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스타일은 잊어라, 이제 한반도 전쟁은 ‘이라크戰’이다”
전쟁예비물자(WRSA-K) 철수와 미국의 ‘전쟁 개념’ 변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 또한 여기서 나왔다. 이제까지 주한미군은 오로지 북한만을 노려보며 휴전선 인근에 붙박이로 지키고 서 있었지만, 앞으로는 전략적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서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갖고 있던 특수성은 상당부분 사라진다. 엄밀히 말해 이전처럼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분쟁에 빠르게 투입하기 위해 아시아에 주둔하는 것이고, 이왕이면 북한이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대가 근처에 있는 한국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는 컨셉트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변화는 한국 정부나 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바뀌면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관(현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한다)이 행사하는 현재의 한미연합지휘체계 또한 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주전력이 한반도에 붙어 있는 구조가 아니므로 한미연합사가 유사시 대비임무를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시스템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연합사 해체하고 유엔사로?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지난 3월8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밝힌 ‘유엔사 기능 강화’ 아이디어다. 라포트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유엔사를 구성하는 한국전 참전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유엔사 본부에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작전기획 및 수행을 위해 15개 동맹국의 진정한 다국적 참모진을 구성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설립된 유엔사는, 형식상 정전협정의 당사자이지만 현재는 실제 전투병력을 보유하지 않은 채 400여 명의 행정병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978년 연합사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연합사로 이양된 이후에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사시 대비임무를 모두 연합사에서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동안 유엔사는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했다.

체계만 남아 있는 유엔사의 작전기획임무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다국적 참모진을 구성하겠다는 라포트 사령관의 발언은, 연합사가 수행하고 있는 한반도 유사시 대비임무를 다시 유엔사가 수행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연합사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아예 사라지고, 대신 유엔사가 작전계획 수립 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유엔사를 이끄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몫이므로 단순히 ‘형식’이 바뀌는 것일 뿐, 여전히 한반도 유사시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미군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4星과 3星

그러나 이 ‘형식상 변화’에 관한 언급을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것은 일각에서 아예 유엔사를 일본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 과제와 전략’ 세미나에서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주로 일본쪽에서 나오는 이러한 논의는, 주한미군의 재편을 계기로 유엔사를 아예 일본 가나가와에 있는 자마(座間) 주일미군 기지로 옮기면 미일관계와 한일관계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으며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체계가 된다는 논리를 배경으로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엔사에 실질적인 한반도 유사시 대비임무를 맡기고 이를 일본으로 이전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뜬금 없을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나 전쟁 개념 변화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그림이다. 사실 미국 시각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별개의 지역이 아니다. 한반도 인근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미군에게 일본과 한국은 단일한 전구(戰區)가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과 충돌하거나 지역 내 다른 분쟁에 주한·주일 미군이 개입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일본은 후방기지, 한국은 전진기지의 역할에 걸맞은 지리적 위치에 있다.

이렇게 보면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계기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연계를 강화해, 장기적으로 주일미군 기지에는 동아시아 미군 전체의 병참기지 역할을 맡기고, 주한미군 기지는 기동군 병력이 훈련을 받는 주둔지로 활용해 ‘일체화’하는 방안은 미국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구분하지 않고 병력과 군사 자산을 효율적으로 집중해 쏟아부을 수 있는 체계가 되기 때문이다. 훈련이나 사령부 운영도 주한·주일 미군이 별개로 운영되는 현재의 체계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