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미-중 무역전쟁…‘1930년대 대공황’ 재현되나


입력 : 2018.03.23 11:44 | 수정 : 2018.03.23 12: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연간 500억~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무역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전문가들은 무역 전쟁이 격화되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세계 교역 둔화 등으로 세계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1930년대 대규모 관세 부과로 인한
무역 전쟁으로 대공황 후 경제가 타격을 받았던 게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 22일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블룸버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미국은 지금 5040억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이는 연간 총 무역적자 8000억달러의 절반을 넘는 수치”라며 “이번 조치를 통해 대중 무역적자를 1000억달러
줄이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대미(對美) 투자도 제한한다. 미 재무부는 향후 60일 안에 세부 방안을 마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소식통을 통해 “500억달러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게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사를 세우라고 한 뒤 핵심 기술을 중국 측에 넘길 것을 강요해
미국 기업들이 입는 연간 손실액 추정치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관세 대상 품목은 향후 15일간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미 무역대표부(USTR)은
이미 새 관세가 부과될 1300개의 품목을 정했으며, 이 중에는 중국 수출의 핵심인 첨단기술 상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 “이번 조치가 ‘많은 조치 중
첫 번째’에 불과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진짜라면 다음 관세 타깃은 우라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미 원자력 발전소들이 철강회사와 마찬가지로 관세를 통한 구제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3월 17일 만장일치로 주석에 재선출된 뒤, 왼손을 헌법에 올리고 오른손 주먹을 든 채 헌법 준수 선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의 발표 직후 3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돼지고기에 25%, 철강 파이프·과일·와인에
각각 15%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산 필름 인화지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도 연장했다.
중국 상무부는 2012년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에서 수입되는 사진 인화지에 각각 17.6%~28.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2016년 6월에는 후지필름의 미국산 인화지에 반덤핑 관세율을 23.6%로 상향 조정했다.

미중 무역 전쟁의 막이 오르면서 세계 경제 전반에 피해가 예상된다.
앞서 블룸버그는 경제학자 제이미 머레이와 톰 오를릭의 분석을 인용, “미국이 관세를 10% 부과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020년에 세계 경제 규모는 0.5%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
그 비용은 약 4700억달러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의 충격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가공 무역이 줄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무역 전쟁으로 위기에 처하는건 신흥 시장”며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을
간접 충격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았다.

◇ 세계 경제 타격 ‘불가피’…환율부터 인플레 상승 위험까지

과거 무역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공황이다.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할리 관세법이 시발점이다.
이는 미국이 당시 자국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2만여개에 달하는 상품에
평균 60%의 관세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미국의 조치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잇따라 수입 관세를 높였고,
결국 각국의 관세율 인상은 연쇄 효과를 일으키며 1929년부터 3년간 세계교역량이 금액 기준 63%나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스무트-할리’ 충격은 실물경제 위축과 경기 회복 지연으로 이어졌다.
세계 산업생산은 1932년 7월 정점(1926년 6월) 대비 40% 가까이 줄었고, 주식 시장은 폭락했다.
자연히 실업자 수도 급증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018년 3월 21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블룸버그

그렇다면 미국이 촉발한 두번째 무역 전쟁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당장 달러화를 비롯한 수많은 통화들의 환율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월마트와 아마존 등 미국 기업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제재가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주식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이 주춤하고, 미국의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관세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제프리스의 워드 맥카시 수석 금융 이코노미스트는 “관세는 성장세를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수출품의 43%가 다국적 회사에 의해 수출되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이 여기에 속한다. 대외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미중 통상마찰 영향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중간재 수출
총액(3172억) 중에서 대중 수출 비중은 29%(920억달러)에 달한다.

TS롬바드의 다리오 퍼킨스 연구원은 이와 관련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은 결함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라며 “완만한 수준의 무역 장벽도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美, 철강 관세 볼모로 한미 FTA 개정협상 주도권 쥘 듯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018년 3월 22일 미 상원 재정위원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 블룸버그

한국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망까지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선포하면서 “한국과 맺은 협정은 매우 일방적”이라며
“이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의 관세 장벽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EU와 NAFTA(캐나다·멕시코), 한국은 모두 현재 미국과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조치 면제와 관련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한미 FTA와 철강 관세 협상이 연계돼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철강 관세 면제를 들먹여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앞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전날 미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 EU, 아르헨티나의 요청으로 면제 협상을 논의 중”이라며 “합의에 따라 일부 국가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반(反) 중국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은 최근 EU 등에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공동 대응하고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할 때 공동 보조를 취해달라는 내용을 관세 면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 1, 2위를 각각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1일 발표한 ‘관세전쟁발 수출절벽 대응을 위한 내외수 균형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높은 무역의존도를 고려할 때 관세 전쟁의 충격은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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