院)의 여자 따위로 표현해 놓았다.

 

마가.마태.요한의 세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옆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준 상대도 막달라 마리아였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독특했다.

그런데, 유대인의 풍습은 원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심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여자들도 그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인이면서도 대접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존재였다. 특히 성경의 기록에서는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8.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2002년 대원출판에서 출간된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라는 책자에서는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의 내용들을 심도(深度)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는 요셉(Joseph)이라는 아버지와 마리아(Maria)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왕족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나이가 아주 많았고,

마리아(Maria)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요셉은 이미 리디아(Lydia)와 리시아(Lysia)라는 두 딸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홀아비였다.

요셉은 성모 마리아(Maria)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자 6월에 정혼(定婚)했다고 한다.

 

이 때,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 될 사람은 제사장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정혼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요셉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에 정혼을 하자 마자

곧바로 마리아(Maria)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을 하게 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성(聖)스러움과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의 어린시절이나 혈통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9.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예수가 죽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많았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그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10.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후 들어갔던 무덤은 요셉(Joseph)의 정원이었다고 하며,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한편, 독일의 신학자(神學者)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1951~)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추구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 부활(復活)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존의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로마의 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네의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로마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리고 원래의 로마 당국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법인데, 예수의 경우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쉽게 내 주었다.

 

기존 유대인의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예수가 인도와 티벳 및 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민족의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기존 유대인의 세력과

로마 당국은 그들의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를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했다.

마가복음 15장 44절에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

“로마 형리들이 예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했으니,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묶였을 때 탈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든지

혹은 예수가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하게 죽은 것이다.

 

이렇게 죽은 혹은 실신 상태의 예수는 미리 준비된 왕릉같은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고,

마태복음 27장 60절에 의하면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개인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장 49절에 보면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십자가 사형이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이었고 깜짝 쇼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게 꾸밈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고,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가까운 소수의 몇 명에게만 나타났다.

이 때,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짜 예수가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사람과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십자가 부활 사건이 끝나고,

그 후에 어디로 갔을까?

예수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2년간 살다가, 다시 성모 마리아, 동생 토마 등을 데리고

인도(印度) 캐시미르 지방으로 갔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가 38세 되던 해에 사망했고,

예수는 인도에서 115세가 되어 자연사(自然死) 했다.

 

예수(Jesus)의 무덤은 인도(印度) 슈리나가르의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 마을에 있다.

묘지 앞에 로자발(Rozabal)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로자발(Rozabal)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 말이며, 라우자(Rauza)는 예언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성모 마리아(Maria)의 무덤은 캐시미르 지역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이 무덤은 마리아 아스탄(Mai Mari da Asthan)이라고 불리는데,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휴식처라는 뜻이다.




11. 기독교 역사의 잔인함과 가학(加虐) 학대증(虐待症)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Abraham)을 시험하려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Isaac)을 죽여 번제(고대 유대인들이 짐승을 통째러 구워 하나님께 바치는 제식)로 바치라.” 라는

기록이 나온다. 아브라함(Abraham)은 실제로 이삭(Isaac)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매우 잔인했다.

 

레위기 1장을 보면, “어린 남자아이를 죽여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가죽껍질을 벗긴 후 토막을 내어

그 고기를 구워 몽땅 제단에 바치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빼앗겠다고 쳐들어간 십자군의 군인들이 적군의 시체를 통돼지 굽듯 불에 굽고,

내장을 꺼내 구워 먹었다.

 

성경의 다윗(David)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의 남자포피(자지 껍질, 한글 NIV 성경에서는 양피로 바꾸어 버림) 100개를 얻기 위해

블레셋 남자를 그 두배인 200명이나 죽이고 그들의 자지를 모두 잘라 사울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성경은 블레셋 사람들의 생명은 전혀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다윗(David) 왕의 용맹함에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모세(Mose)는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미디안 사람들을 벌주기 위하여

부하 장군들에게 1만 2천명의 군대로 미디안을 침공하라고 명령했다.

부하장군의 군대는 미디안의 왕을 다섯이나 죽이고 남자란 남자는 다 죽이고 전리품을 잔뜩 갖고 돌아왔다.

그러나 모세Mose)는 부하 장군들이 여자들을 죽이지 않은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다음부터는 숫처녀는 죽이지 말고 남자 맛을 본 여자들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에게 성경의 하나님은 도덕과 인류애를 가르쳐야 하는데,

성경의 역사와 내용들은 너무 잔인하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sword, 칼과 전쟁)을 주러 왔노라.” 라고 성경의 예수는 말하고 있다.

미국의 초창기 시절에 남부에서는 노예제도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앞장섰던 무리가 바로 미국에서 가장 큰 종파인

남침례교회라는 개신교였다. 한편 이들이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근원이 바로 성경이었다.

 

한편, 성경의 “다윗(David)”은 음탕하고 난봉꾼이었다.

그의 정식 부인과 애첩이 몇 명이었는지는 계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심지어 남의 부인까지 빼앗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 일부러 전사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신명기 22장을 보면, “시집간 여자가 첫날 밤에 처녀막 파열로 소변에 피를 흘리지 않으면

처녀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되며, 처녀였음을 신부의 아버지가 증명하지 못할 때에는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자료출처-개벽의땅한반도>

http://blog.daum.net/shfluid/4347039?popQuer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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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15 : 20 연합뉴스
<해외화제> "예수 인도서 요가와 명상(?)"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

예수 그리스도가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면서 수 년을 보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ANI 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저명한 힌두교 지도자인 고(故)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자신의 사후에 출간된 `그리스도의 재림 : 너 안에서의 예수의 부활'이란 저서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에 갔던 3명의 현자(賢者)가 모두 인도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인도에서 건너간

이들 현자가 예수를 산스크리트어로 구세주(Lord)를 뜻하는 `이사(Isa)'라고 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아가 예수 역시 나중에 인도로 건너가 현지의 위대한 철인(哲人)들과 요가와 명상으로 수행했는데

이 때가 성경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아 `잃어버린 시절'로 표현되는 13세에서 30세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1천642쪽의 이 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요가난다 자아인식 장학재단'이

그의 사후 52년만에 생존 당시의 강연과 저서를 기반으로 펴낸 것이다.

ANI 통신은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더 깊은 의미와 함께 기독교의 가르침이

요가와 본질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wolf85@yna.co.kr
(끝)

예수의 서른살 이전 행적 추적
◇성경엔 없다=그리스도교 최대의 미스터리는

예수의 12살부터 30살까지의 행적. 성경엔 예수의 어린 시절과 31~33살의 공생애만이 그려져있을 뿐

18년동안의 삶에 대해선 전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성경에는 없는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을 추적했다.

미국의 목사 리바이 도링에 의해 쓰여진 <보병궁복음서>와 그들이 예수로 추정하는 `성 이사'가

동방에 체류했다는 내용을 담은 아베다난다의 <카시밀과 티베트에서>, 도마복음서, 사해복음 등을 참고했다.

이 책은 예수가 불제자인 라마스를 만나 친구가 되었고,

불경을 공부해 불교인인 우드라카와 바라다로부터 탁월한 지혜를 인정받았다고 적고 있다.

또 히말라야의 가피바스 불교 사원에서 원장 비자파치는 예수를 광명의 부처로 찬미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 사건 뒤 다시 살아나 인도의 카시밀 안지말에 묻힐 때까지

인도 여러 지역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었으며, 이사의 유즈 아사프 대사나 보살로서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가 그리스도의 지위에 나아간 데는 뛰어난 자질과 유대,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티베트 등지서 훌륭한 도반과 스승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명상 기도를 통해서였다고 주장한다.

 

비밀형제교단 등을 통해 묵상수련을 많이 해 밀교공동체인 에세네파의 명상교사를 한 예수는

수련을 통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감성, 의지 등의 표상을 환영으로 보고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의 불로 이를 정화해 하느님의 현존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경기대 법학부 고준환 교수가 썼다. 불지사 펴냄. 9000원.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히말라야 성자들과 지낸 예수님의 17년 세월> :: 김 현 철(주간 한겨레저널 회장)

필자가 4년 전 인터넷을 통해 서울 교보문고의 서적을 주문하다가

 "성약 성서"라는 이상한 책이름을 발견, 추적 끝에 이 책이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활 직전(12세-30세)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히말라야 성자들과 지냈다는 내용을,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서술한 영문판 서적의 번역본임을 알게 됐다.

 

그제 서야 "어쩐지 신약성서 어느 곳에도 예수님의 소년시절의 기록이 없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필자는 몇해 동안 서울에 드나들면서 "성약성서"를 구하려고 애썼으나

실패 끝에 작년에야 "바안스 앤드 노블" 미국 서점에서 영문 판 원본

 "예수님의 잃어버린 세월"(The Lost Years of Jesus(by Elizabeth Prophet, ISBN 0-916766-87-X)"을 입수했다.


이 책에는 1887년 러시아 출신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otovitch)가

북부 인도의 히말라야에 있는 라다크 주의 수도 레(Leh)에서 25마일 떨어진 히미스(Himis) 수도원(해발 3천4백미터,

5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수도원)의 원장을 통해 예수님이 현지에 다녀 간 발자취가

기록돼 있는 3권의 책 중 중요 부분을 번역해 가져와서

 

발간한 책"예수님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Unknown Life of Jesus)" 전문

(그 후 이 책은 전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베스트 쎌러가 되었고

당시 불란서에서는 8판을 거듭했다 함),

 

그 후 인도 캘카타 출신 교수이며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수제자로 유명한

쓰와미 아베다난다(Abhedananda) 및 러시아 출신 교수 니콜라스 로릭(Roerich)박사가 노보비치의 책을

확인하는 작업 끝에 전부 사실임을 인정한 보고서 전문,

1939년 스위스 음악대 교수출신인 엘리자베스 카스파리(Caspari) 박사와

 

가스크(Gasque) 부인이 이끄는 9명의 히말라야 탐험대가 히미스 수도원을 방문해

똑 같은 사실을 확인한 사건 전모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그 밖에 예수님이 히말라야와 인도에 다녀 간 발자취와 많은 사진등이 실려 있다.


티벳 망명정부(달라이 라마 왕)가 있는

서 북부 인도의 "다람살라"의 한 티벳 스님은 예수님이 인도와 티벳 등

많은 도시와 히말라야에 다녀갔다는 게 사실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적어도 인도, 파키스탄, 티벳, 네팔, 부탄 등 히말라야를 인접하고 있는

지역의 힌두교, 불교 신자들은 옛부터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이 사실을 믿건 안 믿건 상관없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이니까."하며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 천주교회의 신부님 한 분이 "불교와 천주교의 예배하는 전례는 너무 닮았습니다,

부처님 자리에 성모님 상을 올려놓으면 거의 같습니다"하던 말이

이제야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히말라야와 인도지방에서 18년간이나 머물렀음을 이 신부님은 알고 한 말이었을까 ?

또 성서 상에 일언반구 이에 대한 말씀이 없음은 예수님이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

아니면 후대 성서학자들이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일까 ?


이 밖에 서점에 가면 "동양 성자들의 생애와 가르침

(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Far East, by Baird T. Spalding, 한국어 번역본은 '초인생활')" 등

성서 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수많은 예수님의 행적들을 각종 증거를 들어 기록한 책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발견, 그동안 필자가 너무도 무지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인간의 모친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성자들은

바로 현재도 서로가 한결같이 형제애를 지니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종 종교 신도들이 알게 되는 순간,

종교 때문에 전쟁과 불화로 얼룩지고 있는 이 세상은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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