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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

◆ 어떠한 문화권을 신앙하든지 간에,

수련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상제님의 공사 내용을 보면 이런 게 있다.

어떤 한 노처녀가 도통을 하고 싶어서 수도하는 이웃사람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문이 뭐냐고 물으니,

 

그 노부부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싫다”고 대답한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처녀는 맨날 “아무것도 싫다,

아무것도 싫다”하고 일심으로 외우고 다녔다. 아, 그러니 식구들이 오죽이나 싫어했겠나.


하루는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데,

그 아버지가 밉다고 도리깨로 물동이를 후려쳐 버렸다.

 

그 바람에 돌 위로 넘어졌는데, 동이도 성하고 물도 쏟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게 다 일심을 강조하신 것이다.

 

◆ 또 참선이라 하든, 수도라 하든,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그것도 다 일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이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앉아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심 정성을 갖고 주문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게 된다.

 

옛날 사람들은 그걸 망형망재忘形忘在라고 표현했다.

형체도 잊어버리고 자기 존재도 잊어버리는 걸  말한다.

이 세상에 내 육신이 있는지 없는지, 내 존재 자체를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이른다.

무아경, 내가 없는 경지를 가야 그게 하늘마음이다.

 

대자연 속에서, ‘내 마음이 천지의 마음이 돼서,

나는 그저 대자연인일 뿐이다’하고 내 자신을 완전히 망각할 때,

그때 통이라는 경지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그 경지를 밟지 않고서는 절대로 도통 경지에 들어가질 못한다.


그런데 앉아서 수련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잊어버렸던 것이

정신이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생각이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다 가라앉고 아주 맑은 물만 남는 것과 같다.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 한다.

 

화식火食,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잡념에 휩싸이는데,

그런 것들이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다 없어져야 한단 말이다.

 

증산도 종도사님  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