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적인 면에서 본 이뉴잇그린란드캐나다래브라도 지방처럼

한국인에 가까운 평균신장의 집단도 있고,

또한 북극해 연안처럼 평균신장이 한국인보다 훨씬 큰 집단도 있어 반드시 일률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황색 피부, 검은 색에 곧은 머리털,

 어린이의 엉덩이에 나타나는 푸른 몽골 반점 등 일반적으로 몽골 인종의 특색을 강하게 보인다.

한편, 근래에는 백인종과의 혼혈이 많아지고 있다.

 

이뉴잇(에스키모)어()는 고유문자를 가지지 않은 언어로,

그린란드에서 알래스카의 노튼만()에 걸쳐서는 이누비크어()라는 방언이 지배적이고,

그 밖의 주로 남서(西) 알래스카에서는 유피크어군()이라고 하는 다른 방언에 속하는데,

각 어군에 있어서 어휘와 발음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에스키모어의 계통유연관계는 학계의 오랜 연구 과제이고,

우랄어족인도유럽어족과의 관계를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이렇다 할 정설이 없다.

따라서 에스키모의 계통기원()도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이뉴잇(에스키모)의 선조가 아시아 ·유럽으로부터 베링해를 건너왔다고 하는

가설을 부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

 

문제는 19세기 또는 그 이전의 전통적 이뉴잇 문화가 실제 유라시아 대륙에서 이미 형성된 것인지,

아메리카대륙의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어디에선가 성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래

아메리카 인디언은 어디서 왔나? 인류(人類)는 언제부터 이 지구 위에서 살게 되었나? 이런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 해볼만한 문제다. 종래의 학설에 의하면 「인류는 약 2백만년 전에 동부 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 1백만년 전에는 유럽과 아시아로 펴졌으며 1만 2천년 전에 이들이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으로 건너갔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종래의 주장에 대하여 근래 소련의 고고(考古)학자 유리 모차노프는 새로운 학설을 내세워 주장하기를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돌로 된 도구들이 영국의 고고학자 메어리리키가 케냐에서 발견한 2백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가 사용하던 것과 매우 흡사(恰似)하며 또 그 도구들이 발견된 토양이 지리학적으로 1백 80만년 전에 생성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도구들을 사용하던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같은 시기에 생겨났거나 또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최초의 인류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유네스코 프리"라는 잡지에서는 소련의 고고학자 비탈리 라리체프의 글 "시베리아의 구석기 문화"를 게재하면서 흔히 시베리아를 얼어 붙은 불모(不毛)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 까닭인즉 이 시베리아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유적지가 바로 시베리아의 "말라이아쉬" 유적이다.

1975년부터 고고학들이 발굴하기 시작한 이 유적지는 중부 시베리아의 "벨리라우스" 강과, "노비스비르크" 산과, "아비칸" 산을 가로지르는 산맥(山脈)에 위치한 계곡 지방으로서,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으로 조사해 본 결과, 약 3만 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이 주거지에서 생활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류가 생활하는데 가장 적합한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이 "말라이아쉬" 지방에서 발굴된 뼈를 살펴보면 산양, 야생마, 순록, 영양, 산토끼, 사슴, 들소, 코뿔소, 여우 등 많은 종류의 야생 동물들이 무수히 서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수천미터에 이르는 촌락(村落)을 형성하여 진보된 복합 문화를 발달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말라이아쉬" 유적지에서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 초록색, 진홍색, 보라색 등 온갖 색깔로 그려진 정교한 그림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모두가 뛰어난 솜씨로서 그들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고 있다. 종래구석기 유물이라면 매우 무디고 조잡한 것으로 여겨 왔는데 이곳의 유물 중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맷돌과 독수리와 거북 등이 새겨진 석기 조각품도 있어 그들에게 고유한 토착예술의 뿌리가 존재했음이 분명해졌다.

이와 같이 새롭게 발견되는 시베리아의 구석기 유물들은
인류의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통설을 뒤엎고 아시아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1920년 대에 고고학의 권위자들이 회합하여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어디 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류문명의 요람지가 아시아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아시아에서 중·근동아시아 일대로 이동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일 먼저 아메리카 땅에 건너 온 종족은 인디언인데 이들이 아시아로부터 베링 해협을 건너서 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인디언들이 어디에서 언제쯤 건너 왔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 "처음의 미국인"이라는 책을 저술한 G. H. S. 부쉬넬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신세계로 인간이 이주하는 데는 지리와 기후 등의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신대륙에 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베링 해협이었다. 배가 발명되기 전의 인디언들은 마른 땅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 B.C. 25,000년에서 9,000년 사이에는 동북아시아와 알래스카가 넓은 평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위스콘신" 이라고 불려지는 제4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면이 훨씬 낮았고 물은 얼음에 잠겨 있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캐나다와 미국의 북부 지방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고 넓은 평원으로서 아시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가 대략 B.C. 25,000년경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쉽게 알래스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18,000년경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 버렸는데 그것이 약 8,000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8,000~5,000년 그 이후부터는 기후가 따뜻해져서 빙하기가 끝났다고 본다.

추운 날씨가 지나가고 B.C. 5,000~2,000년 사이에는 현재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었을 것으로 본다. B.C. 8,000~5,000년 사이에 기후가 따뜻해져 대양이 물로 가득 채워짐에 따라 이제는 육지로 건너오지 못하고 배를 타고 건너왔다. 베링 해협 지금도 얼음 위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데 배를 언제부터 사용해서 베링 해협을 횡단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B.C. 7,000년 경에 이미 북유럽에서 배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인디언들은 훨씬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 같다.

위와 같은 주장은 그 밖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주장되어 왔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곳 미주대륙에 거주하고 있는 인디언들의 선조들은 어디에서 건너 온 어떤 종족이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아시아의 요람지에서 살던 인간들이 베링 해협을 통하여 그곳으로 건너 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 하면서도 그들의 건너간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그 견해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몇 가지의 견해를 예를 들면 지리학자인 G. F. 카터 박사는 약 10만년 전에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고고학자인 J. B. 그리핀 박사는 2만년 내지 3만년 전에 인간들이 신세계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인디언들은 어디에서 왔나?
그런데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은 순수한 아시아 사람들이었느냐? 아니면 동북 아시아에서 잠시 머물었다가 건너온 유럽사람들이 아닐까? 또 그 이주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을까?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세 대학에서 모인 세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G. 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이 세 대학의 세 사람의 학자들은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 세 이주 무리들을 열거하면 그 첫 번째는 1만 5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레나 강 계곡의 "아메린드" 혹은 "알곤컨"이 이주하였고,
 
둘째는 6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알단 강 유역의 "아타바스칸" 혹은 "나-데네"가 이주하였으며, 셋째는 4천년 전에 소련과 중국 사이에 있는 지역에 걸터 앉아 있는 "아무르" 강 분지의 "에스티모 알륫"이 이주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세 무리들은 차례대로 이주했기 때문에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남미(南美)까지 내려 가게 되었고 늦게 온 무리들은 북쪽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상으로 남·북미의 인디언들이 베링 해협을 통하여 이주해 간 경위를 살펴 보자.
그들은 인디언이라고 호칭하게 된 유래(由來)는 "콜롬부스"가 인도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한 지 70일 만에 쿠바 북쪽 바하마 군도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고국인 스페인에 돌아가서 "나는 인도에 갔다"고 선언하면서 거기 사는 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디언의 뿌리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언어(言語)를 연구한 그린버그 교수는 2백 개가 넘는 그들의 언어들을 세 가지의 부류로 분류하였다. 그 중 "아메린드"가 가장 큰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넓은 지역에 펴져 있었고 또 가장 오래된 언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타바스칸" 혹은 "나-데네"는 캐나다와 북캘리포니아 지역에 국한 되어 있었으며 "아파치"나 "나바호"도 이 "나-데네"를 사용해 왔다. 그 다음의 에스키모-알륫어는 북아시아 언어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시베리아의 원시 언어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인디언의 언어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는 언어의 유사성을 통해서 인종학적인 유사성을 탐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인디언들은 그 이주 연대가 서로 달라도 많은 점에 있어서 상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의 뿌리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래와 그들의 신세계 이주에 관하여, 언어 인류학자인 그린버그 교수와 인종학자인 제구라 교수 및 인류학자인 터너 교수는 서로 연구결과를 놓고 종합 토론을 전개한 결과, 인디언의 언어가 종래 생각했던 것처럼 2백 혹은 3백 개가 아니고 단지 세 개의 언어군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장 넓게 사용한 언어가 알고퀸이고, 그 다음이 아타바스칸과 나-데네이며,
세 번째가 에스키모-알륫이라고 말했다

제구라 교수는 인디언의 혈액형을 A, O, B, Rh형으로 나누어서 분류하여 발표하였는데, 그도 역시 인디언을 크게 나누면 세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린버그가 나눈 세 부족에 자기의 혈액형 연구결과도 맞추어서 배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는 또한 언어의 분포에 있어서도 역시 위의 세 지역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제구라 교수는 그린버그 교수와 의견이 일치함을 말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가 같은 결론에 도달 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또 터너 교수는 치아 형태를 분석하여 인디언의 유래를 추적하였는데 그들의 어금니 수를 먼저 검토하였다. 예를 들면 유럽인들은 어금니의 뿌리가 두 대이고 어금니의 뿌리가 세 개이면 아시아인 아니면 인디언들의 이이다. 그래서 치아의 형태는 인종의 유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터너 교수는 직접 시베리아와 중국에 다녀왔는데, 그는 거기에서 8,000년 내지 2,000년이 되는 인간의 이빨들을 조사하였다. 이 이빨들은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러한 터너 교수의 치아 형태에 의한 분류는 제구라의 혈액형에 의한 분류와 일치하였고, 그린버그의 언어에 대한 분류와도 일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 학자들은 인디언의 유래에 대한 공통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인디언들의 세 부족이 동시에 이주한 것이 아니고 제 일차로 1만 5천년 전에 제2차로는 6천년 전에 그리고 제3차에는 4천년 전에 각각 이주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디언의 종교와 무속(巫俗)

인디언의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네 어구에서 있는 우리의 장승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디언 족들의 이런 장승들은 그들의 토템 숭배에서 연유한 것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동물로는 곰, 까마귀, 여우, 독수리, 비버, 산양, 상어, 고래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동이족(東夷族)에서와 같이 까마귀를 대단한 영물로 취급하는데 태초(太初)에 까마귀가 인간과 만물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태고 때에 아직도 세계가 혼돈 속에 있을 당시 이 까마귀가 혼동에서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신앙하고 있다.

알래스카 웨일즈 섬에는 여러 대의 장승 기둥이 서 있는데 그 중에는 곰 장승이 머리에 고래를 이고 있는 것도 있고, 사람의 어깨 위에다 까마귀를 얹고 있는 것도 있다.

인디언 토템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것이 곰인데 트링기트 인디언들은 곰을 가장 숭배하며 절대로 곰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 까닭인즉 곰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다(Haida) 인디언들은 지금도 그들이 곰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후손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또 알래스카 연해의 인디언들은 회색 곰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신봉하고 있으며 곰 어머니에 관한 재미있는 신화(神話)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곰 숭배사상은 우리의 단군설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디언들의 창조신앙 속에 가장 많은 신화소(神話素)는 물과 어머니 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푸에풀로" 인디언들의 최고 신인 주니 신은 남녀의 양성(兩性)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신이란 남녀의 양성을 다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그들의 신앙 때문이다. 케레스 인디언들은 "생각하는 여인" 이라는 "수시수티나코" 여신을 창조신으로 모시는데, 이 여신을 지하에서 살고 있다.
 
또 호피 인디언들은 "단단한 존재의 여인" 후루잉 우티를 창조신으로 모시는데, 이 여신은 땅 자체이고 해나 별과 같이 살고 있으며 그의 아들이 바로 땅의 곡식의 신이라고 믿고 있다. 오랜 옛날에 이 세상에는 물 밖에 없었는데 후루잉 우티는 매우 작은 땅 탈라쇼모라는 산 봉우리에서 살았다. 그 여신은 달, 별과 석탄, 조개구슬 같은 단단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라파호 인디언의 창조신화에 있어서도「태초에는 이 땅이 온통 물에 덮여 있었는데 큰 신령님이 거북에게 명하여 바다 밑으로 내려가서 진흙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나 거북은 바다 밑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비버(海狸)에게 명하여 진흙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비버는 성공적으로 진흙을 가져올 수 있었다. 큰 신령님은 이 진흙을 사방에 던져 흐트렸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인디언들의 창조신화들인데 인디언의 부족 가운데 는 또 최고신을 신봉하는 부족들도 있다.

조지아 해협 부근에 살고 있는 콰티크트, 누트카, 벨라, 쿠라 같은 부족들은 `칼스'라는 신을 최고의 주재신으로 신봉하는데 이 칼스라는 말은 `위에 계신 분'이란 뜻이다.

이보다 좀 낮은 지위에 있는 신들은 이 킬스 신에게 종속되어 그에게 봉사한다는 단일 신관(神觀)이다. 이러한 신관은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조셉 H. 훼리는 그의 저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또 나바호 인디언들의 우주관은 모든 사물이 인격화되어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그들은 모든 사물에 인격성이 부여되어져 있다고 믿는다. 나바호 언어에서 자동사를 써서 표현하는 것보다는 타동사를 쓰기를 더 좋아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인디언들의 신앙 가운데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 샤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인디언들은 인간이 정령들과 직접 교접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교접은 자식들에게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간다고 믿었다. 즉, 어떤 부모가 병을 고치는 샤먼을 행했다면 그 샤먼이 그 부모의 자식들에게 까지 대대로 그대로 전해진다는 말이다.

어떤 샤먼은 질병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 같은 중요한 사건들도 결정한다. 그리고 샤먼들은 '이크투샤'란 말을 할 때마다 부들부들 몸을 떤다. 이러한 입신정령(入神精靈) 숭배사상은 앞에서 설명한 나바호의 언어와 문법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언어를 분석해 보면 사물(事物)의 영(靈)은 나보다 높은 것이지만 사물 그 자체는 사람보다 낮다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 옛날에, 사냥꾼들이 신령한 산양(山羊)들을 죽였기 때문에 살해당하고 말았는데, 그 때에 살아 남은 사냥꾼들이 스키나 강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잇는데. 큰 회색 곰이 나타나 어부의 통나무 뗏목을 모두 부숴 버렸는데 그 곰은 창에 맞아 죽는다. 어부는 이 동물이 곰이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이 곰은 사람의 얼굴과 사람의 머리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어리석게도 그 어부는 곰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린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물의 신들은 크게 노하여 땅과 산까지 물로 채워 홍수를 일으킨다. 이 때부터 인디언들은 곰과 고래를 함께 토템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인디언의 신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곰과 함께 고래도 그들의 숭배 대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인디언들의 곰 숭배신앙은 아시아 일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곰과 고래가 함께 등장하는 신앙은 아시아 대륙의 곰 숭배신앙이 베링 해협 근처에 있는 바다의 고래 신앙과 접합되는 과정에서 생겨 난 형상이라고 생각된다.

캘리포니아의 인디언 가운데는 곰 의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수호신으로서 곰을 숭배하는 의사들이었다. 이 곰 의사들은 북과 방울을 사용했는데 정령(精靈)을 부를 때에는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든다. (우리나라의 무당과 비교 바랍니다.)

북미주의 인디언들은 주로 북을 사용하고 방울은 남북 미주 인디언들이 모두 사용한다. 곰 숭배 예배의식은 어느 지역에서나 유사성이 있고, 매우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것이다.

곰의 정령을 받게 되면 남자는 활을 잘 쏘아서 사냥에 능해지며 여자인 경우는 좋은 어머니가 되어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며 부지런해 진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인디언들의 놀이

인디언 족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하는 놀이 가운데는 "실뜨기, 고누, 윷놀이" 등이 있는데 이것들이 그 형태나 방법에 있어서 우리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맥팔랜 같은 학자들은 이런 놀이가 중국에서 건너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모든 서양 학자들이 한국의 것을 중국의 것이라고 혼돈하고 있듯이 그들 또한 이것을 혼돈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윷놀이, 싱뜨기, 고누 같은 놀이는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 가도 흔히 있는 놀이이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놀이를 즐겨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한국에서 유래하였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다. 흔히들 인간을 놀이의 동물이라고 하고 이 놀이에서 출발하여 문명을 창조해 왔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연장(延長)이 바로 인류의 문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실뜨기 놀이는 실을 양 손에 걸고 이리저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뜨는 것인데 이것은 일본,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등 세계 전역에 널리 펴져 있는 놀이이다. 인디언들의 이 실뜨기 놀이는 백인들이 미국 땅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그들은 이 놀이에는 어떤 마술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또 이 실뜨기 놀이를 손으로 뿐만 아니라 발가락, 이빨 입술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 없이 혼자서 하기도 하는데 한국인들이 하는 것과 꼭 같다는 것이 놀랍다.

그 다음은 인디언들의 윷놀이에 대하여 살펴 보면 그들은 이것을 경마 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놀이에서 그들은 우리의 윷판 같은 둥근 판을 만들어 놓고 윷 길이만한 막대기를 던져서 그 엎어지고 잦혀지는 모양에 따라서 윷말을 쓰는데 막대기 수는 세 개로써 우리의 네 개와 다르다. 그러나 윷판 위에 말이 가는 방법과 상대방의 말과 겹쳐질 때 잡을 수 있는 등 우리의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밖에도 우리 나라의 각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고누"(꼬누 혹은 꼰)등 많은 놀이들이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다. 맥팔랜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150여 가지의 인디언 놀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들 중에는 한국의 민속과 비슷한 것이 허다하여 그들과 우리가 한 뿌리 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 미주에 산재해 있는 "아파치"족들의 생활과 풍습 그리고 그 모습들이 우리와 매우 흡사할 뿐 아니라, 아파치라는 호칭 그 자체가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저 찬란했던 잉카문명, 멕시코 문명 등도 그 근원이 아시아의 동방에서 건너간 것이니 이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기대된다.

몽골리안 루트와 한국인

십수년 전인가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에스키모 가족의 흑백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 100년 전 할아버지·할머니 모습과 너무나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다.
 
이후 미국의 원주민(Native American) 인디언 박물관에서
접한 인디언들의 생활모습에서도 까닭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구전(口傳)된 민속노래(folk song)가, 어렸을 적 우리 시골에서 접한 노동요나 제례요(祭禮謠)와 너무나 흡사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어~어 어~어’로 시작되는 노래는 우리 농촌에서 죽은 사람의 상여를 메고 나갈 때나 입관식을 할 때 부르는 제례요와 100% 같았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미국 대륙을 더 내려가 만난 멕시코인을 비롯 중·남미인 중에도 찢어진 눈매를 비롯한 얼굴 생김새, 표정, 동작, 체격이 영락없는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이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에 이민간 동포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한 아르헨티나 동포는 “고산지대에 갔더니 우리와 똑같은 생김새에 생활습속도 비슷한 원주민들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성이 김씨더라”고 전했다.

의문은 몇년 후 풀렸다. 한국인의 원류(源流)인 북방몽골계가 수만년 전 시베리아~베링해협(과거에는 육지)~알래스카~북미~중·남미로 이동하면서 지금 에스키모, 인디언, 인디오들의 조상이 됐다는 연구 자료들을 접하면서였다. 결국 우리 모두는 수만년 전, 지금 바이칼호 부근 어느 곳에서 함께 살았던 조상들의 ‘한 뿌리’ 자손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수많은 세월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 오면서 많은 변화가 이뤄졌지만 한국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비교적 단일혈통과 습속을 유지할 수 있었듯이 미대륙 혹한지대나 고산지대에서 동화를 거부하고 전통적 삶을 고수한 원주민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기자가 에스키모나 인디언에게서 느낀 동질감은 수만년 전 ‘한뿌리’였다는 동류(同類)의식을 본능적으로 포착한 것이자, 그 장구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수만년 전 조상들의 생활 습속과 유전인자가 지금껏 완강하게 후손들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몽골지역에서 시베리아 미국으로 뻗어가는 ‘몽골리안 루트’에 관해선 많은 연구가 돼있다. 그러나 지구촌 다른 곳 즉 몽골에서 남진해 티베트 고원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주변으로 펼쳐지고 궁극적으로는 인도양·태평양으로까지 확산되는 또다른 ‘몽골리안 루트’에 관해선 아직 연구가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티베트 역시 우리 북방 몽골계로 언어, 체격, 습속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곳은 지역적으로 서역·동남아시아를 향한 ‘관문’ 구실을 하는 바람에 여러 종족·문화와 많은 교류가 있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접하는 네팔의 경우 왕족은 무사계급으로 역시 몽골계다. 네팔 몽골계 중 날래고 산을 잘 타 한국 등반대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세르파족의 경우 단일혈통을 유지한 덕분에 한국인과 매우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역시 국경을 접한 미얀마는 물론, 동진(東進)해 접하는 베트남·라오스·태국 치앙마이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 사는 고산족들 중에서도 ‘코리안’과 비슷한 몽골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 반점을 지니고 있고 한복 비슷한 차림에 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 그들이 말하는 방언에서도 우리 언어와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남부 아시아 지역에서 지금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종족은 부탄 사람들일 것이다. 이곳은 사면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자 오지(奧地)로, 다른 곳에 사는 몽골계보다 훨씬 주위 환경에 덜 동화된 채 북부 몽골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탄과 미얀마 사이 인도 동북부 산악지대에 사는 나가(Naga)족들 역시 우리와 같은 몽골계로 앞으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이같은 북방몽골계 연구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몽골인들이 워낙 강인하고 생명력이 질겨 칭기즈칸 시대, 중국의 청나라 시대 등 인류사에 굵직한 족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그 몽골계 중에서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바로 한국인이다. 서양인들의 시각이 아니라 바로 한국인의 주체적 시각으로 몽골계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그만큼 우리가 누구냐는 데 대한 정체성·주체성 연구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출처
http://zarat.netian.com/32_American_Indian.html,주간조선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