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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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突厥, 불가리아어: Гоктюрки 고크튜르키, 터키어: Göktürk Kağanlığı 괵튀르크 카안르으

, 551년-747년) 또는 괵튀르크(Göktürk)는 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한 철륵의 하위 부족이다.

 

돌궐은 튀르크의 가차(假借)식 표기이며, ‘주서(周書)’ 이역(異域)

돌궐(突厥) 열전은 “돌궐은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라며 흉노의 후손이라고도 하였다.

557년의 영토는 6,000,000km²이다. 괵튀르크는 하늘의 튀르크 혹은 천상의 튀르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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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투르크계 민족.


투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지방에 살았던 투르크 종족)의 한 부족으로서

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의 족장 토문(:만인의 이라는 뜻)이 유연·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이라 칭하였다(552).

 

이 무렵부터 그의 아우 디자불로스는 서방으로 진출하였고, 3대 목간가한() 때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563∼567).

그 결과 돌궐은 동쪽으로는 중국 둥베이[:만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이 미쳤으나

동족간의 다툼으로 583년 분열하여 동돌궐은 몽골고원,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였다.

 

동돌궐은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에 걸친 중국 내부의 혼란을 틈타 중앙집권화를 도모하여

그 세력이 강대해졌으나, 당나라의 공격과 철륵 제부족의 독립 등으로 630년 멸망하고 당나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682년 다시 몽골고원에 독립국가를 세워 카파간가한[] ·빌케가한[] 등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한때 중앙아시아에 원정할 만큼 세력을 떨쳤으나,

다시 동족간의 다툼으로 쇠약해져 744년 철륵의 한 부족인 위구르에게 멸망하였다.

 

서돌궐은 동로마제국과 결탁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토벌하기도 하였으나 둘로 분열하였다.

당나라는 이 틈을 이용하여 이주(:하미)와 서주(西:투르판) 등의 주현()을 설치하였다.

그 후 서돌궐은 한때 통일을 이룩하였으나 당은 657년 이를 토벌하고 2명의 가한을 두어 통제하였다.

7세기 말 돌기시()가 일어나 이 두 가한을 추방함으로써 서돌궐은 멸망하였다.

 

돌궐의 국가는 일(il)이라 부르며 가한() 밑에 소가한()과 야부그[] ·샤드[] 등의

제후가 일종의 봉건영지를 소유하여 영내의 모든 부족을 통치하였다.

이들은 ‘베크[]’라는 지배계층을 구성하였고, 일반 민중은 ‘부둔’이라고 하였다.

 

베크들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기록, 즉 돌궐비문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믿고 있으나,

한때 불교가 가한을 중심으로 한 상층계급에서 유행하였다. 

 

[편집] 개요

당시 강자로 군림하던 유목 제국 유연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에서 만주 지방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세력 확장을 펼쳤다.

 

그러나 동, 서로 분열되어 동돌궐은 당에 복속하게 되었고, 서돌궐은 이슬람화 되었는데

그 중 오구즈 투르크멘 부족이 셀주크 제국의 기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1299년 튀르크 족은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고구려와의 대외 관계는 거란말갈의 지배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의 통일 후 일시적 소강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서 돌궐은 고구려 원정에 동참하며 다시 한번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편집] 중국과의 관계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 북방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세력은 돌궐이었다.

중국이 오랜 분열기를 마감하고 589년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을때, 당시 북방의 돌궐과 수나라가 대치하게 되었다.

북방의 강자 유연을 멸망시킨 새로운 패자 돌궐은, 중국과 대립관계가 된다.

 

7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었을때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동돌궐은 수나라에 신속하고 둘 사이는 군신관계가 성립되었다.

수나라와 돌궐 사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어서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새롭게 당나라가 건국되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린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써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돌궐에 내분이 일어나고 자연재해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당과 돌궐의 관계는 역전된다. 당은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하고,

돌궐의 힐리 카간(頡利 可汗, Kieli Kağan, Hieli Kağan, İliğ Kağan)은

 당나라에 신속하면서 당과 돌궐사이에 군신관계가 성립한다.

 

중국과 돌궐의 관계를 보면 주도권 관계가 서로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분열되면 중국이 돌궐에 복속되고, 돌궐이 분열되면 돌궐이 중국에 복속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궐이 우위인 상태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는 돌궐 자체가 내부 결속력이 약해 늘 내분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중원 왕조는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의 분열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