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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의 힘과 입문의 신비
(The Power of MANTRA and The mystery of INITIATION)

주문(mantra)의 뜻과, 의미
 

주문(呪文)의 주(呪)는 `빨 주` 자이다.

주(呪)자를 명명하면 口(입구)에 兄(클 황, 부를 황)이 되는데,

여기에는 입으로 우주의 성령을 부르고 우주의 진기를 빨아들인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영어로는 인보우케이션(invocation)이라 한다.

그 의미는 영적 보호를 받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는 뜻.

 

한마디로 주문은 신으로부터 생명과 성신을 받는 글,

또는 하늘의 상제님께 간곡히 기도하는 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주문을 영어로는 만트라(mantra)라고 하는데,

만(man)은 영어로 `인간, 남자`라는 뜻이며 `정신`을 뜻하는 마인드(mind)나

정신의`라는 뜻의 멘탈(mental), 모두 같은 어원 `만(man)`에서 나왔다. 트라(tra)는 `돌보아 주다.

또는 `도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즉, 만트라(mantra)는 `마음의 도구(The instrument of mind)` 다.

분별의식을 갖고 오만 가지 세속적인 생각을 하는 `중생의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어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고 돌봐주는 도구`가 바로 만트라(mantra), 주문인 것이다.

 

주문을 읽는다는 것은 미개시대의 원시인들이나 하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과학적으로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주술세계의 신비한 기운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주문을 읽는다는 것은 진리를 직접 체험하고

자기의 심령을 정화하여 상제님으로부터 강력한 생명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공부방법이다.


보이지 않는 보호의 힘이 성스러운 말에 담겨 있는 것이 주문이다.
그래서 요가에서는 ‘반복됨에 의해 보호받는 말’을 mantra 즉, 주문이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mantra) 는 두 개의 어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man) 은 “마음(mind) 을 뜻하고, “트라(tra) 는 “해방(release or free) 을 의미한다.

주문은 성스러운 소리의 진동이다. 큰 영적 힘이나 에너지를 묘사하면서,
그 영적 힘과 에너지를 담고 있는 성스러운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주문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 영적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

주문은 본래 위대한 seer(관음(觀音)의 경지에 이른 사람,
산스크리트어로 rishi)들에 의해 태고의 에테르나 우주의 에테르로부터 인식되었고,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명확한 음절로 번역되었다.

절대진리의 본질적 양면(兩面)인 빛과 말씀. 말씀은 내면에 존재하는 것과 초월 사이의 다리이며,
명백하게 나타남과 나타나지 않음 사이의 다리이다.

모든 시대를 통해 구도자들은 신성한 말씀을 다리로 하여 개인에서 우주로,
세속에서 신성으로, 짧은 즐거움에서 영원한 기쁨으로, 지성에서 직관으로,
개인에서 비(非)개인적 실체로 여행을 해왔다.

말씀이라는 개념과 그 말씀이 가진 변화의 힘은 어디서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카라데리(Karadjeri), 아프리카의 도곤
(Dogon, 아프리카 서부의 말리(Mali) 사람들)과 이그보(Igbo), 멕시코의마 공동사회 챠뮬라(Chamula),
수메르 사회, 카발라(Kabalah), 베다(Veda)와 탄트라(Tantra)의 전통, 불교, 수피즘(Sufism), 기독교와 이슬람교.


각 전통들은 최고 존재나 절대 진리를 드러내는 언어의 형태 즉,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씀은 성스러운 세계와의 통신수단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가 진리이다.

모든 영적 전통들의 신비주의 학파들이 말하기를 신성한 빛은 자기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성스러운 말씀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신성한 말씀은 신성한 빛으로부터 나왔고,
이는 둘이 아닌 하나의 초월적 진리이다.

빛은 절대 진리의 본질적 모습이다. 빛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비추면서 끊임없이 사방으로 발산한다.
진리의 빛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인식되거나 존재할 수가 없다.

신성한 빛이 드러나는 데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절대진리와 완전히 하나됨을 체험하는 단계 즉, 관음(觀音)이다.
둘째, 드러난 진리를 보거나 seer가 되는 감각이나 의식을 가진 단계.


셋째, 보존 에너지(retentive nergy)―경험을 저장하는 마음의 능력―를 가진 단계. 비록 내면의 빛이
첫 두 단계만큼 강하진 않지만, 보통 우리의 인식이 둘러싸는 것 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비추기에 충분히 밝은 단계.

성스러운 빛은 이렇게 3단계로 드러나고, 동시에 소리로도 드러난다.
내면의 밝음(illumination)을 얻은 자만이 우리를 빛의 길로 인도할 수 있고,
신성한 말씀을 받은 자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문의 형태로 전할 수 있다.

이 빛과 말씀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빛과 말씀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서 체(體)와 용(用)의 관계이다.
눈으로 보면 빛이고, 귀로 와서 온몸으로 느끼면 말씀이다.

예를 들어, 태양에서 빛이 나오는데, 빛은 태양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도, 나올 수도 없다.
태양 그 자체가 빛이다. 즉, 말씀 그 자체가 빛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체(一本體) 양면성(兩面性)이다. 무극
이태극(無極而太極) 태극생양의(太極生兩儀).

서양에서는 신(God)이 빛과 말씀을 넘어서 있는 절대 존재라고 한다.
창세기에 보면 신이 빛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빛은 신이 만들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으로 인해 이원론(二元論)으로 빠지고 말았다.
빛과 말씀은 둘이 아니라 본래 하나다. 빛과 말씀은 우주의 질서 속에 근본 뿌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총명도통(聰明道通)

우리는 신성한 눈과 신성한 귀(총명,聰明)가 없기 때문에
경전들로부터 나오는 빛을 보거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문이나 수행을 통해 순수(purity)와 준비(preparedness)의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단계에서부터는
이 드러난 경전들로부터 발산되는 신성한 빛과 말씀을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과정이 깊어질수록,

수행자들은 경전을 드러낸그리고 신성한 말씀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