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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2章 三陣(삼진1) 진치는 법 세 가지>

 

   武王問太公曰(무왕문태공왈)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凡用兵爲天陣(범용병위천진)

   地陣(지진) 人陣(인진) 奈何(내하)
   용병하는 데 천진, 지진, 인진을 편다고 하는데 이는 무슨 뜻입니까.
 

 

   太公曰(태공왈)

   태공이 대답하였다.

 

   日月星辰斗杓(일월성신주작) 一左一右(일좌일우)

   해, 달, 별, 북두칠성을, 혹은 왼쪽으로 하고 혹은 오른쪽으로 하며,

 

   一向一背(일향일배)

   혹은 이를 등지고 포진하는 데,

 

   此謂天陣(차위천진)
   이를 일러 천진이라고 합니다.


   丘陵水泉(구릉수천)

   구름과 물과 샘 등에도,

 

   亦有前後左右之利(역유전후좌우지리)

   또한 앞과 뒤 혹은 오른쪽과 왼쪽의 유리한 형세가 있는데,

 

   此謂地陣(차위지진)
   이를 일러 지진이라고 합니다.


   用車用馬(용거용마)

   때로는 전차를 쓰고 때로는 말을 쓰며,

 

   用文用武(용문용무)

   때로는 문으로써 계략을 쓰고 때로는 무를 써서 전투하는 데,

 

   此謂人陣(차위인진)
   이것을 일러 인진이라고 합니다.

 

   武王曰(무왕왈)

   무왕이 말하였다.

 

   善哉(선재)
   과연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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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삼재에 의한 천리를 응용한 진이다.

그러므로 옛 군사(軍師)는 상통천문과 하찰지리는 기본으로 해야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통과 신통을 해서

전략 전술을 비로소 짤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까막눈이 되어 잔머리 굴려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문남용과 전설의 인물 ‘오세동’의 운명적 만남

 

문남용이 황토현 전투에 참여한 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디선가 “생불(生佛)이 들어온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거늘

남용이 보니 키가 큰 장정 하나가 어린아이를 업고 들어와 자리에 내려놓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으니라.

 

이 때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를 “신인(神人)이라,
오세동(五歲童)이라.” 하는데 남용이 그 체구를 보니 일곱 살 정도이더라.

 

동학 간부들이 오세동 앞에 과자를 놓고
드십시오.” 하며 예를 다하여 모시되 오세동은 아무 말이 없거늘
누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산부처라더니 벙어리를 데려왔나 보다.” 하니라.

 

얼마 후 오세동이 자신을 업고 온 장정에게 묻기를
진중에 총 든 군사가 몇이냐?” 하니 그 사람이 대장에게 물어

 

오세동에게 그대로 전하거늘

오세동이 좌중을 향해 호령하기를 “총 든 군사는 모두 모이라!” 하고
지필을 들이라.” 하더니 남용을 가리켜 먹을 갈게 하니라.

 

이에 오세동이 총 든 군사의 숫자대로 손바닥만 한 종이에
푸를 청(靑)’ 자 비슷한 글을 써서 그 군사들에게 각기 나누어 주며 말하기를
이것을 잃어버리면 너는 죽는다.” 하더니 얼마 후 다시 말하기를
하나는 할 수 없이 죽겠구나.” 하니라.

 

이어 오세동이 이것저것을 일일이 지시하니 동학군이 그 명에 따라
산을 둘러가며 잔솔가지에 이불보와 치마를 뜯어 중간 중간에 쳐 놓고

 

밤새 간간이 관군을 향해 총을 쏘며 신경전을
벌이매 군이 이불보를 동학군으로 오인하여 총을 쏘아대거늘
그 틈에 동학군이 관군 진영을 기습하여 동이 틀 무렵에 대승을 거두니라.

 

이후 남용이 노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진격하는 동학군의 머리 위로 백로(白鷺)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더라.’ 하니라.

(증산도 道典 1:47)

 


때는 언제입니까

전투가 끝나자 오세동이 자신을 업고 왔던 장정에게 말하기를
십 세가 안 된 아이가 전쟁은 불가하다.”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자!” 하니라.

 

이 때 동학군들이 무릎을 퍽 꿇고
오세동을 붙잡으며 “때는 언제입니까?” 하고 묻거늘
오세동이 한시 두 구절을 써 주는데 남용이 앞 구절만을 기억하니 이러하니라.

 

花老太童禾處子
화로태동화처자

 

남용이 글을 보고 대강의 뜻을 짐작하여
동학군도 아직 때가 아니다.’ 하며 동학군의 대열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거늘

 

신이한 오세동의 지혜와 기상에 크게 충격을 받은 남용은
이로부터 ‘나도 도를 닦아야겠다.’는 구도의 의지가 가슴 속에 요동치니라.

(증산도 道典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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