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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예전에 그러니깐 1980년에 교회를 열심히 다닐때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단순한 한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기독교의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를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그 당시의 교회 분위기로 봐서는 너무 우습고
유치한 질문에 속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하나님은 바로 하나 밖에 없는 유일신이란 것을
의미한다는 목사님의 설명이 유일한 답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그냥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많은 신도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난 이것이 몹시 기이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우습기도 하였다.

하나,둘,셋, 이러한 서수의 나열에서 님을 붙여서 사용한다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존경의 표시로서 님을 붙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사에 인격적 접미사를 붙인다는 것이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꼈다.


그렇다면 둘님도 셋님도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그 당시 어느 누구도 명괘하게 내게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하나님 하나님이다.
이런한 자기 암시와 믿음을 믿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그런대로  하나님이란
용어를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한동안 교회를 떠나지내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가족들과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천주교를 찾았고 지금은 비록 나이론 신자로 지내고 있지만
나름대로 천주교인으로서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천주교에서느 우리가 믿는 신을 하느님이라고 지칭한다.
그렇다고 개신교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배척하지도 않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비록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하나님과 하느님이란 표현을 두고 본다면
하느님이란 표현이 좀더 원어에 가깝지 않나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영어성경을 봐도 모두 God으로 표현하고 있고,
중국성경이나 일본성경을 보더라도 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만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고,


특히 일부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란 표현 외에는 모두 이단이라는 식으로 상당히
배타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어 정말 피곤한 종교란 생각이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못된 짓이나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꾸짖을 때
보통 " 넌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속에 절대자의 의미를 하늘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라 볼 수있다.

 

上主(상주) 天主(천주) (上帝)상제란 표현 모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하나를 강조 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이러한 표현들은 지고신과 유일신의 개념이 들어가 있고
세상에 상주 천주 상제가 둘 일수는 없기 때문이다.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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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속에서 나는 가슴 아프고 슬픔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이 현실의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서 어린 가슴에  뭔가 못을 박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군요.

 

5절: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 계시록

 

마태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미태복음 7:23

 

 

회개하라. 아아, 이스라엘이여, 개심하라.

 

 

하느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회개 아니하고 교회를 부여 잡고만 있다고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을 하는데,

 그래서 무지는 신의 저주다 하였는 모양이다.

 

천고의 대죄를 짓고 있는줄 모르고 무지한 중생들을 유혹해서 가르치니....

통탄할 일이다.

 

그런데 죽어도 이 말씀을 엉뚱하게  자기네들  마음대로 해석하여  아닌냥

양심을 속이고  뭘 모르고 엉뚱한 해석을 하는데 그냥  뭘 모르면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데 

귀신이 들어 가지고  말씀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억지로 뭔가 합리화 시키고 정당화하여야 만이 되는 모양입니다.

 

인정을 하자니 너무 두려운 거죠 ㅋ

지금도 자기네 들이 진실된 하느님의 종인냥   입만 열면 떠들고  구원을 받는다고 야단치지만

 

"무지는 신의 저주다"  이 깊은 말뜻을 알아야 될것 같군요 ㅋ

물론 착각은 자유입니다.  ㅎ

 

하지만  이 어린 가슴에 못을 박고도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이말이 명언인거 같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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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성고 교훈비 < 인외상제지지본(寅畏上帝智之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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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교직원은 교장 안의와, 교사 이만집과 27명의 학생으로 첫 수업시작 /

1950 4. 28 : 전국에서 최초로 계성고등학교 설립인가

/ 48회 졸업생 모교방문 기념으로 1986년 10월에 세워졌으며 맥퍼슨관 남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