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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종자 외에는 모르느니라

 

너희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누구하나 알게 하시는 줄 아느냐.

 

천부지(天不知) 신부지(神不知) 인부지(人不知) 삼부지(三不知)이니,
참종자 외에는 모르느니라.
 

선천 운수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요
지금 운수 동지(冬至) 한식(寒食) 백오제(百五除)니라.
후천 창생 되기도 어려우니 살아 잘되기를 바랄지라.

 

내 일은 되어 놓고 봐야 아느니라.
일은 딴 사람이 하느니 조화 조화 개조화(改造化)라.


심통 공부 어서 하라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피차 마음을 알아야 인화(人和) 극락 아닐쏘냐.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心通) 공부 어서 하라.

제가 제 심통도 못하고 무엇을 한단 말이더냐.

불(佛)은 선(仙)의 밑자리니라.

(증산도 道典 1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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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 여상(姜太公 呂尙)

 
강태공 만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도 별로 없을것 같다

 

강태공이니 태공족이니 하고 부르게 된 것도
강태공이 때를 기다리며 위수(渭水)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팔십년이란 반생을 보내게 된 데서 생겨난 말이다.

또 그가 갖은 고생 끝에 크게 출세를 했다고 해서 자주 비유로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유명한 백리해(白里奚)가 일흔두살에 소먹이는 목장지기

생활에서 단번에 정승으로 출세를 할 때도 이 강태공이 화제에 올랐었다.

 

공손지(公孫枝)의 추천을 받아

백리해를 초나라에서 죄인이라 속이고 데려온 진목공(秦穆公)은,
칠십년이란 긴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백리해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아깝다!

나이가 너무 늙었구료!"하고 그의 재주를 아끼는 한편

너무 늙은것에 실망을 나타내 보였다

 

이때 백리해는 "옛날 강태공은

팔십에 문왕(文王)을 만났어도 주나라를 도와 천하를 통일 하였습니다.

 

신의 나이 이제 일흔둘이니 강태공에 비하면
아직도 젊지 않습니까"하고 자신의 젊음을 강태공에게 비유해 보였던 것이다.

 

진목공은 백리해의 그런 패기에 희망을 걸고

그를 정승으로 임명해서 마침내는 패천하(覇天下)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태공을 궁팔십(窮八十),달팔십(達八十)이라고도한다.

 

그러면 그가 백육십년이나 장수를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백삼십년을 넘게 산 것만은 확실하다.

 

귀신을 뜻대로 부리다

강태공은 1년을 72후로 나눠 (1후는 5일) 동식물 또는 기타 자연현상 변화의 징후에

근거하여 절기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름을 붙여 농사에 이용하였다.

 

또한 강태공은 귀신도 마음대로 사역케 하는

신권을 갖추고 있었는데 중국설화 속에 많은 일화들이 전해온다.

 

봉신연의』에 보면 주왕의 애첩 달기는 소후의 딸로 은주역 청당에 묵을 때

곤륜산의 천년 묵은 암 여우가 그녀의 혼백을 빼앗고 그녀의 몸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주왕의 비(妃)가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게 되자

 

곤륜산에서 40 년간 수행을 한 강태공이 도술로 여우를 물리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정산에 좋은 진흙이 있는데 미꾸라지 정령의 방해로 수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육로로 운송해야 했다.

이에 강태공이 신조(神釣)로 미꾸라지 정령을 잡아 수로를 내도록 하였다.그 증거로 조어대(釣魚臺)가 있다.

 

봉신연의』에 의하면 강태공이

토둔(土遁) 수둔(水遁) 목둔(木遁) 등을 행하여 몸을 감추어 이동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같이 강태공은 도술에 능통하여 귀신도 능히 뜻대로 부리는 신권이 있었다고 전한다.

 

신교의 맥을 중국 한족에 전수하다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쌓았던 강태공은 강족(姜族)으로 정통 동이족 출신이다.

강태공은 동방 조선족으로서 신교의 한 맥을 중국 한족에게 전수하게 되는데,

 

사마천 『사기』의 「주본기」에 보면 “ 무왕이 주왕을 처단하고

이튿 날 아침 몸소 사단(社壇)에 나아가 남쪽을 향하여 모숙정은 맑은 물을 받쳐들고

 

위강숙보는 자리를 깔았으며 …

윤일은 축문을 읽어 주왕의 죄악을 상제께서 듣도록 명백히 아뢰었다” 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청수(淸水,맑은 물)를 모시고

상제께 고하는 부분은 동방 조선족 신교 문화의 원형이다.

또 『사기』「 봉선서」에 의하면 “ 조정의 동남쪽에 태일단(太一壇)을 설하고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을 모셨다.” 는 기록이 있다.

 

강태공은 산동성 제나라의 왕이 된 후

동방신교의 삼신관을 서방 중국 땅에 뿌리내렸다.

 

이로부터 제나라에서 삼신상제님과 치우천황(한민족 배달국 임금)과

천지일월에 제사하는 팔신제(八神祭)풍속이 더욱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사기』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의하면 진시황과 한나라 고조까지도 팔신제를 봉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팔신제는 고대 중국문화 속에 살아있던 동방신교 제사문화의 원형이며 산 증거이다.

 

병법과 정치로 천하만세에 은혜를 베풀다

강태공이 지은 병법서인 『육도(六韜)』는 다른 병서와 달리 치세(治世)의 대도(大道)로 부터

인간학 조직학을 논급하고 정전(政戰) 및 인륜을 논한 것이 특색이다.

 

또한 『삼략(三略)』은 감추어져 비전 되다가 진(秦)나라 시대의

황석공이 장량(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의 책사)에게 전수하여 세상에 드러났다.

 

태공망의 육도가 역대 병법사상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후대의 손자(孫子) 오자(吳子) 위료자(尉?子) 이위공(李衛公) 등 중국의 제가(諸家) 병법사상도

『육도삼략』을 기간(基幹)으로 하고 있다.

 

전국시대에 6국의 재상을 지낸 유명한 유세가인 소진은 태공망의 병법서를 접하고

비로소 군왕들을 설득하여 천하를 경륜할 도를 터득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잡신을 물리친다는 제살(除煞)의 한 풍속으로 디딜방아를 짓고 나면

흔히 몸체에,강태공이 태어났다고 하는 연월일시인 ‘경신년(庚申年) 경신월(庚申月) 경신일(庚申日)

경신시(庚申時) 강태공 조작(姜太公 造作)’ 이라고 쓴다.

 

이를 ‘ 방아상량’이라고 하는데

디딜방아를 고치거나 새로 놓을 때는 반드시 경신일 경신시에 맞추어

방아 동티 (귀신을 노하게 하였을 때 받는 재앙의 하나)를 막고자 하였다.

 

이는 강태공을 내세워 잡귀가 덤벼들어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우주원리로 보면 금극목(金克木)의 상극(相克)원리로 강한 금기(金氣)를 지닌 경금(庚金)과

신금(申金)으로써 목기(木氣)에 의한 동티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강태공은 160살을 살다가 죽었다.

80년은 초야에 묻혀서 가난하게 살았고, 80년은 세상에 뜻을 펼치며 영광스럽게 살았다.

그래서 강태공의 삶을 두고 ‘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 이라고 한다.

 

강태공이 죽자 그를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사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여상은 시해선(尸解仙,육체를 가지고 신선으로 승천)이 되었다고 믿었다.

 

또 일각에서는 『육도』라는 여섯 권의 병법서를 남기고 세상을 뜨자 영구(營丘)에

장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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