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낙서_00003.jpg

 

진리의 두 얼굴- 이법(理)과 신도(神道)

 

지난 번 도훈에서,

선천 동서 문화의 불교, 기독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문화,

또 동서고금의 철학과 과학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외쳐왔던 인생 문제의 핵심,

진리의 근본 주제가 상제님 진리구성의 3 박자인‘이-신-사(理神事)’ 세 글자로 정리된다고 했다.

 

오늘은 그 중 이(理)와 신(神),

이법(理)과 신도(神道)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진리의 두 얼굴을 보면,

먼저 우리가 합리적으로 따지고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는 자연의 합리적인 면이 있다.


근대과학의 개척자 뉴튼이나 고전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는 하나님이 정해놓은 어떤 기계적인 장치에 의해 정교하게 둥글어 간다,

 

즉 하나님이 태엽을 감아 놓은 그대로 착착착착 시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간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질서, 이법을 말한 것이다.

이(理)는 자연의 이법, 우주의 섭리, 우주 변화의 원리를 말한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을 낳고 살아 있게 하는 제 1의 존재 섭리다.

이것은 이해를 해서 깨달으면 되는 경계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변화의 질서를 찾아내어 인류의 생활을 자꾸 편리하고 밝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문명의 발전 과정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법을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법만 갖고는 되질 않는다.

이법만으로는 인간의 진리에 대한 갈급증이 결코 만족이 되질 않는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보다 궁극적인, 생명의 근원이자 온 우주의 신비의 전모를 간직하고 있는

진리의 또 다른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진리적 욕망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이 우주 만유를 존재하게 한 존재의 근거,

존재의 근원, 뿌리로서 실재(實在)하는 신(神)의 세계다.

 

다시 말해서 대자연의 이법이 존재하도록 하는

진리의 실제적 근원이자 뿌리 자리가 바로 신도(神道)인 것이다.

신도는 조물주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 창조주의 세계다.

신(神)은 개별적인 인격신으로 말할 때는 신명(神明)을 뜻한다.

성자들도 다 신명으로 천상에 살아 있고, 범부중생도 죽어서 한 개체, 개별적인 신명으로 살아 있다.

상제님은 성자가 됐든, 성현이 됐든, 어떤 학자가 됐든, 창생이 됐든 ‘누구누구 신명이다,

아무개 신명이다.’ 하고 그의 이름이나 관직에 신명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서 부르셨다.


그런데 이 신의 세계에는 인격신뿐만 아니라 음양적으로 얼굴이 없는 원신(元神)이 있다.

원신으로서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도전』 1편 51장을 보면 이 원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2 이 때 조화로 충만한 천지의 원신(元神)을 열고 삼매에 드시어
동학군의 운명을 예시하는 옛 시 한 수를 읽으시니 이러하니라.


月黑雁飛高하니 單于夜遁逃라
欲將輕騎逐할새 大雪滿弓刀라


어두운 달밤에 기러기 높이 나니 선우가 밤을 타서 도망하는구나.
경기병 이끌고 뒤쫓으려 할 적에 큰 눈 내려 활과 칼에 가득하도다.
(道典 1:51:1∼6)

위의 2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조화주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 원신(元神)에 대해 알 수 있다.

원신은 우주 만유의 근원, 바탕이 되는 신이다. 으뜸 원 자, 하나님 신 자, 으뜸이 되는 신이다.

 

우리 동방 신교문화에서는

이 원신을 합리적, 이법적으로 이해하여 삼신(三神)이라고 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조화옹 하나님을 ‘삼신’ 또는 ‘삼신하나님’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의 진리의 두 얼굴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이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리(理)의 세계와 머리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진리의 원원한 근원 자리인 신의 세계, 신도가 있다. 『도전』 2편 90장 2절에서 상제님은

“천자(天者)는 리야(理也)라.

소소지천(昭昭之天)이 합인심지천(合人心之天)하니

리(理)는 원어천(原於天)하여 구어인심(具於人心)하니라.


하늘은 이치(理)이니라. 밝고 밝은 하늘이 사람 마음속 하늘과 부합하니
이치(理)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고 하셨다.

 

또 우주원리 장에서는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道典 2:20:3)는 말씀도 하셨다.

하늘이 곧 이치요, 이법이라는 말씀이다. 그 천지 이법을 낳은 이법의 출원이 바로 신도다.

때문에 진리의 상위(上位)는 신도다.

이법보다 신도가 더 근원적이다. 따라서 신도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자연의 이법을 궁극으로 깨칠 수 없다.

나 자신이 신도와 하나 되고 신도의 생명을 받아 이 우주 만유를 낳는 이법의 근원이자

뿌리 자리인 신도,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방법이 바로 기도수행이다.

기도를 하지 않고는 진리의 뿌리를 캘 수 없다.

 

또 수행을 하지 않고는

진리의 근원인 이 우주가 태어나 영원히 쉬지 않고 변화해가는

우주의 변화 원리를 체험적으로 크게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신도를 통(神通)해야만, 하나님의 세계를 통해야만 이 우주의 이법도 통할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의 궁극의 성숙도 오직 수행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수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두 얼굴인 원신과 주신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보좌에서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명계를 총체적으로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을 바르게 체험할 때 이 우주의 이법에 대해서도 통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과학자도 될 수 있고, 철학자도 될 수 있고, 신앙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는 진리의 두 얼굴인 이법과 신도를 언제나 함께 추구해야 한다.

합리의 이법 세계와 직관의 신도 세계를 언제나 음양 일체로 봐야 한다.

 

그래야 우주의 가을개벽기에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도법을

이 세상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사상 신앙, 언제나 지치지 않고 밝고

신명나는 진리적 신앙을 할 수 있다.

 

삼태극%2033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