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적인의미라면 무척 광범위한 문제입니다

 

약축한다면

 

민족의시조

민족국가 기원이라는점

동일한 어족군이란점

동일한 문화 를공유한것이라는점

 

고조선은  북만주일대에서 40여개의거수국(중국에서 제후국이라함)으로 구성된 연맹국가입니다

최초 부족국가- 성읍국가- 군장국가에서 연맹왕국으로  발전된국가입니다

 

우리역사에 부여란 국명이 많습니다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갈사부여  백제성왕이 서기500년경 

국명을 남부여로 개명하고 도읍지도 부여라고한것은

대표적으로 고조선의 정통성을 가진민족이란점을 강조한것입니다

 

 

단군왕검에게는 4아들이 있는데

후에 2대 단군이 되는 부루, 그리고 부소(고리국왕) 부우(진번국왕) 부여(부여국왕) 가 있었는데,

고리족이 개국한 부여란 이름은 후에 이 단군왕검의 넷째아들 부여를 따서 세운 국가입니다.

즉 고조선 거수국 대부분이 단군조선을 개국한 중심종족으로

생각 단군조선을 계승할 자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대부분 국명을 부여라 한것입니다

 

 

우리민족을 한민족이라하는데는 그이유가잇습니다  민족구성은  퉁구스계 에맥족입니다.

  이예맥족이 퉁구스계로써 최초로 농경국가로 발전된 종족인데

대맥수(현재 압록강 일대)지역에서 집단을이룬  족장중심세력였습니다 

 

이런 종족중 사회구성의 단위중 부계적 씨족이고, 결혼은 혈연적 외혼제(外婚制)를 따르고 있는 종족중

농경을 주로삼으며  동일한 풍습과 족장 공동체를  () 또는 (), ()  이라호칭하였습니다


예맥족 족장공동체를 한 이라하였고  지금도 선비족과 거란족은 함 이라 하며 

흉노와 돌궐은 훈 이라 지칭한데서 비롯된것입니다

((韓/넓고 크다는의미) (/우리라는공동체의미)(/무리훈 한종족이란의미)1

고종이 대한 제국의 한을  삼한의 한에서 그 뿌리를찾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후세 역사가들의 추리이며

잘못된 식민사관에서 해석된것입니다

 정조때 실학자 유득공의  발해고에 이 한에대한 설명이 명확하게 나옵니다

고종실록에도 이부분 설명을 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고종실록에도  한은 우리상고사에 종족이 넓고 크다는의미로 한이란글을 채택한것입니다.

그래서 한민족 배달민족(배달이란 밝다 조선)이라한것입니다

 

 

고조선이후 등장한  국가는

만주일대는 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행인 구다 개마국 양맥 비류국

한반도 북부지역에는 동예 옥저 대방 낙랑국(최리의낙랑국)이며

한반도 남부에는 진 (삼한) 으로 역사전면에 등장 합니다

이를 상고사에서 원삼국시대라 합니다

 

이들원삼국시대 에  북만주를 졸본부여를기반으로 중앙집권제국가로 발전시킨 고구려

마한54개국을 차레로 병합하고 정복하여 백제

진한12개소국중  사로국이 차레로 정복 병합하여   신라가 되어 민족국가 의  삼국시대로 전개시킨것입니다

 

여기서 변한12개국이 6가야로 정리되는데

가야가 연맹왕국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되지못하여 멸망의 길로 접어든것입니다

 

고조선-원삼국시대 -삼국시대 -통일산라-남북국시대-후삼국-고려--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진 우리국가변천사입니다

즉 수많은 군장국가와 연맹국가의 흥망이있었지만 대부분 이들공동체는 

씨족 중심 농경단위구성이므로 종족의 변천은 없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보면 고조선은 민족사적인면에서

민족동일성 으로기반으로한 민족국가 태동 을한것이가장큰 기여를한것으로봅니다

 

석가모니의 혈통
 
석가(사카)족은 현재 네팔(티벳남부) 포탈라카국 감자대왕의 후예로서

지금의 네팔 타리이지방 카필라국에 정착하였고 코살라국의 주인이 되었으며

카필라국의 수도난다(정반왕)는 마야부인에게서 석가를 낳았다.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과 藁離族은 동쪽에서 이동했으며

몽골리안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고리족(코리족=치우족=묘족=고구려=부여=몽골)이

네팔지역에 이동한것으로 추정하는< 석존몽고인설>을 주장하였다.
 
마야부인은 常盤大定의 석가모니전에 의하면

코리족(藁離族,九黎族=고리족=고구려=부여)이며 정반왕과 마야부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이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 인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생존시 10대 제자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 부루나 다라미자 尊者>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되면 굵은선 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 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 의 중간 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m90cm정도로 짐작되는 형상이다.

 

아래 그림이 부루나 존자가 생존의 석가모니를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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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초상화 (대영박물관 소재)

 

인도=아리안족(북부)+드라비다족(남부)

 

원래 1만년 전의 언어로써 한반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인도 원주민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이 된 드라비다족(인도에 벼농사를 알려준 한반도 사람들.

고대 한반도 사람들은 해양족들로 아시아와 유럽을 횡당했다.)이 인도의 토착민들이었는데,

 

중앙 아시아에서 내려온 아리랑족(역시 백인들과 피가 섞인고대 한국인들로 서양인들에게

고대 한국어를 전파하고 유럽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아리안족은 인도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으로도 이동하여 유럽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이 되었다)에 의해 정복된 후,

 

동북아시아 샤먼계급을 1순위로 정하는  카스트 계급제도와 힌두교로  

아리안족 우위의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드라비다족은 남부지역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러한 아리안족 우위제도에 대해 환국의 홍익인간이념에 입각한

불교사상으로 제동을 건 인물이 또한 동이족 석가모니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의 부모는 모두 고리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고리족은 본래 북방유목민족으로 바이칼 호수주변에서 살다가 일부가 북경지역으로 내려와

고리국을 세웠으며, 단군왕검은 둘째 아들 부소가 고리국 제후로 삼았고,

 

넷째 아들 부여를 부여국의 제후로 삼았다고 규원사화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치우는 고리족의 황제라고 중국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치우족은 철을 잘 다룬 씨족으로 한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황제헌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 이유도 이 철제무기를 사용한데 있었다.

 

그렇다면 시기적으로 고리족은 신시배달국 시대에  치우족이 황제헌원과의 전쟁과정에서

만주에서 중원으로 내려와 개국한 씨족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코리는 고리로 발음되며, 구리,구려라고도 발음된다. 고구려의 어원은

바로 이 고리(구리)에서 나온 것이며, 해모수와 고추모의 선조가 바로 북경지역에 위치한

고리국 왕족이였다. 그래서 고구려가 북경까지 지배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코리족은 제철기술이 뛰어난 북방유목민족으로써

청동기.철기문명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단군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중국문헌에도 고구려-부여의 선조는 맥족으로 요서지역과

요동지역 청동기문명의 주역인 조선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군조선.고구려.부여는 집집마다 갑옷이 있었고, 철갑부대를 보유한 강국이였으며

고대에 제철기술은 최첨단 기술로 단군조선.부여.고구려가 아시아를 지배한 부국강병의 원천이였다.

 

따라서 아시아 전역이 단군조선-부여-고구려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아시아 전역으로 이동이 가능했을 것이며, 정착하여 국가를 개국했을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는 본래 동방족의 터전이며, 인류문명의 고향이다.

 

중국 왕들의 조상들이 한반도 사람들이며, 대인들과 군자들의 땅이 한반도였다고

4천년경 중국 문헌인 [산해경]은 기록하고 있다.

 

즉, 한반도는 서양인들이 찬탄하며 "빛은 동방에서"라고 표현한 그 동방지역인 것이다.

산천좋고 물맑은 한반도는 그야말로 에덴동산으로 명상하기 좋고 수련하기 좋은 땅으로

석가모니가 소중히 여겼다는 [금강경]도 한반도 금강산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즉, 불교사상은 이미 불교가 탄생하기 전에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민족사학을 내세우는 역사가들도 가장 오래된 땅이며,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한반도를 무시하고 중앙 아시아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종교와 문명이 탄생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규정하고 '이전=에덴'이라는 곤륜산을 에덴으로

기술하려하는데, 그것은 지구과학적인 인식부재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한반도 지역은 유적유물상 세계 최초최고가 제일 많이 산재된 지역이다. 

북한산의 산꼭대기는 지하층에서나 볼 수 있는 화강암이다. 즉,

한반도는 지각변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소금기가 없어 물맛이 좋고

땅이 비옥하여 일찌기 벼농사를 시작한 지역이며, 2만년 전에는 육지였던 황해 평원에 마문명이

존재하여 단군3조선 중 '마한'에 해당하는 한반도가 '마'라는 어원을 갖게 된 것이며,

 

황해가 바가 되면서 사람들이 대거 비옥한 한반도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고,

한강-대동강-압록강으로 점점 이동하면서 고인돌과 피라미드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만주 집안에 '환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한반도에서 이주한 한인족이 정착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후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환인족이 한반도문명을 유라시아 지역과 아메리카 지역으로 전파시켰다고 보면 될 것이다. 

대륙의 삼위태백이니 하는 산이름의 원형도 한반도에서 나온 것은 당연하다.

 

[윤복현]

자료 출처 : http://blog.naver.com/kangsu2040?Redirect=Log&logNo=150035438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