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일본에게 빼앗긴 태일太一 사상 

오늘날 일본은 우리민족의 진정한 혼인 삼신문화를 그대로 가져가  신궁에 모시고 있으며

정작 우리민족은 그 모든것을 스스로 내 팽겨쳤으며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제되로 알아야 한다.

 

 

篠島の祭礼 太一御用 御幣鯛奉納祭

 

 

 

 

태일 (太一)

 

천지() 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

우주()의 본체(). 태을()

 

하느님. 천제(天帝).<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천지 만물의 근원. 태을(太乙).

 

환단고기는 대한사관으로 보아야 합니다.

대한 사관은 기존의 구사학과 신사학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한민족사와 인류사를 대한의 큰 울타리로 묶어 해석하는 보편적 사관입니다.

 

대한사관은 신교사관을 바탕으로 하는데 신교문화의 주제인 사민을 알아야 하고,

이 삼신이 현상계에 자기를 드러낸 하늘과 땅 인간에 대해서 삼위일체적 존재로 인식하고

그 틀에서 인간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바로 신교사관이다.

 

기존의 사관은 역사의 주체인 인간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교사관, 즉 대한 사관은 인간을 천지로부터 대광명의 성령 기운을 받아

사물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영적존재로 보았고,

 

더 나아가 인간은 천지부모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천지보다 더 큰 존재,

즉 태일太一의 존재로 보게 해 줍니다.

이는 인간의 위격과 가치에 대한 파천황적 선언입니다.

 

삼신상제와 태일太一의 관계

2012년 8월 12일 ‘103주 증산상제님 어천치성’을 봉행한 뒤 종도사님의 도훈

그 말씀 중에 ‘삼신상제님와 태일의 관계’에 관한 대목을 뽑아 봅니다.

 

삼신상제님과 태일, 아니면 태일과 삼신상제님 이렇게 되어야 돼.

원 우주 주권자니까 상제님과 일, 상제님과 태일은 항상 따라다녀야 돼.

이 태일의 천상 신명세계가 태을이라 말이야 태을, 태을천.

<환단고기>는 강단사학자들이 못 읽어요.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우주가 하늘과 땅과 인간, 살아있는 삼신으로,

삼계 우주,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구성되고, 하늘도 삼신, 땅도 삼신, 인간도 삼신이다.

 

인간도 신적 존재야.

이 대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숭고한 그런 신적 존재다 이거야.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못 배웠어도,

아무리 인간 악종이라 할지라도 바로 인간의 본질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는 거여. 대우주 광명을 다 가지고 있는 거여....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일太一은 항상 따라다녀야 된다’ 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삼신상제님’ 은 우주의 절대자를 지칭하며, ‘태일太一’은 환단桓檀,

즉 천지의 광명의 도를 체험한 신성한 인간을 말합니다.

 

왜 종도사님께서는 ‘삼신상제님과 태일이 항상 따라다녀야 된다’ 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삼신상제님과 태일의 균형 관계, 여기에는 매우 중대한 진리 문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일은 개체의 문제이므로 ‘나’로 환치하면, 이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됩니다.

 

하느님과 나’라는 관계성 문제, ‘하느님과 나’라는 양대 축의 문제,

이것이 어떤 진리의 문제인지 지금부터 잠시 살펴볼까요?

 

 

 하나님에 경도한 기독교 신앙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인 거죠.

인간은 신의 종속적인 존재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주성은 획득되지 않습니다.

신의 의지에 종속할 수밖에 없는 굴종적 인간상은 구약성서의 ‘종Slave’이라는 개념에서도 찾아집니다.

 

“그들은 내가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레25,42)

 

구약성서에 ‘종’이란 단어가 약 800번 나온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에서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

계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와 동굴 속 그림자라는 이분법과 같은 구조입니다.

 

신에 대하여 인간은 피조물이고, 타락한 존재이고,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종’이라는 굴레가 덧씌어진 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기독교가 인간을 종의 굴레 속에 가둔 것은, 유일신 신앙에 기인합니다.

신이 창조주이니, 신이 모든 것이겠죠.

 

인간은 그림자이고 종이고, 오직 신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물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과 나’라는 양대 축의 관계에서, ‘나’라는 축이 붕괴돼 버린 셈입니다.

 

기독교인들과 대화해보면, 신만 중요하지, 나 또는 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상관없어. 우리는 하나나라에만 가면 돼!’ 그들은 현실 삶보다는 오직 천국에 태어나기를 갈망합니다.

전과 20범의 흉악범도 사형직전 하나님을 영접하면 천국에 간다는 말도 합니다.

전과 20범이 그런 식으로 천국에 간다면 현실의 절차와 도덕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전부 제 욕심대로 살고 말지.

 

미 대륙 기독교인들이 수 백명 인디언을 학살하여 시체를 모아놓고 무릎 꿇고 기도를 합니다.

주여! 오늘도 사탄을 사냥하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라고. 기독교인들은 이렇듯 신의 뜻에만 종사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서는 공존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교리가 이러 하니 기독교가 마녀사냥, 십자군 전쟁,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1억명 이상 도륙하는 등의

대학살을 기탄없이 자행했겠죠.

 

‘신의 뜻’에만 종사하는 문화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참혹한 죄상을 범행할 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적으로 봐왔습니다. 이를 보면, ‘하느님과 나의 균형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신의 뜻을 높이느라 나의 축의 붕괴, 즉 '인존人尊의 가치' 가 붕괴되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되겠습니다.

 

 

 ‘나’에 경도한 불교 교리

 

불교는 기독교와 정반대의 길로 갔습니다. 불교에서는 절대자의 개념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나’에 대한 관점의 연구를 축적시켜 왔을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불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고, 자성이 부처(自性是佛)이므로 견성을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인간 존재에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진리인가요.

 

그런데 불교에서 자력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임제록> 같은 곳에서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용어를 만납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서, 세속의 관념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용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우주의 근간을 해치는 개념입니다.

 

황벽 같은 선승은 생사초탈한답시고

자신을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인근에 물에 빠져죽는 걸 목도하면서도 외면하고 갈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불교 교리가 ‘나’의 생사초탈만 중요시하고,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가지고 있지 않아 이런 짓을 저지릅니다.

 

우주 절대자의 이치와 법도에 의한 통치 세계를 몰라서 말이죠.

살불살조니 어머니가 죽도록 방치한다든지 하는 이런 행위는

하느님 통치의 근본을 어지럽히는 행위로서,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 될 수 있습니다.

 

자력 구원도 있지만, 타력 구원도 엄존합니다.

‘나’의 축 대칭점에 하느님의 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리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교

                 증산도

                기독교

       인간의 대자유 추구

      하느님과 나의 균형

       하나님의 뜻만 중시

 

 

 

 증산도, ‘하느님과 나의 균형’ 진리

신의 뜻을 높이려다 보니 인간을 ‘종’의 굴레에 추락시킨 기독교.

인간의 대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신을 버린 불교. 인간 내면의 원리에 주목하느라

 

상제’를 버린 주자학.

유불선의 기성종교들은 어느 하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알맞게 조화하지 못했습니다.

 

증산도의 제 1명제는 ‘시천주侍天主’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산도는 우주의 절대자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을 신봉하는 진리입니다.

 

증산도는 우주 절대자 신앙이라는

제1축과 함께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제2축에 대해서도 무궁한 원리를 부여하는 진리입니다.

 

하늘도 삼신, 땅도 삼신, 인간도 삼신이다.

인간도 신적 존재야. 이 대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숭고한 그런 신적 존재다 이거야.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못 배웠어도, 아무리 인간 악종이라 할지라도

바로 인간의 본질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는 거여.

대우주 광명을 다 가지고 있는 거여....

 

인간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 인간은 하늘과 땅과 같은 삼신三神입니다. 왜냐?

<환단고기>에는 보면 ‘삼신三神이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성명정性命精이 되었다’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으며,

 

대우주의 광명을 본래 가지고 있는 그런 숭고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거나 종인 것이 아니라, 삼신의 신성이 깃든 신적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신적인 존재이므로 누구나 갈고 닦으면 천지와 같은 신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또는 천지와 같광명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천지와 같은 환단의 광명을 체험하는 자리를 태일太一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천지와 같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도전2:22)

 

증산상제님께서는 ‘하늘과 땅보다 인존이 더 크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산도의 인존人尊 사상,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천지보다 더 크게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증산도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일太一은 항상 따라 다녀야 된다’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때가 되었습니다.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일이 항상 같이 언급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우주의 절대자 신앙의 중요성만큼 인간의 위대한 가능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신을 높이느라 인간의 가능성이 폐기돼서야 되겠습니까.

인간의 잠재력을 제고하느라 신을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신과 인존 중 어느 하나를 놓쳐 버리면 참 진리가 못된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종도사님의 ‘상제님과 태일太一의 관계성’에 대한 말씀을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있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 공자, 예수도 못한 일입니다)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일太一은 항상 따라다녀야 된다’ 고 하신 말씀은

하느님과 인존의 균형관계’를 역사적으로 처음 정립한 위대한 선언문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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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余弧欲射天狼 太一正在天中央(조여호욕사천랑 태일정재천중앙

내 활을 잡아 천랑성을 쏘려 하니, 태일이 바로 하늘 중앙에 자리잡고 있네.

<김시습金時習 동봉6가東峯六歌>

 

대일(大一)>, <태을(太乙)>또는 <태일(泰一)>이라고 표기된다.

장자』등에서는 <도(道)>와 동의어로서 이용되는데,

회남자』 천문훈에 <자궁(紫宮)은 태일(太一)이 거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정현이 <태일은 북진의 이름이다>라고 한 것처럼,

 

결국 천계의 자미궁(紫微宮)을 거소로 하는 북극성의 신명(神名)으로,

한대에는 우주의 최고신으로 생각되었다.

 

 <천황대제(天皇大帝)>라고도 해서, 경서에 보이는 <호천상제(昊天上帝)>와도 동일시된다.

태일의 신격화는 기원전 2세기, 한의 무제시대에 류기(謬忌)의 진언에 의거해서

장안성의 남동쪽에 박기태일(薄忌太一)이라고 하는 사단이 설치된 것을 최초로 하며,

거기에서는 천일, 지일, 태일의 3신이 제사 지냈다.

 

기원전 112년에는 운양에 놓여진 감천궁의 남쪽에 태치(泰치)라고하는 태일사단이 있었다.

 태치는 자색으로 3층, 팔각형을 하며 보좌신의 청, 적, 황, 백, 흑의 오제의 단이 환상으로 둘러싸고,

태일신의 제사는 오로지 여기에서 행하여졌다.

동아시아의 태일太一 사상

 태백일사太白逸史

 

稽夫三神, 曰天一, 曰地一, 曰太一, 天一主造化, 地一主敎化, 太一主治化.

저 삼신을 생각건대, 천일과 지일과 태일이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를 주관한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上界主神, 其號曰天一, 主造化... 下界主神, 其號曰地一, 主敎化... 中界主神, 其號曰太一, 主治化...

상계의 주신은 그 호칭이 천일이니, 조화를 주관한다.

하계의 주신은 그 호칭이 지일이니, 교화를 주관한다.

중계의 주신은 그 호칭이 태일이니, 치화를 주관한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三神乃天一地一太一之神也, 一氣之自能動作, 而爲造敎治三神之神...

 

삼신은  곧 천일과 지일과 태일의 신이니, 

한 기운이 저절로 능히 움직여서  조화와 교화와 치화의 삼신이 된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천부경天符經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은 하나이고, 지일은 둘이며, 인일은 셋이다.

 

 초사楚辭

   <동황태일東皇太一>

   吉日兮辰良 좋은 날 좋은 때에

   穆將愉兮上皇 공경스레 상황上皇을 모시자

   撫長劍兮玉珥 옥고리 손잡이 한 긴 칼을 어루만지니

   璆鏘鳴兮琳琅 아름다운 패옥소리 댕그랑

   ....................

 

동황태일은 [초사楚辭]<구가九歌>의 첫 번째 작품으로 본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악곡인데, 특히 최고의 주신인 ‘동황태일’을 노래하는 곡이다. 

초나라 사람들은 길한 날 좋은 때를 가려 삼가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상황上皇’인 ‘동황태일東皇太一’ 에게 제사를 지냈다. 

‘동황태일’ 이라 한 것은 태일의 사당이 동쪽에 있고, 동쪽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도덕경道德經

 太一生水, 水反輔太一, 是以成天. 天反輔太一, 是以成地. 天地復相輔也, 是以成神明. 神明復相

 輔也, 是以成陰陽. 陰陽復相輔也, 是以成四時. 四時復輔也, 是以成凔熱. 凔熱復相輔也, 是以成

 濕燥. 濕燥復相輔也, 是以成歲.

 

태일이 물을 생겨나게 하지만, 물이 도리어 태일을 도와서 하늘을 이루고, 

하늘이 도리어 태일을 도와서 땅을 이룬다.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도와서 신명을 이룬다. 

신과 명이 다시 도와서 음양을 이룬다. 음과 양이 다시 도와서 사시를 이룬다.

 

사시가 다시 도와서 창열을 이룬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다시 서로 도와서 습조를 이룬다.

축축함과 건조함이 다시 서로 도와서 한 해를 이룬다.

 

 장자莊子

 建之以常无有, 主之以太一 늘 없는 것으로 세우고, 태일로서 주재한다.

 至大無外, 謂之大一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대일이라 한다. [장자]<천하>

 

 갈관자鶡冠子

 中央者, 太一之位, 百神仰之焉.

 중앙이란 태일의 자리이니, 온갖 신이 우러러 본다. <泰鴻>

 

 여씨춘추呂氏春秋

 音樂之所由來遠矣, 生於度量, 本語太一. 太一出兩儀, 兩儀出陰陽. ... 萬物之所出, 造於太一, 化於

 陰陽. ... 道也者, 至精也, 不可爲形, 不可爲名, 强謂之名, 謂之太一.

 

음악이 유래된 바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는 도량에서 생겨났고, 태일에 근본을 두고 있다.

태일에서 양의가 나오고 양의에서 음양이 나온다.... 만물이 나오는 바는 태일에서 만들어지고

음양에서 변화한다... 도는 지극히 정미하여 꼴지울 수 없고 이름지을 수 없다.

억지로 이름한다면 태일이라 할 수 있다. <仲夏紀>‘大樂’

 

 회남자淮南子

 太微者, 天子之庭也, 紫宮者 太一之居也.

 태미太微는 태일의 궁정이고, 자궁紫宮은 태일의 거처이다. <天文訓>

 

 濟者體太一, 王者法陰陽, 覇者則四時, 君者用六律, 秉太一者, 牢籠天地, 彈壓山川, 含吐陰陽, 伸曳四時,

 紀綱八極, 經緯六合, 覆露照導, 普氾無私, 飛. 動, 莫不仰德而生. ... 是故體太一者, 明於天地之情, 通於

 道德之倫, 聰明燿於日月, 精神通於萬物, 動靜調於陰陽, 喜怒和於四時, 德澤施於方外, 名聲傳於後世.

 

황제는 태일을 체득하고,

왕은 음양을 본받으며, 패자는 사계절을 따르고, 제후는 육율을 사용한다.

 

태일은 천지를 두루 감싸고 산천을 제어하며,  음양을 머금거나 토해내고 사계절을 잘 조절하며,

팔극을 벼리로 삼고 육합을 씨줄날줄로 삼으며 만물을 덮어주고 드러나게 하며 비추어 주고

이끌어 준다.  

 

이것은 온 천지에 두루 퍼져있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길짐승이든 날지슴이든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모두 그 덕에 의지해 살아간다. ... 그러므로

태일을 체득한 사람은 천지의 실정에 밝고 도덕의 법칙에 통달한다.  

 

그 귀밝기와 눈밝기는 해와 달보다 더 밝게 빛나고, 정신은 만물에 두루 통하며,

움직임과 머무름은 음양의 법칙에 들어맞고, 기뻐함과 노여워함은 사계절과 조화를 이루며,

은택은 멀리 변방에까지 미치고, 명성은 후세에까지 미친다.

<本經訓>

 

 眞人者未始分太一者也

 진인이란 애초에 태일과 분리되지 않은 자이다. <詮言訓>

 

 예기禮記

 夫禮必本于大一, 分而爲天地, 轉而爲陰陽, 變而爲四時, 列而爲鬼神

 

무릇 예는 반드시 대일에 근본한다. 대일이 나누어져 천지가 되고,

천지가 굴러 음양이 되며, 음양이 변화하여 사시가 되며, 사시가 벌려져서 귀신이 되었다.

<禮運>

 

 고유高誘

 太微, 星名也, 太一, 天神也

 태미는 별이름이다. 태일은 천신이다.

 

 太一, 元神, 總萬物者也

 태일은 원신元神이니, 만물을 총괄하는 자이다.

 

 太一之容, 北極之氣, 合爲一體

 태일의 모양과 북극의 기운이 합하여 한몸이 된다. (高誘의 <淮南子注>)

 

 왕일王逸

太一, 星名, 天之尊神, 祠在楚東, 以配東帝, 故曰東皇

태일은 별이름이니, 하늘의 존귀한 신이다. 사당이 초나라의 동쪽에 있어 동제에게 배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황이라 한다. (왕일의 <楚辭注>)

 

 정현鄭玄

 太乙者, 北辰之神名也. 居其所曰太乙

 태을은 북극신의 이름이다. 머무는 그 처소를 태을이라 한다.

(정현의 <易緯, 乾鑿圖注>)

 

 사기史記

 亳人謬忌奏祠太一方, 曰 : 天神貴者泰一, 泰一佐曰五帝. 古者天子以春秋祭太一東南郊. 用太牢七日

 爲壇開八通之鬼道. 于是天子令太祝立其祠長安東南郊, 常奉祠如忌方. 其後人上書, 言 ‘古者天子三

 年壹用太牢祠神三一 : 天一, 地一, 太一

 

박현 사람 유기가 태일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에 대해 아뢰면서

천신 가운데 가장 존귀한 분은 태일신이며, 태일을 보좌하는 것은 오제입니다.

 

옛날에 천자는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수도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재물은 소, 양, 돼지를 사용하였고, 제사는 7일동안 지냈으며,

제단을 만들어 팔방으로 총하는 귀신의길을 설치하였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태축에게 장안의 동남쪽 교외에 태일신의 사당을 세우고, 언제나

유기가 말한 방식대로 제사를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그 뒤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옛날의 천자는 삼년에 한번씩 소, 양, 돼지를 희생으로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封禪書>

 

 中宮天極星, 其一明者, 太一常居也

 중궁에 천극성이 있으니, 그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이 태일이 늘 머무는 곳이다.

<天官書>

 

 성경星經

 太一星在天一南半度, 天帝神, 主十六神

태일성은 천일의 남반도에 있으니, 천제신으로 16신을 주재한다. 

<星經> 

 

 운급칠첨雲級七籤

 夫學道而無太一, 猶視瞻之無兩眼: 存念而無太一, 猶胸腹之失五臟: 御神而無太一, 猶起行之無

 四支: 立身而無太一, 猶尸殭而無氣矣

 

무릇 도를 배움에 태일이 없다면 바라봄에 두 눈이 없는 것과 같고,

생각을 보존함에 태일이 없다면 가슴과 배에 오장이 없는 것과 같으며,

 

신을 어거함에 태일이 없다면 일어나거나 돌아다님에 사지가 없는 것과 같으며,

몸을 세움에 태일이 없다면 시체가 뻣뻣하여 기운이 없는 것과 같다.

<存思部>

 

천지공사와 조화선경

원정근 지음, 상생출판, 119~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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