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민족 [騎馬民族]
요약

내륙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기마전술(騎馬戰術)을 이용하여 농경지대를 약탈·정복하거나,

그곳으로 이주하여 기마생활의 특유한 문화를 일으킨 민족들의 총칭.

본문

이는 크게 3계통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건조지대를 본거지로 삼은 유목기마민족으로서

서방의 스키타이·사르마트·아바르·하자르, 동방의 흉노·유연()·돌궐(위구르·몽골,

중간 지역의 오손()·월지() 등이 이에 속하며,

 

둘째는 원래 건조지대와 삼림 또는 농경지대와의 접촉지대에서 주로 농경·수렵을 하던

기마민족으로서 동방의 오환()·선비()·거란 등이 그들이다.

셋째는 삼림지대에서 수렵에 종사하던 민족이 기마민족화한 부여()·고구려·여진()·만주 등이다.

 

유목과 기마는 당초부터 하나로 결부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기마술이 언제 어디서 발명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것이 고대 오리엔트에서 보급된 것은 BC 12세기 무렵부터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지방의 기마술을 연마하여 유목과 결합시켜

세계역사상 최초로 전형적인 유목 기마민족국가를 세운 것이 아리아 계통의 스키타이이다.

 

스키타이는 BC 8세기 말 동방에서 남()러시아 초원에 나타나서 BC 6세기 이후

남러시아·북()캅카스 초원을 중심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웠다. 이들 유목민은 기마술을 연마함으로써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이전 시기에

 

최대 기동력을 발휘, 신출귀몰한 기마군단을 만들어 농업 정착민의 군대를 압도하게 되었다.

또 스키타이 계통의 무기·마구()·장신구 등의 특징은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을 투조() 또는 부조()하여 나타낸

동물 무늬가 많은 점이다.

 

이와 같이 동물 무늬를 특징으로 하는 기마문화는 동방으로 전하여

몽골고원의 유목민족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BC 3세기 말에는 흉노의 유목 기마민족이 성립되었다.

 

흉노가 멸망하자 선비()가 남만주에서 몽골고원으로 진출하여 2세기 무렵에 기마민족국가를 세웠으나

그것은 3세기 중엽에 몇 개의 부족으로 분열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중국으로 들어가서 5호16국() 중의 몇몇 나라를 건설하였는데,

마침내는 선비의 부족인 탁발()이

화북()에서 북위()를 세웠다. 북위는 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이 중국 내부에 수립한 최초의 큰 왕조이다.

 

한편, 몽골고원에서는 유연(:5세기 초∼6세기 중엽)·돌궐(:?∼8세기 무렵)·위구르(?∼9세기 중엽),

그리고 거란·몽골·중가르 등 유목 기마민족이 흥망하였다.

 

이들 중에서 흉노·유연·돌궐·거란·몽골·중가르 등이 끝내 그의 본거지를 확보한 이유는

그들이 본디 유목민이었기 때문이고,

선비족이 그의 본거지를 버리고 농업지대로 이주한 것은 그것이 원래 목축과 함께 농업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여나 고구려도 그러한 선비족의 유형에 속하는 비유목() 계통의 기마민족이었다.

특히 고구려는 동북아시아·만주에 있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었고,

4∼6세기 초에 걸친 전성기에는 한반도의 태반과 남만주를 그의 세력권에 두었다.

 

스키타이 계통의 기마문화가 농업지대로 흘러들어간 것은 주로 이들 비유목 계통의 기마민족이었다.

즉 그것은 남쪽으로 옮겨간 선비에 의해서 3∼5세기의 화북에 유행하였고,

또 고구려·부여 등을 통해 한반도에 전파되었다.

 

동물무늬를 수반한 무기·마구(), 기타 스키타이 계통으로 보이는

기마문화는 일본의 고분시대 후기문화를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학자 에가미 나미오[]는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와 《고사기()》 《일본서기()》 등에

보이는 신화()나 전승(), 나아가 동()아시아사()의 대세(),

이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기마민족설을 제창하였다.

 

이에 따르면, 부여나 고구려와 관계가 있는

동북 아시아의 기마민족이 신예 무기와 말을 타고 동만주(滿)·한반도를 거쳐

기타큐슈[]·기나이[]에 침입하여 정복·이동하였다고 한다.

 

이 설에 대하여는 일본의 많은 사가들이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이노우에 미쓰사다[]처럼 이를 높이 평가하는 학자도 있고,

또 미즈노 유우[]와 같은 이는 '네오()기마민족설'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노우에가 주장한 기마민족설의 세부사항에서는 의문점도 다분히 있지만,

지금까지 동양 사가와 일본 사가들이 별도로

각각 자기 학문 분야에서 논의했던 많은 문제점을 기술적으로 조합하여,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이론을 전개한 이노우에의 방법에는 배울 점이 많다.

일본 국가의 기원()을 생각할 때 이 '기마민족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