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 공화국(Russian Federation)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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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차례로 백색, 청색, 적색이 그려진 삼색기

 


-1991년 8월에 제정
-러시아 국기는 1917년 10월 혁명 이전에 사용된 제정 러시아 시대의 국기를 부활시킨 것


*러시아의 국장
-쌍두 독수리, 3개의 왕관, 발톱의 홀과 구, 기사의 방패가 그려져 있음
*러시아의 인구 및 민족: 약 1억 4,000만 명, 140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 러시아인이 약 82%
*러시아의 종교 : 주로 러시아 정교를 믿음
*화폐 : 루블 사용


*러시아의 주요 도시 및 구성
-모스크바(수도, 약870만 명), 상트-페테르부르크(제 2의 도시, 약 480만 명), 니즈니 노브고로트(약 140만 명),

노보시비르스크(약 140만 명), 예카테린부르크(약 140만 명) 등
-21개 공화국, 6개 지방, 49개 주, 1개 자치주, 10개 자치구, 2개 연방시(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총 89개의 주체로 구성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급격히 전환한 후 10여 년간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어야 했음


*푸틴 대통령 취임 후의 변화
-2000년을 기점으로 환란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남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7년까지 연평균 약 7%의 경제 성장을 기록
-2006년에는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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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민족은 슬라브족 계열입니다.

슬라브족 중에서도 동슬라브족에 속하며
동슬라브족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시인으로 나뉩니다.

 
현재 러시아연방은 다민족 국가이며 러시아인들이 80%이상으로 압도적이지만
소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몽고-타타르 계열의 아시아인이 섞여 있습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민종 종교는 그리스도교 종파 중
동방정교회에 속하는 러시아 정교회입니다.

 
[러시아 연방의 민족]

 

현재 러시아연방은 거의 4세기에 걸친 끓임 없는 팽창의 결과이다.
러시아는 150여 개의 크고 작은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서 그 중 러시아인이
전체 81.5%를 차지하는 절대 다수 민족이며,
타타르인(3.8%), 우크라이나인(3.0%) 등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이외 소수민족으로는 추바슈인, 바슈키르인, 키르키스인, 다게스탄인, 우드무르트인, 마리인, 코미인,
코미페르먀크인, 체첸인, 오세트인, 불가리아인, 고려인, 부랴트인, 야쿠트족, 카바르딘인,
카렐리야인, 헝가리인, 집시, 북방족(에벤키족, 네네츠족, 한티족, 추코트족 등)칼미크인, 잉구슈인, 투바인 등이 있다.

 

현재 러시아연방체제는 21개 공화국 및 자치공화국, 6개의 크라이(지방),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2개의 특별시, 1개 자치주, 10개 자치관구

등을 포함 모두 89개의 연방주체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 정교회]


고대 러시아의 종교
 
러시아는 988년에 비잔틴으로부터 기독교, 즉 동방정교(비잔틴정교)를 수용해 국교로 정한 이후,
타타르의 지배와 볼세비키혁명 등의 파란곡절을 겪으면서도 1,000년이상의 오랜 기독교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비잔틴정교를 수용하기 전에 동슬라브에 속하였던 러시아는
다른 슬라브족들과 마찬가지로 풍요로운 '이교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9세기이전 슬라브인들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교신앙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자연의 현상을 신격화한 다신교였다고 할 수 있다.

 

[원초연대기]에 따르면 블라디미르공은 궁전 뜰 밖의 언덕 위에 은빛에
금빛수염을 한 번개의 신 '페룬'의 목조상을 비롯하여
태양신 '다쥐보그'와 '호르스', 바람의 신 '스트리보그' 여성노동의 수호신, '모코쉬',
일곱 개의 머리를 한 '시마글'의 상을 세운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 민중들은 풍요, 가축, 다산의 신으로 알려진 '벨레스'를 숭배하였다.
기독교 개종이전의 슬라브인들의 이교 신앙적 요소는 기독교로 개종 이후에도
기독교의 요소와 혼용되어 민중들의 일상생활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러시아 정교의 도입  
 
980년 블라디미르공은 키예프를 점령한 이후 키예프대공이라는 전제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블라디미르공은 초기에는 이교를 장려하여 민족의 통일을 도모하였지만
이후 러시아 루시를 국가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를 찾게 되었는데,

당시 유행하고 있던 동방정교, 로마 카톨릭교, 이슬람교, 유태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시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를, 러시아 동쪽에 있는 하자르인들은 유대교를,
그리스인들은 동방정교를, 프랑크인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로마카톨릭을 믿고 있었다.

 

블라디미르가 이 많은 종교가운데 동방정교를 수용한 것은
무엇보다도 키예프인들의 현세지향적이며
신인동격체인 민간신앙의 전통이 그리스정교와 가장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러시아정교회는 처음부터 전통적인 민간 신앙의 기반에서 받아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정교회는 국민들의 큰 저항이 없이 슬라브인들의 통합을 촉진시키는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정교가 처음부터
키예프 국가의 필요와 기존의 민간신앙 전통 위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러시아정교는 현세 지향적인 민족신앙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민들 역시 민간신앙의 연장선상에서 정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러시아정교는 나름대로 농민들의 지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도시의 엘리트 중심의 정교가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러시아정교는 농민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경작의 무게나 강수량의 적절한 배분,
유용한 작물의 성장, 가축의 방목 등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과거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던 민간 신앙들이 정교 의례로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계절주기에 따르는 농민의 민간 축제와 정교 의례가 뒤섞이게 되었다.

 

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정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민간신앙과 부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새로운 것(기독교)에 옛 것(민간신앙적 전통)을 대치하는 기독교화가 아니라
옛 것에 새로운 것이 선택적으로 덧붙여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교적 종교 의례가 변형되어 정교회의 대표적인 축제일로 자리잡은 것은
마슬레니짜 축제와 엘리야의 날, 성 삼위일체의 날, 그리고 세례 요한의 날 등이 있다.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이교족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활절 전 7주 동안 벌어지는
마슬레니짜 축제는 '겨울 송별축제'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도 성행하고 있다.

 

6월 4일, 성 삼위일체의 날에 벌어지는 자작나무 축제일은
본래 어머니 대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귀신들,
즉 불의의 죽음을 당한 영혼을 위해 녹색의 성자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소비에트 시절의 러시아 정교
 
1917년까지 러시아 정교는 러시아의 국교였으며 다른 종교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이콘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성상화는 정교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집집마다 걸려 있었고
여행을 갈 때나 심지어 임종을 맞이할 때에도 가슴에 품고 있을 정도였다.

 

종교적인 국가로서 러시아는 어디를 가던지 교회와 수도원 성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17년 볼쉐비키 혁명직후 러시아 정교회는 레닌의 '반교회 포고령'에 대항했지만
얼마가지 못해서 실패로 끝났다.

 

공산당 정부는 정교회 사제들을 체포하였으며, 교회 건물과 수도원 등 교회재산을 강제로 압수하였으며,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종교활동을 허용하였다.

이후 70여년동안 무신론을 표방한 볼세비키정권은
정교회를 비릇한 모든 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정교회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어 1930년에 3만여 개에 달하던
개방된 교회의 수가 1940년 스탈린의 탄압정책후 1천 개이하로 줄어들었다.

흐루시초프와 브레즈네프 시대를 거쳐 1980년대 초에는 명목상의 교회 수는 6천 개이상이었지만
실제 예배를 보는 교회는 100개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정부 재산으로 몰수되어 창고, 극장, 박물관 등으로
전용되면서 제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활동중인 성직자의 수도 미약했다.

1930년까지만 해도 6만여명의 성직자가 활동했는데 1940년에는 3천 여명으로 줄었다.


수천 명의 성직자가 반소비에트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흐루시초프 시대, 특히 1969년대초에는
많은 종교인들이 구용소와 정신병원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1980년대 초 소련당국은 종교인구가
총인구의 10%정도로 그 대부분도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신도들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1985년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주창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인정되었다. 1988년 4월에는 러시아선교 1천년제를 앞두고
피멘총주교와 고르바초프 서기장 사이의 회견이 있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게오르기 총주교와 스탈린 사이에 있은 회견이후 45년만의 일이었다.

1988년 6월에는 러시아정교회 지방회의가 개최되어
교구사제의 임명에 관한 교회측의 주도권을 확인하였다.


1988년 6월 5일부터 12일까지 러시아선교 1천년제가 소련의 국가 축제처럼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정교회의 위상은 크게 향상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소련의 변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정교회의 재건을 알리는 가장 상징적인 사업은
크렘린궁 맞은편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교회'의 건설이다.


2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건축비만
5억달러가 소요되어 1997년 완공된 이 교회는 세계 최대의 정교회 교회이다.

소연방의 붕괴이후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민통합을 이루면서 정교회의 위상을 재고하고 있다.  
 
http://www.unirussia.com/ 에서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