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위구르에서 민족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포스트 제어

메일 | 인쇄

(원문) 9세 아술단군 재위 35년
정사 2년(B.C1984) 청해(靑海)의 욕살 우착이 군대를 일으켜서 궁성을 침범하니 단제께서 상춘(常春)으로 몸을 피하신 후 새 궁궐을 구월산(九月山)의 남쪽 기슭에 창건하게 하였다. 우지와 우율 등에게 명령하여 이들을 토벌하여 죽여 버리도록 하고는 삼년 뒤에야 도읍으로 되돌아 오셨다. 

(해설)
위 정사년 기사는 당시 조선의 신하로 청해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장관 우착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말이며,
그 진압에 무려 3년이나 걸렸고 상춘으로 파천(播遷)까지 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의 반란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아술단군이 파천한 상춘과 구월산은 현재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현재 중국과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구월산을 황해도 북부 신천군과 은율군 사이에 있는 산이라고 하나, 이는 6.25 때 구월산유격대가 활동하던 곳으로 9세 아술단군이 파천한 위 구월산과는 아무 상관없는 산이다.  

욕살 우착이 다스리던 청해(靑海)는 어디일까?

먼저 청해(靑海)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찾으면, 현재 섬서성 서쪽 청해성에 있는 내륙호수인 청해를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래 설명에서 보듯이 서해(西海)를 중국에서 5호16국 시대부터 청해로 부른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청해의 서쪽은 고대 중국의 땅이 아니라는 말이며, 그 이후에도 계속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번역) 청해 : 청해는 옛날 서해, 선수해, 비화강해로 칭했고, 5호16국 때부터 청해로 불렸다. 중국의 서부에 있으며 동북 경계는 감숙성, 동남 경계는 사천성, 서남 경계는 티베트, 서북 경계는 위구르로 길이가 600리 폭이 2,000리로 우공의 4융의 땅이었다. 3대(하.은.주)를 지나 한나라 때까지 서강, 동진 이후에는 토곡혼이라 했으며, 당나라 초기에 토번으로 편입되었고, 명나라 무종 때 몽골의 수족이 점거하기 시작했다.   
(원문) 青海 : 青海古称西海、鲜水海、卑禾羌海,自十六国时期称青海。在我国西部,东与北皆界甘肃,东南界四川,西南界西藏,西北界新疆,长六百里,广二千里,禹贡四戎地,历三代至汉为西羌,东晋以后为吐谷浑,唐初入于吐蕃,明正德间,始为蒙古首族占据,

참고로 고대 중국의 동해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가로 100리 X 세로 300리 크기의 큰 내륙호수인 대야택(大野澤) 일명 발해(渤海)로 이 근처는 나당연합군에게 고구리가 망한 후 대중상과 대조영의 시국처이기도 했다. 5호16국
시대는 서진이 망한 4세기 초부터 약 130년간 이족의 5개 종족이 16개국을 세운 그야말로 사분오열의 시대였다.
 
감숙성 약수.jpg
▲ 약수는 내몽고 서남에서 발원해 감숙성을 흐르는 강으로 그 남쪽이 부여라 했으니 감숙성과 청해성 일대가 부여의 땅

또한 “<후한서 동이전>에 부여국 북쪽에 약수가 있다. <진서 사이전> 읍루국 동쪽 변에 대해가 있고 북쪽 끝이 약수이다.(《后汉书东夷传》夫余国北有弱水,《晋书四夷传》挹娄国东滨大海,北极弱水)”라는 기록이 있듯이, 내몽골 서남단에서 발원해 감숙성을 흐르는 약수 남쪽에 부여국과 읍루가 있었다는 설명인데, 그곳은 바로 지금의 청해성(靑海省)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이 일대는 대대로 조선대연방(朝鮮大聯邦)의 일원으로 서쪽 제후가 다스리던 땅이었다.
(약수의 위치는 아래 참조: 흉노는 조선의 제후이며 역사적 대명사 (13부)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715§ion=sc6§ion2=

약수 남쪽에 위치했던 부여(夫餘)의 기원에 대해 북애자 노인이 쓴 <규원사화> 단군기에 의하면, 국조 단군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부루(夫婁)는 태자로 책봉되었고, 나머지 세 아들인 부소(夫蘇), 부우(夫虞), 부여(夫餘)에게는 서쪽 땅을 주어 다스렸다고 한다. 부여라는 이름은 왕검의 4째 아들로부터 온 것으로, 부여는 대대로 조선대연방의 일원으로 지금의 감숙성과 청해성 일대에 있던 제후국이었던 것이다. 

<단군세기>의 이런 기록들은 조선의 도읍을 한반도에 놓고서는 거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일제식민사학인 지금의 반도사관은 대단히 잘못된 역사이론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조선의 핵심강역(도읍)은 산서성이었으며, 흉노로 대변되는
감숙성과 청해성과 티베트가 모두 조선의 연방이었기 때문에 위 기록들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정적 근거의 하나가 바로 아래 언급된 티베트와 위구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분쟁인 것이다. 

청해성.jpg
▲ 조선대연방은 산서성에 도읍을 두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와 만주부터 고대중국의 영토인 황하부근 하남성 일대를 제외한 중국대륙 대부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어키까지 연방제로 다스린 엄청난 나라였다.

티베트와 위구르에서 민족분쟁이 일어나는 이유

티베트어비교.jpg
▲ 티베트어는 우리말 경상도어와 비슷한 단어가 많다.     
현재 중국의 서부인 청해성과 티베트와 위구르에서 왜 민족분쟁이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위 청해에 대한 역사연혁에서 보듯이, 그곳은 고대 이래로 명나라 때까지 중국 한족(漢族)의 영토가 아니라 이민족인 서이족(西夷族)들이 살던 땅이었다. 서이족은 흉노(匈奴), 견융(犬戎), 견이(犬夷), 융적(戎狄), 서융(西戎) 등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통칭하여 흉노라 하며 그 뿌리는 모두 하나로 바로 단군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들은 명나라 때까지 대대로 섬서성 서안 서쪽에 살았다. 

한족(漢族)의 명나라가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멸망하고 여진족(만주족)인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게 되자, 그들은 만주족과 조상이 같은 형제족(兄弟族)이라는 이유로 건륭제 때 옛날처럼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된다. 과거 대륙을 지배했던 웅장한 조선과 고구리/대진국이 청나라로 다시 부활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 어떠한 물리적 충돌도 없었으며 지금과 같은 민족분쟁 역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청나라가 망하고 한족(漢族)에 의한 민국(民國)이 형성되고 국.공 내전의 혼란기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그들은 중국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치독립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중국정부는 한족을 대거 티베트와 위구르에 이주시켜 그들을 동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티베트족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세워 중국정부에 대항하고 있다. 해가 가면 갈수록 그들의 자치독립을 갈망하는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훨훨 타오르고 있다. 이토록 피(血)란 무서운 것이다. 

수년 전 달라이라마가 “한국과 티베트는 형제국이다.”라고 말하며 한국 방문을 시도했으나
기겁을 한 중국정부에서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방한이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달라이라마가 왜 한국을 방문하려 했는지 모를 정도로
민족의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이라마.jpg
▲ 인도로 피신해 티베트의 자치독립을 지도하고 있는 달라이라마의 얼굴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도인 얼굴이 아니라 우리와 아주 흡사하다. 그 이유는 그는 단군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만주, 내몽골, 티베트, 위구르 그리고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넘어 멀리 터어키까지,
 그들의 조상은 하나로 탱구리(=단군)였으며 모두 한국을 형제국으로 여기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터어키와 한국이 4강에 오르자, 터어키 국민들은 “형제끼리 4강에 올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터어키가 6.25 때 군대를 보내 참전한 이유와 몽골대통령이 우리나라와 국가연합을 제안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정작 단군의 적장자인 우리는 조상인 단군을 곰의 신화로 알고 있으며,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의 찬란하고 위대했던 고대사는 명나라의 속국이 된 조선왕조에 의해 굴욕적으로 변조되었으며,
식민지배자 일제에 의해 완전 말살되었던 것이다. 광복은 되었으나 친일파 후손들이 계속 기득권층으로 있다 보니
그 때 말살된 역사가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 언제쯤이나 올바른 역사가 국민들에게 교육될 수 있을까?
그 날이 와야 대한민국이 욱일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