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성전. 영어의 Bible, 독일어의 Bibel, 프랑스어의 Bible 등,

서구에서의 성서의 호칭은 그리스어의 비블리아(biblia)에서 시작되었다.

 

이 말은 종이의 원료가 되는 파피루스의 줄기의 내피를 가리키는 비블로스(biblos)의 비블리온(bibloion, 비블리아는

복수형)에서 유래하며, 소책자나 서적의 일부라는 보통명사였는데,

 

그리스도 교회에서 고유명사화하고 5세기경부터 성서 전체가 비블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서는 이슬람의 성전 코란처럼 한 인물을 통한 천계의 서적과는 달리,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원시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의 흐름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 다양한 문서를 수록하고 있다.

 

성서는 『구약성서(old Testament)』와 『신약성서(New Testament)』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별과 명칭은 2세기 초기의 교회가 복음서나 서간 등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새로운 계약>을 계시하는 서적의 의미로 『신약성서』라고 하며, 유대교에서 계승한 성전을 이와 구별해서 <오래된 계약>이라는 의미로 『구약성서』라고 하게 된 것에서 유래한다.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그리스도 교회에 의해서 『구약성서』라고 이름 붙여진 문서가 유일한 성전이다.

성서의 구분과 내용

구약성서

구약성서』는 유대교에서 성립한 헤브라이 원전에서는 <율법>, <예언자>, <제서>로 구분되며, 이 순서로 되어 있다. 유대교도는 일상적으로는 이 성전을 3구분의 머리문자를 따서 <타나하(Tanakh)>, 또는 독송을 의미하는 <미크라(Miqra’)>라고 하는데 원전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율법>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5권, ②<예언자>는 〈앞의 예언자〉와 〈후의 예언자〉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여호수아』, 『사사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의 4권, 후자는 『이사야서』, 『예레미야』, 『에스겔(㉮ 에제키엘)』<소예언자>의 4권이며, <소예언자>에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오바디아)』,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스바니아)』, 『학개(㉮ 하깨)』, 『스가랴(㉮ 즈카리아)』, 『말라기』의 12의 소예언서가 일괄해서 수록되어 있다. ③<제서>에는 <진리(에메스)>의 표제 하에 『시편』, 『잠언』, 『욥기』가, 또한 <권물(메기로스)>의 표제 하에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가 있으며, 표제없이 『다니엘서』, 『에스라(㉮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가 놓여 있다. 이상 헤브라이 원전은 합계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어역은 헤브라이 원전과 마찬가지로 율법서의 우위를 인정해서 이를 모두에 두고 있는데, 그 이외의 부분에 원전에는 없는 문서를 포함하며, 또한 원전에 있는 서적에 대해서도 배열과 구분 방법이 원전과는 다르다. <제서(諸書)>는 분해되어서 『룻기』나 『역대』 등의 서적이 〈앞의 예언자〉에 첨가되었다.

 

그에 의해서 『여호수아』 이하의 일군의 서적은 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서로서 편성되었다. 『애가』는 예레미야와 관계되며, 『다니엘서』가 예언서로 들어가고, 소예언서는 12의 서적으로서 독립되어 있다. 원래 『70인역』의 서적의 배열은 사본에 따라서 상당히 상위점이 있는데, 4세기의 유력간 사본에서는 전체가 율법서, 역사서, 문학서, 예언서의 순으로 4구분되어 있다.


이 구분과 서적의 편성은 라틴어역 성서에 대응하고 있으며, 이를 경유해서 근대어역 성서에 계승되어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구약성서』의 배열은 ①<율법서> 5-『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②『역사서』 12-『여호수아』, 『사사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ㆍ하, 『역대기』 상ㆍ하, 『열왕기』 상ㆍ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텔)』, ③<문학서> 5-『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④<예언서> 17-『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하박꾹 )』,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합계 39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역사파악을 근본으로 한다.

법서의 중심부분에 놓여진 <모세의 율법>의 오래된 기술을 별도로 하면, 『창세기』에서 『열왕기하』에 이르는 〈율법서〉 및 〈역사서〉의 내용은 천지창조와 인류의 전개, 아브라함에 시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사에서 이집트 탈출, 황야방랑, 가나안에서의 정착, 왕국의 형성과 남북 왕국으로의 분열,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한 두 왕국의 멸망과 유폐(㉮ 유배)까지를 취급하는 역사서술이다.

 

그러나 그 역사서술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기술이 아니라 구제사적인 서술로, 신에 반항하는 인류와 이 민족의 역사의 제시이다. 특히 집필자들은 이 민족에 대한 신의 선택과 계약, 이 신의 인도에 대한 민족의 응답의 실패와 재생의 길을 응시하고 있다. 이런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비판적인 인간이해나 역사이해는 국가시대의 문제상황이나 위기 중에서 야훼주의적 지식인들 중에 형성되어서 역사서술의 자료가 준비되고, 집필되었다.

 

또한 유폐의 현실 중에서 민족사의 반성적 회고가 행하여져서 『신명기』에서 『열왕기』에 이르기까지의 서적이

편집ㆍ집필되었다. 한편, 유폐로부터의 귀환 후의 유대교단을 지도한 제사계급은 생활질서를 의례적으로

확립하는 율법을 정비하고 〈율법서〉를 완성시켰다.


<예언서>는 주로 국가시대 중엽부터 유폐시대, 성전재건기에 걸쳐서 개별적으로 활동한 예언자들의 발언을 개별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아모스에서 예레미야에 이르기까지의 국가시대의 예언자들은 민족의 전통에 서서,

국가ㆍ사회ㆍ종교를 비판하고 주로 신의 심판을 통고했다.

 

그에 대해서 제2 이사야에서 스가랴(㉮ 즈카리아)에 이르는 유폐 이후의 예언자들은 민족에 대한 종말론적 구제를 알렸다. 예언자는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에 독자적인 신의론을 제기해서 발전시켰다.

 

유대교 시대에는 문필활동이 더 한층 활발화 되어서 예언서에 대한 가필이나 최종적인 편집이 행하여졌을 뿐만 아니라, 『역대기』나 기타 <역사서>가 집필되었다. 또한 신앙자로서의 개인의 확립과 문예의식이 싹틈으로써 다양한

<문학서>가 출현했다.

 

『시편』이나 『애가』등의 신찬미나 한탄의 가집, 남녀의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아가』, 예언자적 신의론을 개인이 고난에 대해서 전개한 『욥기』, 묵시문학의 효시가 된 『다니엘서』등 모두 개성적이다. 『다니엘서』는 기원전 2세기 중엽의 마카베아 전쟁을 전제로 하며, 『구약성서』중에서 가장 늦게 성립된 서적이다.

 

『구약성서』에 수록된 서적의 대부분은 민족이나 개인의 위기시에 쓰여졌다.

유대교단 사람들은 이를 회당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부를 예배해서 낭독하거나 노래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을

극복하는 신앙과 함께 민족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한 것이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구성은 『70인역』을 따르고 있으며, 서적의 배열은 다음과 같다. <복음서> 4-『마태복음』, 『마가복음(㉮ 마르코복음)』, 『누가복음(㉮ 루가복음)』, 『요한복음』, ②<역사서> 1-『사도행전』, ③<편지>-ⓐ<바울의 편지> 13통 『로마서』, 『고린도전ㆍ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에페소서)』, 『빌립보서(㉮ 필립보서)』, 『골로새서(㉮ 골로사이서)』, 『데살로니가전ㆍ후서(㉮ 데살로니카전ㆍ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공동서간> 7통 『야고보서』, 『베드로전ㆍ후서』, 『요한 1, 2, 3서』, 『유다서』, ④<묵시문학> 1-『요한계시록』, 합계 27권이다.

 

<바울의 편지>라는 것은 바울의 이름을 한 편지의 호칭으로, 바울의 실제 편지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 중 6통은 바울의 제자들이 썼다고 생각된다. 바울의 편지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로마서』,

『고린도전ㆍ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의 7통이다.

 

그중 『데살로니가전서』가 신약문서 중에서는 가장 빨리 성립했으며, 기원후 5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추정되며,

가장 늦은 것이 『베드로후서』로 2세기 중엽에 쓰여졌다고 생각된다.

구약성서』가 가장 오래된 전승의 단계에서 최종적인 성립까지 약 1000년이 걸린 것에 대해서,

신약문서는 약 100년 사이에 지중해 동부의 연안 여러 지역에서 집필되었다.


『신약성서』의 출발점은 예수이다.

예수는 기원후 30년 전후의 수년간에, 의(義)와 사랑에 의한 신의 지배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정통적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비판했다.

 

예수의 사후에 제자들은 상당기간 동안 기억과 상기로 예수의 말씀과 업을 이야기하면서 전도하였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구전이 기술되고, 예수의 소명에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언행을 서술하는 복음서가 60년대부터 90년대 종말 사이에 쓰여졌다.

 

복음서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활동의 객관적이며 전기적인 서술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수의 언행의 문서화 과정은 예수 해석의 과정이었다.

 <예수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메시아(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성립시킨 초기 신도들에게, 지상의 예수와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간 그리스도는 동일시된다. 그들은 권위 있는 『구약성서』를 활용해서, 예수의 탄생, 전도, 수난, 죽음, 부활, 제자들에 대한 현현, 교회의 출현,

교회의 주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등의 일련의 일을 의의지었다.

 

<바울의 편지>도 그 초점을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및 재림에 맞추고 있는데 바울은 율법주의자와 대결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류의 죄의 용서로 보고, 신앙에 의한 의를 강조했다. 〈바울의 편지〉는 공개를 목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이 중요하여 교회 사이에서 교환되고, 사본이 만들어져서 점차로 정리되었다.


<바울의 편지>의 압도적인 영향 하에 그의 제자들의 편지나 『히브리서』, 그리고 〈공동서간〉이 편지형식의 에세이로 쓰여졌는데, 바울의 제자들의 편지는 신앙의 선배들을 모범으로 한 생활의 견지를 통한 교회형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히브리서』는 대사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 설교를 시도하는 등, 각각 강조점이 바울과는 다르다.

 

『요한계시록(㉮ 요한묵시록)』은 다가올 종말의 행적에 대해서 예수를 통한 묵시를 전하는 형태로,

신도를 압박하는 로마제국이 멸망할 것을 상징적인 필치로 서술하고,

신도에게 길을 연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리의 의의를 교회에 설교해서 격려하고 있다.

이처럼 『신약성서』의 문서는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 다양하게 형성된 전승에 의거해서,

예수 이해와 복음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신앙의 증언이었다.

성서의 정전화

<정전(카논)>이라는 것은 신앙, 생활, 교의에 기준을 부여하는 권위가 교단에 의해서 공인된 특별한 서적으로,

다른 서적과 구별이 이루어진다.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는 이런 정전개념을 형성하고 유지했다.

 

유대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은 기원전 4세기 중에, 이어서 〈예언자〉가 기원전 3세기 중엽까지 정전화되고,

 <제서>는 일부 서적에 대한 의론을 남기면서 기원전 2세기 중에는 대개 공인되었다고 생각하며

『히브리서』 원전에 속하는 서적이 모두 최종적으로 정전으로서 공인된 것은

기원후 70~90년에 야무니아(야브네)에서 열린 랍비들의 회의에서였다고 생각된다.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반란(제1차 유대전쟁, 66~73)은 진압되고,

유대교단의 거점이었던 예루살렘과 그 신전은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런 상황에 놓여진 유대교도 지도자들은 유일하게 의거할 수 있는 정전의 최종결정이 요구되었다.

랍비들은 이 회의에서의 정전의 결정에 따라, 당시 그리스도자가 사용하였던 『70인역』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문서(아포크리파)를 정전에서 배제했다.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아포크리파는 배제되지 않고, 오히려 성인의 공덕 등의 교의의 전거부여에 이용되었다.

로마교회는 대항 개혁시대에 아포크리파를 〈제2정전〉으로서 인정했으며 그리스 정교회는 『디도서』 등

일부 서적의 정전성을 인정했고 최근 아포크리파의 전체를 인정했으나 러시아 정교회는 미결정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아포크리파의 정전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교화적 역할은 인정했다.

신약문서에서는 먼저 〈바울의 편지〉나 〈복음서〉가 2세기 전반에는 『구약성서』에 근접한 권위를 가지게 되고, 이어서 정전화되었다.

 

<바울의 편지> 이외의 서간도 점차로 공인되었는데, 문제가 된 문서도 몇 가지 존재했다.

서방 교회에서는 특히 『히브리서』가, 동방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인정되지 않고,

서방교회에서 이 문제에 일응의 결착이 맺어진 것은 4세기 말 이후였으며

동방 교회가 신약문서의 전체를 공인할 때까지는 그 후에도 수세기를 요했다.

 

신약문서의 정전화를 촉진한 중요한 동기로서 들 수 있는 것은 그노시스주의자나 말키온이

예수와 바울의 독특한 해석을 하고, 특히 말키온이 『구약성서』를 배척해서 간략 복음서를 작성하였으며

독자적의 배타적인 정전을 제정한 것이었다.

본문과 사본

구약성서』는 일부 아랍어로 쓰여진 곳을 제외하고 헤브라이어로 쓰여져 있으며 『신약성서』는 헬레니즘 세계의 공통어였던 민중의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다. 또한 『구약성서』의 본문은 셈어의 통례로 자음자만으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헤브라이어가 사어가 된 후부터는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 고안되고, 6세기경부터 10세기에 걸쳐서

마소라(전승)학자에 의해서 모음을 지시하는 자외음표가 붙은 교정본문이 작성되었다.

 

자외음표의 방식은 복잡하게 발달했는데, 그 후에 계승된 〈마소라 본문〉은 팔레스타인의 티벨리아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마소라 학파의 것이며, 그 중에서도 벤 아쉘가의 작업에 의한 본문이 우위를 차지하였다.

 

그 계통의 완전한 본문인 <레닌그라이드 사본>(1008) 및 그 4분의 1이 상실된<알레포 사본>(930년경)이

최근의 학문적 교정본의 저본으로서 사용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각종 고대어역과 함께 1947년 이후의 수년간에 사해 북서안의 쿰란 동굴 등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해사본〉의 해독이

본문의 교정이나 비평을 위해서 참조되고 있다.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사본 중 파피루스 사본은 대부분이 단편적인데, 3~4 세기의 것이 가장 많으며,

최고의 사본단편은 125년으로 추정된다. 그 중 〈체스터 비티 파필리〉와 〈보드마 파필리〉는 상당한 분량이 있으며, 특히 전자는 바울 등의 편지 10통의 사본을 포함하고 있다. 최근의 학문적 교정본인 웨스트코트=호트판, 네스트레판 등의 저본으로서 이용되는 것은 〈대문자 사본〉이라고 하며, 알렉산드리아본 문형에 속하는 4세기의 〈시내 사본〉 및 〈바티칸 사본〉이 가장 중시되고 있으며 〈소문자 사본〉은 9세기 이후의 것이다.

 

성서본문의 최초의 간본은 헤브라이 원전이 『손티노 완전성서』(1488), 신약원전이 에라스무스의 교정본(1516)이다. 성서의 각서에 대한 현재와 같은 장절부여는 16세기에 에티엔느에 의해서 파리에서 인쇄된 그리스어ㆍ라틴어 신약성서(1551)에서 시작되며, 프랑스어역 성서(1553)에서는 『구약성서』에도 미치는데 결국 헤브라이 원전에도 적용되었다(1571). 그러나 헤브라이 원전의 장절과 근대어역 성서의 장절은 일부에서 차이가 있다.

성서의 외경과 위경

구약외전ㆍ위전

<외전(外典, 아포크리파)>의 원어 apokrypha는 〈숨겨진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이 말은 〈비의적인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외부에 대해서 숨겨져야 할 서적〉이라는 의미로도 이용되었는데, 결국에는 〈이단적 내용으로 배제되어서 숨겨져야 할 서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고대교회에서는 apokrypha는 후자의 의미로 『구약위전』 및 『신약외전』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구약외전』은 <교회의 서적(libri ecclesiastici)> 등으로 불렸다.

루터가 구약외전을, 이라는 표제와 함께 독일어역 성서에 수록한 이후,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의 표준적인 어법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가톨릭은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루터의 외전을 정전(정확하게는 제2정전)으로

보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때, 『제1ㆍ제4 에스라서』와 『마나세의 기도』는 『불가타』의 <보유>로서

권말에 별도로 배치되어 정전에서 제외되었다.


구약외전은 거의 『70인역 성서』에 있어서 헤브라이어 『구약성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서와 일치한다.

그들은 ①역사ㆍ전설 - 『제1ㆍ제2 마카베아서』, 『제1 에스라서』, 『유디트서』, 『다니엘서에 대한 부가』,

『에스더에 대한 부가』, ②교훈적 설화문학 - 『디도서』, ③지혜와 가르침 - 『솔로몬의 지혜』, 『벤 시라의 지혜』, 『바르크서』, 『예레미야의 편지』, ④기도 - 『마나세의 기도』, 이상이다.

 

『70인역』에 포함되는 『제3ㆍ제4 마카베아서』와 『솔로몬의 시편』은 보통 위전으로 간주된다.

<팔레스타인도 포함한 헬레니즘 세계에서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경에 걸쳐서

성립한 유대교 문서에서 유대교의 정전(헤브라이어 『구약성서』)에서는 배제되었는데,

그리스도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져 애호된 문서>라는 것이 구약외전의 대략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구약위전』은 <정전에도 외전에도 속하지 않는 헬레니즘시대의 유대교 문서(랍비문헌은 제외)>를

가리킨다. 위전은 외전과 성립연대, 지역, 원어, 모두 구별되지 않는다.

모두 그 대부분의 원어는 헤브라이어나 아랍어, 일부가 그리스어이다.

 

그러나 외전이 모두 그리스어(일부 헤브라이어)로 전해진 것에 대해서, 위전 일부만이 그리스어이고,

다른 것은 에티오피아어, 시리아어, 고대교회 슬라브어, 라틴어 등의 번역으로 전해져,

위전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서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전>의 원어인 pseudepigrapha는 고대교회에서는 <위명의 서>, 즉 고대 이스라엘의 저명인의 이름을 저자명으로 이용한 후대의 위서, 따라서 내용상으로도 잘못된 가르침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근대 이후, 정전 외의 고대 유대교 문서를 외전과 위전으로 구분하게 되어 위와 같은 어법이 일반화되었다.

 

 


『구약위전』 중 주된 것으로서, ①역사ㆍ전설 - 『제3 마카베아서』, 『예레미아 여록』, 『예언자의 생애』, ②교훈적 설화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아담과 이브의 생애』, 『요셉과 아세나테』, 『요벨서』, 『이사야의 순교』, ③지혜와 가르침 - 『십이족장의 유훈』, 『아브라함의 유훈』, 『욥의 유훈』, 『제4 마카베아서』, ④시가 - 『솔로몬의 시편』, ⑤묵시문학 - 『시빌라의 신탁』, 『에티오피아어 에녹서』, 『슬라브어 에녹서』, 『제4에스라서』, 『모세의 유훈(승천)』, 『시리아어ㆍ그리스어 발크서』 등을 들 수 있다. 구약외전ㆍ위전은 그리스도교의 발생의 역사적인 이해와 해명을 위해서 불가결한 자료이다.

신약외전

『신약외전』은 최종적으로 정전에 들어가지 못한 고대교회의 문서로,

내용상 또는 문학형식상 정전문서와 유사하며, 스스로 정전적인 것을 요구한 것을 가리키며

연대는 대개 기원후 2세기부터 5세기까지이다.

 

외전은 정전의 기사를 보충ㆍ확충ㆍ발전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공상적ㆍ통상적인 대중문화의 모습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이단적 교설, 특히 그노시스주의적인 것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신약외전』 중 주된 것은 ①복음서 - 『베드로복음서』, 『니고데모복음서』, 『토마스복음서』, 『야곱 원복음서』, 『히브리인 복음서』, ②사도행전 - 『베드로행전』, 『바울행전』, 『안델레 행전(㉮ 안드레아 행전)』, 『토마스 행전』, ③서간 - 『라오데키아인에 대한 편지』, 『바울과 고린도인과의 왕복서간』, 『세네카와 바울의 왕복서간』, ④묵시문학 - 『이사야의 승천』, 『베드로계시록』, 『바울계시록』, 『시빌라의 신탁』, ⑤시가 - 『솔로몬의송가』, 『나하시파의 시편』, ⑥가르침 - 『베드로의 선교』 등이다.

외전에는 비교적 오래된 예수의 어록 전승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신약외전은 『신약성서』중에 인정되는 양식유형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으며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사 연구에서 『신약외전』은 불가결한 자료이다.


중세이후에도 많은 〈외전〉이 〈발견〉되고, 또는 탄생했는데 이들은 그리스도 교도 대중의 심정을 반영하고,

 예술 등에 미친 영향도 크다. 외전이라는 말은 이처럼 확대해서 이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들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경외문서의 예술ㆍ문학에 대한 영향은 정전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