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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닦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도 닦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닦는 바를 듣고서 스스로 닦게 되나
일단 성공이 이루어지고 수행이 가득 차게 되는 때에 이르면
앞사람이 닦은 바와 하나가 된다.

 

이른바 깨달으면 중생도 부처가 되고

길 잃고 헤매면 부처도 중생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무릇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한 점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을 들어서는 아니 된다.
모든 것이 자기의 견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옆문에서 유혹하는 바에 당하지 아니하고

조그마한 술법의 재주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뜻이 있는 사람은 옆문이나 조그마한 술법을 보아도

저절로 유혹되거나 기뻐하지 아니한다.

 

훌륭하게도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공경되게 맞이한다.
높은 경지의 사람이나 뜻있는 사람은 훌륭히 스스로 사람을 구한다.
어느 하나의 드나드는 문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유불선 세 가르침에 모두 숨은 스승이 있으나 만나는 사람은 그자리에서
진리를 구함이 마땅하다. 그 발걸음을 뒤따라가지는 말라.

 

옛날에 남긴 말씀들을 뒤져서 찾아내고 스승을 찾아 깨달음의 도를 구하여
이로써 진위를 인증하는데 주고받을 때에는 반드시 구절을 쫓아서 합치 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인지 합치할 수 없는 공부 방법인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직 비결을 얻지 못한 사람은 먼저 유불선 세 가르침의 경전의 글들을 널리 보아서
참으로 중요한 비결을 찾아내야 마땅하다.

 

스승을 만났을 때에는

또한 이 책에서 말한 性과 命을 함께 닦는 법에 합치하는가
합치하지 아니하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만약 앞뒤가 거꾸로 바뀌었으면

바른 진리가 아니니 제멋대로 닦아봐야 도움되는 바가 없다.
만약 그 비결이 참다운 것이면 연후에 그것을 수행하여야 이룰 수 있다.

 

비결이 참답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알아낼 수 있는가?


무릇 참다운 진리의 길이라는 것은

처음 시작에서부터 반드시 성과 명을 함께 닦아서
한 발자국을 가면 저절로 한 발 자국만큼의 효험이 있는 것이다.

 

몸에 익은 묵은 버릇이라는 것은 지난날 짓거나 행위 하였던 것들인데
오늘에 와서 일어나거나 나타나지 아니하여야만 마음을 불리는 공부에 힘이 있게 된다.


마의 가로막힘에 의한 침범을 당하지 아니하니,

또한 진리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한 단계 공부의 나아감이 있으며
한 단계 마의 가로막음이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안에서 일어나는 마이고 어떤 경우에는 밖에서 일어나는 마가 있다.

한 점의 참 생각을 명의 가운데에 감추고

적연부동하면 마음을 단련하는 공부가 아주 잘 익게 된다.
의심이 일시에 없어지고 참 마음이 오래도록 보존되면


이미 참다운 스승의 말씀으로

전해 주는 비결을 얻었으면 앞을 향하여 용맹하게 나아가야 한다.

 

생각생각마다

참다움을 보존하는 것에 진리의 길을 보존하는 주체가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흔연히 하나인 바
아직 오지 아니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이미 지나간 것은 남겨두지 아니하며
눈앞의 있는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세 마음을 모두 잊으면 천리가 흔현히 하나가 된다.

 

물건이 나타나면 속마음을 깨워서 흘리지 않도록하고
육조께서 이른바 물건이 나타나거든 마음을 단련하여 일으키라는 것이다.

 

혜명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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