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말골, 몰골, 물길, 모골, 몯골, 말갈, 모골, 무크리, 무갈 
 
전원철 박사는 “칭기스 칸이 살던 오늘날의 몽골리아에는
칭기스 칸 자신의 시대까지 타타르, 케레이트, 메르기드, 콩그라트 및 나이만 등 여러 다른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며 “그때까지 이 지방을 대표하는 통일된 나라 이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칭기스 칸이 세상을 떠나지 얼마 안 되는 시대에 쓰인 페르시아어
사서 《선별된 역사(Tarikh-igojide)》도 칭기스 칸이 처음으로 이 지방명을 ‘몽골’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음을 지적했다.
 
“칭기스 칸의 서로 다른 부족을 통일한 뒤
이 모든 종족을 대표하는 하나의 이름을 고안했는데, 바로 ‘몽골’이었습니다.
이 이름의 어원에 대해 후대의 학자들이 여려 어원설을 제시했죠. 송(宋)나라 때 팽대아(彭大雅)는
칭기스 칸에게 가는 사신으로 몽골을 방문하고 와서 쓴 자기 보고서에서 <몽골이 몽골어에서 은(銀을) 뜻하는
말인 ‘멍거’에서 왔다>고 해서 심지어 몽골의 일부 학자들도 그렇게 믿었지요. 또 오늘날 부랴트 및
몽골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용감하다’는 말뜻의 퉁구스어 ‘망가’가 어원이라고 봅니다.”
 
-이상하네요. 몽골 사람이면 한 번에 당연히 몽골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정상 아닙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정작 몽골인들이 자기 종족명이자, 국명의 뜻을 모르는 거죠.
마찬가지로 위대한 칭기스 칸이나, 그의 본 이름인 테무진(칭기스 칸)의 뜻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냥 몽골어나 투르크어의 비슷한 발음이 나는 단어에 꿰맞춰 놓고 ‘이럴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그 말의 뿌리가 원래의 몽골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거죠.
 
“‘몽골’은 사실 말갈/몰골(말 골, 말 고을)이라는 고구려어에 기원을 둔 말입니다.
말갈은 ‘말 키우는 고을’이라는 뜻인데 고구려 옛 소리가 ‘몰 골’ 즉, ‘말 골’입니다.
말을 제주도 방언으로는 아직도 ‘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몰골이 선비(鮮卑) 시대에
와서 ‘몯골’, 곧 ‘몰길’, 한자로는 ‘勿吉(물길)’로 바뀝니다. 이는 ‘몰 길’, 곧 ‘말 다니는 길’이라는 말로
‘말 고을’과 같은 말이죠. 그 ‘말골’이 결국 600년 세월이 흐른 뒤 몽골어 ‘몽골’이 된 것입니다.”
 
전 박사는 “부랴트어(바이칼호, 내몽고 등지의 종족이 사용하는 말)에서는
지금도 ‘勿吉(물길)’을 북방 한어(漢語)가 아니라, 남방 한어로 읽는 옛 소리인 ‘묻갈리’라고 기록한다”며
“말갈어 ‘몰골’이 기원이 되어 《삼국사기》와 《당서》 등에서는 ‘말갈(靺鞨)’로 적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투르크어, 페르시아어, 아랍어에서는 ‘모골’이라고 하고,
힌두어에서는 ‘무갈제국’처럼 ‘무갈’이라고도 하지요. 고구려를 옛 산스크리트어로 ‘무쿠리(畝俱理)’,
다른 투르크 방언들로는 ‘마크리’ 또는 ‘베크린’ 등으로 부르는 것도 이 말의 변형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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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항아리 금행을 기준으로 본 칭기스 칸 선조의 계보. 모든 몽골의 어머니로 불리는 알란 고와의 10대 손이 칭기스 칸이다. /저자 책
 
구전이나 전설이 아닌 족보로 기록된 칭기스 칸 선조 계보
 
-우리는 흔히 유목민은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아서
선조에 대해서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칭기스 칸의 경우 선조들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는 편이네요. 저는 칭기스 칸의 선조에 대한 기록이 그냥 전설이나,
구전의 형태로 내려온 것을 후대에 와서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만에요. 한 왕조의 계보들 중에서 칭기스 칸 선조의 계보만큼
수 많은 언어와 시대에 일관되게 기록된 것은 유럽은 물론 동서방 그 어떠한 왕조에도 없습니다.
라틴어 외에 기록문화가 별로 없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예 빼두고라도, 기록 잘하기로
이름난 아랍 및 페르시아와 지나(China)땅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죠.
 
칭기스 칸의 선조의 계보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몽골어, 한문, 만주어, 티베트어, 페르시아어,
투르크와 타타르어 몇 개 방언, 부랴트어, 아르메니아어, 또 러시아어 등 10개 민족어 이상의 동·서방 여러 언어로
시대를 달리하며 동·서방에서 수10 종의 사서로 대대로 기록되었습니다. 같은 하나이면서, 이만큼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또 많은 언어로 기록된 왕가의 계보는 전 세계 그 어느 왕조에도 없습니다.”
 
-칭기스 칸을 야만적인 생활을 한 유목민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런 그들이 어떻게 족보를 기록하고, 전해 왔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서양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무지나, 몽골사에 관한 편견 때문에 이런 숨겨진 역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선입관이 생긴 겁니다. 또 서양학자들은 자기네들이 그 야만적 동양의 한 종족 때문에 정복을 당하거나,
위협을 느꼈다는 자격지심도 존재했지요. 그래서 ‘야만적인 한 유목민족 출신의 칭기스 칸이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전쟁을 통해서 문명세계를 정복했다’고 평가하고 싶었던 점도 있죠.
 
유목민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해왔던 겁니다.
하지만 칭기스 칸의 선조 족보는 단순하게 구전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정식 족보 이상 잘 정리된 형태로 쓰여져 책의 형태로 전해 왔습니다.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부르는 유럽과 세계 각지의 그 어느 문명종족보다도 더 문명적입니다.
 
유럽인들은 자기 할아버지 이름도 모르지요. 또 수십만 명에 하나 드문 예외로
이른바 ‘family tree book(족보)’ 또는 ‘genealogy book(족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귀족출신 가문에만
그렇고 그것도 5~6세대를 못 가지요.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우리 관습입니다.
 
가가호호가 수천년에서 수백년 전의 선조에 이르는 족보를 가지고 있지요.
그와 같은 전통을 가진 가문이 칭기스 칸의 가문이고, 나중에 칭기스 칸의 후손들이 자신의 왕가에
전해 내려온 선조의 계보를 정리한 것이 바로 《몽골비사》와 제가 말씀드린 다른 서방 사서들입니다.”
 
전 박사는 “단순 구전으로 칭기스 칸 자신으로부터 자그마치 20대 전, 발해 반안군왕,
달리 진국공인 대야발까지의 조상들의 명단은 물론 그들이 한 행장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쓸 수가 있느냐”며
“《사국사》는 대야발을 넘어서서 그 이전의 계보까지 보여주는데, 이를 합치면 적힌 것만 해도
근 30세대나 된다”고 말했다.
 
“이는 당연히 족보책을 보고 쓴 것입니다. 라시드 웃딘도 여러 번 자기가 쓴
《집사》에서 《황금의 책》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죠. 중요한 것은 이처럼 족보를 중시하는
민족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한 민족밖에 없습니다. 바로 우리 조선민족, 한민족입니다.”
 
칭기스 칸의 시조 ‘황금항아리’의 정체
 
-이제는 칭기스 칸 선조가 어떻게 분화되어 나갔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지난 2편의 인터뷰에서 발해-당 전쟁으로 발해 서경 즉, 압록강네 군(아르카나 콘)으로 피신했던
 ‘키얀’과 ‘네쿠즈’ 후손들 중에 후에 ‘콩그라트 종족’이 먼저 그 지역을 빠져나왔다고 하셨는데.
 
“아, 네, 콩그라트 종족(지파)이 먼저 빠져나오고, 그다음에 나머지 모골 종족이 그 지역을 나옵니다.
콩그라트는 모골, 곧 말갈 종족 가운데 칭기스 칸의 직계선조 지파입니다. 이 콩그라트의 전설적 시조가 바로
 대야발의 아들인 일하의 아들로 《집사》가 전하는 키얀에게 손자인 황금항아리입니다. 《집사》의 저자
라시드는 이 황금항아리에 대해 이름만 적어놓고, 그의 선조에 대해 적지 않았습니다.
 
그를 제가 추적해 봤습니다. 페르시아어 ‘황금항아리(Bastu-i jarrin)’는
한자로 옮기면 ‘금관(金罐)’인데, 이는 ‘금 칸(金干)’, 달리 표현해서 ‘금 한(金汗)’과 같은 소리이고,
뜻은 ‘황금 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타타르어 사서에는 알툰 칸(Altun Han),
곧 ‘황금의 칸’이라는 말로 투르크어로 번역하여 적었는데, 때마침 공교롭게도
몽골인들은 조신(女眞)의 금(金)나라 군주를 ‘알탄 칸(금 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조신(女眞)의 금나라 군주의 시조가 바로 《고려사》가 말하는 ‘금행(今幸, 金幸)’입니다.
그런데 나아가 다시 <투르크의 계보>, <행운의 정원> 및 <시바니의 서(書)> 등을 보니
그가 바로 키얀과 네쿠즈 중에 ‘키얀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발의 아들 일하,
일하의 아들 ‘간(澗)’에게 손자로 태어난 이가 바로 금행, 황금칸, 황금항아리이죠.
계보 상의 세대로 따지면, 황금항아리는 발해 왕가의 제2시조인 야발의 4대손입니다.
또한 금시조 함보 3형제의 부친이 되는 것이죠.”
 
-지난 2편의 인터뷰에서 ‘황금황아리’가 ‘서해용왕’이라고 했는데요.
 
“그렇습니다. 황금항아리는 《고려사》에는 ‘우리나라 평주 승(僧: 존경받는 직위를 의미,
요즘의 ‘장로’에 해당)’이라고 나와있고, <고려세계>에는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고려세계>는 또 《성원록(聖源錄)》을 인용하여 ‘의조(懿祖: 곧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의 처 용녀(龍女)는 평주(平州) 사람 두은점 각간(豆恩?角干)의 딸이다’고 합니다.
서해용왕의 실명이 ‘두은점 각간(豆恩? 角干)’이라고 밝히는 것이죠.
 
그런데, 부랴트 전승에는 그가 ‘토곤 테무르 칸’으로 나옵니다.
  ‘두은(豆恩)-’의 옛소리는 ‘토곤-’이고 ‘-점(?)’의 옛소리는 ‘-텸무ㄹ’입니다.
우리 옛말의 ‘ㄷ/ㅌ’이 ‘ㅈ/ㅊ’으로 점차 변하는 구개음화를 생각하면 금새 이해가 가지요.
또 ‘-ㄹ’밭침은 한자에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이 변화는 금세 이해가 갑니다.
다음으로 ‘각간(角干)’은 투르크어 ‘카간(Kaghan)’, 곧 몽골어로 ‘카안(Khaan)’, ‘칸(Khan)’입니다.
이처럼 두은점 각간이나 토곤 테무르나 고려어로 된 것이냐 부랴트어로 된 것이냐만 다를뿐 같은 이름입니다.”
 
“우리 고대어 표기 방식인 이두와 향찰에 대한 이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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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고려박물관에 소장된 고태조 왕건의 영정.

-서해용왕이 발해-고려왕이라는 말을 도참설(圖讖說)

비문(秘文)의 비밀코드로 적는 표현방식이라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죠.

 
“우리말 표기법에는 한자로 우리말 소리를 그대로 적는
이두(吏讀)와 우리말의 뜻을 한자로 번역하여 적는 향찰(鄕札)이 있습니다.
예컨대 ‘고려’는 우리말 ‘고을’과 그 옛소리 ‘구루(城)’의 소리를 한자 소리만을
활용하여 적은 것이고, 이것이 이두인데, 향찰의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중천왕’은 또는 ‘중양왕’이라고도 하는데 삼갈 이름은 연불이고
동천왕의 아들이다(中川王 或云中壤 諱然弗 東川王之子)라고 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제5 중천왕조>를 보시죠. 여기에는 단 한 사람의 왕이름이 3개나
있습니다. ‘中川王(중천왕)’, ‘中壤王(중양왕)’
그리고 삼갈 이름(諱) ‘然弗(연불)’입니다.

 
왜 한 사람의 이름이 3가지일까요. 힌트를 하나 드리죠.
이 3개의 이름은 다 하나의 소리이고 한 가지 뜻입니다. 감이 좀 잡히나요?”
 
-이 세 가지가 다 한 가지 소리이자, 한 가지 뜻이라고요?
 
“답은 이 세 이름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두나 향찰을 안 쓰고 한글을 쓰는
우리네가 ‘中川王’은 ‘중천왕’, ‘中壤王’은 ‘중양왕’ 또 ‘然弗’은 ‘연불’로만 읽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식 향찰로 읽어 봅시다. 한자로 쓰되 우리말로 읽는 방법입니다. ‘中’은 ‘가운데 중’이고
 ‘천(川)은 내’이고, 또다시 ‘中’은 ‘가운데 중’이고 ‘壤’은 ‘땅 양’입니다.
 
그런데 ‘한 가위’ 또는 ‘한 가우’라고 우리말로 할 때 가우/가우는 한자로 중(中)입니다.
 川은 내이고 壤은 나/라입니다. 그러면 中川은 ‘가우내/가우래’이고 ‘中壤’은 ‘가우라’입니다.
또 ‘然弗’은 오늘날에는 ‘연불’이라고 읽지만, 옛소리는 ‘캰부르’입니다. 然자 옆에 개 ‘견(犬)’이 보이죠?
그것이 然자의 옛소리입니다. 이제 왜 이 세 이름이 다 같은 소리이고, 뜻인지 감이 잡히시는지요?”
 
-솔직히 ‘가우내/가우래’와 ‘가우라’는 비슷하긴 합니다만,
‘캰부르’가 어째서 같은 소리인지는 감이 잘 안 잡힙니다.
 
“이 세 소리는 모두 다 우리 고어로 ‘가우라이’라고 들렸던 ‘고구려’라는 소리이고 뜻도 같은 말입니다.
고구려는 옛날 한자 소리로도 방언에 따라 ‘카부려, 고리, 까오리, 코오라이’ 등으로 소리가 나고,
오늘날 영어나 불어, 러시아 등 서양어로는 ‘코레아, 꼬레, 까례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중천왕 또는 중양왕 연불의 이름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한자들을 소리로 읽지 말고 뜻으로 읽어 보면 앞이 두 가지는 바로 ‘가우(중)-라(양/천)’이고
 ‘연불’은 ‘캰부르=큰 부려=커부려=큰 부여=고구려’입니다.  여기에 다가 ‘왕’을 보태보십시오.
 결국 그의 이름은 ‘가우-라=고-구려=커-부여-왕’이라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한자로 쓰고 우리말 소리와 뜻으로 읽는 표기방식이 향찰이고, 한자의 소리를 빌려,
그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우리말 소리를 적는 것이 이두입니다. 한자의 소리로 우리말 소리를 적은
‘然弗’은 이두이고, 앞의 두 이름은 한자로 적되 우리말 소리로 읽는 것입니다. 바로 고구려 향찰이죠.”
 
고구려 향찰이 신라 향찰보다 먼저 쓰여
 
전 박사는 “우리 학자들이 신라에만 향찰이 있다고 생각하고 고구려나 백제, 발해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 왔다”며 “그런데 한자의 전래과정에서 고대 지나 대륙과 가까운 고구려나 백제가 한자를 먼저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가장 멀리 떨어진 신라가 먼저 받아들였을까 하는 문제는 상식의 문제에 속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고구려와 백제가 한자를 신라보다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간단한 진실이 학자들의 눈에는 뜨지 못하니, 왜 같은 이름이 다른 한자로 적혀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겁니다. 중천왕은 고구려 제12대 왕이고, 248년~270년간에 왕위에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왕들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 두 개는 고구려식 향찰로 세 번째 것은
고구려식 이두로 적은 것입니다.”
 
-그렇군요. 신라 향가 때문에 당연히 신라에만 향찰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전하는 향찰로 적은 글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오는
신라 향가 14수가 전하므로 신라에만 향찰이 있는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구려 향가는 전하는 것이 없지만, 고구려 향찰은 오히려 신라보다 먼저 쓰인 것을
 증명하는 왕 이름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설명 드린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려왕(高麗王)의 소리만 따서
또 다른 우리말로 읽으면 바로 ‘고렝이/구레이 왕’이죠. 이것이 또 다른 향찰의 한 방법입니다.
이 ‘고렝이/구레이=고려’를 다시 이번에는 한자로 뜻 적기를 하면 바로 ‘용왕(龍王)’, 곧 ‘구렁이 왕’이 됩니다.
 
또 우리 서쪽의 바다 ‘서해(西海)’는 ‘발해(渤海)-만’이라고 하는 것처럼 발해입니다.
그러면 ‘서해’는 ‘발해’이고, ‘용왕’은 ‘고레이=고려왕’이라는 말이고 이제 최종적으로 그 두 말을 합치면
 ‘서해용왕’은 바로 ‘발해-고려왕’이라는 말이 되죠. 이것이 바로 도참설(圖讖說) 비문(秘文)의 비밀코드로 적는
표현방식입니다만, 이 풀이방법을 알면 쉽게 이해가 가죠. 도참설 비문에는 이런 표기방식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도참설 비문은 뭔가요.
 
“한자의 뜻 적기를 활용한 일종의 비밀코드입니다.
주로 비밀스러운 미래 예언 사상을 쓸 때 많이 활용했습니다. 왕건이 궁예가 세운 고려에서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문 문장이나, 군데군데 비밀코드를 넣어 퍼뜨린 것도 그 가운데
하나로 글의 비밀코드가 이두나 향찰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세계>가 재인용하는 글을 보세요. ‘익재(益齋)가 인용한 《왕씨종족기(王氏宗族記)》에는
‘국조(國祖)의 성은 왕씨다’고 하는데, <금사 국어해 성씨>도 입을 맞추어 말하듯이,
금나라 완안(完顔)씨도 바로 왕(王)씨입니다. 이 왕씨는 바로 대씨(大氏)와 같은데 왜냐하면
완안씨의 시조가 대함보이기 때문이고 그는 대금행의 아들입니다.
 
결국 황금항아리 금행은 대(大)씨이자 달리 왕건과 같은 왕(王)씨이고,
그래서 그 8대손 완안아골타도 <금사 국어해 성씨>에 따르면 왕씨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골타의 8대조 금행은 우리나라 평주의 승이고, 《집사》에 따르면, ‘왕 같은 사람’이며,
그의 다른 이름은 ‘두은점 각간(豆恩? 角干)’, 곧 ‘토곤 테무르 칸’입니다.
 
이 평주승 금행은 바로 평주인 서해용왕 ‘두은점 각간(豆恩? 角干)’과 같은 지방 사람이고,
다 같이 그 지방의 장로이고 왕같은 인물인데, 그 성씨도 같고 시대도 같죠.
 또 왕건의 외증조부인 서해용왕, 곧 발해고려왕이 바로 금행인데, 평주에서 이 서해용왕 칭호를
취한 이는 바로 황금항아리, 금행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는 또 완안 아골타의 선조입니다.”
 
-그 황금항아리가 우리 역사에서 왜 중요한 인물입니까.
 
“황금항아리 금행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입니다.
방금 말한 대로 태조 왕건의 외증조부가 바로 <고려세계>의 서해용왕인데, 이 분은 단지
금태조 ‘완안 아골타’의 7세 선조 금시조 함보의 아버지인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는 나아가 칭기스 칸의 10대조 알란 고와의 4대조인 보활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죠.
동시에 그는 칭기스 칸의 부인 부르테 우진 가계인 콩그라트 종족(지파)의 소(小)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아고래의 아들 ‘콩크라트’에게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는 발해-고려-금나라-원나라 등 동서양의 여러 역사적으로
유명한 왕조의 혈통 상의 고리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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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조가 '솔롱고(고려)'에서 왔음을 말하는 솔롱고 뷰라트인의 사진./저자 책
 
세 지파로 나뉜 칭기스 칸의 선조들
 
-그 연관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요.
 
“《집사》에 황금항아리 아들 세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추를룩 메르겐’, ‘쿠바이시레’
그리고 ‘투스부다우’입니다. 이 이름들은 얼핏보면 매우 낯설게 들립니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이는 사실 우리말인 말갈어에 기반한 퉁구스어 칭호와 말갈어 칭호, 그리고 한자로 된 칭호입니다.
이들이 바로 《금사》에 나오는 함보 3형제, 즉 카고라이(아고래, 고구려),
함보(큰보, 걸가, 걸씨, 대씨), 보코리(무구리, 고구려)입니다.
 
이 3형제가 각기 당시 신라의 황해도 평산에서 살다가
남국 신라의 그 땅 침략에 더불어 발해내지에서 일어난 발해 왕족간의 내분이라는 내외적인 난국을 맞습니다.
이 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큰형 아고래는 평산에 남아 신라와 싸우고, 둘째형제 함보와
막내 형제 보활리는 당시 발해의 반안군의 두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들어가 살게 됩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 그 후손들이 별도의 관향, 곧 다른 본관을 가진 지파, 즉 종족을 이루게 됩니다.
신라로 치자면 경주김씨 안동김씨, 강릉김씨라는 같은 문중의 다른 관향, 본관을 취한 것입니다.
큰형 아고래의 콩그라트 종족, 둘째 금시조 함보의 예키라스 종족,
리고 막내 형제 보활리의 코를라스 종족이 그것입니다.”
 
전원철 박사는 “이 가운데 막내 보활리의 증손자 ‘코를라스’가
바로 칭기스 칸 선조 지파인 코를라스 종족 지파의 시조”라고 하고 “큰형의 지파인 콩크라트에서는
훗날 칭기스 칸의 부인 ‘부르테 우진’, 곧 말갈말로 ‘부르테 부인’ 및 ‘부여대(씨) 부인’으로 풀리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콩그라트는 ‘큰 고려씨’, 곧 ‘고(高) 구려씨’라는 의미입니다.
《고려사》에 오늘날 몽골리아 지방의 철륵(鐵勒)종족과 함께 왕건에게 병사를 주어
신라를 무찌르게 했다는 ‘콩거라(驩於羅, 환어라)’ 족입니다. ‘驩於羅(환어라)’의 옛소리가
 ‘콩고라’, 곧 ‘큰고려=커구려=고구려’입니다.
 
알려진 대로 함보 가문에서는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를 배출하는데
《집사》에는 ‘예키라스 종족’으로 기록됩니다. 이는 조선시대 실학자 한치윤의 《해동역사》가
 ‘삼한(三韓)의 진한(辰韓) 역라씨(役拏氏)’라고 기록한 종족입니다. 황해도 평산이
자주 신라에 점령당해 ‘진한 땅의 역라씨’이라고 적은 것이죠.
 
마지막으로 막내 보활리는 《금사》에는 갸라이(耶懶, 야라)로 적히고, 《고려사》에는
‘코라이땅(曷懶甸, 갈라전)’으로 적히고,《원사》에는 ‘코를라(合蘭路, 합란로)’로 적힌
오늘날의 함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땅의 이름 ‘코를라’ 본관을 따서 여기에 ‘씨(氏)’=‘스’를 붙여 자기 칭호로
쓴 사람이 바로 《집사》가 한자는 빼고 그 소리만 아랍-페르시아 문자로 ‘코를라스’로 기록한 인물입니다.
 
그는 칭기스 칸의 11대 조부이고, 칭기스 칸의 10대 선조로
 ‘모든 몽골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알란 고와의 아버지지요. 이 가문은 청나라 때 만주와 몽골 씨족 계보를
밝힌 《황조통지》에서는 ‘고려나씨(高麗那氏)’로 기록된 가문입니다. 좀 이해가 가시나요?”
 
뿌리 의식을 잃지 않은 칭기스 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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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안군왕 대야발의 형인 발해고왕 대조영.

전 박사는 ‘코를라스’는 “《몽골비사》에서는

‘코리-라르-다이 메르겐’으로 적혔는데, 이는

곧 ‘고려-나라-씨-말갈’이라는 뜻이고, 부랴트 전승들에서는

  ‘코리 메르겐(고려 말갈)’ 또는 ‘코리도이 메르겐(고려씨 말갈)’으로

나온다고 덧붙인다.

 
“‘메르겐’은 오늘날 몽골어, 카자흐어 등에서는
‘활 잘 쏘는 싸람’과 ‘현명한 사람’, ‘부족장’으로 이해되지만,

 이는 원래 활 잘 쏘고 현명을 추구하는 군주들인
발해왕가의 관향인 ‘말갈(靺鞨)’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금나라 말로는 ‘메르간/베르겐(勃勤, 발근)’이라는 말로도
 바뀌었는데, 이는 ‘씨족장’, ‘문중장’을 말합니다. 원래 대조영, 대야발의
말갈가문의 사람만이 씨족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메르겐” 및 “메르간/베르겐(勃勤, 발근)’은
고구려어로는 ‘낭(郎)’ 또는 ‘낭군(郎君)’이고,



신라어로는 ‘화랑(花郞)’과  같은 말로,
이 후자는 신라어로 김가(金哥, 김씨), 박가(朴哥, 박씨) 등 씨족의 족장 감을
말하는 ‘가랑(哥郞)’의 ‘가(哥)’를 옛날에 같은 음가를 가지나 뜻은 좀 더 예쁜 말인 ‘화(花)’로 바꾸어
쓴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어지는 전 박사의 설명이다.
 
“결국 칭기스 칸의 뿌리는 발해 고왕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에서 시작해서,
그 4대손인 황금항아리 금행으로 이어지고, 바로 이 금행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아들 보활리의 3대손
코를라스의 후손이 바로 칭기스 칸의 코를라스 종족이 되는 겁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이자면, 대야발→아들 일하→간(키얀)→키얀의 아들→금행→3아들 중
보활리→ 아들 콩글리우드(고구려씨)→바르가 타이상 노욘(발해 대상 랑)→코를라스(코리라르다이 메르겐)→
알란 고와라는 계보입니다.”
 
-결국 칭기스 칸 가문은 왕족으로서 가문에 대한 뿌리 의식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칭기스 칸은 ‘진국왕(震國王)’이라는 말인데,
그 자신이 정벌하는 금나라와 송나라 말기의 한자 소리로 읽은 ‘친기 칸’이라는 소리,
곧 ‘진국왕=발해왕=고려왕’이라는 말입니다. 칭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우리 사람들이 이른 바
 ‘중국’이라고 잘 못 부르는 지나 땅을 정복하고 대원국, 원나라를 세웁니다.”
 
고구려 왕가의 후손임을 자각
 
전 박사는 “이 때 마르코 폴로가 서방에서 그의 원나라를 찾아오는데,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불행히도 감옥에 갇힌다”며 “이때 감옥 속에서 친구에게 구술하여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게 한 것이 우리가 《동방견문록》이라고 부르는 책”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25번이나 칭기스 칸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단 한 번만 빼고 그의 이름은 항상 ‘친기 칸(Chinghi Kane)’으로 나옵니다.
‘칭기-스 칸’이 아니구요. 그런데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르코의 시절에 몽골인들이 남쪽 오랑케라는 뜻에서 ‘만지(蠻子)’라고 불렀던
송나라 백성들의 남방한어로 ‘진국왕(震國王)’은 ‘친귀(기) 칸’이었기 때문이죠.
한자를 몰랐던 그 기록자는 마르코가 말하는 대로 이 한자의 당시소리를 토스카나 방언으로 적은 것이죠.
이 사실이 또 한 번 ‘칭기스 칸’의 진정한 소리와 그 뜻을 알려줍니다.”
 
-‘테무진’이란 이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시죠.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 바아타르와 일가친척 부락인들은
칭기스 칸이 고구려 왕가의 후손이라고 자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에게
고구려 제 3대왕 ‘대무신=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준 겁니다. 테무진 자신으로 말하자면,
스스로가 종친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를 취합니다. 이는 테무진 스스로가 자신이
고구려에서 나온 발해국 왕의 후손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이라는 이름을 보세요. 그는 당시에 땅이름조차 없었던
오늘날의 몽골리아에 있던 부족들을 통일하고 ‘몽골’을 창설하는데, 그 ‘몽골=말갈=말고을’입니다
고구려-말갈이라는 두 이름 가운데, 자기가 세운 나라를 친족인 왕건이 세운 나라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말갈’, 곧 ‘몽골’을 선택한 겁니다. 테무진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죠.
‘조선반도’ 안에 있는 우리와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