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스타일은 잊어라, 이제 한반도 전쟁은 ‘이라크戰’이다”
전쟁예비물자(WRSA-K) 철수와 미국의 ‘전쟁 개념’ 변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의 작전계획이 상정한 전쟁은 1990년대 이전의 ‘전선 밀고 올라가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는 전시증원병력의 규모와 관련해 2004년 이전의 작계에 포함돼 있던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TPFDD)’이 5027-04판에서 생략됐다는 점만 봐도 분명해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TPFDD는 최종적으로 한반도에 투입될 부대의 규모와 숫자, 병력과 장비를 투입 시점에 따라 열거한 내역이다. 이 내역이 삭제됐다는 것은 예전의 ‘총 69만 증원’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음을 뜻하고, 대규모 병력 대신 거점 정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첨단 전력이 주로 증원되는 형태로 재편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같은 ‘공세적 방어전략’과 새로운 전쟁 개념은 다분히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2004년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테러집단에 인도하는 경우, 미국이 작계5026을 이용해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작계5026에 합동직격탄(JDAM)을 이용해 파괴할 북한 내 주요 목표물이 열거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F-15E, F-117, B-1B, B-2, B-52H 같은 폭격기들이 700여 개의 목표지점을 공격하도록 사전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단순히 ‘북한이 공격하면 이에 맞서 격퇴한다’는 기존의 한반도 ‘방어전쟁’ 개념에 비해 지나치게 공세적인 것이 아니냐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전쟁 개념의 변화는 그동안 추진되어온 주한미군의 감축과 재편, 기지 재배치에도 밀접하게 반영되어 있다. 우선 감축 부분부터 살펴보자. 2004년 10월 한미 양국이 합의한 주한미군 감축안에 따르면, 2004년 8월 이라크로 차출된 미 2사단 병력 3600명을 포함해 2004년 연내에 5000명이 1단계로 철수하고, 2단계로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3000명과 2000명, 마지막 3단계인 2007~2008년에 2500명이 잇따라 빠져나간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주한미군은 2만4000여 명으로 줄어든다.

사라지는 ‘한반도의 특수성’

기계화여단과 보병여단으로 구성된 기존의 주한미군 2사단(1만2000명)을 3500~4000명의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하는 작업은 이러한 병력규모 감축의 키워드다. C-130 수송기로 운반이 가능한 최신형 전투차량 LAV-3를 타고 작전을 수행하는 스트라이커 부대는 기존의 부대에 비해 ‘빠르게 작전지역에 보낼 수 있는 더 작고 강한 군대’다. 전선전에 적합한 무겁고 둔중한 경중(輕重)혼합사단 대신 돌파와 종심작전이 용이한 경(輕)기계화부대로 바꾸는 것이다.

미 국방부의 계획에 따르면 2006년부터 스트라이커 여단은 1개 여단씩 한반도에 순환배치된다. 이들을 ‘안내’할 1개 대대 병력(1000명)과 이들을 지원할 병력(1000명)은 붙박이로 남지만 주력부대는 미 본토에 있는 부대와 계속 순환한다. 이렇듯 부대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남는 지상군의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주력 지상군 부대의 위치를 휴전선과 가까운 의정부에서 미7공군 기지와 항구가 인접해 있는 오산 평택 지역으로 옮기는 것 또한 전쟁 개념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휴전선 인근에서 밀고당기는 것보다 수송기나 선박을 이용해 재빨리 주요 거점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1개 전투여단의 순환배치’라는 개념은 유사시의 증원병력 규모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2004년 이후 작계에서 구체적인 증원숫자는 생략됐지만, 이러한 추산을 통해 69만이라던 증원병력이 얼마나 줄어들지 추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 육군 가용병력 100만 가운데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대비전력은 60만~70만. 이들을 모두 스트라이커 여단으로 재편해 3교대로 순환배치한다고 가정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시증원군은 최대 20만 정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이와 같은 전쟁 개념의 변화와 부대 재편은 단순히 한반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지상군을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하는 작업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군사변환’의 핵심이다. 전력을 경량화·기동화해 기존의 전선전 개념을 폐기하고 신속한 돌파와 거점 공략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WRSA를 폐기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우선 전쟁에 투입되는 병력수가 달라진다. 스트라이커 부대는 같은 전투력을 가진 기존 지상군 사단에 비해 병력수가 3분의 1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은 7일치 탄약을 갖고 4일 만에 분쟁지역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고 구성됐다. 더는 우방국에 WRSA를 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냉전 종식 이후 전세계 5개 지역사령부 관할 지역에 흩어져 있는 25만의 미군 병력을 상당수 감축해 경제성을 높여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낳은 고육책이다. 숫자를 줄여야 하므로 한 부대가 되도록 넓은 지역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유사시 전세계 어디로든 빠른 시일 안에 투입될 수 있도록 기동성을 높이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