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창세및 민족기원 신화의 재편양상

 

박 종 성**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차 례 1. 글머리
2. 헝가리의 창세신화 및 민족기원신화
2.1. 창세신화
2.2. 민족기원신화
3. 헝가리 신환의 형성과 재편
3.1. 훈족과 머저르 족의 신화적 설정과 의미
3.2. 니므릇과 민족의 원류, 그리고 중세보편종교
4. 결언에 대신하여


<논문개요>
헝가리의 창세신화와 민족기원 신화는 머고르Magor라는 존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헝가리 민족의 신화는 신화사에 있어 관심의 대상인 ‘신화의 형성과 재편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본고에서는 헝가리 민족이 유럽세계에 정착하고 국가를 성립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의 충돌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선택한 중세보편종교의 수용과 신화의 재편 양상에 관하여 살폈다.

 

고대 앗시리아 지역의 니므롯(Nimrod) 신화와 헝가리 민족기원신화가 성서를 매개로 신화를 재편한 양상을 검토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민족기원을 훈 족과 관련시키지 않으면서 신화에서는 특별하게 훈 족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양상과 원인에 관하여 검토했다. 동방의 이민족이 유럽세계에 진출하여 국가를 성립시키고 지속시켜온 이면에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중세보편종교인 기독교의 磁場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중세보편종교를 국교로 삼은 유럽의 다른 국가와 이질적이지 않은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편으로 헝가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투영하여 야벳과 니므롯의 혈통과 성격을 변화시켜 개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신화를 통해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훈 족과의 친연성을 유독 강조하는 신화적 발상은 주변 국가들과 자국 내의 귀족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편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고, 한편으로 훈 족과 머저르 족이 혈통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동방의 異民族으로서 유럽에 정착하여 생존을 지속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니므롯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견인한 것은 이와 같은 복합적인 까닭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된다. 헝가리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면 이민족의 정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방편이 신화의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주제어> : 창세신화, 민족기원신화, 형성, 재편, 중세보편종교, 성서


1. 글머리

세계 어느 민족이든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인간 세상과 자기네 민족의 기원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고 있으며 創世神話나 民族起源神話 따위와 같은 방식으로 그 해답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신화는 그저 신성하기만 하면 될 따름이어서 개별 민족이나 집단사이에 특별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편에 대응하여 논쟁을 일삼는 것은 부질없다.

 

創世神話나 民族起源神話는 막연하게 신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나 자연환경, 경제적 기반 따위를 놀라울 정도로 흡착시켜 형성된다. 그런 양상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신화에 접근하는 관점이 타당하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신화의 다각적인 연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이 글은 동유럽의 민족들 가운데 헝가리의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를 신화 형성 혹은 재편의 양상과 요인을 고찰함으로써 신화의 형성과 재편에 관한 하나의 사례를 보이고자 한다. 헝가리 신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헝가리 신화의 형성 혹은 재편의 과정에 중세보편종교의 영향과 주변 민족과의 관계, 헝가리 민족의 이동과 정착의 역사적 경험 따위가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가 별개로 전승되면서 한편으로 연계되기도 하여 창세신화를 민족기원신화와 함께 다룰 수 있는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이 글은 헝가리 신화의 신화소에 대한 해석을 가급적 배제하고 신화의 재편 과정에서 짚어볼 수 있는 전승 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헝가리의 창세신화 및 민족기원신화

2.1. 創世神話

가. 天地創造의 由來

 

위대한 천상의 아버지가 금관을 쓰고 앉아 있고, 그 옆에 위대한 천상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 아름다운 금빛 곱슬머리의 아들, 太陽神 머고르가 서 있었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언제 인간 세상을 창조하나요?” 아버지 신은 심사숙고 한 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인간들의 세상을 창조하고, 너의 아들들이 그 곳에 살도록 하자꾸나”라고.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나요?”라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원의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잠자는 눈(씨)이 있단다. 바다로 들어가 그 눈을 깨워 세상을 창조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금빛 새, 금빛 오리로 변했다. 그리고는 끝없는 바다를 향해 날아 내려갔다. 바다로 들어가자 숨이 막혀 바닥까지 내려 갈 수가 없었다. 다시 물 위로 올라온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온 힘을 다하여 잠수하여 바다 바닥에, 어둠 속에 있는 잠자는 눈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이 눈(씨)가 깨어나면서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었다.

나. 은하수신화

 

여전히 훈의 제국은 강성했지만 고트족과 비잔틴과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다. 비잔틴의 명문가 후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처버는 소모된 카르파티아 분지를 버리고 동쪽 민족과 연계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새 거주지를 찾기 위해 힘을 키운 다음, 어틸러의 검이 신비한 힘을 회복하도록 순환하는 바다의 물결에 검을 씻었다. 그는 3000명의 군사를 외르메드주르(Őrmedzur)에게 맡기고, 국경을 지키게 했다. 그들은 더머첵(Damacsek) 神에게 경배하고, 둘 중의 하나에게 위험이 닥치면 곧 돌아와 도울 수 있도록 자연의 힘이 알려주도록 청하였다.

 

처버 일행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서기도 전에 쎄켈족의 이웃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땅이 흔들리고, 소나무 꼭대기가 흔들려서 처버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음을 알렸다. 그들은 곧 다시 되돌아가서 민족을 구했다. 1 년 뒤 계곡에서 거주하는 민족이 침공해 오자, 강물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3년 뒤 세켈 족이 다시 적에게 포위 당했다. 처버 일행은 이 때 그리스에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의 날개가 고향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을 감지한 처버는 고향으로 돌아와 민족을 구했다.


처버가 자기 백성과 어머니를 데리고 스키티아로 가게 되었을 때, 훈의 귀족들은 그가 순수한 훈의 혈통이 아니고 심지어는 다른 민족의 여인과 결혼했다고 그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처버 일족은 스키티아의 종족이 되었고 아르파드 왕가의 헝가리로 돌아가고자 희망하는 업버(Aba)족을 이루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트랜실바니아 지역은 러본(Rabon)의 지배를 받는 새 왕국이 건설되었다. 이민족이 침략해 오자 죽은 쎄켈의 별이 옛 맹세를 기억하고 불타는 빛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처버에게 알려 주었다. 침공이 거의 성공하기 직전 처버가 하늘에서 내려와 민족을 도와 승리하게 해 주었고, 과거에 민족을 도왔던 용사들도 함께 돌아와 싸워 주었다. 그들은 눈이 덮인 하늘에 솟아 있는 산을 타고 조용한 정령의 모습으로 줄지어 내려 왔다.

 

적은 이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고 말았다. 이들은 아직도 하늘에 무리 지어 남아 있는데, 그들의 말발굽이 빛나는 모습이 한 밤중에 보이는 은하수이다. 이 우유 빛 줄무늬는 처버와 용사들의 영혼이 타고 있는 말발굽이 빛나서 나타나는 무늬이다.

대지를 만들어 내는 요소인 흙을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존재(the earth bringer)의 양상은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야쿠트 族이나 알타이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비(swallow) 형상의 새와, 보굴(Vogul) 族의 신화에서 입 속에 땅의 일부를 감추고 있는 물새(water fowl) 따위는 최초에 대지를 창조하는 데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예니세이 오스티악 族의 신화에서도 역시 바다 속에 있는 땅의 한 조각 곧 흙을 백조(swan)나 여타의 물새가 가져와서 창조신에게 전달하여 대지를 창조하게 했다는 내용이 전승된다.

 

같은 語族에 속하는 핀-우그르系의 민족인 핀란드의 ‘칼레발라’ 서사시의 서두에도 흰뺨오리의 알에서부터 세계가 창조되고 물의 어머니로부터 배이네뫼이넨이 태어나 농경신(경작신)인 샴프샤와 더불어 천지만물의 생장을 주관하는 내용이 노래로 불려진다. 태초에 이 세상에는 물뿐이었는데, 석가모니와 마이다르, 그리고 에세게 보르항 셋이 앙가트 새를 시켜서 땅을 만들고, 다시 그 흙으로 남녀 두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몽골의 창세신화에서도 ‘앙가트’라고 하는 새가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헝가리의 창세신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앙아시아 창세신화의 영역 내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상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여 창세신화에 이미 부모의 혈통을 구체화한 점이 특별한데, 적어도 창세신화가 후대에 형성된 것임을 알게 하는 표지이다. 일반적으로 창세신화에는 창세의 신에 부모의 혈통을 구체화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혈통이 확정되고 구체화되는 것은 적어도 고대의 국가 성립 시기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어 헝가리의 창세신화가 후대적 변천을 이미 경험한 단계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또한 천상의 아버지가 금관을 쓰고 있다고 하는 설정이 특별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신화의 후대적 형성의 표지로 이해하여 헝가리 민족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연계된 양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헝가리 민족의 계통과 관련하여 자기네 민족의 개별적 특징을 신화 속에 포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다.

 

헝가리에서는 ‘성 이슈트반 왕관(A sazent korona)’이란 것이 있어 신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독교 왕국을 국가 체제의 근간으로 삼아 헝가리 왕국의 기반을 다져놓은 이스튜반 1세가 교황 실베스터 2세로부터 즉위식 때 받은 왕관이 그것인데, 그 眞僞 여부를 떠나 헝가리 국민들의 신성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천상의 아버지가 쓰고 있는 금관이, 기독교 국가 건설을 확립한 이슈트반 1세의 왕관과 이어질 때 헝가리 민족의 창세신화는 카톨릭 신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며, 민족기원 신화가 성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시작하는 양상과도 자연스럽게 부합된다.

 

한편으로 헝가리 민족이 훈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훈족이 스키타이 문화의 자장 내에 있었던 민족이라면 저 유명한 스키타이 문화의 금관이 천상의 아버지가 쓰고 있는 금관과 이어질 수 있다. 헝가리 민족의 자랑스런 문화적 전통과 이전의 강력한 세력에 대한 자긍심이 어우러져 창세의 至高神이 동일한 모티브의 금관을 지닌 신으로 설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어 논의할 민족기원 신화에서 확인되듯이 헝가리 민족의 기원은 훈족과 분리되어 나타날 수 없고, 훈족 또한 스키타이 문화를 짊어지고 서유럽으로 이동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헝가리 창세신화의 금관은 두 가지 관점을 포괄한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으로 이전의 문화적 전통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카톨릭 국가로서 유럽 세계에 터전을 삼은 역사적 내력을 함께 자랑하기 위하여 스키타이를 거쳐 훈족의 어틸러 왕국에 이어진 금관의 찬란한 전통이 카톨릭 국가 확립의 징표로 신성시되는 이슈트반 1세의 왕관에까지 이어져 창세신의 형상을 이런 방식으로 설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헝가리 내에서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이 신성시되는 이면에 이러한 이중의 함의가 介在해 있다고 판단된다.

 

헝가리 창세신화는 민족기원신화와 연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요인을 지니고 있다. 천상 父神인 창세신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을 창조해낸 태양신 머고르는 곧 헝가리 민족기원 신화의 머고르, 곧 머저르 족의 시조가 되기 때문에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창세신화와 맞물려 있음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기원신화를 창세신화와 함께 다루어야 헝가리 신화의 특징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창세신화와 민족 기원신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례는 두 가지 사례에서 확인된다. 우선은 신화의 전승 자체가 해당 민족의 공식적인 경로, 곧 역사 기술로도 전승되는 동시에 口碑傳承되기도 하는 경우가 아니라 단지 구비전승에 의해서, 특히 민간신앙과 관련한 신화 전승의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흔히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이른 시기에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고대국가 형성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못한 민족들이 천지만물의 창조에 이어 자기네 민족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정을 통하여 민족 기원의 오랜 내력을 부각시키는 양상이 우선 확인되고, 다음으로 고대국가 형성의 경험이 있으나 그 시기가 주변 민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늦어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역사 기술을 통하여 공식화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전자는 주로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서 쉽게 확인되며, 후자는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헝가리는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가 하나의 신화로 전승되지 않고 개별적인 전승을 지속시키면서 연계되어 있는 사례에 해당하여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은하수 신화>의 영웅인 처버는 어틸러의 막내아들로서, 이름 자체가 목동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는 양 따위의 동물을 지키는 목동이 아니라, 헝가리 민족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지위를 갖는데, 은하수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면 처버가 어떻게 헝가리 민족을 지키는 목동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453년 어틸러가 죽자 맏아들 얼러다르(Aladár)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게르만의 폭동으로 살해된다. 그의 동생 덴게직(Dengezik)이 반란을 진압하고 드네프르 강과 드니페르 강 사이의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처버의 영웅적 행위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통상 한국을 비롯하여 동북아시아에서는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천상의 시내로 형상화되어 있고, 견우와 직녀의 유명한 전설이 덧보태져 다양한 전승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헝가리의 은하수는 헝가리 민족을 수호하는 처버 王子와 그의 勇士들이 타고 다니는 말의 발굽이 빛나는 것이라 설정했으니 전형적인 騎馬民族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과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은하수의 유래는 태초의 시절이 아니라 후대의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헝가리 역시 처버 왕자라고 하는 인물과 그의 용사들의 행적과 역할에 이어져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은하수의 유래가 대체로 역사적으로 확인되기 어려운 인물들, 곧 불특정 인물이거나 전설적 인물들과 연계되어 있으나 헝거리의 경우는 신화의 문면에서 보면 역사적 인물이 분명한 처버 왕자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어틸러 왕의 아들로 알려진 처버가 헝가리 민족의 수호신으로 그 역할을 지속시키면서 은하수가 그 증거물 노릇을 하고 있으니 역사적 인물과 별자리의 유래가 결합되어 그 진실성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처버 왕자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매개는 땅과 나무의 搖動, 강물, 폭풍과 같은 자연의 힘이다. <그림1, 2>를 참조하면 이들 신화에 땅과 강, 나무, 폭풍과 같은 자연적 요소가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후노르와 머고르가 이동한 경로와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이주의 과정에서 접촉하고 융합된 이민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처버 왕자의 일파가 스키티아의 종족이 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어틸러 왕국의 훈 족이 스키티아와 문화적 측면에서 혹은 민족의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헝가리 최초의 왕국인 아르파드朝와 연결되어 헝가리의 국가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양상은 헝가리 민족의 기원과 국가형성에 있어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결과로 판단된다.

2.2. 민족기원신화

가. 헝가리 민족의 기원 1

 

아주 오래 전, 수 천 년 먼 아시아에 한 때 크고 강력한 왕국이 하나 있었다. 북으로는 높은 산과 남으로는 남쪽 바다와 경계를 이룬 곳이었다. 산으로부터, 큰 두 줄기 강이 흘러 내려 바다를 향해 남쪽으로 흐르면서 평평한 저지대에 물을 대 주고 있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예술, 과학, 지혜로 유명했다. 그들은 아주 풍요롭고 비옥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대홍수가 난 다음 북쪽 산악지대에서부터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 땅을 건설했다. 이 땅의 왕은 거인 사냥꾼인 니므롯(Nimrod)으로, 위대한 왕 에터너(Etana)왕의 조상이었다. 니므롯 왕은 홍수가 난 뒤 201년 후에 바빌론에 홍수방지용 대형 피라미드를 세우고, 큰 건물과 신전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다. 니므롯은 용감한 전사로 그의 제국을 북과 동으로 확장하며 그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 땅은 후에 동 페르시아라고 불리며, 인도 북부와 근접한 곳이다.

 

여기서 그는 첫 부인 에네드(Eneth)와 결혼하여, 그녀가 후노르(Hunor)와 머고르(Magor)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아들들은 그의 자랑거리였고,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며 궁에서 자라났고, 후에는 사냥에도 함께 나가게 되었다. 니므롯은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가 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가, 사냥을 계속하려는 두 아들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사냥감을 찾는 아들들에게 놀라운 짐승, 거대한 뿔을 가진 암 사슴이 나타났다. 사슴의 뿔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사슴에 매혹된 아들들은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동물은 그들을 서쪽의 빈터와 숲으로 인도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동물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사냥꾼들은 야영을 하게 되었다. 동이 트자 암사슴이 다시 나타났고, 그들은 다시금 뒤쫓게 되었다. 낯선 땅을 통과하여 어드젬(Adjem) 산맥을 넘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메오티스(Meotis)의 거칠고 위험한 늪지대를 통과하여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암사슴은 그들을 호수로 인도하더니, 그리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렸다.

 

이 질척거리는 땅은, 메오티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단 한 면만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땅에 연결된 한 면도 질퍽거리는 늪지대여서 외부에서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가 없는 곳이었다. 이 곳에는 새와 물고기와 사냥감이 풍부하였고, 페르시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암사슴을 잃어버린 것을 아주 섭섭해 하면서 후회하였다.

 

그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그들이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자신들을 연마할 수 있는 사원을 세워주기를 간청했다. 그들은 사원에서 5 년을 살았다, 그리고 6 년째 되는 해에, 스승이 와서 위대한 왕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때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갈구하게 되었다. 그들과 그들의 병사들은 사원을 떠나, 가까운 지역을 정찰하였다.
야영을 하면서 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어 그들은 음악 소리에 깨어나게 되었다. 음악은 숲의 개간지에서부터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뿔의 축제를 즐기며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암사슴의 이름은 헝가리어로 “뿔을 지닌 자”였고 아가씨들은 암사슴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개간지에 있는 아가씨들은 알란(Alan) 족의 딸들이었고, 가운데에 있는 두 아름다운 아가씨는 그들의 지도자 둘러(Dula) 왕의 딸이었다. 두 젊은이는 첫 눈에 공주에게 반했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과 군사들은 여인 모두를 납치하여서 그들의 전통에 따라 혼례를 올렸다. 그들은 호수 가운데에 있는, 방어가 잘 되는 섬에 정착하였다. 그들의 후손은 불어났고, 이웃으로 이주해 가서 스키티아의 108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후노르의 후손은 훈족이 되었고, 머고르의 후손은 머저르 족이 되었다. 스키타이 민족의 땅은 흑해의 북쪽에서부터 중앙아시아의 샤마칸에 이르는 곳이었다. 그들의 제국은 아버지의 제국과 북과 동에서 접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니므롯의 왕국은 서쪽의 낯선 지배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 나라가 후일 페르시아가 되었다.

나. 헝가리 민족의 기원 2

 

오래 전에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하여 사람들이 야수처럼 살아가자 신은 그들을 벌하려고 지상에 큰 홍수가 나도록 했다. 홍수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했고 오로지 노아와 그들의 가족만이 살아 남았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홍수가 끝난 뒤 이 세 아들에게서 72개의 민족이 유래했다. 세 아들에서 유래한 민족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았다. 셈의 후손은 아시아에, 함의 후손은 아프리카에, 야벳의 후손은 유럽에 살았다. 프랑스인들은 야벳의 맏아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프랑스 인들은 트로야를 함락한 후에 나중에 머저르 족의 조국이 되는 파노니아로 제일 먼저 왔다. 프랑스 인들은 퍼노니아에 씨컴브리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동쪽의 민족들이 침입할 까 두려워 서쪽으로 물러났다. 서쪽 세느 강변에 정착했고, 그들의 새 조국을 자신들의 지도자 프런치오의 이름을 따서 프랑스라고 불렀다. 야벳의 막내 아들로부터 멘로트라는 거인이 생겨났다. 거인은 신이 세상에 또 다시 홍수를 내리면 홍수 때 피난갈 수 있도록 거대한 탑을 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탑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신이 사람들의 말을 모두 바꾸어 놓아 친척들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멘로트의 민족은 세상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멘로트 자신은 언어가 섞인 이후 페르시아로 갔다. 여기서 에네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암사슴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네를 아내로 맞았다. 에네는 아들 둘을 낳았다. 한 아들은 후노르이고 다른 아들은 머저르라고 했다. 그들에게서 훈 족과 머저르 족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습지에서 살다보니 거대한 민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땅이 너무 비좁고 식량도 부족했다. 그래서 시처국으로 정찰병을 보냈고, 계속해서 오랫동안 정찰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전 민족이 함께 일어나 새로운 조국 시처국을 향해 나아갔다. 시처국의 땅은 비옥했다. 나무와 숲 풀이 무성했고 야생동물도 많았다. 볼가 강에서 카우카수스 산맥에 이르는 거대하고도 광활한 제국이었다. 시처국에는 볼거 강과 돈 강도 발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시처 족은 매우 현명하고, 친절했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채 순결하게 살았다.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집도 없이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에서 생활했다. 시처 족은 고기, 생선, 우유, 꿀을 먹었다. 또 여러 짐승을 길렀다. 담비나 다른 야생 동물의 털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귀족만이 아니라 소치기, 돼지치기와 양치기도 털옷을 입었다. 시처 족은 금, 은, 진주를 돌처럼 여길 만큼 흔하게 생각했다. 그 나라의 강바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쳐 족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넘보지 않았다. 게다가 가축도 많이 쳤고 먹을 것도 풍부했다. 결혼을 신성하게 여겨 모든 시처의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아내만 있었다.

 

시처 족을 정복한 지배자는 아무도 없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쳐들어 왔으나 시쳐 족은 간단히 격퇴했다. 왕은 8만의 군사를 잃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면서 페르시아로 되돌아갔다. 또 다시 페르시아의 치루시 왕이 쳐들어왔으나 재가 되고 말았다. 시쳐 족은 33만의 군대를 이끌고 온 왕을 물리쳤다. 바로 이 시쳐 족이 여러 나라를 정복했던 너지 샨도르 왕도 무찔렀다. 시쳐 족은 모든 침공을 용감히 막아냈다.

 

군인들은 용감했으며 전사들은 뛰어났다. 모욕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복수를 하기 전에는 결코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씨처 족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전혀 약탈을 하지 않았다(오늘날의 후손과 달랐다). 그들은 전투에서 명예를 찾았다. 이렇게 해서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했다. 다리우스와 치루시, 너지 샨도르를 제외하면 세상의 다른 어떤 지도자도 그들의 땅으로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않았다.

 

시처 족은 전투에서는 용감하고 말을 타고 바람처럼 빨리 달렸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며 세상의 어떤 민족보다도 잘 싸웠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후예인 머저르 인들도 용맹하다고 인정받았다. 시처 족의 이웃에 베세네이와 백인 쿤 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북해 주위와 맞닿은 곳에서부터 수스덜 국까지는 그저 넓은 광야가 펼쳐져 있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원시림의 지역이었다.

 

일년에 아홉 달은 안개가 가득 차고 6, 7, 8월에만, 그것도 하루 중 몇 시간만 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었다. 시처의 울창한 산악지대에서 크리스탈이 발견되었고, 숲에서는 독수리가 둥지를 틀고 허어가리에서 케레츠라고 부르는 야생 매가 부화하였다. 후노르와 머저르의 후손이 시처국으로 밀려 들어왔을 때 민족은 108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이 거대한 제국은 108개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 3 (신비한 사슴과 훈 족과 머저르 족의 기원)

 

옛날에 후노르와 머저르가 사냥을 하다가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메오티스의 습지 사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때 갑자기 암사슴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자, 그들은 곧장 사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슴은 달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추격하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참을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슴을 찾느라고, 그들은 습지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

 

습지에는 짐승들이 많아서 사냥에 적합했다. 그들은 자기들 아버지에게로 되돌아 와서 메오티스 습지로 이주해 가기를 청했다. 메오티스의 땅은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였고 오로지 좁은 저지대 하나가 있어서 그 길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강은 전혀 없었고 풀과 나무와 새, 물고기와 야생동물이 가득했다. 들어가고 나오기가 어려웠다. 후노르와 머저르의 민족은 메오티스의 습지로 이주했고 5 년간 전혀 이동하지 않았다.

 

6년이 되던 해에 출발하여 광야에서 우연히 베라르 왕의 아들들의 부인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남편 없이 천막에 머무르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그들은 곧 피리를 불며 잔치를 열었다.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그들을 붙잡아, 가산까지 모두 함께 지고 메오티스 습지로 데리고 왔다. 얼론 족의 족장인 둘라의 두 딸을 붙잡아 한 딸은 후노르가, 다른 한 딸은 머저르가 아내로 삼았다. 모든 훈 족과 머저르 족은 이 여인에게서 유래하였다.

라. 어틸러의 神劍 신화

 

훈 족과 머저르 족이 스키타이를 정복하고 나서 자신들을 수호해 준 신에게 검을 바쳤다. 그 후 모든 민족들은 이 검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 검을 찾게 되는 사람은 신의 축복을 받아 백전백승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각 민족의 선지자들이 모여 삼일 밤과 삼일 낮 동안 논의를 한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한 눈 먼 사람이 이 검을 들고 일곱 번 돌린 다음 던지기로 했다. 만약 서쪽으로 떨어지면 훈 족이 주인이 되고, 동쪽으로 떨어지면 헝가리 민족이 소유하기로 하였다. 모두 이렇게 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앞 못 보는 사람이 일곱 번을 돌리고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자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더니, 신의 검을 낚아채 갔다. 검은 빙빙 돌면서, 서 쪽으로, 서쪽으로 바람에 밀려갔고,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어틸러가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 우리가 서쪽으로 가기를 원하신다. 검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우리가 발견하게 되든지, 너희들이 발견하게 되든지 일단 소식을 보내자.” 이렇게 약속하고 두 민족은 길을 떠났다. 어틸러의 뒤를 따라 훈 민족이 모두 따라 나섰는데, 맨 앞에는 늙은 문드주크(Mundzuk)가 서고, 그의 옆에는 어틸러와 부더(Buda)가 섰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말을 탄 채 뒤따랐다. 그들은 거대한 숲을 지나, 깍아 지른 듯한 벼랑을 넘어 아주 오래도록 걸어 두너(Duna)와 티서(Tisza) 강 사이에 이르렀다. 이 지역은 그들 모두의 마음에 꼭 들었다. “자 우리 여기 남아서, 살고, 죽자!”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화들짝 놀라 데트레(Detre)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곧 수만 대군을 이끌고 왔고, 두 민족의 병사들은 두 덩어리의 검은 구름처럼 서로 엉겼다. 피가 흘러 들어, 두너 강은 넘쳐 났고, 마침내 두너와 티서 사이의 지역은 훈 족의 땅의 되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더 이상 전쟁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틸러는 전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꿈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비가 말했다. “아들아, 신검을 찾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신이 너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네가 제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어틸러의 머리에는 신검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훈 족은 만장일치로 가장 용감하고, 가장 지혜로운 어틸러를 왕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는 신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목동 소년이 손에 반짝이는 검을 들고 와 말했다. “위대하신 왕이시여, 평원에서 이 검을 발견해서, 여기로 가지고 옵니다. 사람들이 신검이라고 하는 검입니다.” 어틸러는 검이 진짜인지 즉시 시험해 보았다. 소리가 울려 나오는 지 보기 위해, 칼집의 네 모서리를 세 번 쳤다. 그러자 “이게 그거야, 바로 이거야”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왕은 기뻐하며 불을 피워 훈 족에게 검을 되돌려 주신 신에게 예배드리게 했다. 이렇게 하여 어틸러가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제사장들의 예언이 완성되게 되었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 신화 셋은 동일한 내용을 전승하고 있는 각편들이다. 핵심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 大洪水 이후에 巨人神的 存在(니므롯/멘로트)가 ‘암사슴’의 뜻을 지닌 女人 에네드/에
네와 결연했다.
② 둘 사이에서 후노르와 머저르(머고르)라는 쌍둥이 兄弟가 태어났다.
③ 후노르와 머저르가 암사슴의 인도로 메오티스 늪지대를 거쳐 비옥한 땅으로 갔다.
④ 그 지역 근처에서 암사슴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던 알란(Alan) 族 둘러(Dula)王
의 두 딸을 만났다.
⑤ 두 공주를 납치하여 婚禮를 올렸다.(掠奪婚)
⑥ 후손이 번성하여 스키티아(스키타이)의 108개 민족이 형성되었다.
⑦ 후노르의 후손은 훈 族이 되고, 머저르의 후손은 머저르 族이 되었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인류의 대홍수 이후에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中央아시아에서 東北아시아 일대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곳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양상이다. 大洪水에 이은 제2차 人世創造가 시작되면서 헝가리 민족이 더불어 비롯되었으니 그 내력이 대단히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만하다. 암사슴에 대한 관념이 예사롭지 않아 중앙아시아 일대의 사슴 숭배와 특별한 관련을 맺는 것도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말해준다.

 

헝가리의 민족 기원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하나는 헝 가리가 훈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다른 하 나는 투르크系의 一派에서 헝가리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부정되고 있다. 우선 훈 족이 중앙아시아에서 西進하여 기 원 후 4세기 경에 어틸러(Atila) 왕국을 건설한 후 5세기 중반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헝가리 민족이 서유럽 세계에 비교적 국가적 면모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 기원 후 9세기 경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계통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시기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또한 “Hungary"라는 나라 이름이 훈 족의 ”Huns"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이는 훈 족의 멸망 이후 뒤늦게 등장한 헝가리 민족이 여러 측면들에서 이전의 훈 족과 유사하다고 서유럽 세계에서 판단했기 때문에 “Huns"와 견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헝가리의 언어학자들은 “Hungary”가 투르크語의 “on + ogur” 곧 “열 개의 화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고, 후에 서유럽 세계에 의해 훈 족의 일파로 오해를 받아 “h"가 붙여져 “Hungary"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기원 후 5세기 경에 이주해 온 ‘오노구르(Onogur)’가 투르크系 유목민족의 일파라고 한다면 역사상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헝가리의 민족 기원은 적어도 ‘오노구르’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헝가리 민족이 西進을 계속하면서 주변의 여러 민족들과 접촉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이란系의 알란(Alan) 족으로부터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토지 경작술과 농경기술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사정이 헝가리 民族起源神話에서 母系로 설정되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기원신화에서 훈 族과 머저르 族이 쌍둥이 형제로 설정된 점이다. 머저르 족이 훈 족과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형제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신화의 내용과 실제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훈 족과의 非連繫性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저르 족이나 훈 족이나 그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투르크系의 일파이거나 혹은 민족이동의 과정에서 경험한 두 민족 사이의 공통적인 요인-신화의 문면에 제시된 스키타이와의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훈 족과 머저르 족과의 관계가 전혀 부당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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