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 전투장면 /연합뉴스

“北 남침, 중공군 개입 없다..2대 전략적 실수”
결정적 순간 트루먼 대통령에 ‘오판’ 직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6일(현지시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해

 “정보기관으로서 결정적 오판을 했다”며 자기반성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CIA는 이날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트루먼 박물관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전 무렵

CIA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한 일일 정보보고서를 비롯,

수백건의 한국전 관련 CIA 보고전문을 비밀해제해 공개하면서 당시의 중대 오류를 시인했다.

CIA 비밀해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을 앞둔 1950년 1월13일 CIA 보고서는 당시 38선 일대에

북한군의 병력증강 사실을 보고하면서도 “북한군 증강에도 불구하고, 남침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북한군의 남침을 엿새 앞둔 6월19일 보고서는 북한을 독자적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는 소련의 통제된 위성국가라고 규정하며,

“북한이 한국에 대한 게릴라 활동, 선전, 사보타주 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지만 전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CIA의 예측과 달리 북한이 남침을 개시해 전쟁이 발발하자 “CIA 극동지부의 모든 요원들은 예기치않은

북한의 침공을 맞아 창백해졌다”라고 CIA 한국전 평가 보고서는 당황했던 CIA의 당시 분위기를 묘사했다.

한국전 발발후 CIA는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6월26일부터 한국의 전황과 각국의 정치.외교적 전개과정을 일일보고서로 작성,

트루먼 대통령에게 직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전 발발 직후 미국의 대응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는 초대 CIA 국장이던 로스코 힐렌쾨터를 비롯, CIA 관계자의 참석은 배제됐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제대로 경보하지 못한 CIA에 대한 불신때문이었다.

CIA 평가보고서는 “북한의 남침과 한국전 발발은 정보의 실패로 간주됐으며,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때문에

CIA는 정보실패의 책임을 져야 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힐렌쾨터 국장은 그해 8월21일 해임됐다.

후임 국장으로 임명된 월터 베델 스미스는 정보력 강화를 주장하며 CIA 개혁에 나섰지만

 CIA는 또 한 차례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정보 판단 오류를 범했다.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던 것이다.

CIA 극동지부는 한국전 발발초기부터 중국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면서

7월부터 11월까지 수백건의 중국 동향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다.

7월8일 CIA 보고서는 소련이 중국의 은밀한 개입을 지시할 수 있다고 분석했고, 7월17일 보고서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비중을 뒀다. 그러나 중국은 소련이 지시하지 않으면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9월8일 보고서에는 “중국의 전쟁 개입을 추정할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고 단언하며 “군인을 제공하는 방식을 포함, 은밀한 방식의 제한적인 북한 지원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군사력을 이용한 전면개입보다는 비밀지원쪽을 중국이 택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CIA는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북한군의 전황이 불리해졌을 때 중국이 군사적 대응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점점 중공군 개입에 대해 안이하게 판단하는 쪽으로 향했다.

10월12일 보고서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발언, 만주일대의 중국군 움직임, 북.중 국경 침범 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확실한 징후는 없다”고 CIA는 판단했다.

나아가 CIA는 “그러한 개입은 1950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적 견지에서 볼때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절호의 시기는 지나갔다”고 보고했다.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거의 차단한 이 보고서는 스미스 국장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다고 CIA는 밝혔다.

이 보고가 이뤄지고 사흘 뒤인 10월15일 트루먼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호놀룰루 웨이크섬에서

한국전 협의를 위해 만났을 때 CIA의 분석을 바탕으로 중국의 개입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조기 종전까지 논의됐다.

맥아더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한의 패배가 임박했고, 전쟁은 크리스마스까지 끝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CIA는 며칠이 지난 후인 10월18일 보고서에서도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는 일주일전의 보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이튿날인 10월19일 3만명이 두만강을 넘었고, 며칠 뒤에는 15만명이 추가로 국경을 넘어 10월25일에

한국군.미군과 첫 교전을 벌이며 한국전 개입 징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11월1일 CIA 스미스 국장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1만5천∼2만명의 중공군 유격대가 북한에 들어와 있으며,

본대는 만주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한 뒤 중국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려는 의도인지,

두만강유역 수력발전소 보호를 위한 목적인지에 대한 판단을 불분명하게 했다.

그 이후 중공군은 11월 들어 한국에 더욱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서 전면개입에 나섰고 맥아더 사령관은

11월28일 트루먼 대통령에 보내는 전문보고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전쟁에 처한 상태”라며 미군과 한국군의 후퇴 상황을 보고했다.

CIA의 한국전 평가보고서는 “1950년 당시 CIA는 불과 6개월동안 두 개의 커다란 전략적 정보판단 오류를 저질렀다”며

“북한이 남침하고 중공군이 전쟁에 전면 개입했을 때 정보당국은 놀라기만 했고,

이 같은 오류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자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