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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상을 놓고 한쪽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그것 때문에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한때 공동번역을 하여 화합을 기도하기도 하였으나 그것도 한쪽에서
따르지 않는 바람에 ‘하느님’ 쪽에서 다시 독자적인 번역을 하여 쓰면서 이 골은 좀체 메워지지 않는
듯합니다. 똑같은 성경을 서로 달리 번역해 쓰는 데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중 중요한
갈림길이 된 것이 바로 ‘하느님’과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똑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가리키면서 왜 이렇게 달리 부르고 있을까?
기이하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숙제라면 큰 숙제인데 오늘은 그 뿌리를 좀 캐어 보았으면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중국을 거쳐서였습니다. 최초의 한글판 성경도
<聖經廣益>이나 <聖經直解>와 같은 중국 성경, 즉 한문판 성경의 번역이었지요. 그런데 그 한문판
성경에서는 ‘天主’라는 명칭을 채택해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한편으로는 ‘텬쥬’ 즉 ‘천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하ㄴ․님’으로 번역해 썼습니다. (아래아가 제대로 찍히지 않아 이런 편법을 쓰고 있습니다.
'ㄴ' 아래쪽에 아래아 ‘ㆍ’가 있는 것으로 읽어 주세요.)

이때 ‘하ㄴ․님’의 의미가 ‘하늘’과 연관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떻게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하ㄴ․ㄹ-님’이 ‘하ㄴ․님’으로 표기된 것이겠지요. ‘아들-님’이 ‘아드님’이 되고, ‘딸-님’이 ‘따님’이
되듯이 말입니다. ‘솔-나무’ ‘버들-나무’가 ‘소나무’ ‘버드나무’가 되는 것에서도 보듯이 ‘ㄴ’ 앞에서 받침 ‘ㄹ’이
떨어지는 현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이 꼬이기 시작한 듯합니다. 그 실마리를 저는 우연히 김교신(金敎臣) 선생이 1939년에
<聖書朝鮮>(122호)에 발표한 ‘하나님’이란 제목의 글에서 보았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한글학자의 소설(所說)로써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변개(變改)하여야 하는 듯이 주창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반대한다. ‘하나님’은 유일신(唯一神)을 표시하는 말로서 구미(歐美) 제국의 어휘에도 벌써 기입된 문자요, 세계에
유례없이 귀중한  말인데 신앙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자는 누구인가.”


“약 반세기 전에 예수교가 조선에 전래한 이래로 우리 선배들은 이 ‘야외’의 신(神)을 조선말로 ‘하ㄴ․님’이라고
역(譯)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후에 아랫 ‘ㄴ․’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因)하야 하나님으로 표시하여 왔다.”
“그런데 근래에 지(至)하야 하느님으로 표기하는 이들이 심히 많아졌음을 보고 우리는 기독교도의 일고(一考)를
촉(促)하지 아니치 못하는 바 있다.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하기 시작하기는 대개 한글학자들의 설명에 기인한
것인 줄로 짐작되는데 .... ”
“명칭의 변경은 그 내용의 변개를 의미한다. 불신자인 어학자들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건말건 우리가 알 바 아니나 .... ”  

사람을 퍽 당혹스럽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괜히 제가 무슨 종교재판이라도 받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분의 말투를 그대로 빌려 표현한다면 신자가 무엇이라고 하건 말건
저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글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은 ‘하ㄴ․님’의 ‘하ㄴ․’를 ‘하나, 둘, 셋’의 ‘하나’로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지(無知)라는 게 참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ㆍ’를 흔히 ‘아래 아’라고 부르듯이

이 당시에도 ‘ㆍ’는 ‘ㅏ’로 읽혔을 것이고 따라서 ‘하ㄴ․’는 ‘하나’로 읽혔겠지요.

그러니 그 ‘하나’가 ‘하나, 둘, 셋’의 하나로 오해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오해에서 표기도 아예 ‘하나님’으로 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이미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바로 일깨워 주었던 모양입니다.

국어학자에게 물었으면 그가 신자이든 아니든 그 무지를 바로잡아 주는 일은 조금도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번역 과정을 몰랐다 하더라도 ‘하나(一)’의 고형(古形)은 ‘하ㄴ․’가 아니고 ‘ㅎ․나’였으니까요

. ‘ㆍ’가 놓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하나의 님’을 나타내고자 하였다면 ‘ㅎ․나님’으로 표기하지 ‘하ㄴ․’님’처럼 ‘ㆍ’를 그렇게 엉뚱한 곳에 가 붙였을 리가
없습니다. 다른 한 예로 ‘ㅎ․ㄴ밭’이면 ‘하나의 밭’이지만 ‘한밭’이면 ‘큰밭’ 즉 ‘大田’이 되듯이 ‘ㆍ’의 존재는 중요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것 말고도 수사(數詞) ‘하나, 둘, 셋’ 등에 ‘님’을 붙여 ‘둘님’, ‘셋님’ 하는 것은 우리말 조어법에도
맞지 않습니다. 국어학자라면 누구나 ‘하ㄴ․님’을 현대어로 고쳐 표기하자면 ‘하느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올바로
일깨워 주었을 것입니다.

‘ㆍ’는 이미 18세기에 제 음가를 잃었으나 오랫동안 써 오던 버릇에 얽매어 20세기가 되어서도 쓰고 있다가 1912년의
<諺文綴字法>이나 1933년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부터는  폐기하기로 하였지요. 그래서 이제까지 ‘ㆍ’로 표기되던
것들은 어떤 다른 글자로 바꾸어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때 ‘ㆍ’를 어떤 글자로 바꾸어 적느냐 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음이 절대적이 기준이 되었겠지요.

‘ㆍ’음은 단어에 따라 ‘ㅏ’로 바뀐 것이 많지만 단어 뒤쪽에서는 ‘ㅡ’로 바뀐 것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가을’
‘가르(치다)’ ‘가득(하다)’의 ‘ㅏ’나 ‘ㅡ’가 고어에서는 다 ‘ㆍ’로 표기되었던 것들인데 1음절에서는 ‘ㅏ’로 된 반면
뒤쪽 음절에서는 ‘ㅡ’로 된 것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말씀’, ‘아들’, ‘다르다’의 ‘ㅡ’도 역시 ‘ㆍ’이던
것들이 ‘ㅡ’로 변화한 예들입니다. ‘하늘’의 ‘ㅡ’도 바로 이 예에 속합니다. ‘하ㄴ․님’이 ‘하느님’으로 표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 한 점 미심쩍은 구석이 있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은 뒤틀려갔던 모양입니다. ‘하ㄴ․’의 발음이 ‘하나’와 같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서운 미끼요
유혹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일신임을 생명처럼 여기는 분들에게 ‘하나’라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었을 것입니다.
너무도 매료된 나머지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고 곁에서 일깨워 주어도 비신자인 네 놈들이 뭘 아느냐고

내치며 점점 더 바오밥나무의 뿌리에 갇혀 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이 저로서는 안타깝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무지하여 누구나 그 미망(迷妄)의 세계에 갇혀 있다면 몰라도
한쪽에서 밝은 세상을 알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집(我執)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퍽이나 딱해 보입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일부의 신념 때문에 바뀔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초기 성경의 ‘하ㄴ․님’의 ‘하ㄴ․’가 ‘하나’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하여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역사의 한 오점(汚點)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부르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요?

그분이 유일한 분이라면 ‘하느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달라지겠어요?

제가 저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지 그분이 꼭 한 분이라는 걸 따로 나타내려고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자기 아버지를 두고 우리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는 걸 내세운다면 그분을 얼마나 욕되게 하는 겁니까?

더구나 그 거룩하신 분을, 우리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는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존재를 두고 하나니 둘이니 하고 수적(數的)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저에게는 일종의
신성모독처럼 들립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이 명명백백한 일을 하나 바로잡지 못하시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아,
내 너희에게 가르친 것이 사랑과 겸손, 그리고 자유가 아니더냐?

어찌 그리 좁은 울타리에 속박되어 교만을 떨며 남의 올바른 말을 내치고 서로 담을 쌓고 그러느냐?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나는 곧 나이니라.” 호된 꾸지람을
내리치실 때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출처: 우리말 산책(52) --- '하느님'과 '하나님' | 우리말 산책 2007.10.16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