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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증산도 道典 4:7)

 

이 세상에는 기인도 많고 이인도 많다.


그 중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제님께서도 인정하실 만큼 뛰어난 도술을 가졌던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선조 때 기인 최 풍헌이다.
 
이 말씀을 통해 최 풍헌의 조화법술이 무척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최 풍헌은 그러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임진왜란을 끌러내지 못했을까?
임진왜란에 얽힌 최 풍헌의 일화를 통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저에게 병권을 허락하소서”
풍헌(風憲)’은 조선시대 대민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임(鄕任)의 하나로서 오늘날 면이나 동의 직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최 풍헌에 대한 자세한 신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도력이 남달랐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전설로 전해져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평양으로 피난 간 선조에게 최 풍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권을 3일만 허락하면 왜병을 3일 내에 전멸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그러면 최 풍헌 네가 병권 없이 왜병을 없애라’고 한 말씀만 내려주십시오.”라고

청하였으나 이 역시 허락되지 않아서 결국 조화권(造化權)을 쓰지 못해 통탄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592년부터 7년간에 걸쳐 조선은 왜구로부터 영토와 백성들을 참혹하게 침탈당했다. 

그런 임진왜란을 3일 만에 해결하겠다고 할 만큼 최 풍헌이 엄청난 도력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끝내 자신의 조화술법을 부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사대권자로부터 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사부님께서 “부득기위(不得其位)하면 불모기정(不謀其政)이라,
그 직위를 얻지 못할 것 같으면 정사를 꾀하지 못한다. 

 

직위가 없는데 무슨 재주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가.
자기 위치가 있어야 그 노릇도 할 수가 있다.”고 하신 말씀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
 
최 풍헌의 일화는 인사대권자의 명(命)이
현실역사에서 무엇보다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도(神道)를 응기시켜 인사(人事) 문제의 향방을 틀 수 있는
근원적인 역사변혁의 추진 동력이 인사대권자에게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역사는 인사(人事)로 실현된다
최 풍헌에 대한 일화는 상제님의 천지대업을 현실 역사 속에서
실현시켜 나가는 우리 일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의 통치자이자 절대자이신 상제님께서
역사를 매듭짓는 삼변도운의 인사정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대행자인 인사대권자의 명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곧 일꾼에게 기운을 받아 가능성이 크게 열림을 의미한다.
그 명에 충실하는 삶을 살 때 성공에 이를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인사의 지도자께서 주신 역사의 과업,
그 사명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삶, 오직 깨어진 정신으로 실천하는 자만이
상제님 천지공사의 성공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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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풍헌의 큰 지혜 : 변국을 꿰뚫어 본다

 

상제님께서 하루는 성도들에게 최 풍헌(崔風憲)의 옛일을 말씀해 주시니 이러하니라.
최 풍헌은 지난 임진란(壬辰亂) 때 전라도 고흥(高興) 사람이라.

 

풍헌이 밤낮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동리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툭하면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거니 모두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니라.

그러나 류 훈장(柳訓長)은 그런 풍헌을 그 때마다 타이를 뿐이니,


이는 풍헌이 일에 임하면 명민하고 지혜가 뛰어나므로 일찍부터 범상치 않게 보아 온 까닭이라.

한번은 고을 현령이 풍헌을 못마땅히 여겨 파면할 구실을 찾으려고
고을 호구대장과 토지대장을 주며 몇 달이 걸릴 일을 “보름 안에 조사해 오라.” 하고 명하니

 

풍헌이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술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기한이 차매 뜻밖에 한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정확히 조사하여 올리거늘
조사한 날이 모두 한날한시인데다 수결(手決)까지 쓰여 있어
현령이 크게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라.


몇 달 후에 ‘왜병이 침입하리라.’는 풍설이 널리 퍼져
민심이 크게 소동하거늘 류 훈장이 풍헌에게 피난할 일을 부탁하되 풍헌은
알지 못한다.’며 수차 사양할 뿐이더니

 

하루는 술에 취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가산과 전답을 다 팔아서 나에게 맡기라.”
하매 훈장이 풍헌을 믿고 그대로 따르거늘

 

풍헌이 그 돈으로 날마다 술을 마시며
방탕히 지내다가 갑자기 한 달 동안 사라져 보이지 않으니라.


훈장은 믿는 바가 있어 모르는 체하며 지내는데

하루는 ‘풍헌이 사망하였다.’는 부고가 이르거늘 훈장이 크게 놀라 풍헌의 집에
찾아간즉 풍헌의 막내아들이 건을 쓰고 곡하며 훈장을 맞으매


어떻게 돌아가셨냐?” 하고 물으니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구정물통에 머리가 박혀서 돌아가셨다.” 하므로 시신을 살펴보니 과연 최 풍헌이라.

 

훈장이 상제(喪制)를 위로하고 나서 “유언이 있느냐?”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류 훈장에게 통지하여 그 가솔과 더불어 상복을 입고 상여 뒤를 따르게 하여
지래산(智萊山) 아무 골짜기에 장사지내라 하였습니다.” 하는지라

 

훈장이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의논하니
모두 곧이듣지 않고 막내아들 하나만 뜻을 따르거늘
사흘 후에 굴건제복(屈巾祭服)하고 운상하여 지래산 속으로 들어가니
골짜기 위에서 ‘상여를 버리고 이곳으로 오라.’는 소리가 들리므로 바라보니 곧 풍헌이라.

 

이에 상여를 버리고 올라가니
그곳에 가옥을 지어 놓고 양식을 풍부히 마련해 두었더라.

얼마 후 밤이 되어 살던 마을 쪽을 바라보니 불빛이 환하거늘 풍헌이 말하기를
이는 왜병이 침입하여 온 마을에 불을 지른 것이라.’ 하매 훈장이 더욱 탄복하니라.

 

그런데 그 골짜기 위에서 본
최 풍헌의 얼굴이 본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하니라.

(증산도 道典 7:85)


영재 교육의 대도

하루는 형렬이 아뢰기를 “고대의 명인은 지나가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고,
확실하게 지적해서 일러 준 일은 없었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실례를 들어 보아라.” 하시니라.

 

형렬이 여쭈기를 “율곡(栗谷)이
이순신(李舜臣)에게는 ‘두보(杜甫)의 시를 천 번 읽으라.’고 권하여

독룡(毒龍)이 숨어 있는 곳에 물이 곧 맑네.’라는 구절을
스스로 깨닫게 하였을 뿐이요, 임란(壬亂)에 쓸 일인 것을 일러 주지 아니하였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에게는
섧지 않은 울음에는 고춧가루 싼 주머니가 좋다.’고 말하여
직접 지시함이 없이 임진왜란 때 청병(請兵)에 대처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나도 그들과 같은 영재(英才)가 있으면 역시 그와 같이 가르칠 것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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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선과 한민족의 선仙

 

선仙의 의미

 

공주시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세 개의 청동거울이 발견됐다.
그중 지름 17.8cm의 한 구리거울에는 “...
上有仙
人不知老...”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선이 있어 늙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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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국보 161호로 지정된 거울에는
“...上有仙不知老...”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은 익산 미륵사지에사 발견된 사람얼굴의
기와.
두개의 불로초가 그려져 있어 이채롭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유물들에서 선풍
仙風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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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仙이란 문자적으로 보면 사람 인? 변에 뫼 山 자를 더해 만들어진 것.
산에 들어가 신神이 된 사람’을 가리
킨다. 물론 여기서 산은 태양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탈속과
초월의 공간을 상징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은 이 차안此岸의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의 차원으로 들어선 사람을
가리킬 것이다.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구름 사이를 날아가는 신선神仙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를 상기하라.

 

고대에는 선仙 대신 춤출 선僊 자를 썼다고 한다.
‘춤소매가 펄렁거리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 이 글자에도 우화
등선羽化登仙의 탈속과
초월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문자적 뜻풀이에 선의 의미가 시사돼 있다.
선은 곧 수도와 수련에 의해 무병장생의 생명을 누리고 천지조화의
권능을 지녀

자유자재한 삶의 경계에 이른 이상적 인간, 완성된 인간을 가리킨다.


그런 인간을 달리 성숙된 인
간, 인간열매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신선은 도가에서 불로불사의 술을 얻어서 변화자재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선인仙人과 같은 말이다.


(대한화사전)

다음의 설명도 신선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신선사상이란 인간이, 스스로가 개발한 신선방술에 의해서

불사의 생명을 향유하는 동시에, 신과 같은 전능의 권능을 보유하여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

우유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도광순, “중국 고대의 신선사상”)

 

신선의 경지는 인간의 신화神化라고 할만 하다.

 

 

인간은 본래 신선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은 원래 인간에게 본질과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인간 앞에 개명開明된 본래의 길”(변찬린, “僊(仙)攷), “하늘에서 명받은 근원적 가능성”

(민영현, “증산도의 선과 후천문명) 이었다.

 

말하자면 창조의 시원에 하나의 씨앗으로 품부받은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인간은 이미 신선(人則仙)이다.

 

그렇지 않고 신선의 삶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하지도 참되지도 않다. 때문에 신선이 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종種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비로소 제 본성을 찾아 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씨앗이 이윽고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선을 향하는 것은 근본과 유래를 찾아 새롭게 향하는 원시반본의 길이다.

‘오래된 새 길’이다.

 

또 신선에 대한 동경은 아주 오래됐지만 상실한 것에 대한 향수의 성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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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구름 사이를

날아가는 여자 신선의 모습 등 다양한 신선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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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출처는 동방 신교

선의 시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중국의 황제나 노자가 아니라 신교神敎이다.

<산해경>, <포박자> 등의 중국 옛 기록에 선의 연원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예컨대 <포박자>란 책에는 일찍이 황제가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전수받았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청구는 여러 기록으로 보건대 우리 민족의 옛 강역에 속한다.

(이능화, 조선도교사, 45쪽)

 

훗날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청구도 행군총관’을 임명한 사실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방증으로 꼽힌다.

 

또 조선 선조 때 조여적은 그의 <청학집>에서 환인이 동방 최초의 선조仙祖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는 환인으로부터 시작된 선맥이 환웅, 단군을 거쳐 문박씨, 영랑을 비롯한 신라의 사선,

마한의 보덕신녀로 이어진다고 밝힌다.

 

이 선맥은 다시 통일 신라의 최치원 등으로 계승된다.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 고려의 국선이나 재가화상, 팔관회 등이

유구한 선풍의 명맥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

 

 

고대 중국에는 신선 사상이 없었다

이밖에 이능화, 신채호, 최남선 역시 선의 기원을 우리 민족에서 찾는다.

한편 중국 상대上代 문헌에는 신선설을 찾아볼 수 없으며, 전국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장자에 의해

선인仙人 신인神人설이 등장한다는 지적(변찬린, “僊攷”)도 선의 한국 연원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중국 제나라, 연나라 등지에서 신선설이 널리 성행한 것은

기원전 3,4세기 경의 일. 이들 지역에서 신선사상이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선의 발상지인 고대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던 까닭으로 풀이된다.

 

 

신선사상이 도가사상으로

그러나 선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그 성격이 크게 바뀌게 된다.

 

선仙은 군주를 비롯한 권력가들을 위한 사상으로 변모되고,

불사약을 구하거나 연단鍊丹을 만들고, 조식調息, 방술方術 등의 수련방법을 개발하는 가운데

방사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했다.

 

제, 연의 왕들과 그 후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삼신산을 찾아 불사약을 구하러 신하와 방사들을

해동 조선에 파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 이러한 신선사상은 음양오행설, 노자나 장자,

묵가의 설 등과 합치며 도가사상이란 물줄기로 흘러들어 간다.

 

 

한민족의 선은 상제 신앙 안에서

반면 신교神敎에서 비롯한 선의 근본특성은, 상제 신앙과 결속한 점에서 구해진다.

신교에서는 상제신앙 안에서 그것을 통해 선을 향하며,

선에 이름으로써 상제 신앙이 완결된다고 믿는다.

 

하느님 신앙 혹은 제천祭天이 자신을 완성하는 혹은

자신의 참됨을 되찾는 수행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교의 선에서는 공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섬김은 참된 나의 본성을 회복하여 신의 뜻을 세상에 펴는 것이다.

그랬을 때 신이 심은 가능성 혹은 신이 기대한 이상을 온전히 실현하여 성숙된 인간, 선이 되는 것이다.

즉 상제 신앙 안에서 선이 되는 길은 본성에 대한 깨달음과 세상과

이웃을 위한 실천이 짝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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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통공완性通功完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홍익인간이나 애인愛人의 사상이 발견된다.

 

요컨대 신교의 중심을 차지하는 신선이란

상제 신앙 혹은 시천주侍天主를 토대로 본성을 찾고,

천명을 좇아 공업을 완수함으로써 영원한 생명과 조화의 삶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일단 규정할 수 있다.

 

<“신교”, 황경선 지음, 상생출판, 2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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