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터키의 국기 터키의 국장
국기 국장

터키 공화국(터키어: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 줌후리예티),

줄여서 터키(터키어: Türkiye 튀르키예, 문화어: 뛰르끼예)는

서남아시아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동부 트라크야에 걸친 나라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다.

 

터키는 여덟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불가리아,

서쪽으로는 그리스, 북동쪽으로는 조지아(그루지야),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월경지나히체반),

이란, 남동쪽으로는 이라크시리아가 있으며, 북쪽에는 흑해가 있다.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로는 마르마라 해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는데,

이 바다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로 인식되어 터키는

두 대륙에 걸친 나라이므로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지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인종상 터키인이 국민 대다수를 이루며, 그 다음으로는 쿠르드인이 있다.

터키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이며, 공용어는 터키어이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후계 국가이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세속주의를 받아들인 입헌 공화국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1923년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로 현대의 정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터키는 유럽 이사회, 북대서양 조약기구, OECD, WEOG, G20와 같은 국제 기구에 가입하여 서방 세계와 점차 통합하고 있다. 터키는 1963년에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준회원국이었으며 1995년에는 관세 동맹 협정을 맺었고, 2005년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 가입 협상을 시작하였다. 터키는 또 이슬람 회의 기구(OIC)와 경제 협력 기구(ECO)에 가입하여 중동중앙아시아를 위시한 동양과도 문화, 정치, 경제, 산업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에서는 터키를 중진국으로 분류하며,

세계의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지역 강국으로 여기고 있다어원

'터키'의 터키어 표기인 '튀르키예'(Türkiye)에서 '튀르크'(Türk)는 고대 튀르크어에서 '강한'을 뜻하는데

보통 터키인투르크 제족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후대의 변형인 '투-킨(tu-kin)'은 중국인들이 기원전 177년에 중앙 아시아 알타이 산맥 남쪽에 살던 사람들에게

붙인 이름이었다.또 '튀르키예'의 접미사인 '-이예(-iye)'는 '주인' 또는 '~와 관계된'을 뜻하며

아랍어 접미사 '-이야(-iyya)'에서 파생된 접미사이다.

 

중세 라틴어 접미사 '-이아(-ia)'와 관련되어 '투르키아(Turchia)'라고 쓰이며

중세 그리스어 접미사 '이아(–ία)'가 붙어 '투르키아(Τουρκία)'라고 썼다.

 

'튀르크' 또는 '튀뤼크(Türük)'가 지명으로 쓰인 최초의 기록은

중앙아시아 돌궐(괴크 튀르크)의 오르혼 비문(서기 8세기경)에 등장한다.

영어 '터키(Turkey)'는 중세 라틴어 '투르키아'에서 나온 말이다.

 

(1369년경)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 영어식 국명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어 표기인 '투얼치(중국어: 土耳其, 토이기)' 역시 이 영어식 국명을 음역한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터키어 국명을 그대로 옮겨 '뛰르끼예'로 표기한다.

[편집] 지리와 기후

터키는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10] 아시아쪽 터키 영토(주로 아나톨리아로 구성)는

국토의 97%를 차지하며,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 해, 다르다넬스 해협(흑해지중해를 이어준다.)을 끼고

있는 유럽쪽 터키 영토는 국토의 3%에 불과하다.

 

터키의 영토는 길이로는 1,600 km, 폭 800 km에 이르며,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이다.

호수를 포함한 터키의 육지 면적은 783,562 제곱킬로미터이며, 아시아 대륙에 속하는 영토는

755,688 제곱킬로미터이고, 유럽 대륙에 속한 영토는 23,764 제곱킬로미터이다.

 

터키는 세계에서 37번째로 넓은 나라이며, 프랑스 본토영국 영토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이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는데, 서쪽에는 에게 해, 북쪽에는 흑해, 남쪽에는 지중해가 있다.

또 북서쪽으로는 마르마라 해가 있다.

 

터키의 유럽 영토인 동부 트라크야는 그리스와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시아쪽 영토인 아나톨리아(소아시아)는 중앙에 고원 지대와 좁은 해안 평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북쪽에는 쾨로을루 산맥과 도우 산맥(폰토스 산맥)이, 남쪽에는 토로스 산맥(타우루스 산맥)이 뻗어 있다.

동부 터키는 산악 지형이 더욱 발달되어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아라스 강 등 여러 강의 수원지이고,

반 호와 터키 최고봉 아라라트 산(높이 5,165m)이 있다.

 

터키는 7개의 인구조사용 지역으로 나뉘는데 마르마라 지역, 에게 해 지역, 흑해 지역,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 지중해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흑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북부 아나톨리아의 울퉁불퉁한 지형은 길고 좁은 띠 모양이다. 이 지역은 터키 총 면적의 1/6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아나톨리아 내륙 고원은 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지형이 험해진다.

 

터키의 다양한 경관은 복잡한 지각 운동의 산물로, 오랜 세월동안 이 땅을 형성하였으며 상당히 잦은 지진과 이따금 일어나는 화산 분출은 지금도 일어나는 지각 운동의 좋은 증거이다.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은 오늘날의 흑해를 형성한 터키의 단층선 때문에 생겨났다. 국토 북쪽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지진 단층선 때문에 1999년에 대지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터키의 해안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여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한랭 습윤하고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건조한 내륙 지역은 기후가 훨씬 혹독하다. 해안과 가까운 산맥 때문에 터키 내륙은 계절차가 대단히 큰 대륙성 기후가 나타난다. 고원의 겨울은 특히나 춥다.

 

동부의 산악 지방에서는 기온이 영하 30도에서 4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며, 연중 120일간 지표에 눈이 남기도 한다. 서부의 겨울 기온은 평균 영하 1도이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기온은 보통 낮에 30도 이상이다. 연중 강수량은 평균 400mm로, 고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가장 건조한 지역은 코니아 평야와 말라티아 평야로, 이 곳의 연중 강우량은 대개 300mm 이하이다. 가장 습윤한 달은 5월이며, 가장 건조한 달은 7월과 8월이다.

[편집] 역사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의 역사입니다.

[편집] 고대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아나톨리아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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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아 전쟁(기원전 1200년경)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전설상의 트로이아 성벽 일부.

 

오늘날의 터키 영토 대부분을 이루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로서

지구상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하던 땅이었다.

 

차탈회위크(신석기 3기), 차외뉘(신석기 1기에서 신석가 3기), 네발리 코리(신석기 2기),

하클리아르(신석기 3기), 괴베클리 테페(신석기 2기),

메르신 등 초기 신석기 시대 거주지는 지구상 최초의 인류들이 살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트로이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철기 시대까지 취락이 지속되었다.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인도-유럽어, 셈어, 카르트벨리어를 비롯하여 기원이 불확실한

여러 언어를 썼다. 사실 고대 인도-유럽어인 히타이트어루위아어를 놓고

어떤 학자들은 아나톨리아가 인도-유럽어를 확산시킨 중심지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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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켈수스 도서관. 서기 135년경.

 

이 땅에 들어선 최초의 제국은 히타이트로 기원전 1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 다음은 인도-유럽 계통의 프뤼기아인들이 패권을 잡았으나, 기원전 7세기에 킴메르인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프뤼기아의 가장 강력했던 후계국가는 뤼디아, 카리아, 뤼키아였다. 뤼디아인과 뤼키아인은 인도-유럽어에 기원을

둔 언어를 구사했는데, 두 언어는 히타이트와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 非인도-유럽어의 요소를 받아들였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는 아이올리스이오니아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기원전 6~5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헬레니즘 시대에 아나톨리아는 비튀니아, 카파도키아, 페르가몬, 폰토스 등 여러 헬레니즘계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기원전 1세기 중엽에 모두 로마에 복속된다.

 

기원전 324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뷔잔티온을 로마 제국의 새 수도로 삼아 노바 로마('새로운 로마',

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이 된다.)라고 개명하였다.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자,

이 도시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편집] 튀르크인과 오스만 제국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튀르크족의 이주, 튀르크족의 역사,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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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기의 오스만 제국 영토. 1680년경.

 

크느크(Kınık) 오우즈 튀르크족은 10세기경 무슬림 세계의 변방이었던

카스피 해아랄 해 북쪽인 오우즈 연맹의 얍구 칸국 살던 사람들로, 셀주크 가문은 이들의 분파였다.

11세기에 셀주크 일파는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나 아나톨리아 동부로 이주하였으며,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말라즈기르트)에서 승리하면서 이 땅은 오우즈 튀르크족의 새 터전이 되었다.

셀주크의 승리로 아나톨리아의 셀주크 술탄국이 부상하여, 중앙 아시아 일부와 이란,

아나톨리아, 서남 아시아를 아우르던 셀주크 제국의 개별 분파로 성장하였다.

 

1243년에 셀주크 군대는 몽골인들에게 패배하고, 제국의 패권은 점차 무너지게 된다. 이후 오스만 1세가 지배하던

일개 튀르크 공국이 200여년이 넘는 세월간 발전하여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 레반트를 아우르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26]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메흐메트 2세의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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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미예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 시대의 유명한 건축물이다.

 

16~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으며,

발칸 반도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남부를 통해 중부 유럽으로 점차 진출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 종종 충돌하였다.[27] 이에 맞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지키고자 합스부르크 에스파냐, 베네치아 공화국, 성 요한 기사단

신성 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런 가운데 동아시아서유럽 사이의 고대 해상로를 독점한 오스만 제국은 인도양에서 포르투갈

자주 대립하였으며, 1488년 희망봉의 발견 이래 점차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후 쇠퇴기에 접어든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1914년~1918년)에서 동맹국편으로 참전하여 결국 패배하였다. 세계 대전 당시 막대한 인명 희생을 부른 아르메니아 학살도 이때 일어났다.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정전 협정으로 승전국연합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분리시키려 하였다.

[편집] 공화정 시대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 공화국의 역사, 아타튀르크의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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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터키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 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터키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점령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터키의 나라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새로이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국의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옛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터키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터키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대부분 터키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소비에트 연방터키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1947년 미국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터키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터키는 한국 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으로 참전하였으며,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우자, 터키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터키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터키 군부 협정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부터 터키 경제가 자유화되어 이 나라의 경관이 바뀌게 되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높은 성장과 위기가 잇따랐다.

[편집] 행정 구역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의 행정 구역입니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터키 영토는 행정구역상 81개 주로 나뉜다. 주는 인구조사를 목적으로 7개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는 행정 조직을 이루지는 않는다. 각 주는 구역으로 세분되는데, 총 923개의 구역이 있다.

주의 이름은 보통 주도의 이름에서 따오는데, 하타이 주(주도: 안타크야), 코자엘리 주(주도: 이즈미트),

사카르야 주(주도: 아다파자르)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다.

 

인구가 많은 주는 이스탄불 주(1,200만 이상), 앙카라 주(440만 이상), 이즈미르 주(370만 이상),

부르사 주(240만 이상), 아다나 주(200만 이상), 콘야 주(190만 이상)이다.

 

국내 최대 도시이자 공화국 성립 이전에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터키의 경제, 금융, 문화의 중심지이다.

터키 인구의 70.5%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다.

 

인구 백만을 넘기지 못하는 주가 18개가 있고,

백만에서 50만 사이의 주도 21개나 있다. 인구 10만 이하의 주는 2개가 있다.

[편집] 인구 현황

 

2008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터키 인구는 7,150만 명으로, 연간 인구 성장률은 1.31%이다.

평균 인구 밀도는 km²당 92명이다.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은 70.5%이다.

15~64세 연령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 총 인구의 66.5%를 점하며, 0~14세 연령 집단은 26.4%이고,

65세 이상의 연령대는 7.1%를 차지한다.

 

기대 수명은 남성은 70.67세, 여성은 75.73세이며, 전체 평균은 73.14세이다.

6~15세 사이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의무 무상 교육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자해득률은 남성 95.3%, 여성 79.6%로, 전체 평균은 87.4%이다.

여성의 문해율이 낮은 이유는 국토 남동부 주에 사는 아랍인쿠르드인의 전통 관습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터키 헌법 제66항에서는 "시민권을 통해 터키 국토 내에 속하는 사람"을 "터키인"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법적인 의미의 "터키인"은 인종상의 정의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터키 국민 대다수가 터키 민족이다.

그 밖에 주요 민족 집단(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셀주크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미 널리 터키화되었다)으로는

압하스인, 아자르인, 알바니아인, 아랍인, 아시리아인, 보스니아 무슬림, 체르케스인, 헴신인,

쿠르드인, 라즈인, 롬족, 자자스인, 러시아인, 조지아인(그루지야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이 있고,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유대인로잔 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정된 소수 민족이다.

1923년 1월 30일에 체결된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상호 합의가 1920년대에 발효되어 거의 150만에 이르는

 터키내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그리스내 터키인 약 500,000 명이 터키로 서로 이주하였다.

 

서유럽에 기원을 둔 소수 집단으로는 중세 시대부터 터키 땅(주로 이스탄불[이즈미르)에서 살던

레반트인(대부분 프랑스, 제노바, 베네치아 혈통이다)과,

19세기부터 터키에 살던 보스포로스 독일인이스탄불 폴란드인이 있다.

아프리카계 터키인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국토 서부 해안 도시에 살고 있으며,

주로 지역 주민과 통혼하여 섞여 산다.

 

국토 남동부 주에 주로 집중된 쿠르드인은 터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터키계 민족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세 민족 이외에 다른 소수 민족은 특별한 지위가 없으며,

터키에서 '소수 민족'이란 용어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터키의 인구 조사에서는 인종 관련 수치를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터키의 정확한 민족 분포에 대해 믿을 만한 자료가 없다.

[편집] 언어

터키어는 터키의 유일한 공용어이다.

터키어는 튀르크어군에 속하며 튀르크 어군의 방언 차이가 적은 관계로 다수의 튀르크어군에 속하는

다른 언어들과의 차이가 적은 편이며 특히 아제르바이잔어와 사이가 가깝다.

터키어는 2004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5000만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1928년부터 로마 문자로 표기되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오스만 터키어1928년 이후 사멸되었고,

동남부 지역의 아랍계 주민을 제외하고는 아랍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터키 국민의 언어 분포에 대해서도 신뢰할만한 자료가 없는데,

이유는 마찬가지로 터키의 인구 조사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영 방송국인 터키 라디오 및 텔레비전 회사(TRT)에서는 지역 언어와 아랍어, 보스니아어,

체르케스어, 쿠르드어 방언으로 된 프로그램을 일 주일에 몇 시간 정도 방영하고 있다.

 

쿠르드족이 밀집해 있는 동부 및 동남부 지역에선 쿠르드어가 일상어로 사용된다.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쿠르드어 말살 정책이 실시되어 쿠르드어 교육 및 서적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2005년부터 독소 조항이 삭제되어 현재 서너 종의 쿠르드어 교재가 시판되고 있다.

2009년 초에 쿠르드어로만 방영되는 TV 채널인 TRT 6이 개국하였다.그 외에도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는 대도시의 호텔과 관광지 등지에서 사용되며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루마니아어, 불가리아어, 이디시어, 히브리어 등도 소수 사용한다.

[편집] 문화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의 문화, 터키의 음악, 터키 건축, 터키 예술, 터키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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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는 오늘날 주도적인 터키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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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마바흐체 궁전의 입구 중 한 곳.

 

터키는 오우즈 튀르크, 아나톨리아인, 오스만 제국(이 나라 자체도 그리스-로마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연장이다),

그리고 탄지마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구 문화와 전통이 혼합되어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였다. 원래 이러한 문화 혼합은 터키인들이 중앙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주할 때 여러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생겨났다.

 

터키는 종교적인 옛 오스만 제국에서 강력한 정교 분리 정책을 견지한 근대 국가로 변모하였으며,

예술 표현의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공화정 초기에 터키 정부는 박물관, 극장, 오페라 공연장, 건축 등 순수 예술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였다. 다양한 역사적 요소는 터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중요하다. 터키 문화는 "근대" 서구식 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 종교와 역사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

 

터키 음악문학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 혼합의 좋은 사례인데,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세계 및 유럽 세계와 상호 작용하면서 오늘날 터키의 음악과 문학에 터키,

이슬람, 유럽이 섞였기 때문이다.

 

터키 문학은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대개 페르시아 문학아랍 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스만 말기에 중 특히 탄지마트 이후에는 터키 민속 문화와 유럽 문예 전통이 점차 강해졌다.

가령 문화적 영향의 혼합은 "문화의 충돌과 뒤섞임의 새로운 상징"이라는 형태로 극화하여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의 책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터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축 요소 역시 수백년간 이 지역에 영향을 끼친 여러 전통의 독특한 혼합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비잔티움 건축과 후대의 오스만 건축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터키 도처에 남아있으며,

여기에 지역과 이슬람 전통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시난은 오스만 건축의 위대한 고전기 건축가로 널리 평가받는다.

18세기부터 터키 건축은 점차 서양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게 되어,

특히 이스탄불에서는 돌마바흐체 궁전이나 츠라안 궁전과 같은 건축물들이 수많은 현대식

마천루와 함께 하나의 도시 경관을 이루어 상이한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편집] 종교

 

터키는 공식 국가 종교가 없는 세속 국가로, 터키 헌법에서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세계 무슬림 인구에 관한 2009년 자료에 따르면, 터키에서 7,360만 명의 주민, 즉 전체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라고

한다.이들 무슬림 대다수는 순니파(85~90%)이며, 그외 주요 종파로 알레비파(10~15%),

시아파, 12이맘파의 분파가 700~1,100만 명 있다고 한다.

 

최상위 이슬람 종교 기관은 종무원(터키어: Diyanet İşleri Başkanlığı)으로, 하나피 법학파의 이론을 해석하고,

터키에 등록된 모스크 75,000여 곳 활동을 관할하며, 지역과 주의 이맘을 고용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러나 2007년 전국적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터키 시민의 96.8%가 종교를 가지고있으며, 무교무신론자

3.2%로 나타났다.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 민족은 100,000 명 이하로,

 

주로 기독교인데 대부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그리스 정교회(64,000명)이다. 유대교(주로 세파르딤, 26,000여명)를 믿는 종교인들도 있다.퓨 연구 센터의 2002년 보고서에서 터키인 65%가 "종교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였으며,2005년 유로바로미터 여론 조사에 따르면 터키 시민 95%가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응답하였다.

사실상 이스탄불이즈미르, 마르마라 해 지방과 에게 해 지방 사람들은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다.

무신론을 믿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편집] 대외 관계

16px-Crystal_Clear_app_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의 대외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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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터키는 유럽 연합정식 회원국 가입 협상을 시작하였다.
240px-2009_G-20_Pittsburgh_summit.jpg
터키는 OECDG20의 창립 회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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