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 남은 가족들, 아이들 이름 함께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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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5.15 03:04

    [세월호 참사 한달… 다른 가족 아이 이름 부르며 부둥켜안아]

    실종자 가족·희생자 유족들 "○○○선생님 빨리 오세요"
    "○○야, 아빠 힘들어" 호명 소리, 차츰 울음으로…
    유품 찾으러 온 희생자 엄마
    "이제 엄마 여기 안 올거야… 너랑 같이 오지도 못하잖아"

    "○○야 집에 가자!" "○○○ 선생님, 애들 데리고 나오세요!" "○○○씨, 빨리 오세요!"

    누군가의 아들·딸, 누군가의 선생님, 누군가의 아빠인 이름이 하나하나 울려 퍼졌다.
    처음 또렷했던 호명(呼名) 소리는 알아듣기 힘든 울음으로 변해갔다. 갈라진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는 "아! 내 딸, 내 딸! 어떡해"라며 난간을 붙잡고 몸부림쳤다.
     
    한 아버지는 "난 네 얼굴만, 아니 뼈다귀라도 보고 싶은데 왜 안 나오느냐, 못 참겠다.
    아빠 힘들어 인마! 왜 안 나오느냐, 제발 나와줘. 머리카락 하나라도 좋다. 아빠 너 보고 싶어서
    못 가"라며 비틀거렸다.

    
	캄캄한 바다 향해 “돌아와, 얘들아”… 세월호 침몰 사고 29일째인 14일 새벽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서 실종자 가족과 사망자 유족 50여명은 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이들은 “○○○ 선생님 빨리 오세요” “○○야 집에 가자”라고 애타게 외쳤다.

     

    캄캄한 바다 향해 “돌아와, 얘들아”… 세월호 침몰 사고 2

    9일째인 14일 새벽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서 실종자 가족과 사망자 유족 50여명은

    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이들은 “○○○ 선생님 빨리 오세요” “○○야

    집에 가자”라고 애타게 외쳤다.

     

    /뉴시스

    지난 13일 자정. 세월호 참사 실종자 28명의 가족과 희생자 유족 등 50여명이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한 줄로 늘어섰다. 자원봉사자가 실종자 명단에 남은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 일반인 승객, 승무원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면, 가족들은 그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보고 싶다
     
    얘들아." "선생님 애들 데리고 오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자식 이름을 부르짖다
    목에서 쇳소리를 토해냈다. 기진맥진한 가족들의 허리가 꺾였다. 어둠에 묻힌 바다는 대답이 없었다.

    이날은 사흘간 중단됐던 수색이 재개돼 시신 한 구를 찾은 날이었다.
    언제 가족의 시신이 수습될지 모르는 막막한 심정의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 해역을 향해 뻗어 있는
    방파제에서 그리운 이름을 함께 불러보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은 내 가족, 남의 가족 없이
    모두가 그 이름을 불렀다.

    가족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부축을 받아 방파제에서 내려왔다.
    아이의 시신을 먼저 찾은 한 아버지가 말했다. "모두 힘내세요. 용기 잃지 마세요.
    아버지들은 남은 가족들, 여기 있는 동료들을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색에서 모두가 바다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립시다." 유가족들은 실종자 가족들을 차례로 포옹했다.
    아버지들은 한데 엉켜 등을 토닥였다.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이들 찾든 못 찾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안 울고 혼자 참고 있었는데,
    이런 거 하지 마. 괜히 눈물 나잖아." 한 아버지는 "후련하게 운 것 같다. 고맙다"고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시작된 비는 오후에야 그쳤다.
    딸을 찾은 가족이 전날 팽목항에 놓아둔 편지도 젖었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 엄마에게
    빨리 와 주어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하늘에서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과 모든 이들에게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해주렴. 미안하고 사랑한다. 아빠가.'

    실종자 가족들은 밤낮으로 방파제에 나와 아직 바다에 갇힌 아들·딸들에게
    말을 건네고 편지를 쓰고 선물을 보낸다. 방파제를 지키는 경찰관은 "하루에도 실종자
    가족 10명 정도가 방파제에 올라 눈물을 쏟는다"고 말했다. 낮엔 남도의 강한 햇살이 항구를 달궈
    기온이 25도를 넘지만 해가 지면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 밤 기온은 10도 안팎으로 뚝 떨어진다.

    앞서 13일 낮엔 고(故) 김주아(17)양의 부모가 팽목항 방파제를 찾아왔다.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단원고 2학년 주아는 갑판에서 구조를 눈앞에 둔 순간 친구의 비명을 듣고
    선실로 다시 내려갔다가 목숨을 잃었다〈본지 4월 19일 A10면〉.
     
    어머니는 "혹시 주아가 남긴 물건이 있나 해서 안산에서 진도로 다시 왔다"고 말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아도 계속 눈물이 나 그동안 집에 있었다"고 했다.

    딸의 넋이 떠나간 바다를 향해 어머니가 소리쳤다. "이제 엄마 안 올 거야.
    너랑 같이 오지도 못하잖아. 엄마 놔두고 어떻게 갔니. 엄마도 진도라는 데 처음 와봤어.
    제주도 간다 그랬지 진도 간다고는 안 했잖아. 제발 좋은 데 가라. 착하게 살았으니까 좋은 데 가서
    엄마 갈 때까지 기다려." 흐느끼는 아내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바다에 두 번 절을 했다.

    방파제를 내려온 부부는 유류품 보관소를 찾았다. "평소 정리정돈 잘한 우리 딸은
    자기 물건을 아마 가방에 넣어놨을 거야." 두 사람은 딸의 가방을 끝내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