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구수는 1,330,044,605명입니다.(2008년 기준)  종교: 도교.불교.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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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먼석굴 / 뤄양[洛陽] 남쪽 약14 km 지점.

당나라의 고종(高宗)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만들기 시작하여 675년에 준공되었다.

 

중국의 종교는 전통적인 것으로 유교.불교·도교(道敎)·이슬람교가 있으며,
그리스도교가 16세기 이후 들어와 전파되었다.

중국 헌법 제36조에는 정상적인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사회주의국가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문화혁명 과정에서 사원·교회 등이 홍위병(紅衛兵)에 의해 공격받아,
모든 종교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 이후 종교도 과거에 비해 활발한 추세를 보이고 있고,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인들도 중국으로 다수 몰려들고 있다.


각종 종교 신도 수는 약 2,000만 명으로, 대부분은 도교·불교 신자이며
나머지는 이슬람교도가 1~2%, 그리스교도가 3% 정도를 차지한다.

 

[출처] 중국의 종교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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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기 / 아시아 동부에 있는 세계에서 면적이 4번째로 큰 나라.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36조에 의거하여 '오성홍기()'라고 부른다.

빨강 바탕에 있는 큰 노랑 별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공산당을 나타내고,

작은 별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당시 노동자·농민·소자산계급()·민족자산계급()의 4계급으로 성립된 국민을 나타낸다. 빨강은 혁명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색이고 별의 노란색은 광명을 의미함과 동시에

황인종을 가리킨다. 가로세로 비율은 3:2이다. 공모한 2992점의 도안 중에서,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현재의 기를 국기로 선정하여 10월 1일 제정하였다. 

 

 
 
 
 중국의 시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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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의 내용은 실로 놀라운데
이미 9203년전에 환인씨의 나라 환국이 존재했으며, 환국은 7명의 환인에 의해 3031년간 존속했으며,
 
환국 말기에 서자부라는 종족속에서 환웅의 지위에 이던 커발환이란 걸출한 인물이 나와
동쪽으로 무리 3천과 함께 동쪽으로 이주했으며
 
이와 함께 반고가한(지나족(한족)의 창세신)이라는 인물이
다시 일련의 무리를 이끌고 지금의 황허강 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중국 역사의 시조 반고가한

 

時에 有盤固者 好奇術하여 欲分道而往하여
시    유반고자  호기술        욕분도이왕

 

請하니 乃許之라
청         내허지

 

遂積財寶하고 率十干十二支之神將
수적재보        솔십간십이지지신장


환웅이 동방을 개척할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마침내 반고는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십간 십이지의 신장을 거느리고 공공,유소,유묘,유수 등과 함께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니 이들을 제견이라 하며 반고를 반고가한이라 불렀다.

(환단고기,삼성기전 하)


십간十干 십이지十이支

중국 한족의 시조 반고가 중국사의 시원을 열 때

십간과 십이지의 신장을 거느리고 이동했다 하니
이 십간,십이지의 육십갑자 개념은 이미 환국시대부터 그 근원적인 원리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 천부경이 환국의 구전지서라는 사실로 볼 때
음양오행의 개념과 수리철학, 상수학 등 역법의 역사도 환국시대까지 소급된다.

잘 알려진 사실로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때는 임금 이름을 모두 육십갑자를 써서 지었다.

(환단고기,상생출판 )

중국의 고대임금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동이족이다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이라 하여 <삼황 오제>를 받들고 있다.

<삼황 오제>

삼황 즉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 황제헌원씨> 와

오제 즉 <소호금천씨> <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요임금)> <제순유우(순임금)> 을 말한다.

그런데 <태호 복희씨>와 <염제 신농씨>가 동이(東夷)인이라하는 증거가 자꾸 발견되자

(동이東夷는 배달겨레) 이제는 중국인들이 이야기 하기를 중국 역사는 <황제 헌원씨>부터 시작한다 하는 경향이 있다.

<소호금천씨>등 <5제>는 모두 <황제헌원씨>의 후손이다.


그런데 중국의 고전 <초사> 를 보면

<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고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순임금(舜)은 동이인(東夷人)이다.>

<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昌意)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


즉 <황제 헌원씨>의 8대손이 순임금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황제헌원씨> 와 <순임금>이 동이東夷인이고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등도 모두 황제헌원씨의 자손이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대 임금이라 받드는 <삼황오제> 는 모두 동이인이라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사기(史記) 의 리동이국(黎東夷國)편에 보면

"황제헌원씨(軒轅)은 제후(諸侯)인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구리(九黎)에 천자 치우(天子 蚩尤)가 있었다." 라 한다.


< 구리(九黎) = 구이(九夷) = 구한(九韓) = 배달국 >

즉, 당시 천자국인 구리(九黎) 에 <천자>인 <치우천왕>이 있었는데
그 제후중 한사람인 <소전(少典)>의 아들이 <황제 헌원씨>라는 말이 된다.

"구리(九黎)" 는 "구한(九韓)"의 다른 말인데
구한이라 하는 것은 고조선 이전의 한민족 국가인 "배달한국(한웅시대)"이

<아홉 한국(구한九韓)>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고조선은 단군께서 전 국토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가 된다.

말하자면 신라도 "삼한"을 다시 통일하려 한 것이고
태조왕건의 "(후)고려"도 "삼한"을 통합했다고 한다.)

고조선 전의 우리나라였던 <배달한국>의 14대 한웅 <치우천황>시대에
천자 아래 제후중 하나인 제후 소전의 아들인 <황제헌원씨>는
<치우천왕>의 반대에 무릅쓰고 독립의 길을 간다.

<황제헌원씨>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 순임금>으로 이어지지만

순임금때까지도 나라의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은
<배달국>의 제후국이었던 의리를 생각해서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임금 시대에 이르러 동방에는 <배달국>을 이어 <(고)조선>이 건국되고(기원전 2333년경)
순임금을 거쳐 우임금(역시 황제헌원씨의 후손)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나라이름을 "하나라"라고 붙인다.

중국인들이 <삼황> 이라 칭하는 동이인(東夷人)인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황제헌원씨>

등은 실로 성웅분들이다.

동이족인 그분들은 <고조선> 이전의 <배달한국>의 빛을 우리나라와 세계로 펼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한웅께서 신시에 도읍하고 배달국을 세울 무렵,
중국의 시조라 일컫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배달국 약 6천년전 시작, <삼황오제(三皇五帝)> 약 5천년전 시작.)

<삼황>이란 처음 중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나라를 세운 세명의 제왕을 말하며,

<오제>란 그 뒤에 일어난 다섯 명의 제왕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에 일어난 <오제>는 <삼황>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삼황>의 뿌리만 밝히면 중국(왕조)의 시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삼황>은 <태호복희씨(太호伏羲氏)>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을 말하고,

<오제>는 <소호금천씨(少호金天氏)> < 전욱고양(전頊高陽)> <제곡고신(帝곡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요임금)> <제순유우(帝舜有虞-순임금)> 등을 말하는데,

그 마지막 순임금 시대 이후에 차례로 일어난 왕조가 하夏, 은殷, 주周이다.

중국인들은 이들 <삼황오제>를 자신들의 시조라 하여 뒤에 일어난 모든 왕조의 뿌리를 이들에게서 찾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삼황오제> 가운데 대부분이 동이족이며,
이 사실은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고사변古史辯>은 전7권으로 된 방대한 문헌으로, 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책이다.

바로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호),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少호),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如太호之卽帝俊帝곡帝舜少호之卽설 近人기得明證>

(<설[契]>은 은나라를 세운 <성탕>의 선조.
은나라 왕족은 <설[契]>의 후손. 즉 은나라 왕족도 동이족.)

삼황오제 시대가 끝나고 우禹가 세운 하夏나라도 멸망한 뒤 들어선 나라가 은殷이다.

일명 상商나라라고도 하는데 은나라는 저 유명한 갑골문甲骨文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사변>은 고대 중국의 문헌과 근래에 발굴된 유물등에 근거하여

은나라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은나라는 그 시조가 알에서 깨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갖고 있는데,

고구려.신라.가야의 예에서 보듯이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의 정사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삼황오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自黃帝至舜禹 皆同姓而其國號>


이와같은 기록들을 종합하면 결국 고대 동이족들이 중원으로 들어가

큰 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도 시작되었다는 말이 된다.

(퍼온이주: 고대 문헌 유물등으로 보아 대강 은나라 때까지는 백성들도 거의 동이족으로 추정됨.

후에 "지나인"들(중국대륙 남부에 살던 사람들.동이인과는 민족이 다름.)이 인구가 늘어나고

차차 북으로 올라오면서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등의 백성으로 차차 들어오면서

지도부(특히 왕가)는 주가 동이인이고, 백성들은 지나인 들이 차차 많아진 것으로 추정됨.
후한 시대 허신의 <설문해자>에 동이족을 극찬한것으로 보아도 이때만 해도

지도부는 주로 동이(東夷)인 이었던 것으로 추정됨.)


당시 한국과 배달국, 그리고 그 뒤의 단군조선에서 갈려져 나간 구한족九桓族,

즉 구이九夷들은 중원 대륙의 대부분을 활동무대로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지역이다.』

(산동반도는 14대 한웅 치우천왕의 본거지.용산문화. 약 4700년전)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동이족이 차지하고 살았으며
중국인들이 시조인 삼황오제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은 중국의 학자들 스스로 수많은

자료와 문헌, 유물 등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며,
저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들의 뿌리를 뒤엎는 혁명적인 주장을 할리 만무하다.

- 사료 : [사기<리동이전>-사마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서량지(徐亮之)]

           [<고사변古史辯>-중궁학자 공저]

           [<초사>-중국의 고전 ] 외


- 출처 : [實證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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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신화시대

  • 삼황오제(三皇五帝)
    • 요순임금(堯舜) : 삼황오제의 마지막 두 임금으로 후대에는 태평성대를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편집] 문명의 태동

[편집] 선진 시기

선진시기는 진나라 이전의 시기를 가리킨다.

  • (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 한때 신화로 인정되다가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존재가 확실하게 인정되었다.
  • (周) (기원전 1050년 경 - 기원전 256년) : 본래 상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 상나라 말기의 폭압으로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치한 나라이다.
  •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
    • 춘추 시대 : 여러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주왕실을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 이 시기 동안 세력이 강한 제후중에 주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다섯 개의 제후국을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 전국 시대 : 주왕실에 대한 충성마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진, 한, 제, 위, 조, 연이라는 전국 육웅이 차례로 왕을 칭하고 오로지 천하 통일을 위해 질주하였다.(초는 춘추시대 후반기부터 왕호를 칭하였음)

[편집] 진한 시기

  • (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 :전국시대 의 7웅중 진(秦)나라가 주왕실및
  • 다른6국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한후 진왕 영정이 진 시황제라 칭함.
  •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 - 서기 9년) : 진(秦)은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멸망이되며 뒤이어서 중국을 통일한 왕조는 한나라(전한)이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이다.
  • 서양 세계의 중국의 이름을 최초로 알린 나라이기도 하였다.
  • (新) (9년 - 23년) : 전한의 외척 왕망이 전한을 전복시키고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나라이나,
  • 급격한 개혁이 민중의 호응을 얻지못하여 각지의 반란으로 오래 가지 못하였다.
  • 후한(後漢) (25년 - 220년) : 전한의 후예가 계승한 국가로, 통일국가를 다시 유지하였으나,
  • 무제이후 황권은 환관들과 외척들로 인하여 크게 약화되었다.
  • 삼국 시대(三國時代) (220년 - 280년)
    • (魏) : 후한의 황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물려받은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
    • (蜀) : 후한 황실의 후예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 지방에 한정되었다.
    • (吳) :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하였다.

[편집] 위진 남북조 시기

  • 서진(西晉) (265년 - 316년) : 후한 황실의 제위를 물려받은 위나라의 제위를 다시 물려받은 국가이다.
  •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 십육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 :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자리에 16개의 국가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다. 전조, 후조, 전진 등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위로 통합된다.
    • 비한족 :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 및
    •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
    • 한족 :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
  • 동진(東晉) : 서진 황실을 계승한 국가로,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되었다.
  • 서진의 영토를 되찾으려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
    • 북조 : 양자강이북지역의 16국시대의 혼란이 북위로 통일되어서 계승된 시대임
    • 남조 : 양자강 이남지역의 동진을 계승한 국가들이 이어진 시대임
      • (宋)=유송(劉宋)
      • (齊)=남제(南齊)
      • (梁)
      • (陳)

[편집] 수당 오대 시기

  • (隋) (581년 - 618년) : 북주의 외척인 양견에 의해 건국된 국가로,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고 통일을 달성하나,
  • 무리한 원정과 세금으로 인해 일찍 멸망하였다.
  • (唐) (618년 - 907년) :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통일국가로,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을 활성화시켜 국제적인 문화를 이루었다.
    • 무주(武周) (690년 - 705년) : 당나라의 황후이던 측천무후가 조정을 장악하고 아들인 당의 황제를 황태자로 격하시키고 세운 국가. 측천무후의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인재 중심의 정치 역시 펼쳐서 백성들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 오대십국 시대 (907년 - 960년) :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5개의 대국과 나머지 10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기이다.

[편집] 송원 시기

  • (遼) (916년 - 1125년) :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다스렸던 국가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이다.
  • (宋) (960년 - 1279년)
    • 북송(北宋) :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등장한 통일 국가이나, 요나라에 의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사실상의 조공을 납부하며 별 위세를 떨치지 못했다. 요나라 뒤에 등장한 금나라에 의해 화북 지방을 빼앗긴다.
    • 남송(南宋) :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국가로,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게 멸망당한다.
  • (金) (1115년 - 1234년) : 요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전복하고 세운 국가로,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 지방을 차지한다. 그러나 몽골 제국에게 시달리다가, 몽골 제국과 남송의 연합군에 멸망당한다.
  • (元) (1271년 - 1368년) : 만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유럽까지 지배한 몽골 제국의 적장자인 쿠빌라이 칸이 몽골고원, 만주, 화북을 아우르는 지역의 한족식으로 세운 국가로,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의 통일 왕조가 된다.

[편집] 명청 시기

  • (明) (1368년 - 1644년) :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쫓아내고 건국된 한족의 통일 왕조이다. 초기에는 외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과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임진왜란 등 외부 원정의 부담과 문화 침체로 쇠퇴하다가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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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 세력의 이권침탈 풍자화
  • (淸) (1616년 - 1912년) : 금나라의 후예인 만주족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통일 왕조이다. 초기에는 만주족과 한족의 차별 정책을 시행했으나, 전체적인 제도 및 왕조의 분위기는 명나라와 유사하였다. 양무 운동을 통해 근대 국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서구 열강 세력들의 이권침탈이 심화되면서 청나라는 더욱더 쇠퇴하고, 1911년, 신해 혁명으로 멸망한다.

[편집] 공화국 시대

한편 천두슈마오쩌둥을 주축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이 농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제1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냈으나, 북벌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 국공 내전(해방전쟁)이 시작되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중일 전쟁(항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시안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 일본 제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전쟁 중에 수도 난징이 점령당하고 수도를 충칭으로 옮긴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양당은 다시 대립하여, 전후 처리 과정에서 국공 내전이 다시 시작된다. 결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여 집권당이 되었다.

[편집] 인구의 변천

아래의 데이터는 양학통의 《計劃生育是我国人口史発展的必然》(1980년)에 의한다.

시대 년대 호수 인구 자료출처
하나라(夏) 우 임금(기원전2205년 추정) 13,553,923 《帝王世紀》
진나라(秦) 20,000,000?
서한 平帝元始2년(2년) 12,233,062 59,594,978 한서 지리지
신나라(新) 20,000,000?
동한 順帝建康원년(144년) 9,946,919 49,730,550 《冊府元亀》
진나라(晉) 武帝泰康원년(280년) 2,459,804 16,163,863 《晉書》 食貨志
수나라 煬帝大業2년(606년) 8,907,536 46,019,056 《隋書》 地理志・食貨志
당나라 玄宗天寶14년(755년) 8,914,709 52,919,309 《通志》
송나라 神宗元豊3년(1080년) 14,852,684 33,303,889 《宋史》 地理志
금나라 章宗明昌6년(1195년) 7,223,400 48,490,400 《金史》 食貨志
원나라 世祖至元27년(1290년) 13,196,206 58,834,711 《元史》 地理志
명나라 神宗萬暦6년(1570년) 10,621,436 60,692,850 《続文献通考》
청나라 淸初(1644년) 45,000,000
聖祖康熙50년(1711년) 100,000,000이상
高宗乾隆27년(1762년) 200,000,000이상
高宗乾隆55년(1790년) 300,000,000이상
仁宗嘉慶17년(1812년) 333,700,560이상 《東華録》
宣宗道光14년(1834년) 400,000,000이상
중화민국 民国36년(1911 - 1949년) 455,590,000이상 《統計提要》
중화인민공화국 1949년 - 1,211,210,000이상 《中国統計年鑑》

[편집] 주석

  1. 중화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