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강역,

유주와 영주, 빈과 기, 만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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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강역

고조선은 그 영토가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동해까지 미치고,

북쪽으로는 흑룡강을 지나 시베리아까지, 남쪽

으로는 큐수와 일본 본토까지, 서쪽으로는 몽고와 바이칼호에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이러한 고조선을 고려,

조선의 사대주의자들과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한반도 북북의 소국으로 줄여 놓았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 몇 개만 고증해 보아도 그 진실은 쉽게 드러난다.

 

 

유주와 영주

재위 67년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9년 대홍수를 겪고 있는

중국에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하여 요순堯舜 정권을 구해주었다.

그때 중국과의 국경을 살펴,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고조선 땅으로 영입하였다.

 

두 곳은 오늘날의 하북성과 요령성 일대이다. [위서]<지형지>에 따르면

영주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동쪽에 있었다. 중국의 동쪽 끝이면 바로 고조선의 서쪽 끝이다.

고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중국 대륙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다.

 

<BCE 2267년 단군왕검이 '유주와 영주'를 우리 영토에 귀속시키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리셨다.

<단군세기>>

 

 

과 기

그리고 13세 흘달단군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桀을 정벌할 때 빈邠과 기岐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빈과 기는 현재의 섬서성에 위치하는데 주나라가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때 고조선의 군사와 낙랑 군사가 합세하였다고 하는데, 이 낙랑은 과연 무엇인가?

낙랑은 이미 배달의 태호 복희씨 때부터 있었던 지명①으로 지금의 하북성, 요령성 일대 지역이다.

 

고조선의 낙랑은 23세 아홀단군 때 낙랑홀樂浪忽이라는 성으로 <단군세기>에서 다시 나타난다.

한편 낙랑은 하북성 인근에 있었던 고조선의 제후국 이름이었다.②

 

<BCE 1767년 흘달단군은 주나라 걸 임금이 약속을 어기자,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며, 낙랑 군사와 

세하여 관중關中의 빈과 기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를 설치하셨다.

<단군세기>>

 

 

연의 침입과 만번한滿番汗

BCE 300년 경 연나라가 번조선을 침입해 와 만번한滿番汗을 새로운 국경으로 정하였다.

<사기>, <위략>, <삼국지>, <위서동이전> 등의 중국 사서도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사가들은 “고조선의 서쪽 땅 2천여 리를 빼앗았다”는 구절을 더하였다.

 

만번한은 만현滿縣과 번한현番汗縣을 합칠 말로서,

만현은 지금의 요령성 개주시, 번한현은 그 인근의 해성시이다.

③ 연나라에게 2천 리를 빼앗겨 줄어든 강역의 새 국경이 요동반도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원 국경은 어디였는가? 고조선의 위치를 처음 언급한

<산해경>과 <사기史記>, <전국책戰國策>, <설원說苑>, <수경주水經注> 등의 기록으로 볼 때,

지금의 난하가 고조선의 국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④

 

<전국시대 말기 BCE 300년 경 연나라가 번조선을 침입해 와 만번한滿番汗을 새로운 국경으로 정하였다...>

 

<고조선의 국경은 지금의 난하가 고조선의 기본 국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가점은 고조선의 문화

20세기 후반 요서지역에서 중요한 고고학 발굴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하가점문화이다.

하가점夏家店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한 촌락으로,

건조한 기후 때문에 유적과 유물이 빗물에 유실되지 않고 시대별로 층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그 상층에서는 유목민 문화가 나타났고, 하층에서는 BCE 2400~1500년에 걸친 농경집

단의 청동기 문화가 나타났다. 하층에서 출토된 비파형 청동검은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 유물로서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검과 동일한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고조선 문화이고, 하가점은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문헌 기록으로 보나 유물로 보나,

고조선은 한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드넓은 동북아시아의 대국이었다.

 

호정 등 일부 학자들은

당시에 이런 제국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하지만 역사적으로 기마민족 국가는 농경민족 국가보다

훨씬 광대한 영토를 가졌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⑤ 말의 질주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가 넘으며, 실제로 13세기 몽골 기마군단은 유럽에서

하루 100킬로미터 이상을 진군하였다.

고조선은 기마민족적 요소를 가진 나라였기 때문에 동북아의 광대한 강역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었다.

 

각주)

① “복희는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난 진陳 땅에 이주하여... 서쪽 땅에 나라를 세우셨다”

([태백일사]<신시본기>)

 

② 낙랑이란 이름은

고조선 말기 역사에서 다시 대두된다. 번조선의 부호 최숭이 하북성 창려현 지역의 낙랑에서

한반도로 넘어가 지금의 평양 지역에 낙랑국을 세웠다(BCE 195).

 

③ KBS 1TV, 역사스페셜, <첫 나라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나>, 2005.5.27.

④ 이덕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126쪽.

⑤ 송호정, <만들어진 신화 고조선>, 151쪽.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94~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