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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기 /

1963년 7월 31일 제정된 국기는 위로부터 빨강·하양·검정의 3색 바탕에 3개의 5각 별이 그려져 있다.
빨강은 전쟁의 가혹함을, 하양은 관용을, 검정은 칼리프 시대의 영광을,
글씨와 별의 초록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빛깔을 나타내고,
3개의 5각 별은 이라크이집트·시리아의 3국 연합을 상징하는데, 연합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1991년 1월 걸프전쟁을 치르면서
 3개의 별 사이에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뜻의 아랍어를 추가하여 국기를 수정하였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2004년 3월에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초승달을 위에 두고
그 아래에 파란색 두 줄 사이에 노란색 줄이 하나 있는 국기로 변경하였으나 이스라엘 국기와 비슷하다는
비난이 일자 폐기하고,
그해 4월 1991년에 제정하였던 국기를 바탕으로 글자체를 바꾸고 크기도 2대1 비율로 수정하였다.

이 국기는 3년여 동안 사용되었으나 쿠르드족이 후세인 정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이에 2008년 1월부터 기존 국기에서 3개의 별을 삭제하고 중앙에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구절을
더 확대하고 글자체를 변형한 지금의 국기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라크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문명사이다.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이 이루어낸

메소포타미아 하천문명은 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고의 문명이다. 

 

수메르·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가 이 지역에서 흥기하여 멸망하였으며,

아케메네스왕조·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 대왕·사산왕조 페르시아 등과 같은 주변 세력에 의하여

외부의 침입과 정복도 많이 받았다.

 

이에 따라 선사시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7세기 중엽에는 아라비아반도에 출현한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그 세력 하에 들어갔지만

8세기에 시작된 아바스왕조 시대에는 쿠파, 바그다드 등이 수도()가 되어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1세기 중기 이후에는 셀주크트루크, 몽골,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은 터키에서 발흥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이라크 [ Iraq ]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에 위치한 국가로, 석유 매장량 세계 2위의 산유국이다.

정식 명칭: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

면적 : 43만 5052㎢ (한반도의 약 2배)
인구 : 약2,333만명(2001년)
수도 : 바그다드

공용어 : 아랍어
정치형태 : 2003년까지 임시헌법에 의한 아랍사회주의 공화국이었으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미군정하에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2004년 6월 임시정부가 출범함.

통화 : 디나르(Dinar, ID)
석유 매장량: 1120억배럴(세계 2위)

이라크는 페르시아어(語)로 저지(低地)를 의미한다. 북쪽은 터키, 서쪽은 시리아, 요르단, 동쪽은 이란,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접하며, 걸프만(灣)에 면한다.

이라크는 아랍인이 전체 인구의 약 76%를 차지하여 압도적이며,
그 외 소수민족으로 쿠르드족이 15~20%, 페르시아인 3%, 터키인이 2% 정도 차지한다.
특히 북부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풍속, 생활양식 등이 달라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이라크의 중요한 내정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전 국민의 97%가 이슬람교(수니파 32-37%, 시아파 60-65%), 기독교 등 기타 3%이며,
헌법상 회교가 국교이나 기타 종교의 예배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시아파가 다수이지만 집권층은 모두 수니파 출신이다.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유적, 사적 등이 풍부하며
그중에서 바빌론의 유적은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있으며,
20세기 초의 발굴에 의하여 신바빌로니아시대 전성기(BC 7세기)의 신전, 성탑, 왕궁, 성벽 등의 유구()가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에 있는 수메르인()의 고대 도시 우르의 유적과
북부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의 유적들도 산재하여 고고학의 보고이다.  


■ 역사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로 알려져온 이라크는 세계 최초로 문자기록 및 도시형성이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기름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역사는 고대 문명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세기에 아바스 칼리프 왕조가 수립되면서 바그다드가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1258년 아바스 왕조가 몽골족에게 멸망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

이라크는 16세기에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여러 세기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내부적인 반란과 이란을 비롯한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1899년 오스만인들이 독일인들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점령했다. 1921년 영국의 보호를 받는 군주국이 세워졌고, 1925년 헌법이 승인되었으며, 1932년에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중 친(親)독일정책을 고수해 1941년 영국에 재점령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정치 소요가 계속되었다. 1958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군사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다가 1968년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79년 바르크대통령이 사임함에 따라 대권을 넘겨받게 된 '사담 후세인'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바빌론의 영광」의 재현을 부르짖으며 낙후된 국가였던 이라크를 아랍산유국 가운데 손꼽히는 강국, 특히 군사강국으로 키웠다.

80년 9월에는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의 전쟁을 개시, '이란-이라크전'이 발발하게 되고 양국은 결국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전쟁의 피해만을 남긴 채 8년 전쟁은 끝을 맺는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여러 해 동안 희생을 치른 이라크인들이 전쟁없는 평온한 세상을 갈구하자 사담 후세인은 민주주의와 번영의 시대를 약속하고 걸프 지역의 군주들로부터 돈을 빌린다.

89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드 국왕은 이라크의 채무를 탕감해 주며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쿠웨이트는 이라크가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확정할 때까지,전쟁 채무를 탕감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에 이라크는 과거 자신의 영토였던 쿠웨이트 영토의 할양을 요구하며,
쿠웨이트가 원유시장에 물량을 과잉공급하여 유가를 하락시킴으로써 이라크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었다고 비난하고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하게 되나, 미국이 주축이 된 다국적 군에 의해 전쟁(걸프전)에 패배하였다.
이후 UN의 규제조치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전쟁 후유증으로 후세인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와 남부의 시아파 반군은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은 UN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핵시설과 화학무기 등
도전적인 군비확장을 계속해왔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이라크를 불량국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으며
후세인을 '제거대상 1호'로 지적해왔다.

결국 2003년 3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한달여에 걸친 공격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고 미국과 영국의 점령군이 이라크에 들어섰다.

그리고 2003년 7월 미군정하에 전후 이라크의 실질적 집행권을 행사할 25인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IGC)가 공식 출범했으며, 2004년 3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2004년 7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할 임시헌법에 서명하였다.

임시헌법에 의하면 미군은 2004년 6월 30일까지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을 넘기기로 하였으며,
임시헌법에 의해 임시정부의 권력체계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 원칙을 수용했고
대통령 1명과 부통령 2명, 총리 1명으로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에따라 2004년 6월 1일 이라크 임시정부가 구성되어 출범하였는데,
대통령은 가지 알-야와르, 총리에는 이야드 알라위가 선출되었으며,
임시정부 출범과 함께 이라크화도통치위원회(IGC)는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