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  "중화민족은 허구의 명이다."
 
중국 인구 13억명 가운데 91%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9%  그리고 아시아 인구의 48.1%를 차지하고 있다.
 
한족이라는 명칭은 천하장사 항우를 제압했던
유방이 세웠던 한(漢)나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황제(黃帝)를 시조로 숭앙하고 있다.
 
황제가 염제(炎帝)를 정복한 뒤 이들 두 부락이 결합해
연맹이 되었고, 그리하여 오늘날 한족들은 자신들을 '염황(炎黃)의 자손'이라고 칭하며
화하족(華夏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민족. 한족이라는 이름은 중국 문화를 정립한 한나라에서 유래되었다.
 
 
한족은 漢을 쓰며, 한민족은 韓을 씁니다.
그리고 혈연적으로도 한漢족의 경우 남방계 아시아인의 피가 많이 섞여져 있지만,
한韓민족의 경우에는 북방계 아시아인, 즉 몽골리안의 피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혈연 차이도 그 차이라고 하면 차이 입니다.

게다가 언어 또한 다르며, 식생 또한 다릅니다.
그리고 간단한 외모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도 은근히 큰 차이가 납니다.

한족이라는 말의 유래는 유방의 한나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방의 한나라 이후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한족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그 문화적 계승으로도 나타납니다.


중국 전체 인구의 약 91.5%를 차지한다.

산아제한 정책에 의해 한족이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래 섹션 참조)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그냥 중국인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정도의 메이저 민족이다.

물론 중국 정부는 자기네가 56개(한족 포함) 다민족 국가임을 강조하지만.

 
크게 7가지 정도의 매우 다른 사투리를 쓰며,
남방인과 북방인은 외관, 혈면,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상당히 크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이라는 역사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종족을 흡수하면서 만들어진 민족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미국 사람은 미국인일 뿐이지 미국족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의 국가안에 여러 민족이 사는 다민족국가의 경우이다.
물론 동아시아의 경우 일찍부터 서양식 민족주의와 다른 동족의식이 있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본문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한족은 그렇게 보기에는
차이가 너무 커서 논외로 친다.
 

언어적으로는 크게 7가지 정도의 매우 상이한 사투리를 쓴다.

실제로 옛날에는 지역이 다르면 한자로 필담을 하는 게 빠르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화'(중국 표준어,공용어)면 다 통한다. 그나마도 진시황

한자를 통일해서 망정이지, 그 이전에는 지역마다 문자조차 달랐다.

 

그래서 언어적 특성으로 한족을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

한자'를 모어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민족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럴 경우 일본도 포함될 수 있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고 4천만 명 이상의 한족 이민자, 즉 화교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퍼져 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도 한족계 화교가 70%인 국가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국에서 순종 한족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족의 개념은 심지어 DNA 검사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란저우 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 교수는
중국 서북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의 DNA 연구를 통해 과거 중국에서
중원(中原) 지역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허난 성과 장수 성, 서부 및 안후이 성 서·북부 지역에
살았던 사람 정도가 중원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들이 비교적 순수한 한족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2천~3천년 전인
상나라와 주나라 시기에서만 타당했을 뿐, 이미 춘추 전국 시기의 진나라만 해도
그 민족은 융족(戎族)으로서 소수 민족이었다.
 
셰 교수는, 따라서 한족은 과거 한 시기의 지역적 구분에
해당될 뿐, 특정한 정의를 지닌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중국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의 객가족(客家族)은
고어(古語)를 사용하는 등 당시 중원 사람들의 문화 전통을 순수하게 계승하고 있고,
그들의 풍속에도 고대 한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현재 소수 집단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호요방, 주덕, 엽검영 등 현대 중국 지도자를 비롯해 손문의 부인 송경령 그리고 저명한 역사학자
곽말약 등이 모두 객가족 출신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과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이들 객가족은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엘리트 한족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객가족은 전세계 상권을 장악한 화교의 절대적 주류를 이루면서 중국이 개혁·개방하는 과정에서도
조국인 중국 대륙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 중국의 부활을 이끌었다.
 
홍콩의 유명한 부호 이가성과 '호랑이 기름'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호문호 등 유명한 화교 거상들 대부분이 객가족이다.

아시아의 한 지류로부터 한족과 티베트족이 파생되었다.
그리고 한족은 다시 남방 한족과 북방 한족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침략과 정복의 역사 더불어 '한족 행세'하는 토착민도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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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의 지도자 손문(오른쪽)의 부인 송경령(왼쪽)은

소수 민족으로서 엘리트 한족의 명맥을 이어온 객가족 출신이다.

ⓒ연합뉴스

중국의 북쪽과 남쪽을 모두 여행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의 남쪽과 북쪽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광둥 사람과 베이징 사람은 그 체형과 얼굴 모습에서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은 같은 한족이라며, 한족과 닮지 않았다고
말하면 즉각 큰 불쾌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2001년에 발표되었던 중국과학원 소속 유전연구소의
인류 유전자 연구센터가 15년 동안 진행한 중국인의 성씨와 유전자 관계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 남부 지역인 푸젠 성과 장시 성 사이에 걸쳐 있는 우이 산과 난링 산맥을 경계로 해
그 남쪽과 북쪽에 거주하는 '한족'이 혈연상으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심지어 이 연구팀은 이들 두 범주의 '한족' 간 유전자 차이가
한족과 소수 민족 간의 유전적 차이보다 더욱 크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중국이 54개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임에도
13억 인구의 91%가 한족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인구 통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연구 결과이다.

이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한족이 통치하던 송나라와 명나라 시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등 모두 세 차례의 인구 조사 내용을 분석하고
5백여 편에 이르는 고문헌과 족보를 참조했으며, 동시에 수백만 명의 중국인 혈액을 검사해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일부 소장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들 소장 학자는 중국의 역사는 황허 유역 한족 세력이 남방을 침략하고 정복하는 역사였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남방의 토착민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면서 이와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베이징의 한 역사학자는 "한족만이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토착민들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중화문화권에 편입하기 위해 한족이라고 자처했다.
중앙 정부도 소수민족 복속 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을 묵인하고 장려해왔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들 '위장 한족' 외에도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후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소수 민족으로 남기를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유리한 한족을
선택한 것도 한족이 늘어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에서 부모의 출신 민족이 서로 다르면
자녀에게 어느 민족에 속할 것인가의 선택 권한이 주어지지만, 소수 민족을 선택하는 자녀는 거의 없다.

한족은 이렇듯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복합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한족은 '양이 마침내 질을 전화시키듯' '인해 전술'로 표현되는
압도적인 인구의 힘으로써 거대한 문화적 동화력과 함께 중국이라는 국가를 수천 년 동안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지탱하고 강화시킨 확고한 물적 토대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소준섭 | 국제관계학 박사
 
 

台灣人那裏是漢人? 중국인은 모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  "중화민족은 허구의 명이다."

內幕新聞第30號 (내막신문 제30호) 

 

주제 :  中國人都不是漢닌데人了

한인이 아 대만인이 어떻게 한인인가?

 

中國'이란 말은 西周 初에 출현한 것이다.
당시의 수도를 가리키고 지역이름이며 지리명사가 아니다.
毛傳'에 "中國은 京師(서울,수도)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912년 손문이 중화민국을 창립한 이후

중국'은 근대국가의 정식명칭으로서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명사이며 지리명사다.
청말에 많은 나라가 있었고 정식은 아니지만 만청을 합해 중국이라 했다.
다만 정식 문서상의 이름은 '청국'이었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  일문판 제2조에 "청국은 장차 아래 토지주권(요동반도, 대만팽호) 및 그 위의
성루병기제조소관물을 영구히 일본에 떼어준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옛날에 '중국'은 그 古都 하남의 낙양지구를 가리킨다. '중국인'이란 낙양지구의 주민을 가리킨다.
한인이라 하면 황제의 자손인데 전설 속의 황제는 낙양분지에서 건국했다.


낙양분지가 중국 고유영토의 전부다. 그 면적은 대만에 비해 오히려 적다.
대만국의 고유영토는 중국의 고유영토에 비해 오히려 큰 것이다.

중국'은 지역명 외에 한족(漢族)이라는 인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인'이 한족이라면 그 조선(祖先)을 황제로 한다. 그 조선(祖先)이 황제가 아니라면

모두 한족이나 중국인이 아니다.

 

한족의 원래이름은 화하 혹은 줄여서 하족이라 부른다

(이것과 하우(夏禹)의 '夏'와는 무관하다).

예를 들면 "화하가 중국의 예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적이 중국의 예악을 행하면 중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蕃,이민족,오랑캐)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옛날에 화하인종은 낙양분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라 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 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그곳에 한족이 있겠는가?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아래 분석은 중국이 자칭하는 5천 년 역사에 있어 각각의 한 시기의 통치자의 혈통의 진상이다.

4,600년 역사에서 한족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다.


1. 황제

전설 속의 인물이며 정식역사가 아니다.
전설 중에서 그의 원래 성은 공손이다. 희수(일설 산동곡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희를 성으로 했다.
웅군(熊君)이라는 차자가 있었고 헌원에 살았다. 고로 유웅씨라고도 한다. 호가 헌원이다.
그는 남방군장 치우를 쳐서 이겨 영수에 추대되었다. (역자 : 왜곡이다. 이겨본적이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25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 14인이 12성을 얻었다.

그 성은 희(姬),유(酉),기(祁),기(己),승(?),침(?),임(任),순(荀),희(僖),길(?),현(?),의(依)이다.

이 12성를 화하라 한다. 하'는 한족혈통의 근원이다. 그 외의 성은 이족으로 본다. 또한 만족이기도 하다.
후에 성을 하사하거나 봉지(封地)하여 다른 성 또한 한족이 된다.


2. 요순

ㄱ. 요  
성은 기이고, 도당씨이며, 화하 한족이다.
황제로부터 요가 망할 때까지 455년이다. 그 후 한족은 모두 이족의 통치를 받았다.
요가 죽고 순이 계승하였다. 순은 동이인이지 한인이 아니다.

ㄴ.순 
성은 요(姚)이고, 유우씨(有虞)씨이며, 동이민족이다.

3. 우 : 일설에는 성이 언(偃)이고, 또 일설에 사(?)이고, 고도씨(?陶氏)이며, 서융족 혹은 동이족이다.

4. 상 : 동이족이다.

5. 주 : 성은 희이고, 서방 기땅에서 왔으며, 오늘날의 섬서이고, 강인(羌人)과 혼혈이다. 


6. 춘추

ㄱ. 제(齊)는 성이 강(姜)이고, 삼묘족의 후예이다(남만족).
ㄴ. 진(晉)은 漢人이다.
ㄷ. 진(秦)은 서융족이다.
ㄹ. 오, 초, 월은 모두 남만족이다.


7. 진  
서융족이고, 지금의 장족계이며, 저인(?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대에 저인 부견은 나라를 세우고 진이라고 불렀다.
사가들은 구분하여 前秦이라고 부른다.


8. 한漢
자칭 한인이다. 실제로는 의심스럽다.

유방은 비천한 출신이고 당시에 공, 후, 백 이상은 족보가 있었다.

족보가 없었기 때문에 중원이 외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2천 년이나 되는데

어떻게 한인임을 확정할 수 있겠는가?


9. 삼국 : 위(魏)는 알 수 없다. 촉한은 자칭 한인, 오는 남만이라 한다.


10. 남북조
ㄱ. 남조 :  진(晉)왕실은 남천하여 묘월을 압박했다. 晉의 혈통은 알 수 없다.


ㄴ. 북조 :  

전량(前?)은 자칭 한인(漢人).
후량(後?)은 저족(?族).
남량(南?)은 선비(鮮卑). 
북량(北?)은 흉노(匈奴).
서량(西?)은 한족(漢族). 
전조(前趙)는 흉노(匈奴). 

후조(後趙)는 흉노(匈奴). 

전진(前秦)은 저족(?族). 

후진(後秦)은 강족(羌族). 

서진(西秦)은 선비(鮮卑). 

전진(前燕)은 선비(鮮卑).

후연(後燕)은 선비(鮮卑). 

남연(南燕)은 선비(鮮卑).

북연(北燕)은 한족(漢族).
대하(大夏)는 흉노(匈奴). 

성한(成漢)은 저족(?族). 
북위(北魏)는 선비(鮮卑).

북제(北齊)는 한족(漢族).
북주(北周)는 선비(鮮卑)이다.

 

11. 수 :  양견은 북주의 외척이라 한다. 선비와의 혼혈이다.

12. 당 :  이연은 '한'이라 하는데 선비와의 혼혈이다.


13. 5대10국

ㄱ. 5대
후량(後梁)은 한족(漢族).
후당(後唐)은 돌궐(突厥).
후진(後晉)은 돌궐(突厥).
후한(後漢)은 돌궐(突厥).
후주(後周)는 한족(漢族)이다.

 

ㄴ. 10국
북한(北漢)을 제외하고는 산서의 밖에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강남에 있었다.
한족근거지 중원과는 무관하다.


14. 북송 :  자칭 한족이라 한다. 유방에 비해 더 의심스럽다. 
중원이 이에 이르기까지 외족통치 3천 년인데 어찌 한족이라 하는가?


15. 금 :  서기 1127년 만청 시조 여진인이 중원을 점령했다.


16. 원 :  몽골인으로 흉노에 속한다.


17. 명 :  자칭 한족이다. 그러나 유방과 조광윤의 '한'에 비하여 혈통이 더 의심스럽다.


18. 청 :  만족, 역시 여진인이다.


19.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혈통상 자칭 한인(漢人)이고, 국적상 자칭 중국인이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구통계에서 공식 발표한

인구 12억여명 중에서, 자칭 한인인구 10억여명을 점하고,

그 나머지 약 2억이 만주족, 몽고족, 장족, 회족, 묘족 등 53개 소수민족이라 하는데,
사실상 12, 3억 인구가 전부 한족이 아니다.


 

현재 중국인의 혈통은 중화민국에 있으면 중화민족이라 부르며,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으면 중국민족이라 부른다.


두 가지 명칭은 단지 정치적인 의미일 뿐, 혈통상의 의미가 아니다.
근거에 의해 분석해본 결과로는 한족이란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없다.

중국인의 혈통은 만주족, 몽고족, 장족, 회족, 묘족 등

5개 주요 족군과 그 밖의 48개 소수민족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대륙의 30여 성의 땅은 예로부터 53족의 고유영토였다.


중국 통치하의 각 민족은 마땅히 뿌리를 자세히 찾아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토지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통치자에게 민족의 고유 영토와 존엄을 회복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족의 고유영토는 낙양분지 뿐이다.

중국민족이라든가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으로, 역사와 혈통에 대한 검증을 받지 못했다.
민객(?客)은 월족(越族)이고 한족이 아니다.


 

원문 :  http://www.taiwannation.com.tw/inside03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