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워싱턴  미국인구는 약 3억정도  종교: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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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기 / 북아메리카 대륙의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있는 국가. 정식명칭은 아메리카 합중국이다.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라고 하며, 미국의 국가() 또한 같은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특징은 미합중국을 구성하는 주()의 수만큼 별이 있어서, 주가 증가할 때마다 별의 수가 증가된다는 점이다.

주의 증가가 결정되면 성급하게 새 국기의 디자인을 발표하는 시민도 있지만,

정식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한 국기위원회에서 디자인을 심의 결정하고 다음해 독립기념일(7월 4일)에 공식 발표한다.

 

1777년 처음 제정하였는데, 독립선언 당시의 13주를 기념하기 위하여 13개의 줄과 13개의 별이 그려진 기였다.

당시는 별의 배열에 대해 아무 규정도 없었기 때문에 원형()으로 배열한 것,

수열()로 늘어놓은 것 등 그 종류도 다양하였으나, 1795년 버몬트·켄터키의 2주가 증가되면서

15개의 줄과 15개의 별이 그려진 국기로 변형되었으며,

 

그 후로는 주가 증가해도 줄은 13개로 고정(독립선언 당시의 13주를 의미)하고 별만 더하기로 결정하였다.

성조기는 현재까지 26번 변경되었으며, 최신의 변경은 1960년 하와이주()가 승격하였을 때로서

현재 별의 수는 50개이다. 

 

 

알래스카 원주민을 포함하여 미국 본토의 원주민은 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최소한 1만2천년전에서 4만년 전에 이곳에 당도하기 시작하였다.

 

콜럼버스가 이 곳에 오기 전, 미시시피 문명 등은 발전된 농업, 대형 건축, 국가 수준의 사회를 이룩하였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고 나서,

수백만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으로 숨져 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시작되는 에스파냐 사람의 식민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1607년에 시작되는 영국인의 입식자(入植者)가 차츰 세력범위를 넓혀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의 식민지를 대서양연안에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도 식민의 동기가 북쪽과 남쪽에서는 크게 달랐다.

유럽의 7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긴 영국이 식민지의 통제를 강화하자 13개 식민지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결속,

궐기하고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대영 제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미국을 수립한 것이 국가로서 미국의 시초였다.

 

미국은 1774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어서 1787년에 미합중국 헌법이 발포되고,

1789년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지도 아래 연방국가가 발족하였다.

 

미국은 독립 후에도 프랑스·에스파냐 등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하여, 1848년에는 31주, 면적으로 거의 현재의 규모에까지 발전하였다.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서부를 개척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서쪽으로의 발전은 이른바 프론티어 운동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한 신세계의 내부에서는 식민지 건설 당시부터 싹터온 남북의 대립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식민지 초기 시대부터 종교나 경제 체제를 달리하고 있었는데, 그후 이 차이는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노예제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어진 미국은 1861년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르게 된다. 남북간의 내전은 1865년에 북부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것은 북부의 생산력, 특히 공업력이 남부의 농업에 대하여 거둔 승리이기도 하였다.

 

미국의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까지로 끝나고, 남북전쟁 후는 국내 자원의 개발과 교통기관의 발달에 힘입어 미국의 산업자본주의는 약진을 이룩하였으며, 급속히 독점화의 경향을 보였다. 산업이 발달한 결과 각지에 공업도시가 발달하였으며, 현저한 빈부(貧富)의 차, 슬럼가(街)나 범죄의 발생이 사회문제화되고 노동운동이 격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독일 등에 선전포고 하고, 전승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세계 제1의 부(富)를 갖게 된 미국은 전쟁 후에도 번영을 유지하였으나, 공업의 번영에 비하여 농촌은 불황으로 허덕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전후(戰後)의 불황과 어울러서 1928년에는 대공황(大恐慌)이 엄습하였다. 1932년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1882∼1945)는 경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고금을 대량 사용하는 뉴딜정책을 채택하여 불황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정책을 통해서 연방정부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고, 미국의 자본주의는 차츰 변질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역시 전승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은 참전국 중에서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며,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전쟁 후에는 피폐한 여러 나라의 부흥과 후진국 원조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이후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급부상한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이끈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기록한 뒤, 1990년대~2000년대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 전쟁을 하였다. 2001년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 당했다.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통령은 조 바이든)가 당선되었다.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