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200510_184.jpg바이칼호 주변을 걷다보면 무심코 우리와 같은 작고 길게 찢어진 눈과 납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외국인들은 아무도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우리 민요 아리랑을 제대로 부르는 몽골인들을 보면 눈물이 날 수도 있다. 강을 거슬러 반드시 자신의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떼처럼, 이제는 우리 민족도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나야할 때다. 우리 민족을 품고 안아 기른 양수(羊水)를 지닌 채 어머니 바이칼호는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한민족 시원의 비밀을 깊이 간직한 채로 말이다.
 
바이칼호가 한국인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이칼호 지역이 모든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발원지이며, 한국인의 조상 또한 바이칼호 부근에서 발생한 퉁구스계 몽골 인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는 순례자의 눈길로,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발상지를 바라보는 문학자의 태도로, 바이칼을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분석하는 유전학자, 고고학자, 지질학자, 역사학자, 해양학자, 민속학자의 과학적 입장으로 14명의 필자들이 바이칼 지역과 한민족의 유기적 관계에 총체적으로 접근한다
 
 
원시생명체의 보고, 바이칼
바이칼 호수는‘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크고, 가장 깊은 담수호이다. 길이가 636km, 최대 너비 79km, 면적은 30,150㎢로 남한 면적의 3분의1 크기이며, 둘레는 2,200km, 최대 깊이는 1,742m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호수로 전세계 담수 총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바이칼 호수 속에는 1500여종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이 중에서 75%가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유 토종으로서 토종의 비율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아있는 진화박물관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바이칼’의 어원적 의미를 보면, 바이칼의‘바이’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상고시대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샤먼을 가리키고, ‘칼’은 괼,겔, 골 등으로 불리는 넓은 계곡과 호수를 의미한다.
 
결국 바이칼이란 지명은 바이칼 인근 지역과 극동을 잇는 동시베리아에서 주로 사용되었던‘바이’와‘칼’의 복합어다. 시베리아 바이칼인이 호수의 이름에 샤먼을 뜻하는‘바이’를 붙였다는 것은 바이칼이 신앙의대상이자 주체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바이칼의 샤머니즘에서 보는 한민족의 뿌리
전세계에 토테미즘이나 애**즘의 현상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유래하는 샤머니즘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한반도라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남아있는 샤머니즘의 전통에 대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부리야트족은 바이칼 동서쪽에 나뉘어 살고있는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부리야트족 사람들의 집앞에는‘세르게’라고 하는 둥근 말뚝이 서있다. 이세르게는 2천 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데 단순히 말을 매는 나무 말뚝이 아니고, 모든 생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말뚝 위로는 홈을 파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것은 하늘의 신, 샤먼 그리고 보통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말뚝을 세우는 장소는 반드시 길목이거나 성스러운 장소여야 한다.
 
(2)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지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무역을 위한 바이칼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호수에 제물을 바치는 관행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고대 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인당수와 같은 것으로 샤머니즘의 바다이며 샤먼 그 자체였던 바이칼의 실상에 대해서 엿볼 수 있게 한다.
 
(3) 바이칼 땅에 러시아 정교와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샤머니즘은 파괴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도 부리야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는 우리의 솟대나 성황당과 유사한 성소와 성물을 세우기도 하며, 지금까지도 결혼식과 같은 축일에는 형형색색의 천조각을 매달기도 한다.
 
바이칼에서는 샤머니즘의 문화적 전통 이외에도 우리 역사의 뿌리에 대한 신비로운 전설도 찾아볼 수 있다. <몽골비사> 8∼9절에 의하면, 몽골족의 여시조 알랑고아는아버지 쪽은 코리족의 피를 받고 어머니 쪽은 바르구진고아라고 하여 바락족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들 부족의 원주지가 모두 바이칼 호수 언저리이다. 특히 아버지 계통의 코리족의 시조탄생지는 오이홍 알혼섬에 있다. 바로 그곳에서 황소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와 결혼하여 코리족의 시조 11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이런 몽골의 전설을 소개하면서 강원대 주채혁 교수는, 코리족의 시조 탄생지인 오이홍 섬이 바이칼호안의 서중부에 있는데, 이들은 그후 동몽골 쪽으로 이동해 부이르노르 부근에서 분화해 한 계파는 서진하여 몽골초원으로 나와서 몽골족을 이루고, 다른 한 계파는 동진하여 만주와 한반도로 나와서 고리족(槁離族)을 이루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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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바이칼로부터 이주해 왔는가?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3만∼5만년 전 시기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전혀 발굴되지 않는데 비해, 더 추워서 사람들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바이칼 주변에는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무수히 널려있다. 그 이유는 뭘까? 미소합동조사단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 420m깊이에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칼호는 지금도 매년 호수가 2∼3㎝씩 확장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더 넓은 지역이 뭍으로 드러나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현재 호수 아래에도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이 있다고 한다. 지질학자 우핌체프 교수는“바이칼은 빙하기 때에 고립된 오아시스 같은 열수광산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Y염색체 DNA분석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그주류는 북방 아시안들이고, 나머지 20∼30%는 남부아시안이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2만 5천 년 전 혹독한 추위가 닥쳤을 때, 아시아인의 선조가 열수가 치솟는 따뜻한 바이칼에 머물러 있다가 해빙기에 거대한 홍수를 만나 한반도와 주변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결과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인디언들의 중심그룹이 이동한 것이 1만4천년 전이며, 이들이 현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조라고 한다. 이 시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동북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는 것이 학계에서는 상식이 되고 있다. 또한 중국 북부의 신석기 시대 최초의 유적은 7∼8천년 전쯤으로 추정되고 아이누인들의 정착도 8천∼1만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빙하나 동토가 녹으면서 사람들이 남으로 내려오게 된것을 의미한다.
 
 
뿌리로 돌아가 열매를 맺는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때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하는 자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나도 단군의 자손이니라”(道典2:26) 하셨다.
 
역사는 결국 돌고 돌아 시작했던 지점에서 다시 끝을 맺고 끝맺었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을 한다.이제는 화려했던 문명과 종교의 정수를 거두어 그 뿌리로 다시 돌아가 열매 맺어야 할 때임을 한반도에 인간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께서는‘원시반본(原始返本)’의 섭리로 말씀해 주셨다.
 
시베리아 바이칼은 무기보다 토기가 더 많이 발굴되고 전쟁보다 신명나는 굿이 더 자주 펼쳐진, 인간과 신명이 함께 만나는 공간이다. 이 책은 가을개벽을 눈앞에 둔 한국인의 새로운 뿌리찾기 시도이자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귀소본능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