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India , Bhar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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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정식 명칭은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며, 힌디어로는 바라트(Bharat)라고 쓴다.

수도는 뉴델리(New Delhi)이다. 국토 면적은 328만 7782㎢로 세계 7위다.

서유럽 전체 크기와 비슷하고 남한 면적의 33배(한반도의 15배)에 이른다.

인구 수는 2009년 현재 세계 인구의 1/6에 가까운 11억 6000만 명으로 세계 2위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심하나 대체로 열대몬순형 기후이며,

3월~6월은 혹서기, 7월~9월은 우기, 10월~2월은 건기로 대별된다.

힌디어가 전국적 공용어이며, 힌디어를 포함해 헌법에서 인정한 공용어가 22개나 된다.

영어는 공용어는 아니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80.5%에 이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힌두교를 믿고 있으며, 13.4%의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그 밖에 기독교, 시크교(Sikhism), 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다.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은 1억 2175만 달러(2008/2009 회계연도 기준)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070달러이다. 화폐 단위로는 루피(Rupee)가 사용되며, 1달러=46.45루피(2009년 12월 1일 기준)이다. 무역액은 4564억 달러(2008/2009 회계연도 기준)이다. 문맹률은 약 39.5%(2007년 기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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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대부분은 북방의 아리안족(70%)과 남방의 드라비다족(25%)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힌디어(연방공용어)(32%)와 영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힌두교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회교(11.4%)·기독교·시크교(2%)·불교 등을 믿고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일찍이 발달한 나라 중 하나로,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이미 인더스(Indus)강 유역에 청동기 도시문명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무렵에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흥기하는 등 인도의 특색 있는 문화와 사회형태가 만들어졌다.

그 뒤 마우리아(Maurya)제국이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룩하였다.

 

마우리아제국은 찬드라굽타(Chandragupta)에 의해서 기원전 317년에 건설되었는데,

3대 1세기에 걸쳐 강대한 상비군과 관료제도를 주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마이소르(지금의 카르나타카) 북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 제국이 쇠퇴한 뒤 약 5세기 동안 통일 지배는 무너지고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이어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Gupta)제국이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의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하게 되었다.

8∼12세기에 걸쳐 무슬림(Muslim) 세력이 서북부지방을 침입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한 무슬림왕조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BC 2500년 경 인더스 강 유역의 모헨조다로를 중심으로 세계 고대 문명 중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발달했다.

인도·아리아인(70%), 드라비다족(25%), 니그리토족, 프로토-오스트랄로이드, 몽골로이드, 알파인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아리아인들이 갠지스 강 상류에 정착하면서 점차 세력을 넓혀 가는데 이때

이들과 인도 토착민중의 지배세력에 의해 카스트제도가 생겨났고 불교 또한 이때 성립되었다.

이후 여러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인도는

기원전 273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아소카왕에 의해 전지역이 통일되었다.

인도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왕권을 강화한 아소카 왕은 불교를 장려하였을 뿐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을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 불교를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아소카왕이 죽은 후 마우리아 왕조는 세력을 잃고 급속히 무너지면서 내부적으로는

수많은 왕국들이 생겨나고 외부적으로는 서북 인도 지역에 이민족들이 침입하기 시작한다.

이란 계통의 쿠샨 인에 의해 건국된 쿠샨 왕조는 서북 인도를 침입하여,

마우리아 왕조 멸망 이후 분열되어 있던 인도를 다시 통일하였다.

쿠샨 왕조의 전성기는 카니슈카 왕 때였다. 넓은 영토를 차지한 카니슈카 왕은 불교의 보호와 포교에 힘썼다.

이 당시의 불교는 중생의 구제를 앞세운 대승 불교였는데,

대승 불교는 그리스 문화와 불교 문화가 융합하여 만들어진

간다라 미술과 함께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전파되었다.

쿠샨 왕조 멸망 후 오랜 분열을 겪던 인도는 4세기쯤에 굽타 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이 시기에는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와 굽타 미술을 비롯한 인도 고유 문화가 발달하였다

굽타 왕조가 북쪽에서 침입한 유목 민족에 의해 분열된 후 1200년경까지

인도에는 크고 작은 왕국들이 전국에서 출몰하여 각기 독자적인 지방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런 혼란을 틈타 8세기부터 이슬람교를 믿는 투르크 세력이 서북 방향에서 계속 침입해 왔고,

12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인도를 침략하여 이슬람 왕조를 세웠고, 인도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그리고 1526년 티무르 제국의 후손인 바베르에 의해 델리를 중심으로 무굴 제국이 건국되었다.

무굴 제국은 악바르 왕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인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은 여러 갈래로 찢겨지기 시작하였고

드디어는 19세기 초반 영국에 의해 인도 전체가 지배당하기에 이른다.

1차 대전 당시, 영국은 인도인들에게 '전쟁을 도와주면 전쟁 후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인도인들은 국민 회의의 간디가 내세운 '비폭력', '불복종' 노선에 따라 상품 불매 운동,

납세 거부 운동과 같은 온건한 방법으로 영국에 저항하였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도는 영국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였다.

그러나 종교적 대립으로 인해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 불교의 스리랑카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다시 파키스탄의 동부 지역이 분리되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다.

(1) 문화사적 관계

우리 나라와 인도와의 관계는 선사시대(신석기·청동기)의 바위 조각에서 어떤 관련성이 인정될 수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문화관계를 맺은 것은 불교문화가 전래되면서부터이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공식적인

≪삼국유사≫의 연대는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이지만, 이를 전후해서 삼국 모두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당시의 인도 문화는 굽타 문화 초기단계 내지 그 이전 단계인 쿠샨왕조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에는 처음에 순도(順道)가 들어오고 그 다음에 아도(阿道)가 들어왔다.

이들은 간단한 문맥으로 보아 인도 내지 서역 승려일 가능성이 짙다. 순도의 경우 중국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다가 고구려로 온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아도는 일반적으로 인도 승려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에는 인도의 쿠샨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해졌거나 또는 중국을 거쳐 간접적으로 전해졌거나 간에,

어떤 형태로든 4세기에는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백제에는 384년(침류왕 2)에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불교를 전파했는데, 마라난타는 인도 승려 아니면

서역 승려가 분명하다. 그가 인도 승려였다면 인도 문화를 직접적으로 백제에 전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 뒤 겸익(謙益)이라는 백제 승려가 바다를 통해 인도에 다녀오면서 불경을 가져와 72권을 역경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우리 나라 승려가 인도를 직접 순례하고 인도 문화를 전래해 왔던 것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나라 승려가 인도에 간 최초의 예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을 모시고 왔으므로 인도 문화를 직접 전했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와는 달리 훨씬 뒷날인 527년(법흥왕 14)에 불교를 공식적으로 공인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약 1세기 앞서 5세기 초에 불교가 신라에 처음 전래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아도 또는 묵호자(墨胡子) 등으로 불리던 인도 승려 또는 서역 승려를 전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인의 특징인 묵호자로 이해했다는 것은 분명히 인도인 승려가 신라에 전도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 전래 초기에는 인도 승려들이 압도적으로 우리 나라에 전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인도의 불교 문화, 특히 쿠샨왕조 말 내지 굽타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해진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후 인도의 불교 문화는 계속 전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요동성에 아육왕(阿育王) 탑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것은 인도의 아소카(Asoka)왕이 직접 만든 탑으로

이해했고, 그 모양도 인도탑 형식인 복발형이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인도 양식의 불탑을 직접 받아들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가야에도 인도의 불교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래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왕후(許王后)가 인연의 나라로 탑을 싣고 오다가 가야에 도착해서

불교를 믿게 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공주가 가야까지 와서 왕후가 되면서 파사석탑 같은 인도의 불교 문화를 전파한 사실을 극적으로 묘사한

 ≪삼국유사≫의 이 전설은 인도 문화의 직접적인 전파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사람은 오지 않고 아소카왕이 보낸 불교 문화를 수용한 사실을 알려 주는 예는 신라에도 있다.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불상 모형과 동 및 황금으로 황룡사의 금동장륙상(金銅丈六像)을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인도 문화의 전파 사실을 분명히 시사하는 예라고 하겠다.

 

초기의 불교 문화는 삼국시대에 주로 전파되었는데,

그 뒤 굽타의 난숙(爛熟)한 인도 문화는 600년을 전후해서 어느 정도 수용되었지만,

통일신라 초기 이른바 7세기 후반에 대거 받아들여진다.

난숙한 사실주의의 조각이나 불화양식이 전파되어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인도나 서역 승려들이 오기도 했고, 우리의 신라 승려들이 유학하기도 했으며,

또 중국을 통해서 인도 굽타의 불교 문화가 우리 나라에 전해졌다.

 

이러한 문화 전파는 650년을 전후해서 인도에 순례 온 신라 승려를 무려 8명이나 보았다는

의정(義淨)의 기록인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唐西域求法高僧傳≫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다년간 인도에 유학을 다녀온 뒤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이라는

세계 3대 기행문을 저술한 혜초(慧超)의 예는 인도와 우리 나라의 문화 교섭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극히 단편적인 몇 가지 예만 보아도 우리 나라와 인도의 문화사적 관계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인 4세기부터 고려시대인 14세기까지 불교 문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인도의 불교 문화는 우리 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2) 인도에 있는 한국 문화의 유적·유물

인도와 우리 나라의 문화사적 관계는 인도 문화가 우리 나라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인도에 한국 문화의 흔적인 유적·유물이 있을 가능성은 극히 드문 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승려들이 상당 기간 머물면서 불사에 참여했거나 살펴보고 예배한 유적·유물은 상당수 있다.

이 가운데 확실한 것은 혜초가 본 유적·유물이라고 하겠다.

 

알다시피 혜초는 704년(성덕왕 3)에 신라에서 태어났으며, 719년에 중국 광주로 유학갔다가 밀교의 조사,

금강지(金剛智)와 불공(不空)을 사사했는데,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에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5년 동안 인도 천하를 순례하다가 727년 11월에 서역의 쿠처에 도착했고,

그 뒤 장안에 머물면서 금강지를 도와서 역경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금강지가 열반한 뒤 불공의 제2제자가 되어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경전을 연구했으며,

780년부터 오대산에 들어가 787년 입적할 때까지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그가 인도에 도착한 것은 동부 인도였다. 곧 석가가 입멸한 쿠시나국을 보았는데,

여기서 열반탑이나 열반지 기념사원 등을 참배하게 되었다. 이후 남쪽의 바라나시국을 방문했는데,

여기에서는 최초의 설법지인 녹야원에 들러 사원과 탑을 둘러보게 된다.

 

녹야원에는 유명한 사원이 있고 다메크탑 등 거대한 탑이 있었으며,

아소카왕 석주 등 난숙한 불교 문화의 정수들이 있었다.

혜초는 이러한 불교 문화의 진수에 진심으로 환희했고 경건하게 참배했다고 한다.

 

이 녹야원을 지나 부처가 가장 많이 머물렀고, 최초로 절을 세워 대중 포교에 나섰던 왕사성(王舍城)으로 갔다.

여기에는 인도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었으므로,

죽림정사(竹林精舍)·망고원·법화경 설법처 등 수많은 사찰과 사찰터를 둘러보았다.

 

그 다음 중천축국으로 가서 4대 영탑(四大靈塔)에 참배했는데,

4대 영탑은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불탑으로 이름나 있었으므로 불교 문화의 진면목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곳을 지나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 가서 그곳 유적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남천축국으로 갔으며,

현재의 아잔타·엘로라 등 유명한 석굴에 들러 수많은 석굴을 참관하고 수도에도 정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서북쪽으로 나아가 탁실라국에 도착했는데,

여기에서 혜초는 탁실라의 도시 유적과 죠우리안 등 수많은 사원과 불탑의 위용에 감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이곳의 유적과 유물은 상당히 잘 보존되고 있는데, 8세기 당시에는 더욱 정연하게 남아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간다라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에 혜초는 의미심장하게 느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카슈미르지방인 가시미라국에 들어가 수많은 사원과 도성들을 둘러보고 인도 문화에 심취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비단길의 험로를 간신히 넘어 대발률국·소발률국의 여러 사원과 도성을 방문하였다.

이 나라는 고구려 유장(遺將) 고선지(高仙芝)가 정복하여 불교 문화를 직접 접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탑상이 새겨진 수많은 바위 조각과 범본(梵本) ≪법화경≫이 발견된 사원을 자세히 참배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카슈미르를 지나 간다라 문화의 중심지 간다라국에 들어가 동서문화가 잘 조화된 간다라 문화의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카니슈카(Kaniska)왕이 건립한 카니슈카사원 등에 참배하면서 간다라 불교 문화를 마음껏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혜초는 8세기 당시 불교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유적과 유물 그리고 수많은 사원과 도시들을 살펴보았고, 이들을 경건하게 참배했으므로 이들은 우리 나라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유적과 유물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순례승들이 이들을 참배했으므로 우리 선인들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印度 그 社會와 文化(徐景洙, 東國大學校 譯經院, 1978)
印度宗敎哲學史(鄭泰爀, 金寧社, 1985)
印度哲學思想史(鄭柄朝, 經書院, 1987)
各國便覽(外務部, 1988)
世界各國便覽(外交通商部, 1996)
外交通商部資料(外交通商部, 1998)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도 개관

국명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영어), Bharat(힌디어))

위치

남부아시아

면적

3,287,782㎢(한반도의 15배, 세계 7위)

민족

인도·아리아인(70%), 드라비다족(25%), 니그리토족, 프로토-오스트랄로이드, 몽골로이드, 알파인

언어

연방 공용어는 힌디어, 지방 공용어는 22개(힌디어 포함), 영어는 상용어

종교

힌두교 80.5%, 이슬람교 13.4%, 기독교 2.3%, 시크교 1.9%, 불교 0.8%, 자이나교 0.4%, 기타 0.7%

기후

지역별 차이가 심하나 대체로 열대몬순형 기후(3월~6월 혹서기, 7월~9월 우기, 10월~2월 건기)

인구

약 11억 6000만 명(2009년 추정치)

수도

뉴델리(New Delhi) (인구 : 약 1870만 명, 2009년 추정치)

국가형태

연방공화국

정부형태

의원내각제

주요인사

- 대통령(국가원수): 프라티바 파틸(Pratibha Patil), 2007년 7월 취임
- 부통령 (상원의장 겸임): 모하마드 안사리(Mohammad Ansari), 2007년 8월 취임
- 총리: 만모한 싱(Manmohan Singh), 2009년 5월 재취임

행정단위

28개 주, 7개 연방직할지

국내총생산(GDP)

12,175억 달러(2008/2009 회계연도)

1인당 국민소득

1070달러(2008/2009 회계연도)

무역액

4564억 달러(2008/2009 회계연도) / 수출 1687억 달러, 수입 2877억 달러

화폐단위

루피(Rupee, Re, 2009년 12월 1일 현재 1달러=46.45루피)

국경일

1월 26일(헌법 발효일: Republic Day)

군사력

현역 128만 명(세계 3위), 준군사부대(Para-mil Forces) 240만 명

국방비

 

문맹률

약 39.5%(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