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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는데 있어 우리민족의 신교를

모르면 배워봐야 역사의 혼을 되찾을 수 없어며 또한 오리무중에 빠져

미래를 예측하고 내다 볼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것이다.

역사의 정수는 우리민족의 경전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소도<蘇塗>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연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단기 1173, 기원전 1161년<경자>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단기 1174, 기원전 1160<신축>에 여러 왕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국가에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환웅천황께서 처음으로 동방 배달민족의 새 역사 시대를 열고
개천 백성에게 교화를 베푸실 때 천부경을 풀어 설명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뭇 백성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후에 치우천황께서<14세 자오지 천황> 영토를 개척하고
구리와 철을 캐어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병사를 훈련시키고 산업을 일으키셨다.

이때 구환족이 모두 삼신<삼신 상제님 = 우주통치자 하느님>을 한뿌리의 조상으로 삼았다.


천황께서 소도<蘇塗>와 관경<管境>과

책화<責禍>를 주관하고 백성의 의견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는 화백<和白>제도를 두셨다.

또한 백성으로 하여금 지혜와 생명력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지생쌍수>

전의 도<온전한 인간의 도>에 머물게 하셨다.


소도는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성스러운 장소를 말하며
관경은 우리 배달민족이 살고있는 온 누리를 말한다.

책화는 읍락사이의 경계를 중히 여겨 서로 침범하는 일을 엄금한 제도이며
화백은 만장일치의 회의제도를 말하며 단 한사람의 반대가 있어도 회의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학太學
고구려 372년<수수림왕> 전진<前秦>의 제도를 본떠 중앙에 설치한 국립학교로써 중앙에 설치하였다.
이것이 한국역사상 학교교육의 시초로 볼 수있다.


태학은 홍익사상 이념에 충실한 인재를 양성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에 적합한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경학<經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문학 무예는 물론 역서 산법

병법들을 가르쳤다.


태학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수는 소형<小兄>이상의 관등을 가진 사람이 태학박사로 임명되었다.
태학에서는 우리민족의 경전을 사용하여 가르쳐 왔다.


그 경전은 천부경.삼일신고. 참전계경을 교재로 하여 인간에 대한 근본 가르침을 베푼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이라고 할 수 있다.


경당<경堂>
고구려의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육을 겸한 미성년 학교로써 사학에 속한다.
신라의 화랑도와 같이 청소년에 해당하는 연령집단에서 기원한다.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다.


고구려 경당에 관한 기록은

환단고기와 구당서와 신당서<고려>에서 찾을 수 있다.

큰 길가에 모두 장엄한 집을 짓고 경당이라고 칭했다.
고구려의 경당은 신라의 화랑도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민족 신교<神敎>를 바탕으로 하는 가르침이다.



중국 주 문화의 뿌리 신교


옛날 여상<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姜인데 치우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가 되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릴 때 먼저 도술을 닦고 전제지에서 천제를 올렸다.
또한 제에 다스릴 영토를 받았으니 팔신八神의 풍속이 제나라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후에 그 땅에 도술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나와,
신선 황제와 노자 이야기를 뒤섞고 덧 붙여서 풍속을 더욱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으니
이것은 강태공이 그 풍속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중국 한족에게 전수된 신교의 도통 문화
일찍이 강태공이 <음부경주>를 지어 자부선생의 <삼황내문>의 뜻을 풀이 하였으니
연나라. 제나라 선비가 이찌 괴이하고 허황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이 부루태자<2세 단군>에게서
나와 우 사공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가 은나라 주왕에게 전하여 가르친
홍범구주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대저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과 균전법에서 전해 내려온 법이다.


삼신을 수호하는 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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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단의 유래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장사를 지낼 때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같이 묻어 지석<고인돌>으로 표시를 하였다.
이것이 후에 변하여 단壇이 되었는데, 지석단 또는 제석단이라 불렀다.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을 만든 것을 천단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심어 세워 토단을 쌓은 것을 신단이라 한다.

지금의 승려들은 이를 혼동하여 제석을 단이라 칭하는데 옛날 우리의 고유한 법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모시고 따르는 벼슬이다. 삼랑<三郞>은 본래 배달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고려팔관잡기>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곡식 종자를 심어 가꾸고 재물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업業이라 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일을 맡은 자를 낭郞이라하고,
백성을 모아 삼신께 공덕을 기원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곳 옛날의 광명 신도<神道>이다.


모두 영靈을 받아 예언을 하였는데 신이한 이치가 자주 적중하였다.
각주 : 다시 말하면 도통을 하여 전후 삼생을 보고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 신시본기 357 p>


4세 문황제의 신교 문화 대부흥

인안 19년<신시개천 4634, 단기3070, 737>에 임금께서 붕어하였다.
묘호는 광종<光宗>이고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시다.

태자 흠무가 즉위<신시개천 4634, 단기 3067, 737>하였다.


연호를 대흥이라 고치고 도읍을 동경용무원에서 상경용천부로 옮기셨다. 이듬해<738>에
태학<太學>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 환단의 옛 역사<환단고사桓檀古史>를

강론하시고,또 예악을 일어키고 무위는 여러 주변 족속을 복종시켰다.


이에 동방 대광명의 현묘한 도가

백성들에게 흠뻑 젖어들고, 홍익인간의 교화가 만방에 미쳤다.


<환단고기 역주본 671p>


이 신도문화가 이조말엽의 동학 그리고 오늘날 증산도<甑山道>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증산도의 가르침은 무극대도이며 신도<神道>의 가르침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핵심이며 원형문화이며 정신문화이다.


기존 사학자들의 연도 나열식 땅 따먹기 역사와 왜곡되고 파괴된

시비의 역사를 단호히 버리고 새롭게 배워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역사의 혼을 복원하여

파멸해가는 인류에 대한 미래를 대비하여 스스로 선택하고 동참함으로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새롭게 태어나서 홍익인간을 완성하는것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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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의 후손 강태공(姜太公)은
동방 신교의 일맥(一脈)을 한족(漢族)에 전수하고,
병법(兵法)과 정치(政治)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베푸니라.

(증산도 道典 1:12)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쥔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115)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의 묘략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술법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루었으되

그 은덕을 보답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동티막이로
경신년 모월 모일 강태공 조작(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의(道義)에 합당하리오.


또한 강태공이 십 년 경영으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기 위함이었으랴.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려 하였음이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에 보답하게 되리라.

(증산도 道典 4:145)


하도(河圖) 낙서(洛書)와 가을개벽의 운수


상제님께서 십이지지(十二地支) 물형부(物形符)를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이는 태고(太古)시대의 도술(道術)이니 선경세계를 건설할 때에 크게 쓸 것이니라.
익히 공부하여 두라.” 하시니라.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龜馬一圖今山河여幾千年間幾萬里로다
귀마일도금산하   기천년간기만리


胞運胎運養世界하니帶道日月旺聖靈이로다
포운태운양세계      대도일월왕성령


하도와 낙서의 판도로 벌어진 오늘의 산하
수천 년 동안 수만 리에 펼쳐져 있구나.


가을개벽의 운수 포태하여 세계를 길러 왔나니
변화의 도(道)를 그려 가는 일월이 성령을 왕성케 하는구나.

(증산도 道典 2:143)
 

나는 삼리화(三離火)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봉서사의 진묵은 3둔(遁)을 하였고 주나라의 강태공은 52둔을 하였으나
나는 이제 72둔(遁)을 다 써서 화둔(火遁)을 트리라.” 하시니라.


항상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남방 삼리화(三離火)로다.” 하시고
사람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일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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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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