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이족은 '동방의 오랑캐'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이족의 참 뜻이 아니다.

 

동이족(東夷族)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동쪽에 있는 여러 부족을 총칭하여 동이족 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주변 민족을 오랑캐라고 하고,

중국의 남쪽에 있는 여러 부족을 남만(南蠻), 북쪽의 제 민족을 북적(北狄),

동쪽의 제 민족을 동이(東夷), 서쪽에 있는 부족을 서융(西戎)이라 하였다.

동이족에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비롯하여 만조, 일본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이 그 중 대표적이어서 중국에서 부르는 동이족은 한민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설문해자』를 보면 동이족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 그 이름 답게 고대 우리 조상들은 말 잘타고 활 잘 쏘았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궁에서 석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중화즉 하늘아래의 중심국가라고 중국이라합니다

그래서 이 중화 주변을 모두 오랑캐라고 하였는데 그 명칭이 동서남북방향으로 다 틀립니다

 

동: 동이(東夷)

 

서:서융(西戎)

 

남:남만(南蠻)

 

북:북적(北狄)이라 합니다

이 한자 이 융 만 적자는 모두 오랑캐라는뜻입니다

 

동이

현재의 중국동북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지역과 우리한반도를 말합니다.

동이족은 거란 말갈 선비족 만주족등등을 말합니다 즉 만리장성 동북쪽을 말합니다

 

서융

이 종족은 현재 신강위구르와 중앙아시아일대 흉노족을 말합니다

 

남만

이 종족은 중국남부지역 현재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일대를 말합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남방을 점령하면서

그 만족우두머리를 여러번 잡았다가 풀어주는 내용을 읽으셨을것입니다

칠종칠금(七從七擒) 이란 고사입니다

그게 바로 남만족의 맹획입니다

 

북적

대표적으로 돌궐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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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
<고사변>

 

3황5제의 8대 임금들이 숙신(조선의 옛 이름)에서 일어났다
<산해경>

 

은나라의(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다.
<사마천 사기>

 

은나라는 이의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의 나라이다.
<사마천사기>

 

치우의 호칭은 동이에서 시작 되었으니,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예로부터 천자라 한 것이다.
<중국의 학자 채용이(독단)에서 남긴 기록>

 

동방을 이라고 한다.
이는 곧 뿌리이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

 

이는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며 활궁자와 큰 대에서 따온 글자로
그사람은 어질고 오래 살며,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설문 : 자해>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순리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나
오직 동이만이 큰 것을 따르니 대인이다.

 

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곳은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살펴보면 그 곳은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역시 크다.
<설문 : 대부>

 

 

동이족의 대영웅으로 우리는 지나(중국)의 공손헌원과 싸운

치우천왕(蚩尤天王:배달국 제 14세 한웅인 자오지 한웅)을 든다. 하지만

우리는 동이족의 또 다른 대영웅을 모르고 있었다.

이 분은 고구려 유민인 이정기 장군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이다.

그 인물은 바로 서이족(徐夷族)의 서언왕(徐偃王)이다.

 

서언왕은 중원에 진출한 동이족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신시 배달로부터 개시된

동방민족(東方民族:동이족)의 중원개척사는 발해 연안을 발판으로 단군조선 때 까지 계속되었다.

 

한족 문헌에 동이 사람으로 명시된 인물은 신시(神市:배달국)의

태호복희(풍씨로, 동이족의 한 갈래인 풍이족의 조상), 염제신농, 청구(靑邱:배달국을 달리 이르는 말)의

치우천왕, 소호금천, 지나의 성군으로 알려진 순임금, 주 무왕을 도와 은 주왕을 토멸한 강태공 여상,

그리고 마지막 인물이 바로 지나족들이 치우천왕만큼 두려워한 서언왕이다.

 

서언왕에 대해 들어가기에 앞서, 태호복희, 염제신농, 치우천왕, 소호금천, 순임금,

강태공 여상이 동이족이 맞는 지에 대해 고찰하기로 하겠다.

지나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고사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皓:복희), 제준(帝俊), 제곡(帝?), 제순(帝舜),

소호(小皓), 그리고 설(은 시조)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이다. "

고사변을 보면 지나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 여기는 이들의 근원이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한단고기』를 보면 염제신농의 출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웅씨(雄氏)에서 갈라져 나간 사람 중에 소전(小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안부련 환웅(安夫漣 桓雄)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들어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신농(神農)은 여러 가지 풀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그는 뒤에 열산(烈山)으로 옮겨갔다."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에 의하면 치우천왕은 배달국 14세 환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 정의 편에는 "구려(九黎)의 군주는 치우(蚩尤)라 했다." 하였고,

사기 집해에는 "치우는 옛 천자다"라고 하여 치우천왕이 동이족의 제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지나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뿐 아니라

지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맹자 』이루장구 하편을 보면 순임금이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옮겨갔으며, 명조에서 죽었으니 그는 동이 사람이다."

지나 학자 서량지의 『중국사전사화』는 순임금을 동이족이라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순은 맥족(貊族:고구려를 건국한 종족)이며, 맥족은 곧 동이 부족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자손이다."

 

주의 일등공신인 태공망이 동이사람임은 지나의 대표적 역사서인 『사기』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 무왕의 스승으로 은주혁명의 일등공신인 태공망 여상은 동이 사람이다.

周武王王師 殷周革命 一等功臣 太公望呂尙 東夷"  이상과 같이 중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

지나족이 아닌 동이족임을 고찰하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언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단군조선 중엽 제23세 아홀 단군 때 은의 침입을 받자, 조선은 은을 즉각 격퇴시키고,

은의 회대지방을 빼앗은 후 그 곳에 조선인을 이주시켜 은나라를 포위하게 한다.

이 때 세운 나라가 바로 서(徐)국과 엄(奄)국이다. 지나 춘추시대를 보면 회대 지역에 제후국이 표시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이 서언왕의 나라가 호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나라의 서언왕(徐偃王)은 군대를 일으켜 지나 36국의 조공을 받는 대서제국(大徐帝國)을 건설한 동이족,

아니 한민족의 대영웅이었다. 『후한서』 동이전 서문을 보면 서언왕과 서이족에 대해 자세히 쓰여있다.

 "(주나라 3대) 강왕(康王) 때 숙신(조선)이 다시 왔고, 서이가 왕호(王號)를 일컫고 구이(九夷:동이족,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함)를 이끌어 주나라를 쳤다. 이 때 서쪽으로 그 세력이 성한 것을 두려워하여 동북지방의 제후들을 나누어주고 서언왕을 시켜 이들을 주장하게 하였다."

 

서국의 뿌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단군조선이었다. 서기전 1263년 23세 아홀 단군이 중국 동부 해안지역을 평정하고 영고씨(寧古氏)를 서(徐)땅에 임명했는데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지나 고대 문헌인 박물지(博物志)에는 서언왕의 출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대 우리민족의 출생신화인 난생신화 계통을 잇고 있다. 지나 학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난생 설화는 동이족 고유의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군(徐君)의 궁인(宮人)이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물가에 갖다 버렸다. 어느 사람이 이것을 주워다가 따뜻하게 싸주었더니 이름을 언(偃)이라 했다. 궁인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다시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하여 서군을 삼았다. 그는 신이한 사람이었다. 무원현 동쪽 십리에 서산(徐山)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의 사이를 드나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이 기록은 한민족 고유의 설화 유형인 난생설화이며 부여의 동명왕(논형에 기록된 난생설화의 주인공)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설화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원을 뒤흔든 서이(徐夷) 회이(淮夷)가 고조선계 또는 고구려계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또 선진(先秦)시대의 동이와 고조선의 관련성을 확실히 입증하는 대목이다 할 수 있다.

 

 

출처
직접작성한 글과 http://blog.naver.com/kissshine31?Redirect=Log&logNo=8001918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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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民族의 이름은 東夷族이 아니다.

우리 韓民族의 이름은 桓[韓]이다.

  

桓환은 우리 역사와 우리 민족의 시원적인 문자이다.

최초 우리 민족역사의 시작이 桓因환인에 의한 桓國환국이며

이 환은 '하늘. 하나님. 하나. 환하다. 밝다. 희다. 크다. 높다. 제일이다.

해. 동쪽. 양지쪽 등의 뜻이 담긴 소리글자이다.

 

환족은 천손족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환족은 우리민족의 시원이다.

우리 한민족의 이름은 과거에도 환족이고 지금도 환족이며 미래에도 환족인 것이다.

 

환국이후 환족이 성장하여 발전 분화하면서

'桓환'이 전음되어 '韓한. 漢한. 汗한. 干간. 칸. 한' 등으로 분화하였던 것이다. 

또한 桓환이라는 글자를 파자해보면 나무木자와 한一자. 아침旦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이 나무아래서 보니 하늘과 땅사이에서 밝은 해가,

즉 태양이 환하게 떠오르는 형상의 글자인 것이다.

 

그래서 桓환자에는 그안에 天地人천지인 삼재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원래는 '환하다'는 글자가 없을 때이니 한자음을 이용하여 표음표의문자로 쓰인 것이다.

이러한 문자를 나라이름이나 임금의 칭호나 민족의 이름에 붙이는 종족은

전부 환족에서 분화. 발전하였거나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인식과 역사기술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자주적인 역사인식이 아니다.

漢族한족의 시각을 통해서 본 사대적인 역시인식과 역사기술로서 중국을 中華중화로 보고

중원의 주변 사방을 夷이[오랑케이]로 본 宋代송대에 만들어진 華夷思想화이사상에서 나온

사대적인 대륙사관으로 사대모화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일인들의 한국침략과 강점기이후에는 일인들의 왜곡된 시각으로 한국역사를 보고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 왜곡. 말살하는 친일사관 또는 반도사관, 植民史觀식민사관,

황국사관이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얼룩져 있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은 桓族환족이며  지금도 환민족이요

한민족이며 미래에도 환민족이요 한민족인 것이다.

왜냐하면 환족은 동아시아 몽고리안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동이족이라는 말은 중국의 漢族한족이 중국의 서쪽으로부터 들어와 점차 성장하여

중국대륙의 서편에 한족의 나라체계를 갖추면서 환족에서 분화하여 세력이 크게 발전하자 秦진나라를 세우고

이후에는 중국의 한족이 중원을 장악하여 漢한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또한 한나라의 反間計반간계로 인하여 고조선의 내부 분란과

주체성의 상실로 스스로 무너지자 중국의 한나라가 단군조선을 어렵게 무너뜨리고

중원대륙을 차지하면서 동아시아의 원류민족인 '桓族환족'을 중국족인 '漢族한족'으로 전음시켜

민족과 역사와 강역을 전부 漢化한화하여 變易同化변역동화시켰 것이다.

 

중국땅의 중원이 한화되기 시작한 것은 秦진시대이며 이후에 漢한에 의해서

한족의 나라로 만들어지면서 환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모든 체제를 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의 찬란한 환족의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어우르기 위하여 桓환을 차용하여

그 음이 유사한 漢한으로 나라와 민족의 이름을 정하면서부터

한족들은 중원을 중심으로 한 華夷政策화이정책에 따라서 중원은 中華중화이고

동서남북의 주변민족은 夷이로 폄하하여

東夷동이[동쪽오랑케]. 西戎서융[서쪽되놈]. 南蠻남만[남쪽오랑케]. 北狄북적[부쪽오랑케] 등으로

비하해서 부른 비칭인 것이다.

 

東夷族동이족이란 동쪽에 있는 오랑케라는 뜻으로

동쪽의 桓族환족을 동녁의 오랑케족으로 보고 평정의 대상으로 보아 동이족이라고 비하한 것이다.

 

이를 사대모화사상에 빠진 新羅系신라계와 金富軾김부식 등이

한족의 철저한 중화사관에 의하여 중국땅의 모든 역사를 전부 잘라서

한족의 역사로 왜곡시킨 史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모방하였고

 오히려 중국인들보다 적극적으로 만주와 한반도의 자주적인 환민족의 역사를 다 잘라냈던 것이다.

 

金富軾김부식은 宋송나라와 金금나라의 지시를 받아 중국의 중화사관을 받아들여

한족의 시각과 역사관으로 한국사의 찬란한 고대사부분을 삭제하고 환국과 배달나라.

단군조선. 부여와 고구려. 대백제. 가야와 발해 등의 위대한 역사와 민족사강역을 축소. 왜곡. 말살해 버리고

고대사료까지도 전부 소각인멸하는 만행을 저지른 자이다.

 

그리고는 중국인들이 하는 속임수의 말인 '동이족은 큰 활을 만들어 쓰는 민족이라고 하는 등의

왜곡된 해석으로 한족들이 둘러댄 것을 좋은  내용으로 인식하여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민족의 자주적이고 웅대한 고대의 대단군조선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중원대륙에서의 위대한 환족의 역사강역과

대륙의 환민족을 한족에게 다 내주고 스스로 왜쇄민족이 되어 한반도 안으로 오그라든 격이 된 것이다.

 <수정편집>

 

자료 출처

http://cafe.naver.com/ycj195629.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