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스타일은 잊어라, 이제 한반도 전쟁은 ‘이라크戰’이다”
전쟁예비물자(WRSA-K) 철수와 미국의 ‘전쟁 개념’ 변화

쉽게 말해 한국에는 실질적인 전투병력을 전진 배치하고 이를 지휘 통제하는 사령부는 일본에 두는 방식이다. 이 경우 ‘근거지’에 있는 주일미군사령관은 4성(星)장군으로, ‘전방’에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은 3성(星)장군으로 바뀔 수도 있다. 미 국방부 편제는 동북아 지역에 한 사람의 4성장군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연관성이 강화될 경우 ‘근거지’에 4성장군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한미군을 주일미군의 통제 아래 두는 식이다. 여기에 유사시 다국적군을 지휘하는 임무 특성상 유엔사령관은 4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유엔사를 일본으로 이전하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한국의 대응이 늦어진 까닭

논의가 여기까지 진행되면 현재 한미연합사가 갖고 있는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떠오른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다고는 해도 한미연합사는 형식상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부대다. 한미연합사령관 또한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한국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는 ‘부하’인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령관은 이야기가 다르다. 연합사가 해체되어 유엔사가 유사시 대비 임무를 맡는다면 한미연합사령관과는 달리 한국 대통령과 병렬관계일 수밖에 없다.

과연 공식적으로 한국 대통령의 ‘지휘’를 받지 않는 유엔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맡길 수 있을까? 더욱이 유엔사령관이 한국이 아닌 일본에 머물고 있다면? 아니면 그전까지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야 할까? 혹은 한미간에 연합사를 대체하는 소규모 연합지휘체계를 새로 만들어 작전통제권을 맡겨야 할까? 탁상공론에 머물고 있는 한미연합지휘체계 재편이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 매우 실질적인 이슈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당장 북한 장사정포에 대한 대응작전을 비롯해 그동안 미군이 수행하던 임무의 상당 부분을 넘겨받아야 하고, 전쟁 개념의 변화에 따라 한국군 또한 경량화·기동화를 바탕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른바 ‘국방개혁’의 당위성이다. 연합지휘체계나 작전통제권에 대한 검토도 필수적이다.

당초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남북관계의 변화와 연계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200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3단계 평화정착 방안’은, 1단계인 2003년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지면 2단계인 2004년부터 유엔사 및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검토하고, 3단계인 2006년 이후 남북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실행한다는 개념이었다(‘한국일보’ 2003년 1월22일자 참조). 한국군의 구조개편 및 국방개혁 또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남북간의 군비통제나 상호군축을 계기로 삼아 추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진정한 ‘동맹의 위기’는

그러나 이 같은 일정은 북핵 문제가 장기화하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반면 미국이 추진하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는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급해진 참여정부는 올해 들어서야 수면 아래 있던 군구조 개편 플랜을 꺼내드는 한편 대통령이 직접 “10년 이내에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섰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측면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 본질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원론적인 문제다. 정부 내에서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지난 2년간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관련 논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고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주요 쟁점에 대해 충분히 보고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상당부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방침이나 대응방향은 충분히 공론화되거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 전쟁개념의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기지 재편과 작전계획의 수정 등은 많은 부분이 미국측 계획대로 추진되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만 해도, 3월8일의 공군사관학교 발언 등 뒤늦게 대통령이 직접 선을 긋고 나서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오히려 미국측은 “이제 와서 왜 말이 바뀌냐”며 더욱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신뢰의 위기’인 것이다.

‘선(先)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낙관론에 매달려 핵심적인 논의를 미루다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쟁점들이 이미 반쯤 엎질러진 물처럼 돼버린 형상. 지난 2년간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보여준 이 같은 시행착오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이 ‘위기’라면, 이는 WRSA의 폐기나 한국인 노무인력 감축 같은 사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 라인의 미숙한 대처와 의사소통 왜곡이 낳은 ‘한미간 신뢰의 붕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끝)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발행일: 2005 년 06 월 01 일 (통권 549 호)
쪽수: 202 ~ 214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