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 ‘슬기 슬기 사람(Homo sapiens sapiens)’은

‘지난 우주 1년’의 겨울(카오스) 개벽이 끝나고

‘이번 우주 1년’의 선천 봄철(5만 년 전)에 화생되었습니다.


그러면 선천 봄의 탄생개벽 이래
최초로 출현한 현생 인류의 원 조상은 누구이며 처음 생겨난 곳은 어디일까요?


인간의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이 문제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창세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민족의 정통사서인 『태백일사』
인간 탄생의 현묘한 천지이치[玄機]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천도는 북극에서 처음 열린다. 따라서 하늘의 통일정신[一太極]이 물을 생성하니
이를 북수北水라 이른다. 북극의 물은 인간생명 창조의 씨[子]가 머무는 곳이다.]


천지의 만물 생성과 변화운동의 출발점은 북극입니다.
주위로부터 360개의 물줄기가 들어와 이루어진 바이칼호는 천하天河, 천해天海라 불리웁니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바이칼은 ‘바이Bai’와 ‘칼Kal’의 복합어입니다.

‘바이’라는 말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상고시대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샤먼’을 가리키고,
‘칼’은 괼, 골, 곌 등으로 불리는 넓은 계곡과 호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바이칼에는 ‘태초 샤먼의 호수’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천하(천해)는 감방坎方의 북극수로, 인간을 처음 탄생케 하는 지구의 자궁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이칼호의 성분이 모체의 양수와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가을개벽이 이루어지는 간도수 역시 북감방의 북극수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우주의 봄철에 북녘의 감방에서 인간이 나오고,
그들이 태고 시절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여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퍼져나가
진동방震東方에서 인류문명을 크게 열었다가 간방艮方으로 들어가
천지의 열매를 맺는 것’이 간도수의 실체입니다.

이러한 만물 창조 섭리에 의해 북해에서

선천 인류의 첫 조상인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 태어났습니다.


동서에 떨어져 살던 나반과 아만 두 분이 처음 만난 곳이
시베리아의 아이사타阿耳斯陀이며 북해를 처음 건넌 날은 ‘7월 7일’이라 합니다.


나반과 아만은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 혼례를 올렸습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이미 2만5천~4만5천 년 전에

알타이 산맥과 남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현생 인류의 문명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천 봄까지도 남아 있던 얼음 층이 약 1만1천 년 전에 북쪽으로 완전히 물러가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따뜻한 기후가 시작되고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이 때부터 다시금 번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출처: 개벽실제상황 p194~195 중

 

알타이어 전문 연구가에 의하면, “아빠”, “엄마”의 어원이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기재).

 

 나반-> 나바이-> 아바이-> 아빠
 아만-> 아마이-> 어마이-> 엄마

 
 
『태백일사』를 쓴 이는 이맥李陌(1455~1528)이다. 이맥은 연산군 때 사람인데
너무 강직해서 연산군의 미움을 사 충북 괴산으로 유배당했다.
그리고 다시 풀려나 벼슬길에 복귀하였는데 그의 호가 일십당一十堂이요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李콖의 현손(고손자)이었다. 연산군이 몰락하고 난 뒤 중종이 즉위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서 찬수관纂修官으로 재등용되었는데
그때 내각에 있는 비장도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우리 역사의 시작 즉 상고사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군 이전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것이다.
 
이맥이 내각의 비서를 읽고 『태백일사』를 지은 것은 중종(1506~1544) 초의 일이었다.
세조(1455~1468)가 모든 상고사 기록 즉 『고기』를 거두어들이라는 명(收書令)을 내린 지
불과 50년 뒤의 일이었다. 세조 2년, 왕은 각도 관찰사에게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든 상고사 기록을 압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영을 어기고 책을 숨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으니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비슷한 문화탄압이었다.
이때 압수된 고기의 서목이 실록에 기재되어 있는데 그 중의 일부 서목이 『태백일사』에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이맥은 목숨을 걸고 『태백일사』를 저술했던 것이다.

잠시 이맥이 『태백일사』를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때는 갑자년(연산군 10년 1506). 내가 괴산에 유배되었을 때 적소謫所에서 근신하고 있으니
너무 무료하여 집에 간직해 두었던 사전史典들과 노고들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16년 만인 경진년(중종 15년 1520)에 찬수관纂修官으로 있을 때 내각에
소장된 비밀스런 책들을 읽고 이들을

모두 합해서 책을 엮었는데 이름하여 「태백일사」라 한다. (『태백일사』 발문跋文)
 
『태백일사』의 <일사逸史>란 말은 “정사正史에서 빠진 태백의 역사”란 뜻이다.
태백이란 태백산 즉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란 뜻이다. 태백의 역사가 왜 빠졌는가 하면 조선왕조가 이를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조선왕조는 명나라와의 외교적 문제를 고려하여 단군 이전의 역사를 금지했던 것이다.
상고사는 금지된 역사요 국시國是에 위반되는 역사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책의 소장자를 죽이겠다고까지 으름장을 놓았겠는가.
 
『태백일사』를 소중하게 간직하여 후세에 전한 분이 바로 이맥의 후손인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였다.
이기 선생은 한말의 애국지사로 이름난 분이었고,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 나라 상고사를 밝혀 준 숨은 민족사가이기도 한 것이다.
 
 
■『태백일사』란 어떤 책인가
여기서 잠시 『환단고기』의 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앞의 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
「삼성기」<상, 하>가 수록되어 있고, 다음에 (2) 「단군세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3) 「북부여기」<상, 하>가 수록되고, 이어 마지막에 (4) 「태백일사」가 수록되어 있다.


『환단고기』의 차례대로 설명한다면 「단군세기」를 먼저 설명하여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단군 이전 시대의 기록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단군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군 이전 시대에 관한 『태백일사』를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속에는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사서가 수록되어 있다. 즉 1)
단군 이전 시대, 환국과 신시 시대에 관한 기록, 2) 단군 시대의 기록, 3) 경전류의 기록, 그리고 4) 단군 이후의 시대,
즉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1) 단군 이전에 관한 기록 ① 삼신오제본기 제1② 환국본기 제2 ③ 신시본기 제3
2) 단군 시대에 관한 기록 ④ 삼한관경본기 제4  -마한세가 상 하  -번한세가 상 하
3) 경 전  ⑤ 소도경전본훈 제5-천부경 -삼일신고
4) 단군 이후의 시대에 관한 기록⑥ 고구려국본기 제6⑦ 대진국본기 제7⑧ 고려국본기 제8
 
우리는 앞서 『삼성기』 상권과 하권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계속해서 단군 이전 시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것이다.

 
즉 『태백일사』 서두에 나오는 「삼신오제본기」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삼신오제본기」는
환국시대와 신시시대에 관한 기록이다.
 
 
■정치하는 자들이여 백성의 어버이가 되라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도 앞서 나온 「삼성기」<상, 하>와 같이 태시기太始記로부터 시작된다.
태시기는 창세기를 말한다.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에 조판기肇判記와 태시기太始記가 있듯이 「삼신오제본기」에도 태시기가 있어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규원사화』의 조판기에는 “태고에 음양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혼돈한 채 오래 닫혀 있었다.
상계에 문득 하나의 대주신大主神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환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삼신오제본기」에서는 『표훈천사表訓天詞』를 인용하면서 태초에 천제가 계셨다고 말하고 있다.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 그리고 사방에 암흑이 깔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니
시간이 흘러 옛것이 가고 지금이 오더니

마침내 ‘오직 한 빛이 밝았다(只一光明矣). 상계上界에 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이가 곧 상제上帝이시니라. 그 주체는 일신一神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작용할 때에는 삼신이다."

 
그런데 천제는 바로 삼신을 말한다고 한다.
삼신이란 천일, 지일, 태일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이지 셋이 아니라고 한다.
 
무릇 삼신은 천일天一(하느님)이라 하고 지일地一(땅의 신)이라 하고 태일太一(사람의 신)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敎化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하였다

 
삼신 중 천일은 조화(창조), 지일은 교화(교육), 태일은 치화(통치)를 주관한다고 하였는데,
『고려팔관기高麗八關記』에 따르면 천일은 곧 환인이요 지일은 환웅이요 태일은 단군이라는 것이다.
 
『고려팔관기』에 삼신설三神說이 있다.

가로대 “상계의 주신을 천일天一이라 하여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하계의 주신을 지일地一이라 하여 교화敎化를 주관한다.

중계의 주신은 태일太一이라 하는데 치화治化를 주관한다”고 하였다.


또 “환인씨는 어버이의 도를 써서 천하에 쏟으며 신시씨는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한다.
왕검씨는 왕의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하였다.
 
삼신은 환인 환웅 단군인데, 환인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조화)하셨고
환웅은 환인이 이미 만든 것을 교화 즉 가르쳤고(교화) 단군은 환웅이 가르친 바대로 다스렸다(치화)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을 다스리는데 있어 삼신은 각기 다른 방법을 썼다.


즉 환인은 백성을 가장 정에 넘친 어버이(親)처럼 다스렸고, 환웅은 스승(師)처럼 다스렸으며
단군은 임금(君)처럼 다스렸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백성을 다스리되 어버이처럼 다스리라는 것이다.
 

 
■태초에 나반과 아만이 만났다. 

그러면 삼신이 내린 곳은 어디인가. 바로 태백산인데 이 태백산은 지금의 개마고원이었다는
것이다. 개마고원은 평안도와 함경도 경계에 있는 고원으로서 한국의 지붕으로 알려져 왔다.
백두산의 어원도 개마고원의 개마蓋馬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삼신산을 천하의 뿌리산根山이라 한다.

산 이름을 삼신이라 한 까닭은 대저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었기 때문이다.

혹은 삼三은 신新이요 신新은 백白이라,
신神은 고高가 되고 고는 머리頭가 된다. 때문에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은 개마蓋馬는 해마리奚摩離에서 바뀐 이름이라 하면서 해奚는 희다는 뜻이요,
마리摩離는 머리라는 뜻이니
백두산의 이름이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삼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교화하고 치화하였다고 하였으나
삼신 이전에 인류의 시조가 따로 있었다.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는 분이었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말의 아버지와 어머니란 뜻인데
이 두 분이 서로 아이사타阿耳斯? 에서 만나 처음 혼약을 맺고 후손을 나았으니
이것이 인류의 시작이자 동시에 우리 민족(구환족九桓族 64민民)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일명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다.


구환의 64민은 모두 그 후예이다. 그러나 그 뒤 구환족은 각각 흩어져서 일산일수一山一水에 나라를 만들어
서로 경계를 쳐서 살게 되니 서로 창세의 줄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반과 아만이 서로 만난 곳은 천해(천지)가 있는 곳이었다고 하며

서로 만난 날은 7월 7일이었다. 하백은 나반의 후손이었다.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바로 나반이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날 용왕에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이로 하여금 사해四海의 여러 신들을 주관케 하셨다.
천하를 일명 천해天海라고도 한다. 지금의 북해北海가 그곳이다.
 
그럼으로 북해(바이칼호)가 우리 민족의 원주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극에서 천도天道 즉
홍익인간의 가르침이 처음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注에 가로대 “천도는 북극에서 일어났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을 낸다.
이를 북수北水라 한다”고 했다. 대저 북극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다.

 
이같이 나반과 아만이 태초에 혼인하여
그 후손시대가 오래 계속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환인이었다.
이 분이 나반의 뜻에 따라 선정을 베푸니 그를 또한 아버지(안파견 또는 커발한)라 불렀다고 한다.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환인桓因이란 분이 나타나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임금으로 추대되었으니
이를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하고 커발한居發桓이라고도 하였다.

대저 안파견이라 함은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이고,
커발한이라 함은 천지인天地人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이로부터 환인의 형제 아홉 명이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셨으니 이를 9환64민九桓六十四民이라 한다.
 
이야기가 약간 복잡해지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태초에 나반과 아만이 계셨고 이어
오랜 후세에 환인이 나타나고 환웅 단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글/ 박성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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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의 의미

 

음력 7월 7일은 동양에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칠월칠석(七月七夕)이다.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칠월칠석은 중국의 전통 명절로 중국은 이날을 ‘연인절’로 정하고

사랑하는 커플을 상대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칠월칠석은 연인들을 위한 명절이 아니었다.

당시의 칠월칠석은 여성들만을 위한 명절로

칠석이 되면 한여름의 열기도 한풀 꺾이는 시기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때면 여인들은 전설 속의 직녀와 같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옷감을 준비하는데 이날

여인들은 직녀의 명복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며 좋은 옷감을 짤 수 있는 재주를 달라고 기원해

이 날을 ‘재주를 바라는 명절(乞巧节)’로 불렸다. 남녀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명절인 셈이다.

 

고대 중국 문화에는 ‘연인’이란 개념이 전혀 없었다. 남성들의 지위가 높았던

시대인지라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보기만 하면 자신의 여자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런 남성들의 행동에 여성들은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으니 연인이란 있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이런 명절을 현대에 와서 굳이 ‘연인절’로 규정하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의구심이 든다.

칠석을 중국의 ‘연인절’로 규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 가정에서 베틀을 이용해 옷감을 짜는 경우도 없고

직녀와 관련된 칠석의 의미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발렌타인 데이’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어

서양의 명절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의 전통 명절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칠석을 ‘연인절’로 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전통 명절이 어디 전문가들의 건의와 주장에 의해 규정해야 할 일인가.

 한 나라의 전통 명절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국민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하며 이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의 명절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유행한다고 해서 무작정 우리 명절을 만든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민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칠석을 ‘연인절’로 정해 새로운 명절로 규정하는 것을 굳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반가운 기념일이라며 반길 것이다.

 

하지만 본연의 뜻을 그대로 살라는 것도 아니고 서양의 명절을 무조건 배척하기 위해

강제성을 띠며 규정하는 명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반감을 사게 할 수도 있다.

자국의 미풍양속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생활에서 형성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우며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명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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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은 아만과 나반이 만나는 날

칠석날은 생산을 의미하는 날

 


우리 조상들은 음력 7월 7일을 칠월칠석이라고 하여 성스러운 날로 여겨 무당집이나 사찰 등에서 많은 정성을 드렸다.

그러나 요즘은 칠석이라고 해서 무당집을 특별히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칠석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찰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마감한다.

 

칠석은 본디 직녀성을 섬기는 날이다. 즉 직녀성에게 제례를 올리는 것이다. 직녀성은 곧,

우리의 삼신인 마고(麻姑)와 두 딸인 궁희(穹姬)와 소희(巢姬)의 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칠석은 어떤 날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견우, 직녀 전설은 중국의 우왕(BC2311)때 생겨 난 신화로 동이의 천문이

다시 한족의 전신인 화하족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천문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동이는 중원 땅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그때부터 화하족 즉 지금의 한족들이 중원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칠석날의 전설로 우리는 소를 잘 치는 뛰어난 목동 견우와 베를 잘 짜는 아름다운 공주 견우가 만나는 날이라고 알고 있다.

하늘의 임금께서 두 사람을 맺어 주었더니

사랑에 빠져 맡은바 소임을 게을리 하는 등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은하수 이쪽과 저쪽으로 떼어 놓고 자기의 소임을 다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 년에 단 한 번 칠월칠석날 하루만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 주는 오작교 위에서 만나게 하였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운 가는 하늘의 별자리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즉 직녀성인 녀수(女宿) 위에 패과(敗瓜)라는 깨진 바가지란 뜻이 담긴 별이 있다.

직녀는 견우를 만나려고 그 깨진 바가지로 은하수 물을 퍼내려고 하였으나

깨진 바가지론 그 많은 은하수 물을 다 퍼 낼 수 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녀는 점대라는 정자 모양의 별자리에 올라 견우를 그리워하면서

사랑의 정표를 자기가 짜고 있던 베틀 북을 견우에게 던졌는데 그것이 포과(匏瓜)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견우 또한 직녀가 그리워 논밭을 갈 때 끌던 소의 코뚜레를 던졌다. 그 별이 필수(畢宿)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다시 직녀가 견우에게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를 빗든 빗을 던졌다. 이 별이 바로 기수(箕宿)라는 별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도 아주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다.

 

칠월칠석날의 또 다른 해석으로는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나반’이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의 강, 즉 은하수를 건너는 날이라는 것이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를 보면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바로 나반이 하늘의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 날 용왕에게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하백으로 하여금 사해의 뭇 신을 주관케 하시느니라.

천하는 다른 이름으로 천해(天海)라고도 한다.

 

지금 북해(北海)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천하의 주께서 말씀하시길 천도(天道), 즉 하늘의 도는 북극에서 일어난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이 나온다. 이를 북극수라 하며 북극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는 말은 없다.

 

인류의 조상인 나반이 은하수를 건넜다고만 하였는데 은하수를 건너는 이유는

인류의 또 다른 조상인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의 아담과 이브다. 즉 남녀가 만나는 것은 교접을 의미하고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반과 아만의 이야기는 동이의 설화로 전해오는 것을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한족들이 중화중심의 사상을 기록하기 위하여 우리 동이의 설화인 나반과 아만 이야기를

견우와 직녀로 격하시켜 칠석날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여기에서 물과 관련이 있는 하백이 나온다. 하백은 다른 말로 물의 신이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수정’은 남방주작 칠 수에 속한 첫 별자리인 ‘정수(精宿)’를 말한다.

정수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별자리며 흔히 동쪽 우물이란 뜻으로 동정(東井)이라고 하였고

남자들의 첫 경험에서 얻어지는 사정을 ‘동정’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보면 천일의 물, 즉 천일 생수와 수정자 등 물과 관련된 말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물이 바로 생명의 근본으로 생명은 생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정화수를 생산하는 북두칠성의 선기옥형과, 남방주작 칠 수인 정수 등 물과 관련이 많은 것 같아

칠석날과 칠성님을 관련짓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든 아니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나반이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은하수를 건너든 날이든, 하늘의 강을 건너는 날만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남녀가 강을 건너 만났다고 하는 것은 음양의 교접을 이야기한다. 음양의 교접은 곧 열매를 맺어 생산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칠월칠석을 앞두고는 해마다 많은 비를 내리는 장마철에 들어 있다.

 

이것은 하늘의 옥황상제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은하수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하다 보니 은하수가 넘쳐 흘러내리는 강물이 장마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옥황상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거센 은하수의 물살을 헤치고 칠월칠석날 만나게 된다.

이에 옥황상제는 다시 은하수에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함으로써

이 땅에 그렇게 많은 비가 오던 6월 장마도 어김없이 칠석날을 지나면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땅위의 곡식들은 칠석날이 지나야만 제대로 열매를 맺고 영글어 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이 하늘의 음양이 교접을 하여야만 땅의 모든 열매가 맺는 것이라고 풀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칠석날을 전후하여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은

은하수의 신, 물의 신이라는 하백이 생산을 준비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라고도 생각한다.

 

칠석제는 옛날부터 전해줘 왔는데 칠석날이 되면 집집마다

우물을 청소하여 청결히 하고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바치고 칠석제를 지냈다.

지금은 다인들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칠석날이 되면 칠석제를 올린다.

 

그러나 칠석날에 쓰는 제물은 반드시 생산을 의미하는 오이, 가지, 호박 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칠석날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니 이런 제물들을 사용치 않고 있다.

또한 칠석제를 지내는 제관들은 반드시 여자로 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여자는 생산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백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하백은 수신(水神), 하령(河靈), 오작(烏鵲)의 다른 말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백이 사해(四海)의 뭇 신을 주관하면서 나반이 아반을 만나러 갈 때

하늘의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준 사람일 것이다. 또 신을 자기 의지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으로

하늘나라 용궁의 무당이란 말이 된다. 곧 하백이 무교에서 말하는 용태부인을 말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은 하백녀의 손자이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는 하백의 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주몽이 자기를 해치려는 자들로부터 도망을 갈 때,

엄수(淹水)를 만나 건너지 못하여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하백의 손자임을 내세우자

강 속에서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설화는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기 위하여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던 날이든 아니면

나반과 아만이 만나던 날이든 간에 남녀가 만나서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는 날임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하늘에서 음양의 교접이 이루어지므로 땅에서도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날인가 보다.

 

나반과 아만, 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칠석날은 비가 오든지

아니면 구름이 많이 끼어 하늘을 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라니 칠석날을 맞이하는 우리에겐 칠석이 없다.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다른 날과 별단 다름이 없는 그런 아무 의미가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우리 생활 속에

장사꾼들이 초콜릿을 팔기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낸 화이트데이를 비롯하여 발렌타이데이,

그리고 심지어 자장면을 혼자 먹는다는 불렉데이 라는 이상한 날이 생겼다.

이런 날들이 되면 초콜릿이 불티나게 팔리며 장사꾼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아무른 의미도 뜻도 없는

단순히 달콤한 선전문구가 정설이 되어 이젠 아주 특별한 날이 되어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칠월칠석을 만남의 날로 정하면 어떨까?

외래어를 사용해야 멋지게 보이고 그럴듯하게 느껴진다면 세븐세븐데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정하여 만남의 날로 정하면 어떨까?

 

이 날을 헤어졌던 연인들이나,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날로 정했음 한다,

그리고 선물도 우리 고유의 음식인 떡을 선물하는 것이다,

떡을 다양하게 만들어 포장을 예쁘게 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또 칠석날인 만남의 날을 위한 특별 이벤트도 마련하고 말이다.

우리 민족이 옛 부터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날, 칠월칠석이 있는데 그런 날은 모두 잊어버리고

장사꾼에 놀아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여러 가지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2006-09-20 17:26 | 출처 : 논문 칠월칠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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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반과 아만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蔓)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

- 삼성기전 하편 원동중 -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B.C 4004년 탄생)과 이브는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기독교의 얘기처럼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 고고학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들을 들춰내고 있다.

 

약 300~400만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고,

약 250~150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으며, 이 때, 구석기의 전기(前期) 문화가 등장했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 채집을 하며 살았었다.

 

약 150~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가 출현했으며,

약 20만년 전에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네안델탈인, 자바인, 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한다.

약 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현생 인류는 약 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 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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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역사책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나라는 중앙아시아에 있던 환국인데,

환국이 진정 현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문명의 시원국이라면,

오늘날 인류의 시원에 대해서도 뭔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환단고기」

<삼성기>하편에는 현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시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광명족의 환국의 9환족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류의 시조인 한 남자(나반)와 한 여자(아만)가 바이칼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神敎)을 받고 바이칼호를 건너 바이칼호 부근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나반과 아만 이 두분이야말로

유대민족이 말하는 약6천년전의 아담과 이브보다도 수천년이나 앞선 현 인류의 진정한 시조인 것이다.

나반과 아만은 한자로 서백력(西伯力)이라고 쓰여진 장소에서 만났다고 하는데

이것을 우리말로 하면 '쇠바이리' (시베리아)가 됩니다.

쇠는 '높다, 밝다'를 뜻하고 바이는 '중심적인, 지도하는'을, 리는 '곳'을 의미합니다.

 

김석현 '해 뜨는 동방, 빛의 땅으로'

written by. 김석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