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인

 

아리아인(Aryans)은 인도이란에 거주하며 인도·유럽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인도 · 유럽어족에 속하는 인종을 통틀어 이르는 말.

원래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에서 살다가 기원전 1500년 무렵 인도와 이란에 정착하였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아 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농경과 목축 생활을 발전시켰으며,

갠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도시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들은 자연 현상을 신격화하여 신성이 있다고 믿었으며 신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였다.

이에 따라 제사 의식도 점차 체계화되었고,

제사를 주관하는 성직자인 브라만들을 중심으로 브라만교가 성립되었다.

 

아리아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 아리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귀한’이란 의미로서 그들이 자칭하는 말이다.

아베스탄어로 아이리야이며 고 페르시아어 아리야이다.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기원전 2000년경, 남방·서방에 이동하여, 어떤 무리는 인도에 들어가고(인도·아리아人),

어떤 무리는 이란 고원에 정착했다(이란人).

 

현재는 인도유럽어족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인도 게르만 어족계의 지파(支派)로 중앙아시아에 살다가

인도와 이란에 정주한 민족.

 

아리아라는 말은 '고귀한'이란 뜻으로 그들이 자칭하는 말이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펀자브 지방에 들어가 원주민을 정복하고 혼혈을 장려하였다.

 

이 무렵은 청동기문화의 단계로, 가부장적() 대가족의 집합으로서의 부족이 정치경제의 단위였다.

신앙은 다신적으로, 자연현상을 신격화한 여러 가지 신을 숭배하였다.

그들의 일부는 BC 1000년 무렵부터 비옥한 갠지스강 유역 방면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상류 각지에 작은 촌락을 형성하고 농경을 주로 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철기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하였으며 바라문을 정점으로 하는 사성제도(:카스트)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또한 BC 1000년에서 BC 700년 사이에 《리그 베다》로 이어지는 3개의 성전이 성립되었는데

이들 성전은 지금도 브라만의 근본 성전으로서 존중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멸망 이후에는 이주해 온 아리아인들에 의해 베다시대(Vedic Age)가 열린다.

 카스피해와 남 러시아 늪지대에 살던 유목민 아리아족은 민족적 이동을 거듭하면서

BC 1,500년 경에 인도 북부의 펀잡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당시 이미 인도에 살고 있던 드라비다 족과 같은 선주민들과 충돌하게 된다.

 

전차와 철기문화를 가진 아리아족이 인도의 북서부를 차지하면서 베다시대가 시작되고

청동기 문화를 가진 선주민들은 인도남부로 밀려났다.

 

BC1,500년에서 BC600년 까지의 베다시대는 인더스와 펀잡지역에서 델리까지 확장해나가는

BC 1,000년까지의 전기베다시대와,

동진을 계속하여 선주민의 문화와 융합이 일어나는 후기베다시대로 구분된다.

 

베다는 종교문헌으로 주요 부분인 신에 대한 찬가와 기도문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생활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기베다 시대(BC1,500~1,000)에는 소의 숭배사상은 나타나지 않으나

인도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 카스트제도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가부장적 사회였던 아리아인들의 사회는 정복민과 피정복민의 구분이 생기고,

종교의식을 관장하는 사제집단인 브라만,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계급과 군인집단인 크샤트리아,

농- 공-상업을 담당하는 바이샤 계급으로 계급적 분화가 일어나면서 카스트제도의 초기모습이 나타난다.  

 

후기베다시대(BC1,000~600) 는 인도의 철학적 관심, 종교적 열망 등과 관련된 사상적 기저가 제시되어 있는

우파니샤드(Upanisad)로 대표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윤회, 업(Karma), 법(Dharma), 브라만(우주의 본체), 아트만(인간의 영혼)과 같이

이후의 인도종교철학에서의 주요한 개념들이 형성되며,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카스트제도가 확립되었다.

 

특히 우파니샤드는 종교적 제의중심의 종교보다 인간이 자아성찰에 의해 해탈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의 종교철학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BC 6~5세기에 불교의 출현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브라만의 제의중심적 전통 또는 종교와 사상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베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크샤트리아들에 의해 선호되었다.

 

베다시대에는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인들이 농업적으로 정착하였고,

후기베다시대부터는 여러개의 소왕국들이 나타났고 전쟁이 빈번하였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이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BC 2500년무렵에는 이미 인더스강 유역에 정연한 계획 아래 세워진 도시문명이 형성되었다.

 

이 문명은 약 1,000년에 걸쳐 영화를 누렸으나 최종적으로 북서쪽에서 이주하여

펀자브를 점거한 아리아인에게 멸망되었다.

 

아리아인은 도시문명의 선주민()보다 뒤진 야만인()이었으므로,

도시문명의 대부분은 계승되지 않고 잊혀졌으나

아리아인이 선주민과 융합하면서 갠지스강 중류유역에 진출하여 농촌사회를 확립한

BC 7세기 무렵까지 인도의 특색 있는 문화와 사회의 초기형태를 만들어냈다.

 

펀자브에 들어온 아리아인은 부족 또는 씨족()을 단위로 하여 집단을 만들고

그 수장()이 통솔하였으며, 주로 목축생활을 하고 이륜전차()를 구사해서 사격전을 벌였으며,

그들이 정복한 선주민을 예속민()으로 삼았다.

 

갠지스강 중류 유역에 진출할 무렵에는 지배계급인 크샤트리아와 사제계급()인

브라만이 특별한 사회적 신분을 형성하였다. 브라만은 제식()의 시행을 독점하여

 

리그베다》를 비롯한 베다 문헌을 저술하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4종성()의 종교상 ·사회상의 의무를 정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BC 6세기에 갠지스강 중류 유역에는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과 같이

전제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부족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행정 ·군사제도를 가지고 지배하는 국가가 출현하였다.

 

이들은 농업생산의 증대와 도시상업의 발전을 배경으로 주변의 여러 부족제국가를 병탄()하고,

갠지스강 중류 유역의 패권을 다투었다. 이 무렵 불교나 자이나교 등의 새로운 종교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주로 지배계급과 상인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패권을 장악한 마가다국은 다시 북인도의 여러 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상업도 지배하였다.

마케도니아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북서 변경 침입 후 곧 마가다국의 발전을 완성시켜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룬 나라가 마우리아제국()이다. 마우리아제국은 BC 317년 찬드라굽타에 의해 건설되고

3대() 1세기에 걸쳐 강대한 상비군()과 정비된 관료제도를 주축으로 하여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마이소르 북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하였다.

 

당시의 선진지역()은 갠지스강 중류 유역으로서 불교를 포함한

고도의 문화와 진보된 농업기술이 급속히 퍼져서 여러 지방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그러면서도 제3대의 아소카의 ‘법(달마)’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를 실천했으나 왕이 죽은 후 이 제국은 쇠퇴하였다.

그 후 약 5세기 동안 통일지배는 무너지고 여러 세력은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인 ·샤카족 ·쿠샨족이 북서쪽에서 잇달아 침입하여 서부 인도를 지배하고,

또 BC 1세기 무렵에는 사타바하나가 출현해서 데칸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는 대승불교()의 성립이나 시바와 비슈누의 새로운 신앙의 확립 등

문화사상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많았으며,

또 《마누법전()》 등이 저술되어 브라만의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특권이 확립되었다.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제국은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의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해서 다음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에는 모든 지방의 발전이 현저하였으며 그것을 배경으로 유력한 여러 왕국이 할거()하였다.

5∼6세기 무렵부터는 상업 ·운수가 쇠퇴하여 지방마다 자급자족 경향이 진전되고

법()도 지방이나 집단에 의해 분리되면서 여러 세력의 지방적 분립은 더욱 현저해졌다.

 

그것들 중에는 갠지스강 중류 유역, 벵골 ·데칸 ·타밀나두의 3대지방에 강력한 대왕국이 성쇠()하고

여러 왕국 간에 영토의 확대와 재물의 약탈을 둘러싼 전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정치 ·사회 ·경제상으로 느리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고,

또 여러 왕조의 분립과 더불어 지방의 언어나 문화가 발달하고 힌두 사원()이 각 지방의 특징 있는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힌두철학도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신()에 대한 헌신적인 신앙이 번창하였다.

이 현상은 다음 시대로 계승되면서 인간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