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Uighur, 위구르족]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56개 민족의 하나로 터키계 민족이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와 터키에도 소수가 살고 있다.

 

중국에는 주로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에 거주하며,

2000년 통계상 인구는 약 839만이다. 위구르어와 고유문자인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투르크계(系) 민족으로서

오늘날에는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에 주로 분포한다. 

 

 

위구르는 몽골 고원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약한 투르크계()의 민족이다.
중국어로는 ‘웨이우얼()’이라고 표기한다. 744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세웠으며,
840년 키르기즈(kirgiz)에게 멸망한 뒤에도 간쑤[], 둔황[], 투르판[] 등지에
위구르 왕국을 세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동서의 문화와 유목과 농경 문화를 융합한 수준 높은 문화를 형성하였다.
 
오늘날에는 중국 서북부에 있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터키, 파키스탄 등에도 분포해 있다.

위구르라는 이름은 ‘연맹, 군집’(Uy+gur)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사서()에서는 흉노()의 후예로서
흉노 공주와 이리의 교합으로 생겨났다는 민족 기원 설화가 전해진다.
 
북위()에서는 고거(), 수()에서는 위흘(), 당()에서는 회흘(), 회골(鶻),
송()과 원() 시대에는 외오아()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특히 788년 위구르 카간이 당()의 덕종()에게 간청해 회흘()에서 회골(鶻)로 바꾸어 불렀는데,
이는 빠르기가 매와 같다는 뜻을 가진다.

위구르는 몽골 고원이 거점이었을 때는 돌궐 문자를 썼으며 서쪽으로 이동한 뒤에는 소그드 문자(Sogdian alphabet)를 기초로 한 위구르 문자를 사용했다. 8세기 위구르 제국에서는 마니(Mani, 216~274)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 기독교와 불교의 요소를 결합해 창시한 마니교(, Manichaeism)를 공식적인 종교로 하였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민족으로서는 최초로 성곽 도시를 건설하였다.
 
9세기 투르판 위구르 왕국에서는 불교가 성행했으며 경교()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Nestorians)파
기독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의 동진()에 따라 11세기 이후 이슬람화하여
15세기 이후에는 중앙아시아의 다른 투르크 민족과 마찬가지로 수니(Sunni)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가 중국에서 회교()나 회회교()로 불리게 된 것은 회흘(), 회골(鶻)이라 불리던
위구르가 믿던 종교로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학설처럼 위구르는 이슬람교를 중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위구르는 동서 교역을 매개하며 유목과 농경 문화를 결합한 매우 복합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이루어진 유적 조사로
위구르의 각종 고문서()·벽화 등이 발굴되었다.
 
쿠차[], 투르판[], 둔황[] 등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들은 위구르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동서 문화의 교류와 융합에 기여한 역할들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구전문학의 전통과 독특한 춤과 노래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 위구르인들은 중국 서북부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거의 대부분이 분포하고 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중국 전체 면적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면적이 넓으며,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8개국과
5,600킬로미터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총인구는 1,933.95만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위구르인은 882.35만명이다.
 
신장[] 이외의 지역에서는 약 60만 정도의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구르는 80% 이상이 톈산산맥[] 이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고 있다.
카쉬가르[, Kashgar]는 위구르의 문화적 중심지이다.

신장은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각국과 밀접한 경제, 문화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청()의 건륭제(, 1711~1799) 때인 1760년대부터 중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지만,
위구르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강하게 유지해 왔다.
 
때문에 위구르인들은 1930년대부터 중국에서 독립하여 동투르키스탄(Eastern-Turkystan)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민족운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소련(,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USSR)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Kazakhstan), 키르키즈스탄(Kyrghyz),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등 투르크계 이슬람 민족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위구르의 분리 독립 움직임도 본격화하였다.
오늘날 이 지역은 중국에서 민족 분쟁이 가장 날카롭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