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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노스트라다무스

 

공포의 대왕과 앙골무아 대왕

다음에 살펴보려고 하는 시도 앞서 언급한 예언시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마지막 운명을 전해 주고 있는 가장 불가사의하면서도 중요한 구절입니다.


1999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무아의 대왕이 부활하리라
화성을 전후로 행복하게 지배하리라


이 시는 각 줄마다 신비스러운 내용을 간직하고 있다.
첫 줄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과연 인류가 심판받게 되는
결정적인 해를 1999년으로 말하고 있는지의 여부,

 

그 다음으로 공포의 대왕과 앙골무아의 대왕에 얽힌 수수께끼,
마지막 줄의 마르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러하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진실로 1999년 7월이라고 말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을 세계종말의 시기로 예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고도 벤이나 그 밖의 대부분의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이 해석한 결과이다.

 

과연 그러한 주장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그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그 오류가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우선 이런 해석이 틀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이 예언시의 불어 원문을 보면 종말의 때는 `L' an mil neuf cent nonante neuf'로 되어있다.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글자 그대로 1999년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99라는 숫자는 불어로 '4x20+19(quatre vingts dix neuf)'라고 표기한다.

 

이같은 확실한 표현을 두고 '노낭뜨 뇌프(nonante neuf)'라고 표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엄밀하게 해석해 보면 'nonante neuf'라는 말은 99가 아니라 '90의 9'라는 의미이다.
또 뇌프(neuf)라는 단어 속에는 아홉(nine)이라는 뜻 외에 '새로운(new), 신참(新參)인'의뜻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를 비약하여 1999년으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의 뜻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 구절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문제의 시구는 '1900,90,9,7의 달'이다(7월은 Juillet란 단어를 쓴다).
즉, 그는 9라는 숫자를 거듭 사용하였는데,


9수=(동양철학적으로는 = 가을 金기운 분열의 마지막수 추살의 뜻을 가지고 있음 )

새 질서의 개벽으로 들어서는 대변화의 시간과정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예언시를 보통사람이 쉽게 알 수 없도록
고의적으로 난해하게 구성한 이유를 밝히면서,


미래의 소식을 비록 비밀스럽게 전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는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세상의 불의함 때문에 입을 다물고 나의 저작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내가 앞으로 닥쳐올 일을 분명하게 밝혀서 쓴다면 현재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종파나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들과
이 사건들이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를 비난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그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수수께끼처럼 묘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장차 일어날 일들이 놀라기 잘하는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은 모호하게 쓰여졌다.

 

그래서 학자나 현인, 권력자나 왕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보잘것 없고 겸손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영원한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적인 직감의 능력을 부여받은 예언자들도 이를 이해할 것이며,
이러한 예언의 직감에 의해서 사람들은 먼 앞날의 일들을 알게 될 것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러므로 생명의 근본원리를 알기만 한다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 구절의 수수께끼도 풀 수 있는 것이다.

 

우주생명의 창조섭리를 규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동양의 상수( 象數 )철학에서 9와 7은 둘 다 분열 작용의 마지막 단계를 지적하는
수[象數]로서 9는 작용의 끝수[終數]이며,

7은 분열의 최후단계에서 작용하는 천지기운[火氣]을 표상하는 상수이다.

 

그러므로 9와 7을 연속적으로 기록한 본문의 숫자배열,
즉 '1999, 7의 달'은 1999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先天]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인간문명과 대자연의 마지막
 '분열의 최후단계 시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앞에서 살펴본 "세기는 새로운 변혁에 다가서리라
(『백시선』1:16)"는 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개벽기운이 뻗치기 시작하는 시점에 대한

어떤 일치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1999'를 수 자체가 지닌 상수철학적 의미에

중점을 두고 해석하지 않으면,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개벽이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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