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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수행법은 주문수행입니다.
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조식법과 명상은 잘못하면 주화입마를 입게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수행법도 달리해야 합니다...

즉 삼신수행법은 주문수행법을 원칙으로 하는것이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


그리고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천신에게 제사지내고,바깥일을 금기하고 삼가서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呪文)을 읽고 서원을 세워 공덕을 이루셨고,
약을 먹고 신선이 되었으며 괘(卦)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셨다.
또 천지조화의 비밀을 깨쳐 신명(神明)을 부리셨다.

환단고기(삼성기 上編)

 

삼신수행법

 

<단군세기序>에

무릇 <삼신이 하나>라는 이치는 대원일(大原一)에 그 뜻이 있으니
조화(造)의 신은 내려와 나의 성품(性)을 이루고,
가르침(敎)의 신은 내려와 나의 삶(命)을 이루고,
다스림(治)의 신은 내려와 나의 정신(精)을 이룬다.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인저. 라고 하였다.
쉽게 말해 우주의 일신은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세 신성이 있는데
조화성이 내려 나의 본성(本性)이 되고
교화신이 내려 나의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내려 내 몸의 정(精)이 되었다.

 

사람의 몸 속에 삼신이 대우주와 똑같이 들어 있어서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하고 조화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신비로운 존재이면서 그만큼 존귀하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단락은 성(性)과 신(神)의 관계, 기(氣)와 신(神)의 관계와 수행의 원리,
수행의 목적까지 아우르는 한 단락의 말이다.

 

무릇 사람의 성품(性)이라는 것은 신의 뿌리다.


그렇지만 신이 성품에 그 뿌리를 둔다고 해서 성품이 바로 신 그대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가 밝게 빛나며 어둡고 더럽지 않을 때 비로소 참성품이라고 한다.

 

이로써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는 것이며, 기도 또한 신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갖추고 있는 신과 기가 잘 조화되어
합쳐진 후에 스스로 성품이나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리라.

 

기와 신을 조화시키면서 일체화시키면
본성(本性)과 명(命)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품(性)은 삶(命)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삶도 성품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스스로의 성품과 삶이 잘 어울린 뒤에야,
이 몸이 신의 성품(神之性)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기운 넘치는 삶(氣之命)에서 비롯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품(性)을 깨닫게 됨은 천신(天神)과 그 뿌리를 같이 함이고,
그 삶이 세상에 나는 것은 자연과 그 기운을 같이 함이며,
그 정신(精)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모든 목숨 있는 것들과 그 업을 같이하는 것이다.


하나를 알아

셋을 품고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참마음>의 근원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과 명이 잘 어울려야 됨을 말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천신을 깨닫고 자신과 비슷한 창생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우주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굳은 마음이 바뀌지 않을 때 <참 나>라고 하며,
신통하여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을 때 신(神)이라고 하나니 참된 나는 신이 머무르는 바른 곳이다.
이 참된 근원을 알고 올바르게 수련한다면 좋은 징조는 스스로 몰려오고

밝은 빛이 항상 비추리라.

바로 하늘과 사람이 잘 어울렸을 때 이로부터

세 가지 신의 성품을 배워 계율로서 맹세한다면 비로소 하나라는 것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참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신성(神性)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성(性)이 신(神)의 뿌리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방법은 신의 성품을 배워 나가는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성품(性)과 정신(精)이 잘 어울려서 빈틈이 없으면
세 가지 신이 하나인 상제(上帝)와 같아서 우주만물과도 잘 어울리고,
마음과 기와 몸도 있는 듯 없는 듯 자취도 없이 오랫동안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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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感)·식(息)·촉(觸)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면
그것이 바로 한님(桓因) 그대로인 셈이니 이 세상 어디에나 두루 그 덕을 베풀어서 함께 즐거우며,
하늘 땅 사람과 더불어 끝없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라.

감식촉은 각각 마음(心)이 느낌, 호흡(息), 육체의 작용(觸)을 나타낸다.


신의 성품은 이 셋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서 빈틈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결국은 신이라 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 말은 다음의 <소도경전본훈>에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사람과 만물이 한가지로 삼진(三眞)을 받나니 생각하면
사람들은 땅에서 헤매어 삼망(三忘)이 뿌리를 내렸고 진과 망이 서로 삼도(三途)를 지었다.

 

가로대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라.
사람은 온전하고 만물은 치우치니라.
참 성품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상철이 통하고,
참 목숨은 맑음도 흐림도 없으니 중철인이 알고,
참 정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없어 하철인이 보전하니, 참으로 돌이키면 일신이 될지니라.

 

여기서 삼진은 성, 명, 정을 일컫는다.
사람이 땅에서 헤매면서 고요함을 얻지 못해 삼망이 뿌리를 내렸다.
삼망이라는 것은 삼진을 온전히 가진 온전한 사람이 땅의 비뚤어진 기운을 받고 치우치게 됨을 말한다.

 

중용을 지키지 못하여(온전하지 못하여) 성이 지나치게 착하거나 악하고,
지나치게 명이 맑거나 흐리고, 지나치게 정이 두텁거나 엷은 것이다.
수행으로써 돌이켜 올바른 완전한 성명정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명정을 되찾기 위하여 다스려야 할 것이 심기신(心氣身)이다.
심·기·신을 잘 다스리면 성·명·정을 깨닫고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가로대 심과 기와 신(心氣身)이라.
심이 성에 의지하여 선악을 이루나니 선은 복이 되고 악은 화가 된다.
기가 명에 의지하여 청탁을 이루나니 맑은 것은 오래가고 탁한 것은 쉬 사라진다.

 

신이 정에 의지하여 두텁고 엷음을 이루니라. 두터움은 귀하고 엷음은 천하다.

마음은 본성(本性)의 표출이다.
선이 복이 되니 선한 마음이 이롭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명과 정도 마찬가지이다. 심·기·신을 어떠한 방향으로 닦아야 하는 지를 말한다.


그 세 가지에 유의할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다음의 감·식·촉이다.

가로대 느낌(感)과 숨쉼(識)과 부딪침(觸)이라.
굴러 열 여덟 지경을 이루나니 느낌에는 기쁨·두려움· 슬픔·성냄·탐함·싫음이요,
숨쉼에는 향내·술내·추위·더위·번개·습기요,
부딪침에는 소리·빛·냄새·맛·음탕·다침이니라.

뭇사람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두텁고 엷음을 서로 섞어서 가닥길을 따라 함부로 달아나다가,
낳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떨어지고,
철인은 느낌을 그치며 숨쉼을 고르며 부딪침을 금하여 한 뜻으로 되어가서,
가닥을 돌이켜 참함에 나아가서 큰 고동을 여나니, 성품을 트고 공적을 완수함이 이것이니라.

 

심·기·신을 닦기 위해서는 이들의 작용인 감식촉을 잘 가꾸어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치우친 욕구로 인해 본성을 잊고 생명을 짧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느낌을 그치어' 수행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호흡이 거칠어져서 명을 오염시키고 정을 손상시키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호흡을 거칠어짐은 분별의식을 생기게 하여 '느끼게' 만든다.

내 몸이 어떤 냄새, 맛, 음탕한 것 등에 '접함'으로 인하여
마찬가지로 느낌을 그치는 것을 멈추게 만들고 호흡을 거칠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수행을 계속할 수 없게 만들므로 본성을 깨우치려는 공부를 실패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 세 가지는 동시에 실천하여야 할 것이니 어찌 따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수행자세도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참고:
수행은 태을주 주문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빠르게 태을주를 읽어면서)
호흡을 병행하여  단전에 뜻을 두고(집중하고)
호흡으로 마음과  기를 다스려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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