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국을 읽는다] 우리를 노려보는 중국… 그 시선에 맞설 전략 있는가

  • 지해범 중국전문기자

 

[5·끝] '중국시대' 생존법
美와 패권경쟁 속 '南 때리기' 가속… "한국, 손봐주겠다" 노골적 위협도
유치원생도 '중국시대' 준비하는데… 전문가 부재 등 對中 외교역량 부족

'중국은 그동안 좋은 말로 한국을 타일러 왔는데, 한국이 멋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은 한국에 손봐줄 지렛대가 많아 그중 하나만 사용해도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을 뒤흔들 수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사설 내용이다. 이웃 나라를 '손봐주겠다'는 말은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할 수 없는 무례한 표현이지만 여기에는 지난 수십년간 숨겨 왔던 중국인들의 속내가 담겨 있다. 그것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朝貢冊封) 체제'에서 비롯된 차별적 한국관이다. 1393년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로이터 뉴시스

'중국의 군사력은 병력이 백만이고, 전함(戰艦)이 천리 길에 뻗치니 발해의 물길과 요양의 육로로 들어간다면 구구한 조선이야 족히 아침 한 끼 거리도 되지 못할 것이니 너희들이 무엇으로 당할 수 있단 말이냐.'

14세기 말 주원장의 말투가 21세기 초 환구시보의 어투와 흡사하다. 화이사상(華夷思想)에 뿌리를 두고 한국을 소국(小國) 취급하려는 중국인들의 우월 의식은 최근 부활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초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로 G2의 위상을 확고히 한 중국은 한국에 3개의 얼굴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상호 협력해온 '웃는 얼굴'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감싸고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하고 두꺼운 얼굴'이다. 세 번째는 한국을 협박하고 무시하는 '위협적 얼굴'이다. 양국 수교 이후 20여년간 감춰져 왔던 두세 번째 얼굴은 작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이 한국에 거리낌 없이 위협을 가하는 것은 급속히 강력해진 국력을 배경으로 한다. 2010년 GDP에서 일본을 추월한 중국은 2022년이면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로 등극할 것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해 전망했다.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본과 기술, 상품을 빨아들이는 중국의 위세 앞에서 한국인들은 '중국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화두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시대'의 영향은 이미 한국 사회 모든 부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3만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과 연관을 맺지 않은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양국의 연간 교역액은 수교 때보다 30배 늘어난 2000억달러에 달하고, 중국의 한국 국채 보유 규모는 4조원에 육박한다. 이제 중국의 경제정책은 한국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양국 간에 매주 840편의 항공편이 뜨고, 1년에 약 600만명이 왕래한다. 한 해 약 150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한국의 쇼핑가를 휘젓고 다니고, 한국의 고가 부동산을 구입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한국 대학은 6만 중국 유학생이 상당 부분을 채워준다. 대다수 한국인은 중국에 근무하거나 중국과 거래하는 친·인척을 갖고 있다.

'중국시대'의 도래는 한국인들에게도 중국어 학습 붐을 가져 왔다. 초·중·고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증가하고 있고, 대학생과 직장인을 위한 중국어 학원이 성업 중이다. 대기업들은 예전에는 직원을 중국에 파견해 전문가로 양성했으나 요즘은 중국어가 능통한 신입사원을 뽑거나 아예 중국 현지인을 채용한다. 심지어 중국어 유치원까지 성업 중이며, 화교 유치원에는 한국 어린이들의 입학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민간 부문이 '중국시대'에 활발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과 달리 정부 부문은 준비가 미흡하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외교 역량 부족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중의 패권 경쟁이 벌어질 경우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도에서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을 만나 한국 입장을 설명하고 우리 편으로 만드는 외교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외교통상부 국장급 이상 간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등에 '중국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관들은 "이명박 정부는 미국만 중시하고 중국은 홀대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지난해부터 언론과 군부를 동원해 '한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노골적으로 '북한 껴안기'에 나선 것도 한국의 '중국 경시 외교'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한 중국의 4억 네티즌의 '반한(反韓) 감정'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1980~90년대 일부 한국 졸부들이 중국에서 추태를 부려도 참아줬던 중국인들은 요즘에는 없는 일까지 지어내어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 중국 신세대의 '반한 감정'은 한번 불붙으면 양국의 정치·경제·문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우리 정부는 사실상 아무 대응전략이 없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문흥호 교수(중국학)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올라선 지금 한국은 과연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그랜드전략'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외교적으로는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와 대북 공조 외교를 펼쳐야 하고, 중국이 패권적 행태를 보일 때는 원칙외교도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최대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을 유지할 장기적 산업전략을 짜내야 한다. 21세기 전반기 한국의 미래는 이 복잡한 '생존 방정식'을 어떻게 푸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