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 상징하는 옥문화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국경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고,

 

경제를 중심으로한 지구촌 의 경제와 문화는 급속도로 재편이 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는 나를 발견하곤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정체성을 무엇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도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미래의 나를 바로 알고자 함이다.

STB 한韓 문화 특집에서는 잊혀져가는 우리 한韓 문화를 복원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상생방송 http://www.stb.co.kr/program/info/149/index.html

 

MBC 2부작, `곡옥의 비밀

http://blog.daum.net/ryu3314/317462

 

곡옥의 기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y_drum&logNo=80151248235

 

곡옥(曲玉)의 근본은 태극문양이며

미세한 움직임에도 살랑 살랑 움직이도록 고안 되어

여러 장신구에 매달아 사용 하여 온 옥돌로 된 귀한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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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http://www.art2me.org/images-art/08-gamsang/korean-art/04-sinla/10%EC%8B%A0%EB%9D%BC-%EA%B3%A1%EC%98%A5.jpg

 

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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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 큰 무덤 북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

나무를 형상화한 ‘출(出)’자형의 끝이 생명을 상징하는 연꽃 봉오리 모양이며 비취색의 곡옥이 매달려 있다.

강우방 교수는 곡옥은 영기무늬를 삼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용의 초기 형태를 형상화한 ‘옥룡’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제공 강우방 교수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독특한 금관일 것이다.

찬란한 순금 금관에 수없이 매달린 조그만 원형의 금판 구슬들은 미동에도 반짝이고

함께 매달린 비취색 곡옥(曲玉)들은 신비감을 더한다.

 

이 신비한 신라 금관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좌우 대칭의 ‘출(出)’자형의 것은 나무로,

가지가 엇갈려 나는 모양의 것은 사슴의 뿔로 인식해 그 형태적 기원을 시베리아에서 찾는다.

그러나 미술사학자인 내 눈에는 두 형태 모두 나무의 변형으로 보인다.

두 형태가 나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모든 크고 작은 가지 맨 위 끝을 연꽃 봉오리 형태로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금관의 비밀이 숨겨진 곡옥

금관의 비밀은 바로 곡옥에 있다.

구부러진 옥이란 뜻의 곡옥은 그 형태를 보고 일본인들이 붙인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 곡옥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찾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동물의 태아를 연상케 한다 하여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영롱한 비취 곡옥은 주로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쪽과 일본에서 대량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곡옥은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다. 고고학자들은 시대적 차이 때문에 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삼국시대 곡옥의 원초적 형태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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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장식의 화려한 곡옥. 이들 곡옥은 금관 장식과 목걸이 장식 등에 쓰였다.

 

신석기 곡옥의 형태는 물고기 모양을 띠는 것도 있어 삼국시대 곡옥의 형태적 상징적 기원을

시베리아가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곡옥이 신라에 가장 많으며 특히 금관에 집중적으로 장식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삼국이 공유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황남 큰 무덤 북분 왕비의 금관에는 무려 80여 개의 비취 곡옥이 달려 있다.

남분 왕의 것은 금동관인데다 곡옥도 16개에 불과하다.

왕비의 금관이 더 화려한 것은 그 당시 여사제장(女司祭長)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의미한다.

금관무덤이나 천마무덤 출토 금관에도 60개에 가까운 곡옥이 달려 있다.

 

그러면 왜 금관에 이토록 많은 곡옥을 장식하였을까. 왕관에서뿐만 아니라 목걸이의 중심부에 곡옥을 두며,

또 곡옥 머리에 정교한 금세공을 한 모자 같은 것을 씌우기도 한다.

마치 곡옥이 금관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이렇게 보면 곡옥이 매우 존귀한 존재임이 분명한데 그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곡옥은 용의 원초적 모습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靈氣)무늬를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이 꼭 던지는 질문이

곡옥도 영기의 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끝이 둥글게 꼬부라진 영기의 싹을 삼차원으로 만들면 곡옥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심증은 가나 확증할 수 없다고 대답하곤 했다.

특히 나의 눈을 붙잡은 것은 모자곡옥(母子曲玉)이다. 큰 곡옥에 작은 곡옥이 등이나

옆이나 배에 붙어 있는 형태의 곡옥이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고 다섯 개 혹은 열한 개 등 여러 개가 붙어 있다.

 

이 모자곡옥을 보았을 때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무늬의 결합상을 떠올렸다.

모자곡옥의 형태의 기원을 고구려 고분벽화의 무늬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삼실무덤, 안성동 큰무덤, 매산리 사신무덤 등에는

하나의 영기의 싹에서 또 하나의 작은 영기의 싹이 등에 업혀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기무늬의 속성은 큰 영기무늬에서 계속 작은 영기무늬가 탄생하는 복잡한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런데 모자곡옥 가운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중 그 몸체에 수많은 둥근 홈이 패어 있는 것이 있다.

이 반점 같은 구멍들은 무엇일까. 중국 명(明)대 문헌인 ‘광아(廣雅)’를 보면

용의 비늘 수가 한자리 숫자 중 가장 큰 양수인 9가 두 번 곱해져 81개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두 해 전에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용(龍) 무늬’ 전시를 기획한 장용준 군이 그 곡옥의 반점을 세어 보니

정확히 81개였다. 결국 이 곡옥은 용의 상징물인 셈이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고무됐다.

생명의 싹, 즉 영기의 싹을 삼차원으로 나타내면 곡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데 이어

그것이 영기의 또 다른 표현물인 용일 가능성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랴오시 훙산문화 유적에서 발견한 옥룡(玉龍)

지난달 중국의 고구려 땅을 밟았다. 고구려 산성을 오르고, 광개토대왕비를 쓰다듬고,

백두산 천지의 영기를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랴오시(遼西)지방에 있었던 기원전 8000∼7000년

신석기 유적인 홍산(紅山)문화의 보고서를 접하게 됐다. 귀국길의 선양(瀋陽) 공항에서였다.

 

그때 우리 곡옥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곡옥을 처음으로 보게 됐는데 보고서는 이를 옥룡(玉龍)으로 불렀다.

실제 그 형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물고기 형태를 띠다가 마침내 구상적인 용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중국 랴오시 지방의 신석기시대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옥룡(玉龍)들.

생명의 싹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형태에서 점차 구체적인 용의 형상으로 변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2회 곡옥의 비밀

곡옥의 비밀
'곡옥(曲玉)은 단순히 금관의 화려함을 더하는 장식물이기만 한가?'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췻빛의 구부러진 옥.
이 곡옥이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를 증명하는 단초라고 말한다.

일본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인 곡옥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고
특히 이 곡옥이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은
곡옥문화 한가운데 우리 민족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

자료 출처 :  http://www.stb.co.kr/program/info/149/detail.html

 

자료 보기 :  http://www.dgmbc.com/TV/SpecialProgram/SP060925_02.html

 

곡옥의비밀 - 무너지는 동북공정

 

신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독특한 금관일 것이다.

찬란한 순금 금관에 수없이 매달린 조그만 원형의 금판 구슬들은 미동에도 반짝이고 함께 매달린

비취색 곡옥(曲玉)들은 신비감을 더한다. 이 신비한 신라 금관의 곡옥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신라금관에 신비스럽게 달려있는 수많은 곡옥들. 일본 천황가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그것도 신이 하사한 보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이 곡옥이 우리나라에서 왜 수없이 발견되는 것일까.

그 기원은 무엇이며 그 기원이 밝혀주는 비밀은 또 무엇인가?


고고학을 전공한 백운국 PD가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 해 7월 김형출 PD와 공동 제작한 <소리 없는 전쟁, 문화재반환>으로 이달의 PD상,

방송문화진흥회 공익상, 전국 MBC 작품경연대회 대상인 금상,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지역부문 작품상 등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4개의 상을 석권한 바 있는 백운국 PD는 또 다른 역사 다큐멘터리 <곡옥(曲玉)의 비밀>을 준비하고 있다.

 

안압지를 통해 한국 정원 문화의 원류를 조망한 ‘우리 조경’과 ‘소리 없는 전쟁 문화재 반환’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우리 문화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문화재를 소재로 일관성 있게 고집스러운 작품 활동을 해 온 백운국 PD를 만나,

중국과 일본으로 1차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러시아로의 2차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는 <곡옥(曲玉)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봤다.


곡옥(曲玉)이란 무엇인가?


구부러진 옥이란 뜻의 이 곡옥에 대해 그 독특한 형상이 어떤 기원을 두고 생겨났는지 현재까지 확실치 않으며 또한 많은 설이 있다. 쉼표(,)를 확대한 것처럼 생겼으며, 머리 부분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어형(魚形)같이 보이지만, 원래는 동물의 이빨 모양에서 생겨난 형태라고도 한다.

 

곡옥은 고대의 패옥사상, 즉 옥을 몸에 차기 좋아하는 습성에서 생겨난 장신구인 것은 틀림없지만 원시의 장신구를 모방한 「동물의 이빨 기원설」, 일본과 같은 해양민족은「어형 기원설」이 있으며 또한「월신 기원설」 및 종족 보존의 의미를 지닌「태아 모방설」등이 있다. 구멍이 있는 굵은 쪽을 머리라 다른 가는 쪽을 꼬리라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간혹 8cm가 넘는 것도 있다. 거의 비취(翡翠) 제품이지만 마노(瑪瑙) ? 수정 ? 유리 ? 벽옥(碧玉)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머리 부분의 구멍 외에 몇 줄의 선을 새기기도 하고 또 금은제(金銀製)의 장식을 씌운 것도 있다. 대개 목걸이에 거는 중심 구슬로 쓰였지만, 귀고리나 금관(金冠)에 달린 것도 있어 금관총(金冠塚)에서는 130개 이상이나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의 곡옥(曲玉)에 특유한 색은 흰색이 많이 섞인 백록반색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왜 곡옥(曲玉)인가?


신라 황금보관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치 많은 곡옥이 매달려있다. 찬란한 황금문화를 이룩한 신라인들은 금관뿐 아니라 모든 장신구에 황금으로 장식한 곡옥을 즐겨 채용했으며, 오랜 세월동안 일본국에 까지 전파되면서 곡옥문화를 형성해온 것을 볼 수 있다. 경주 무령왕릉에서 만 무려 800여 개의 곡옥이 유물로 발굴된 것만으로도 신라 1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곡옥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곡옥은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 모두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우리가 곡옥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곡옥은 신라왕실의 상징이었으니 그 속에는 신라의 정신이 배어있다. 신라인의 꿈과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곡옥은 한국 최초의 옥(玉)공예 유물이다. 곡옥은 태극기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곡옥 두개를 상하로 맞추어보면 태극이 된다. 신라인이 그토록 애장하면서 보물로 신성시 여겨온 곡옥이 바로 한국의 상징인 태극이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 ‘곡옥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져다 줄 흡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 태극이 바로 그 ‘곡옥의 비밀’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백운국 PD는 방송을 통해서 그 대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곡옥의 비밀은 무엇인가?

곡옥(曲玉)으로 보는 우리 고유의 문화


“우리의 곡옥문화는 상당히 발전했지만, 그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아주 미비합니다. 그 점이 안타까웠죠. 지금껏 한번도 곡옥문화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신라금관의 곡옥에는 상당한 역사적 의미가 있을 텐데도 말이죠.”라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밝히는 백운국 PD.

 

그는 우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곡옥문화가 한국 ? 일본, 그리고 중화권을 제외한 중국의 요녕성 지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찬란한 곡옥문화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그 곡옥문화로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한데 묶여 있다는 것도 함께 밝히려 한다.


영롱한 비취 곡옥은 주로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쪽과 일본에서 대량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곡옥은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다. 고고학자들은 시대적 차이 때문에 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을 꺼리지만,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금관 장식과 목걸이 장식 등에 쓰였던 금장식의 화려한 곡옥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신석기 곡옥의 형태는 물고기 모양을 띠는 것도 있어 삼국시대 곡옥(曲玉)의 형태적 상징적 기원을 시베리아가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곡옥이 신라에 가장 많으며 특히 금관에 집중적으로 장식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삼국이 공유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백운국 PD는 말한다.

또 하나의 역사 다큐멘터리


2부작으로 진행되는 <곡옥(曲玉)의 비밀>. 제1부는 ‘일본천황가의 삼보(三寶)’ 이야기로 꾸며진다. 일본 건국신화에 의하면 곡옥은 하늘의 동굴에서 두문불출하는 아마테라스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제사에서 마사가키의 상단에 걸리는 구슬로 그 안에 영혼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한반도의 도래문화에 의해 형성된 4세기 야요이(?生) 시대에 축조된 전방후원분에서 그 부장품으로 드물게 출토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청동거울, 칼과 더불어 일본 천황이 가지는 3종의 신기(神器)에 속하는 곡옥은 한반도에서 전래되어 그 신성한 속성으로 인해 일본 건국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제2부 ‘무너지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차별해왔던 동이(東夷) 문화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허점에 대해 지적한다. 동북공정의 시발점을 제시해주는 홍산문화 유적의 발견에 대한 내용이 이 부분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곡옥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몇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백운국 PD. 그에게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은 곡옥이라는 코드로 일본, 우리나라, 중국, 러시아에 걸친 수만 킬로미터를 거쳐 민족의 원형을 추적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민족의 원형과 역사 찾기죠.”
고고학을 전공한 그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듯 보이나, 민족의 역사를 따라 그 뿌리를 찾는 것은 그에게도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역사를 돌아보고, 민족의 뿌리를 찾아보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백운국 PD의 역사 다큐멘터리 <곡옥(曲玉)의 비밀>이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신비의 베일에 싸인 곡옥을 새로운 시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자료 출처 :  대구MBC Q 06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