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인도, 수메르 >

7만년 하늘민족의 역사에서 발췌


1. 수메르족은 BC.5,000∼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 나타나서 BC.3,000년경부터 고도문명을 전하고
BC.2,000년경에 아모리인에 멸망하여 사라졌는데
태양숭배, 삼신숭배(하느님), 간장점, 상투, 평좌법, 씨름 등이 우리와 같다.

2. 흉노족인 훈족, 훈나라의 "훈"은 "한"의 방언으로 보인다.
※ 한국과 몽골은 왕을 "한, 간, 가안, 가한, 칸)등으로 썼다.
이 "한"은 민족의 이동과 지역적인 방언으로 수메르는 "안", 흉노는 "훈", 중국은 "군(君)"이 되었다.

3. 한국어는 알타이어 기층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알타이어와 친근관계가 있을 수 있다.

4. 이집트의 파라오(대저택), 인도-유럽의 페리 대자(城),
희랍어의 페리, 메소포타미아의 해뜨는 동편지(東便地) 이란 즉 페르시아,
아사달시대의 페라(평나, 백악, 평양, 불내, 불함, 부악, 붉악, : 도성, 도성이 있는 산 : 밝은 땅),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모두 어원이 비슷하거나 같은 의미다.

5. 인도의 드라비다어(구자라트어)는 한국어와 같은 계열이다.(헐버트)

6. 남인도 드라비다 언어 중 "ㄱ, ㄴ, ㄷ, ㄹ, ㅁ, ㅅ, ㅇ"의 자음과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으, 이"의 모음이
한글(가림다)과 같다.

7. 간지스강의 신이 "강가(GANGA)" 여신인데 강가란 말은 우리말의 "강(江)"과 같다.

8. 드라비다어족과 우랄알타이어족 사이는 먼 친근성이 있다.(맹게스)

9. 드라비다어족의 타밀어 중 날(日)은 몽고어의 나라(太陽)와 비교되고 한국어의 날(日)과 같다.

10. 수메르어와 중국어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의 소리,
      글씨가 같고 글자발전도 중국문자처럼 6단계로 발전된 것이 입증되었다.

11. 수메르어는 교착어이다. 한국어는 교착어이다.

12. 수메르어는 혈통적, 언어적으로 고산지대에서 온 것이다. 또는 중앙아시아 고원에서 내려온 듯 하다.

13. 수메르란 소를 말하며 우르(UR)도 소를 뜻하는 말이다.

14. 고대 인도의 광역에 티베트와 몽고, 서부이란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15. 드라비다 민족은 BC.4,000∼BC.3,000년경에 나타났다.

16. 소련의 드라비다 연구가 앤드로노프는 인도 모헨죠달의 인장문명이
      드라비다어족의 언어로 쓰여진 것 같다며 BC.4,000년경 외부에서 나온 민족 같다고 하였다.


17. A. 콘드러톱은 "인도반도에서는 발생과 멸망이 수수께끼인 오랜 문명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명의 창시자는 문자를 지녔고 그 언어는 타밀인과 기타의 드라비다 민족의 언어를 닮고 있다."고 했다.

18. 원 인도문명은 BC.3,000년 중반에 갑자기 개화하여 문자와 세련된 예술,도시,
      하수시설 등을 갖추었으나 BC.2,000년경 갑자기 사라졌다. 아리안족의 침입시기와 일치한다.

드라비다족은 약 5,000년 전의 고도 문명족으로 성곽도시와 관개용 땜을 건설했는데
맨처음 서북부지역에 근거하다
점차 인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주로 인도 북부지역에 강력한 왕국들을
수립하였으며 남부에까지 왕국들을 세웠다.

이들은 인도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신은 지금도 믿어지고 있으며 타밀어, 테레구어, 말라야어,
카나다어, 투루어 등의 많은 언어가 현재 인도남부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언어들로 된 문화는 대단히 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 타밀인과 드라비다족이 지금도 한글과 똑같은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사달시대에 가림토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 몽골의 원나라시대에 서쪽의 위글문자를 나라 글로 썼는데 이 표음문자는
고려에도 전파되어 15세기 세종대왕이 한글창제에 긴요하게 이용되었다.

따라서 한글의 원형은 인도의 드라비다문자이고 드라비다 문자는 아사달의 가림토이다.
한글의 유래도 모르고 쓸것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의 연구와 증명이 있기를 바란다.

20. BC.4,000∼BC.3,000년경에는 인도반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긴밀한 접촉이 있었고
문명이 서로 형제 같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며 꽃병과 인장이 닮은 것 등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따라서 세계의 학계는 두 문명의 모체가 있을 것으로 보는데 필자는 그 문명이
바로 만주와 몽골을 중심으로 한 밝나라- 밝달나라- 아사달로 이어진 문명 외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21. 인더스문명의 주인공인 드라비다 종족은
중앙아시아인 인지 서아시아인 인지 그 기원을 아직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 땅에 가장 오래 전부터 살고있던 종족은 드라비다종족, 티베트와 버마종족,
고리아(몽고리아) 종족이 대표라는 것이 오늘날의 언어, 인종학의 정설로 되어있다.

22. 석가모니 모친 마야부인은
구리족(拘利族, 九離族, 九黎族, 句麗族)이고 석가모니 가족은 동일조상(同一祖上) 이라고 했으니
티베트와 네팔종족은 모두 고구려의 조상인 고리족(골족) 이었음이 나타난다.

23. 불교가 동쪽(중국,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중국 한(漢)나라에 범서와 불탑이 있었다.
처음에 휴도라 하고 뒤에 부도라 하니 혹칭 불도, 불타란 모두가 같은 말이다.
(한국 아사달 시대의 소도를 말함)

석가모니 부친은 수두단나(首頭檀那: 세상에서 제일 밝은 단군: 임금과 제사장을 겸함)
였으니 소머리 사상의 이름이다.

24. 수메르어는 한국어와 동일한 교착어로서 어근을 같이한다.

25. 수메르인들은 고대의 문자적 기호를 가지고 온 듯 하다.(C.H.고든)

26. 수메르의 제1왕조(BC.2,600년경)를 건설한 엔릴 영웅이 소호국(少昊國) 사람이다.(문정창)


27. 수메르의 여왕 슈브엩(BC.2,900년경)의 무덤 속에서 발굴된 악기 끝에 소머리가 그려져 있다.
      수메르인은 동방에서 왔다.(크램머)

28. "복코에는 사라진 열 부족 중(이스라엘 열 부족) 일부가 중국까지 갔다는 전설이 있다."
     (보카라 선교이야기)

29. 1983년 시리아 역사가 K.S.살리비 교수는 :
"팔레스타인 지역은 결코 성경의 이야기가 발생한 지역일 수가 없다.
성경의 수 천개의 지명중 팔레스타인에서 찾을 수 있었던 곳은 몇 개뿐이었다."

"히브리어 성경과 다른 자료들을 다 동원해도
팔레스타인에서의 초기 유대민족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세기 이상에 걸쳐 히브리인들의 자취를 메소포타미아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히브리인들의 자취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시리아 북부를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지만 그러한 자취들이 실제로 발견될 수 없다"
(이상 7만년 하늘민족의 역사에서 발췌)

※ 요 점 :

시대, 언어, 관습, 사상 등에서 몽고, 중국, 한국과 인도, 수메르가 같은 지역에서 살다가 갈려나간
 동일 문명족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또 성경의 발생지는 지구상에서 오직 만주와 백두산 외에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계의 적극적인 연구를 바란다. 따라서 기독교의 미래는 인류의 원조인 밝검(환인)과 밝달검(한웅)
그리고 아사달검(한검)을 바로 세워야 세계최고종교로 부상할 수 있다.
수메르는 서양의 원조일 뿐이다.
 
 
제 4절 한국의 옛 역사기록


1. 한웅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신의 정기가 충만한 나무, 생명나무, 영생수) 아래 오셔서
바람의 신(풍백), 비의 신(우사), 구름의 신(운사)를 데리고 생명, 곡식, 형벌, 질병, 선악의 5사를 주관하며
인간의 360여 가지를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다.
밝달검(한웅)이 하느님께 제사지내고 교화를 베풀고 천경과 신고를 가르쳤다.
(삼성기전하편)

2. 반고가 공공, 유묘, 유소, 수인을 데리고
돈황지역(천산동쪽, 감숙성 서북)에 나라를 세우니 견족( 族)의 왕 반고가한 이다.
(삼성기전하편)

3. 치우한웅 때는 삼신(하느님)을 조상으로 삼고 소도를 관리하였다.
(삼성기전하편)

4. 치우족이 티베트에서 800년간 치우왕국을 이루었다.(한단고기)

5. 1세 아사달검 51년(BC.2,283) 혈구에 삼랑성을 짓고 제천단을 마리산에 쌓으니 참성단이 그것이다.
나라 안에 큰 모임이 있었으니 10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들 모두 기쁨에 넘쳐 환호하며 즐겼다.
(국중대회)

6. 2세 부루 한검 원년(BC.2,240) 하늘에 제사 드렸다.

7. 3세 가륵 한검 6년(BC.2,177) 열양(하북성 북부)의 욕살 색정을 약수(弱水 : 천산동쪽 감숙성 주천지역에서
몽고국경 남쪽 고비사막 거연으로 흘러드는 강)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같혀 있게 했다.
후에 용서하고 그 땅에 봉하니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중국사기에서 말하는 흉노의 본거지가 바로 여기다.)

8. 3세 가륵한검 8년(BC.2,175) 강거(몽고 서남쪽)의 반란을 지백특(티베트)에서 정벌했다.

9. 5세 구을한검 원년(BC.2,099) 명을 내려 태백산(백두산)에 단을 쌓고 사자를 보내 제사를 올리게 했다.
    구을한검 8년(BC.2092)인도사람이 표류하여 동쪽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 약 4,100년 전에 인도사람이 표류하여 바닷가에 도착하였다면
그 이전부터 인도와 한국은 바닷길로 서로 통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록은 이집트, 수메르, 인도의 유물에서 5,000년 전의 배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미 5,000년 전부터 한국, 인도, 수메르, 이집트가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명문화가 육로보다 더 빨리 전파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예를 들어보면 만주와 중국대륙에서 발전된 문자의 형태가 갑자기 인도의 인더스문명권에 나타나고
또 수메르 문명권에도 차근차근 발전된 형태가 아니고 갑자기 발전된 문명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육로에 의한
점진적인 형태가 아니라 바닷길로 빠르게 전파되어 나타난 형태라고 보여진다.

10. 9세 아술한검 2년(BC.1,984) 청해(청해성)의 욕살 우착이 군대를 일으켜 궁성을 침범하니
     한검께서 상춘으로 피했다. 우지, 우율 등에게 명하여 토벌하고 죽이게 한 후 삼년 뒤에야 도읍으로 돌아왔다.

11. 11세 도해한검 원년(BC1,891) 12명산에 국선(화랑, 선랑의 전신)의 소도(선법, 진리, 무예를 익히는 곳)를
      설치케 했다. 큰 밝달나무로 한웅의 상을 만들어 모시고 제사지내며 웅상이라고 했다.
     (불상의 시초)

10월 대시전(大始殿: 시조 한웅의 추모당: 후세에 불교가 들어와 민족의 시조를 쫓아내고
부처를 두고 대웅전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을 세우고 시조 커밝한웅의 모습을 그려 모셨는데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 번쩍하여 마치 큰 해와 같았다.

12. 13세 홀달한검 16년(BC.1,767) 하나라 걸왕이 덕을 잃어 은나라와 합세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신지 우량을 파견하여 견군( 軍: 반고의 견족군사 : 중국 섬서성 감숙성 지역에 거주 : 西夷,  夷)을 끌고가서
낙랑(북경지역 군사)과 합쳐서 진격하여 관중의 빈기( 岐 : 周, 秦, 漢나라 본거지: 섬서성 4새의 땅)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

후에 은나라가 건국됨에 철수하였으나 가난한 사람들이 남아서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그들은 풍속을 잃지 않고 지키며 살았다.
 
후세의 진나라, 한나라 시대는
그들을 서이(西夷), 서융(西戎), 융적(戎翟) 등으로 부르며 오랑캐라고 천대하였으면서도
그들의 여러 가지 풍속과 관습을 받아들였고 천제와 산천제 등을 지냈다.
(규원사화)

13. 15세 대음한검 2년(BC.1,660) 겨울 10월 양운국(청해성, 티베트지역?)과
수밀이국(발하시호- 파미르 지역일대 ?)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10년(BC1,652) 한검께서
서쪽 약수(천산동쪽, 감숙성 서북)에 가셔서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철과 고유를 채취하게 했다.

14. 16세 위나한검 28년(BC.1583) 삼신상제께 제사지냈다.

15. 18세 동엄한검 20년(BC.1465) 티베트인이 특산물을 바쳤다.
서역의 변방을 둘러보고 서장(티베트)에 보내어 함문경(바라문경)을 구해왔다.

우수주(牛首州: 수메르국)의 앙골과 동생 장골이 난을 일으켜 서쪽 변두리 백성들이 피해를 입으니
부여후가 평안할 수가 없었다. 이에 웅가 충달을 보내 치게하니 예후와 속진후(진번후)가 군사로 도와서
5년만에 앙골을 평정할 수가 있었다.

16. 20세 고흘한검 40년(BC.1341) 공공(共工)인 공홀이 구한의 지도를 제작하여 바쳤다.

17. 21세 소태한검 47년(BC.1,291) 은나라 무정왕(BC.1,339∼1,280)이
귀방(산서성, 섬서성 북쪽: 원래의 고구려 본거지 : 중국은 이 땅을 훈육, 귀방, 흉노, 동호 등으로 기록했음)을
이기더니 대군을 이끌고 색도(산동성), 영지(하북성 천안현 서쪽 : 북경서쪽 고죽국 위치)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군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

49년(BC.1,289) 개사원(서요하 상류일대)의 욕살 고등이 귀방(개사원 서쪽)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니
일군국(몽고남쪽, 천산동쪽의 알류, 거연일대?)과 양운국(청해성일대?)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쳤다.

※ 이때의 고등은 아사달 서쪽 전체인 서 요하로부터 티베트까지 관할하게 되므로서
그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서 아사달의 우현왕이 되었고 그 세력을 이어받은 손자 색부루는 군사혁명으로
아사달의 한검이 된 후 나라이름을 조선이라고 고친다.

한국과 중국의 기록에 조선이라고 쓰여진 국호는 이때 이후부터 사용된 이름이므로
그 이전에는 국호가 아사달(朝, 또는 朝那)이었다. 이때부터 왕의 칭호를 왕검이라고 쓴다.

18. 24세 연나왕검 2년(BC.1,160) 여러 한((汗)들이 조서를 받들고 소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지냈다.

19. 27세 두밀왕검 원년(BC.997)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20. 32세 추밀왕검 3년(BC.847) 선비산(섬서성 북쪽, 서쪽, 몽고남쪽 일대)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
추밀왕검 12년(BC.838) 초나라 대부 이문기가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했다.
(이상 한검세기 참고)

21. "대진국 성종에 이르러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여 이물, 철원, 사불, 암연 등의 여러 부를 두고
북쪽(흥안령 서쪽)은 염해, 나산, 갈사, 조나(朝那), 석혁, 및 남북 우루를 공략하여 여러 부를 두고 ----
난하의 동쪽은 장령, 장령의 동쪽은 동평이라 하며 우루는 북쪽(동몽골 흑룡강 상류 남북)에 있다.

※ 우루는 흑룡강북쪽에 있었는데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몽골고원쪽으로 이동하여
동몽골 흑룡강 상중류의 시베리아에 있다가 후에 점차 남하하여 부여의 옛 땅인 흑룡강남쪽으로 내려와
동몽골 흑룡강상류를 경계로 남우루와 북우루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베리아가 추워지자 캄차카반도 지역의 구다천국과 우루국, 부여등은 점차 남하하여 서요하와 북경일대에서
우리역사의 주축세력을 이루게 된다. 이들중의 일부와 수메르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 한국기록의 요점 :

1. 수메르란 이름은 BC.7,200년 전에 만주 동부에 있던 나라로서 BC.4,500년 전후의 지구변동으로 민족일부가
서쪽으로 이동하였는데 후세에 "소머리"가 알파벳 문자로 표현하면서 발음이 수메르로 된 것이다.

한문식으로는 "수미리"인데, 만주동북부지역의 원래 스메루 본거지는 후세에 발음이 바뀌어
주신, 수신, 숙신, 속신, 조선, 소밀, 속말, 말갈 등으로 변하고 대략 BC.4,500년 전부터 민족이 이동하면서 가지고
간 "소머리"는 천산지역, 인도지역,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더 오래 까지 지속되었다가
 
수메르가 망하면서(BC.1,750년경) 서아시아에서는 사라지게 되는데
우리역사에는 BC.997년 전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는 국가적인 면모가 아니라
동양보다 훨씬 뒤에 생긴 후발 소성읍(小城邑)국가였는데
서양인들이 수메르란 중심국가로 인정하면서부터 세계에 국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BC.3,000년 전후의 한국과 중국의 광대한 국가규모로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는 작은 성읍에 불과했다.
민족의 이동경로를 보면 수메르란 이름이 여러 지역에 있을 수 있고
 
수메르의 중심국가는 지금의 발하시호 근처였을 것으로 보여지며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남북으로는 몽고에서 인더스강 하류까지,
동서로는 티베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큰 십자벨트(十字belt)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인도는 티베트, 몽골, 서부이란이 광역이었다."

"가나안 지방의 경계선은 시돈에서 시작하여 그랄 쪽으로 내려가다가 가지에 이르고
거기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쪽으로 라사에 이르렀다. 이것이 씨족과 언어와 지방과
부족을 따라서 갈려나간 함의 후손들이다"(창10:19)에서 티베트의 라사가 나온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사라진 이스라엘 열 부족을 찾는 일을 맡은 단체가 펴낸 저서 중에
구약성서에 언급된 이름들 중 언어학적으로 캐쉬미르와 그 주위에서 유사하거나 같은 것들 즉 부족, 씨족, 가문 개인, 마을, 지역, 기타의 지명을 포함하여 적어도 300개 이상을 열거할 수 있다고 한다."

"캐쉬미르 주민들은 외모, 신체적 특징, 생활방식, 태도, 도덕, 성경, 옷 입는 방식, 언어관습, 풍습, 습관 등이
전형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것이다"
(7만년 하늘민족의 역사 참고)

이러한 후세의 연구로 나타난 것도 과거의 민족분포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세계가 내세우고 있는 수메르는
동양에 있던 수메르국의 변두리에 있었던 작은 읍락국들의 역사일 뿐이다.
이것이 서양문명의 원조가 되었는데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만큼 발전하니 그들의 뿌리가 커다랗게 확대되고 부각되었으며
세계문명의 원조라고까지 둔갑된 것이다. 수메르국의 중심은 결코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다.

2. 우리 관경이 북쪽으로는 구다천국이 있는 캄차카 반도까지 나타나고 서쪽으로는 티베트까지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말과 관습이 민족의 이동과 함께 넓게 확산되었다.
 
요하 서쪽 소개마 지역- 몽고- 알타이- 천산- 티베트- 파미르지역은 서로 붙어있고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인도지역과 수메르지역, 터키지역에 우리의 문명문화가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인접지역에 속하고 있다.
 
세계 모든 민족의 신화에 나오는 하늘기둥, 생명나무, 영생수등의 나무는 한웅의 신단수로부터 뻗어나간 것이다.
인도, 수메르, 터키지역의 말과 풍습이 우리와 같거나 닮은 것은 한민족의 이동과 교류에 의한 것이다.

3. 중국인들이 오랑캐나 흉노라고 한 민족이 모두 우리민족임이 나타난다.
제 5절 : 중국의 고기록


1. 복희는 수인씨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복희 BC3,528-3,413)

2. 복희의 뒤를 이어 여와(여오와 또는 여호와로 발음할 수 있음)가 임금이 되었다.

3. 복희와 여호와는 중국, 인도, 수메르의 중심인 곤륜산에서 결혼하였다.

4. 신농이 일어나 임금이 되니 여와족은 밀려나게 되었다.
(신농 : BC.3,218 - 3,078)

4. 신농의 유웅국 마지막 임금 유망은 우리 밝달나라 치우한웅에게 쫓겨 산서성으로 밀려났고
또 황제헌원에게 패하여 신하(바람의 신 풍백)였던 소호국(少昊國)의 장수들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헌 원 : BC2,692 - 2,592)
(소호국 : BC.3,700∼BC.2,600년경)

※ 중국의 기록에서 복희- 여와족(BC.3,528∼3,200), 신농족(BC.3,218∼2,600), 소호족(BC.3,700∼2,600)들이
전쟁에 패한 시기와 메소포타미아에 새로운 문명이나 새로운 왕조가 나타난 시기가 일치하고 언어, 풍속,
문자 등이 한국, 중국, 수메르가 같으니 이들의 이동민족임을 알 수 있다.

수메르의 우르 왕조를 건설한 사람이 "메스 안내바다" 즉 바다로 온 사람이라고 했으니
이들 중 소호족은 바다로 이동한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그런데 수메르 신화에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 같다고
했으므로 중국에서 고기비늘처럼 생긴 갑옷을 입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치우한웅(BC.2,700)의 갑옷을 처음 본 중국인들도 무엇인지를 몰라서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말을 했다."
"동두철액 즉 머리는 구리이고 이마는 쇠로 되었다"고 했을 정도이니 머나먼 수메르 지역에서는 고기 비늘처럼
생긴 갑옷 입은 사람을 큰 물고기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또 건국시기도 일치한다.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점령당한 멕시코 조상들의 깃털달린 뱀(갑옷 입은 사람) 케찰코아틀도
우리민족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남미 인디오들의 역사가 단계적으로 발전된 문명이 아니고
여러번에 걸쳐서 갑자기 개화된 문명으로 나타나는 것은 중국과 한국의 전쟁시기에(BC.3,000∼AD.1,300년)
배를 타고 이동한 부족집단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정창씨는 우르왕조 건립자가 소호국 사람(갑옷입은 장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복희-여와족은 먼저 도착하여 수메르 최초의 도시 키시를 세웠다가
나중에 도착한 강력한 무기와 갑옷을 입은 소호국 사람의 우르왕조에게 패하고
우르는 또 다른 동족들이 세운 우르크에게 패하게 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성읍국가(城邑國家)를 세운 같은 족속간의 대결인 셈이다. 밝나라가 12왕국이었으니
12부족의 대결과 단합이 이루어졌을 수 있다. 복희-여와족은 치우씨이고, 신농족은 고시씨이며,
소호족은 김천씨이다. 그러므로 수메르는 씨족의 성읍(城邑)으로 나타난다.

밝달나라 한웅의 역대는 치우씨와 고시씨가 경쟁적으로 가장 많은 한웅이 되었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전하는바가 없어서 구분할 수 없다.
중국의 상고시대는 고시씨와 치우씨의 혈족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시씨는 한반도의 조상 고시례의 방계혈통으로서 소전, 신농, 헌원, 고양, 고신, 요임금, 순임금,
하나라, 주나라 성씨이고 치우씨는 5세 태우의 한웅 - 복희씨 - 치우한웅 - 강태공의 제나라로 이어졌다.

나라이름만 한국과 중국이지 중국의 백성과 임금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혈통족벌의 대결이 사라졌다.

따라서 상고역사는 한국의 땅이다, 또는 중국의 땅이다 하는 관경에 집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모두 집안싸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만주까지 다 중국의 땅이니 상고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되었다.
 
따라서 누가 이겼고 누가 졌다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나 역사를 후세의 강약에 맞추어
편파적으로 써서는 아니 되므로 공정하고 정직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

제 6절 : 알타이 신화(전 서울대 교수 박시인 박사 저서)에서 발췌

1. 한국의 수리(首利, 鷲), 인도의 수랴(SURYA)는 모두 태양신을 의미한다.

2. 수메르 역사 연구가들은 토판기록 해석으로 수메르인이 검은머리의 사람이라고 했고
이란고원 동쪽 혹은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로 되어있다.

3. 수메르와 고대 중국의 글자가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단계로 발전한 것이 같고 두 나라 말이 상당수 같은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인종적, 문화적으로 같고 또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4. 나일강 하류 고대 이집트 왕조중 힉소스(HYKSOS)는 BC.1,750년경 중앙아시아 이동민족이 세운 왕조다.
이 시기는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는 시기이다.

5. 몽고말과 한국말은 같고 모음조화 현상도 같다.
몽고족은 고구려 서북변에서 실위몽골(室韋蒙골)로 역사상에 나타난다.

6. 성경의 빛의 하느님과 어둠의 마귀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빛의 하느님인 아후라마즈다와
어둠의 마귀 아힐만을 본딴 것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의 비석에는
머리위 공중에 아후라다마스가 있는데 사람의 몸에 새의 두 날개를 가진 형상이다.

※ 수메르의 아라(ALA)는 하늘과 인간의 중간에 있는 수호신을 의미한다.
희랍어에서 발전한 영어 아라(ala)는 "날개, 날개모양"의 뜻이므로 현대에도 서양사람들이 날개 달린 천사를
그림과 영화에 사용하는 것은 모두 수메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그것은 한국의 성령새(검새)를 뿌리로한 인류사상의 전달이지 결코 그리스의 사상이 아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BC.4세기쯤 파생된 미트라교의 미트라 신을 태양신이라 하고
미트라 신의 길 안내자를 까마귀라고 한다. 동북아시아의 나랏님을 햇님이라 하고
그 길 안내자를 까마귀라고 하였으니 이 새는 분명 까마귀이다.

미트라 신의 탄생을 깊은 산의 무화과나무 아래 큰 바위가 갈라지면서 한 손에 횃불, 또 한 손에 검을 들고 나와
세상을 밝게 비추고 세상을 정복한다는 신이다. 이 미트라 신의 길을 안내해준 새가 까마귀(성령새)였다.
(성인들이 성령을 받을 때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성령새는 바로 햇님의 정령새인 까마귀이다.)

7.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마야, 아즈텍, 잉카 등의 수수께기 문명의 조각에 중국 은나라, 주나라 시대의 청동기에
사용된 타오테(T'AOT'IEH)라는 괴상한 무늬와 같은 것이 사용되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어왔다고 한다

남북 아메리카 문명도 동북아시아의 전쟁시기에 맞추어서 물결처럼 파동적으로 갑자기 발전 개화된 문명으로
나타났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요구된다. 그들의 인종, 언어, 풍습 등이 너무나 많이 우리와 같다.
제 7절 : 기록의 종합적 검토


1. 메소포타미아 역사는 BC.5,000∼4,500년경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어떤 인종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 이 시기는 북극이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BC.4,500년 이전시대의 자취들은 옛날 시베리아에 에스키모 같은
소수인 들이 살은 것과 같이 인도나 메소포타미아 도 소수인 들이 거주한 흔적을 말한다.

지구기온이 12,500년 전에 현재와 비슷하다가 계속 상승하여 7,500년 전후시대에는 현재보다
약 2.5도나 높았다가 점차 하강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지구의 빙하가 완전히 사라졌을 정도이니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얼마나
무더운 시대였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기후감각으로 과거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 시대에 북극이 아프리카에 있었지만 현재처럼 북극권이 강하고 큰 것이 아니라
현재의 반절정도로 북극권이 쇠약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수메르나 인도지역에 사람이 살수 있었다.
다만 소수인들이 천산- 파미르- 인도- 메소포타미아에 살은 흔적이지 결코 대집단의 거주형태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구석기와 신석기유물들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일부학자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수메르가 인류문명의 시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빗살무늬토기도 우리보다 훨씬 늦다.

2. BC.4,500∼4,000년경부터 민족적 집단이 도착된 것으로 나타난다.

※ 지금까지 역사를 연구한 결과와 같다. 정확한 판단이라고 본다.
BC.4,500년 전후에 아프리카에 있던 북극이 현재위치로 이동하고 지구기온이 높아 서아시아 일대가
급격히 따뜻해져서 사람살기에 아무런 장해가 없었다.
 
이때는 일본, 한반도, 만주, 중국동해안, 시베리아 동해안이 거대한 해일로 덮치고 많은 땅이 물에 잠기자
사람들이 몽고고원지대와 서쪽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추세에 있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때는 환경이 열악하고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선발민족이 이동한 것이다.

BC.4,000년 전후시대는 한웅이 몽고지역에서 왕권을 물려받고 백두산지역으로 오는 도중
반고에게 천산 동쪽지역에 나라를 세우게 하였으므로
이때부터 동과 서의 통로역할이 되어 다수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시작 한 것이다.

3. BC.3,5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고도문명이 나타나고 인더스문명은 BC.3,000년경부터 고도문명이 나타난다.

※ 이것은 이라크지역은 주로 평지로 연결되어있고
인도지역은 험준한 파미르고원을 넘어야 했으므로 약간 늦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4. BC.4,000∼BC.3,000년경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긴밀하게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이것은 두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긴밀하게 접촉을 가지고 있었다면
같은 동포들이 나뉘어 살았다는 증거이며 언어와 풍속이 서로 닮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다른 민족 다른 지역보다는 훨씬 긴밀한 접촉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약 5,300년경의 유물로 추정되는 원통형 인장에 새겨진 배는 이 시기 이전부터 수메르와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죠달 문명권은 바다로 접촉했음을 알 수 있다.


< 배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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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C. 3,000경에 메소포타미아지역에 10개정도의 도시국가 형태가 나타난다.

※ BC.3,500∼3,000년 사이에 인구이동이 많이 이루어 졌음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 복희의 뒤를 이은 여와가 신농에게 밀려났다. 이때 여와족 일부가 이동하여
메소포타미아에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의 조상 이름인 여와 또는
여오와(여호와는
알파벹 발음이지 수메르식 발음이 아니다)를 신성시하여 신격화시킨 이름으로 보여진다.

수메르의 문자가 복희의 팔괘 획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바로 여와족에 의해서 처음으로 문자가 나타난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민족은 한민족인데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6. BC.2,500년경 아답왕 루갈이 수메르 전지역을 정복하여 통일한다. 그후 수메르는 BC.2,200년대에
사르곤 대왕에게 전지역을 정복당한다.


※ BC.3,000∼2,200년까지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전쟁이 많았던 시기이다.
바빌로니아의 최초 민족구성이 어떤 인종인지를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아쉽지만 바빌론도
역시 몽고리안과 혼혈된 민족일 것이다.
BC.2,600년경에 수메르 제1왕조가 건설되었는데 "제1왕조의 엔릴영웅이 소호국 사람이다."고 했다.
그런데 유웅국 마지막 왕과 소호족이 치우한웅과 헌원에게 패하여 쫓겨난 것이 BC.2,700∼2,600년 사이이므로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7. BC.2,000년경 아모리인과 엘람인들의 침략에 힘을 잃게 된다. BC.1,950년에 바빌론의 함무라비 대왕에게
수메르는 완전히 멸망한다. 수메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함무라비왕(BC.1,792∼1,750)은 태양신을 예배했다.


아카드왕(BC.2,254∼2,218)이 자그로스 산맥의 룰루비족을 정복한 기념비에는 꼭대기에 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태양신을 숭배한다는 의미이다.


또 신들만이 쓴다는 두 뿔이 달린 모자를 쓴 나람신의 모습은 치우한웅(BC.2,700-)이후의 갑옷과 투구가 전달된 것으로 보여진다. 투구에 소머리 모양의 뚜 뿔은 고구려시대까지 이어온 우리의 소머리 사상과 풍모이다.

8. 수메르어는 BC.3,500∼1,750년경까지 존속되다가

그 이후로는 아카드어와 바빌론어에 흡수되지만 언어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는 시기가 바로 BC.1,750년경이다.

9. 이스라엘민족은 여러 민족과 혼혈되어 우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졌다.
문자의 발전과정이 중국과 비슷하지만
언어는 몽고, 한국, 중국, 티베트, 인도, 메소포타미아가 서로 친척관계에 있으며
관습과 사상은 한국- 인도- 수메르가 가장 가깝다. 문자는 중국과 가깝고 말은 한국과 가장 가깝다.

한국과 수메르의 관습과 사상이 무려 33가지나 일치하고 있어서 인간생활 전부가
우리와 같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10. 수메르는 안(an), 아누(anu)가 최고신인 하늘신이고 인(in) 또는 닌(nin)은 아카드어의 베룸(주님)을 의미한다. 이 칭호들은 BC.3,000∼2,000년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안(an)은 우리말의 한(han)이 변한 것이고 인(in) 도는 닌(nin)은 우리의 인(仁; 님)이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BC.2,000년경부터 "인"에대한 혼란이 생기는데 강족들이 등장하고 전쟁이 많아졌으며 정복당했기 때문이다.

11. 홍수이전의 왕들의 이름이 7개가 사용되었다.

※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대홍수) 이전의 "7세환인"시대가 수메르에서도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의 "신세7대(神世七代)"도 환인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2. 우리는 정통왕권을 물려받은 적통(嫡統)민족으로서 9,200년 전부터 대략 2,000년 전까지
무려 7,000년 동안 시베리아, 몽골, 파미르지역까지를 관할해온 동북아시아의 주인이었다.

따라서 역사, 전통, 관습, 사상, 언어, 문화 등 전반에 걸쳐서 몽골, 중국, 한국, 티베트, 인도, 수메르가
서로 친척간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들의 모체문명은 한국이다.


우리가 티베트, 파미르 지역까지 영향권에 두고 있었던 BC.1,600년경까지의 수메르는
티베트- 파미르- 인도- 서남몽골(알타이지역)- 메소포타미아가 광대한 민족의 십자벨트를 이루고
수메르의 중심은 파미르- 알타이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 민족벨트의 끝자락에 불과한 지역인데 역사기록의 유물유적이 많이 나오게 됨으로서
메소포타미아가 마치 수메르의 본부이며 중심인 것처럼 이해되기에 이른 것이다.



<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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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수메르국은
메소포타미아가 아니고 파미르- 알타이지역에 있었던 수메르 중심본국으로 보여진다.

수메르지역의 족속은 만주쪽에서 건너간 수메르족과 우르족,
중국쪽에서 건너간 복희- 여호와족, 신농족, 소호족, 몽골쪽에서 건너간 골족,
알타이지역의 여러 족속들이 이란, 이라크, 터키지역에서 일어나 서아시아의 역사를 이룬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중 일부가 이집트에 왕국을 세웠다.(BC.1,750년 힉소스 왕조).
이집트는 수메르의 영향을 받아서 수메르 보다 늦게 BC.2,900년경에 문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아시아대륙의 모든 문명의 원조는 아리수 문명이며
한국은 아리수문명, 황하문명, 인더스강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 나일강문명의 원조이다.


원시반본의 계절에 새로운 문명은 인류문명의 원조인 한국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나?!" 가 있는가?

상고역사는 역사학자들이 거의 외면하고 있고 또 공자, 석가, 예수를 신처럼 떠받드는 종교계가
상고시대의 우리조상들을 배척하니 상고역사가 살아날 희망마저 끊어진 상태이다.

거기에다 인류문명의 원조는 수메르라고 주장하고, 서양철학을 태양처럼 받들면서 우리철학은 있는지조차
모르는 무식쟁이들이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무슨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


종교인들은 오직 자기종교만이 절대라는 아집속에 빠져서
여러 종교계통의 학교재단에서는 종교역사보다 오래된 우리의 상고역사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배척하며,

학자들은 지금 서양학문의 기풍을 반절정도는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데도
모든 학문의 기풍이 서양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 할뿐 아니라

인류최고의 역사와 민족철학을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니
그러한 지식을 전달받은 학생들이 민족의 내일을 훌융하게 설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정치가들은 권력을 향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쳐질 만큼 타락되어 있으면서 어떻게
민족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흩어진 민족에게 희망이 있을 것인가?

지금의 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은 현재상황이 100년이나 200년 갈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학문에 대한 고집과 자기종교에 대한 아집이 강철같이 단단하게 굳어있어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머지않아 그들은 무너지고 산산히 깨어지는 날 그때가 되어서야 통곡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지금 모든 교육을 민족의 정서교육으로 바꾸어야
그나마 우리 본연의 길을 갈 수 있는 희망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