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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병법이란,  삼신신앙을 통해서 

평상시에는 상제님을 받들어 모시며,  수행을 통해서 도를 통한 연후에

병법을 운용했던것이다.

 

강태공의 육도삼략은 도를 바탕으로 천하를 경영하고 다스리는 병법이라면,

손자의 손자병법은 이에 비하면 잔머리 굴려 권모술수에 능한 병법이라 할 수 있다.

 

신안이 열리지 않은 상태의 병법은 다만 학술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므로 진정한 내면의 병법을 볼 수 가 없는 것이다.

 

또한 병법을 운용하는 군사軍師가 전쟁을 치루기 전에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출정을 하는것은 상제님의 천명과 신명의 가호가 없이는

진실로 승리하기 어려운 법이다.

 

치우천황께서 황제와 탁록전쟁을 통해서 도술을 부려 큰 안개를 짓는것과
을지문덕장군이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바로 도통의 경지에서 병법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날 조의선인들은 삼신신앙을 하면서 도를 닦았는 것이다.

 

그 예로써 을지문덕장군은 적장에게 경고의 글을 보내는데
그 내용중에 상통천문하고 하찰지리를 했으므로 상대를 알고 이만 물러감이 어떠하느냐고 말 하였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면
을지문덕은 고구려 영양왕 때의 장군으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중 살수에서
수나라군을 궤멸시킨 살수대첩으로 알려진 장군이다.

 

그리고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장수인 우중문에게 보냈던
여수장우중문시는 거짓 항복을 통해서 적이 방심하게 한 뒤 살수대첩을 승리할 수 있게 해줬다.
여수장우중문시는 한국에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오언절구 한시로 남아있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隨將于仲文詩)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그대의 신기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기묘한 헤아림은 땅의 이치를 통하였네.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출렁이며 흐르는 저 푸른 살수에/
수나라 백만 대군 장사 지냈지./
낚시꾼 나무꾼들 신나는 말이/그까짓 대국 놈들 별 것 아니로구나!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조준이
청천강이 내려다보이는 누각에서 명나라 사신 축맹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지은 시입니다.

 

조준은 이 자리에서
옛날 조선의 조상인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명나라의 조상인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을 시로 읊어,
큰 나라라고 우쭐대는 명나라가 조선을 얕잡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서도 영양왕과
을지문덕 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며 자랑스런 조상을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제갈공명은 적벽대전에서 7일동안 제단을 쌓아놓고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제사를 지내 동남풍을 불러들인것도 모두가 신명을 통해서
그러한 조화의 술법을 빌렸기 때문이다.


49일 동남풍 공사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을 열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 뒤에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 하니 이는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매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부는지라 성도들이 들어가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을 내려오시니라.
(증산도 道典 5:53)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루는 한 성도가 도술(道術)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가르쳐 주어도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니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옛날에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렸다 하나 이는 제단을 쌓고 여러 날 빌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때가 오면 너희들은 명(命)으로써 그 자리에서

바람을 불리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용기(龍氣)만 주면 너희는 비를 마음대로 오게 할 수 있고
병든 사람을 말로써 고치며,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6:131)


또한 이순신장군께서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당시 전 세계 해전사海戰史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23전 23승의 불멸의 신화를 남기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께서 전장에 출정하기 전에
승리를 기원하며 치우천황께 둑제를 3번 올렸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전하고 있다.
<둑제 - 군령권을 상징하는 둑에서 지내는 제사>

 

천지의 부모이신 상제님을 받들어 모시고 있었고 전쟁에 나갈 때에는
반드시 武神이신 치우천황에게 천제를 지내고 출정을 하였으므로 백전백승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 조여적의 《청학집》에서
도인 김선자(金蟬子)는 변지(卞沚)가 지은 《기수사문록, 記壽四聞錄》이라는 책을 거론하면서
한국선도의 도맥이 우리민족의 국조이신 환인(桓仁) - 환웅(桓雄) - 단군(檀君)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기수사문록記壽四聞錄》은 한국선도의 계보를 기록한 총서이다.

 

이는 현재 티벳의 달라이라마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시대가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였기 때문이다.

상고 배달국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인 치우천황(BC2707∼BC2598)은 황제 헌원과

탁록(涿鹿)의 전투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중국의 고서 《산해경》과《사기》,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이 자웅을 겨뤘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치우천황을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진 ‘동두철액(銅頭鐵額)’의 괴물로 표현했는데,

이는 치우천황께서 당시 최초로 금속무기를 사용한 청동기 문화의 개창자였기 때문이었다.
관자(管子)는 ‘치우가 노산(盧山)에서 금을 얻어 5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 사마천의 《사기史記》

 

구려국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 九黎之君號曰蚩尤 - 《書經》

치우는 고대의 천자이다. 蚩尤古天子 - 《書經》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은
무려 10여 년 간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항상 치우천황의 73전 73승이었다.

치우천황은 제정일치 시대의 군왕이었으므로

력(道力)과 기무(氣武)에 뛰어났으며,  우뢰와 비를 자유자재로 부렸다.

 

큰 안개를 일으켜 적으로 하여금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고,
물과 불을 부리며, 호풍환우하는 치우천황을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외경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치우천황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치우천황은
신(神)처럼 용맹하였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 이마를 가졌다.

 

눈빛은 선하면서도 강렬했으며
그의 마음은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었다.

 

그의 머리는 지혜로 빛났으며
가슴은 뜨겁고 온 몸은 힘이 넘쳤다.

 

그가 말을 타고 대륙을 달릴 때
그의 갑옷과 어깨에 맨 외날 칼(儉)은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양손에는 모(矛)와 극(戟)을 쥐고
탁록의 전투에서 천도(天道)를 지켜냈다.

그는 4천년 전 중국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의 주인이었으며,  동이족의 제왕이었다.

 

신(神)처럼 용맹한 치우천황을 도저히 당할 장사가 없자,
황제 헌원은 산에 올라 치성으로 제를 지내며 신에게 봉선(封禪)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전투에서 신의 조력을 받아 치우천황과 싸웠다고 한다.

 

전쟁의 신(神) 치우천황은
동쪽으로는 회대(淮垈)의 땅을 진격하여 성읍으로 삼았으며,

지금의 산동성과 안휘, 강서성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으니, 실로 얼마만큼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경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에
치욕을 안겨준 치우천황을 도깨비로 비하하여 왔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나 영웅호걸들은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치우천황께 제를 올렸다고 중국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
무신(武神) 치우천황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조선시대 중기 조여적의 《청학집》에서
도인 김선자(金蟬子)는 변지(卞沚)가 지은 《기수사문록, 記壽四聞錄》이라는
책을 거론하면서 한국선도의 도맥이 환인 - 환웅(桓雄) - 단군(檀君)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속의 진정한 도통맥의 흐름이며, 진실인것이다.

 

노자의 도교가 아니다. 

도교는 신교의 가르침인 삼신신앙을 근본으로 하는 곁가지에 불과한 것임을 잘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병법의 체(體)와 근본도 진실로 알고보면
상제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받들어 모시고  천제를 올리고 수행을 통한
기도를 통해서 도술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삼신신앙이며 도를 통하는 근본이며 지름길 인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잘알아야 하는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도통과 도술이라는 말만 들어 왔지만
실제로 도통이 무엇인지 도술이 무엇인지 환상속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이러 하길래 세간에서는 도통을 두고 '도통 모르겠다고' 전해져 오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고대사는 신교(神敎)의 삼신신앙을 통하여 

상제님을 받들어 모시므로해서 부흥하여 천하를 경영하며 천하를 호령했고,

삼신신앙을 버리고 상제님을 잃어버리므로해서 철저하게 망해왔던 역사인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헤아려보면

여기에서 앞날의 우리 민족과 국운,  그리고 미래를 잘 알 수가 있는것이다.

 

 

우주의 삼신이 천지와 인간 생명의 기틀

하루는 상제님께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皇地皇人皇後에 天下之大金山寺라
천황지황인황후     천하지대금산사


진표와의 큰 인연

 

한 성도가 여쭈기를 “전해 오는 비결(秘訣)에
모악산 아래에 있는 금부처가 능히 말을 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세간에 금부처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표는 나와 큰 인연(大緣)이 있느니라.
 
육장금불(六丈金佛)이
화위전녀(化爲全女)라.’ 하였나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삼층전 미륵은 손바닥에 불(火)을 받았으나 나는 입에다 물었노라.

 

옛날에 주대명(朱大明:주원장)이
금산사 미륵에게 기도하고 소원을 이루었으되,

 

민중전(閔中殿 : 명성황후)은 각처의 사찰에 빠짐없이 기도하였으나
오직 금산사에는 들지 못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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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