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가 사대성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
국통맥의 문제
 
 
한 집안에는 장손을 통해 내려가는 가통(家統)맥이 있고,
학문과 각 종교에는 그 시조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이어가는 학통맥과 종통맥이 있다.
그렇듯 국가나 민족에게도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그 ‘나라의 시조와 시원국가에서 시작된
건국이념과 통치정신을 이어가는 국통맥(國統脈)’이란 것이 있다.
 
지금의 우리가 환웅과 단군의 건국 및
통치정신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를 거론하여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고조선의 국통맥을 계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한민족의 국통맥을 고조선에서 신라가 정통을 이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 신라 정통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먼저 주장되었기에 이를 참고했던 일연에겐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 앞에서는 각 열국 국가의 기원을 얘기한 다음엔,
왕별 기록은 신라의 1대 박혁거세에서 56대 경순왕까지 내용만을 자세히 다룰 뿐,
나머지 나라는 신라와 관련하여, 그리고 불교 일화와 관련하여 부분부분 일화로만 처리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신라에 흡수되었던
가야의 경우 길지는 않으나 10대에 걸친 모든 왕들을 거명하여 기록하고 있다.
 
물론 ‘왕력(王曆)’이란 연대표를 제일 앞에 두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각 왕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해 놓고 있긴 하다.
 

사실 국통의 맥을 신라에 둔 것으로 인해,
삼국 이후의 역사는 중국에 대한 사대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고 말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 가장 약했고, 가장 늦게 흥한 신라가 당의 힘을 비러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렸기에
힘의 구조상 중국에 억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의 후신임을 자처했던 발해(대진국)는
배달겨레로서의 주체성을 갖고 있었으나 망할 때까지 신라와는 앙숙이었고(현재의 남북한처럼),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지를 가졌던 고려는 민족적 자주성으로 몽고 침입 전까지는
황제국을 자처하며 민족적 자존을 지켰으나,
한반도라는 영토적 한계와 신라정통을 주장하는 김부식파에 의해 중국에 대한 사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국력이 쇠약해지며 몽고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더욱 노골적인 사대로 가버리고 만 것이다.
 

일연과 재간행자 이계복의 태생적 지역적 한계
내가 읽은 <삼국유사>는 범우사에서 번역 간행한 책으로, 조선 중종대의 정덕본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정덕(正德)이란 명나라 무종의 연호로 서기 1512년을 가리킨다.
즉 이 정덕본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짓고 230여 년이 지난 후 중종대 서기 1512년 경주에 병마절제사로
와 있던 이계복이란 사람이 재간행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재간행하면서 마지막 발문(跋文)을 이렇게 썼다.
 

“우리 동방 삼국의 본사(本史; 삼국사기)와 유사(遺事; 삼국유사) 두 책이 딴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경주부(慶州府)에만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글자 획이 닳아 없어져서
한 죽에 겨우 4,5자를 해득할 정도였다.
 
나는 생각하기에, 선비들이 세상에 나서 여러 역사책을 두루 읽고
천하의 치란흥망(治亂興亡)과 모든 이상한 자취에 관하여 견식을 넓히고자 하거늘,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 일을 몰라서야 어찌 옳다고 할 것인가?
 
이런 뜻에서 다시 간행하고자 그 완본(完本)을 널리 구했으나 몇 해를 지나도 얻지 못했다.
이것은 그 간본(刊本)이 세상에 드물어서 사람들이 얻어 보기 어려운 탓으로,
만일 지금 이것을 다시 간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실전(失傳)되어 동방의 역사를 후학들이
알 수 없게 될 것이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이제 다행히 … 성주(星州) 목사(牧使) 권주(權輳)가 나의 뜻을 알고
그 완본을 얻어 보내왔으므로 나는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상국(安相國)과
도사(都事) 박후(朴侯)에게 자세히 내 뜻을 말하니 모두 좋다고 하여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간행시켜서 경주부에 돌려 간직하게 했다. ….”

 
일연이 태어난 곳은 과거 신라의 영토였던, 경주 좌측에 위치한 지금의 경북 경산이다.
또한 재간행자 이계복이 <삼국유사> 원본을 얻은 곳도 성주(星州), 즉 지금의 경산이다.
그리고 이계복은 신라의 옛 수도 경주의 병마절제사였다.
 
일연은 원의 침략 속에서 민족적 자존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이계복 역시 역사의식을 깊이 가져 이 책을 재간행하게 되었지만, 이들은 태생적 한계와 자신이
관활한 지역(경주)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에 대한 사대의식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당시 역사서로 자주적인 역사서들이 여럿 남아있었다. 그러나 세조 예종 성종 등이 중국에 눈치를 보며,
우리 자주적 역사서를 모두 수거하여 선비들이 못 보게 하여 민족사의 진면목을 가리고 말았다.
 
이계복이 발문 첫머리에서 삼국시대(4국, 5국시대) 역사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에 유익한 점이 대단히 많지만,
이 책만을 보고 우리의 참된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을 경계한다.
 
배달겨레의 역사를 호도하여 <삼국유사>가 취하고 있듯이
우리 후손들의 의식을 중국에 대한 패배주의 소중화(小中華)의식에 만족토록 하여
진취적 기상을 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고조선 멸망 후 한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는 이론의 한 근거를 제공하는 책이며,
한(漢) 고조에게 쫓겨 연나라에서 도망 온 위만이 고조선을 강탈하여 고조선의 정통을 이었다고 하여
고조선의 실체를 왜곡한 근거가 되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고조선은 하나의 광활한 영토를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이라는
세 개의 나라로 분할 통치하던 일종의 연방체제의 국가였다. 만주에 자리 잡은 진한이 삼한의 중심이 되어
단군이 직접 다스렸고, 요서와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번한과 마한엔
단군을 보좌하는 부단군을 두어 다스리게 했다.
 
이 통치체제를 삼한관경(三韓管境)제라 한다.
이를 전(前)삼한이라고도 부른다.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진한 마한 변한 이 삼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반도 남쪽에 존재한 삼한은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그 유민들이 이동하여
고조선시대의 삼한통치 원리를 모방하여 새롭게 구성했던 것으로, 이를 후(後)삼한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조선의 역사를 잃어버려
국사를 배울 때는 이 조그마한 후삼한만을 배워왔던 것이다.
이 고조선의 삼한 통치원리를 아는 것이 우리의 잊혀진 고대사의 진실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이를 밝혔다.)
 

우리 역사가 사대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리나라가 왜 조선말엽까지 중국의 변방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우리의 역사가 왜 이토록 왜곡되었을까?
 
첫째는 우리 겨레가 고조선이 내부갈등으로 분열하여
열국 분열시대로 들어가면서 그 힘이 분산되고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현재 중국이 동북공정프로젝트를 이미 끝냈듯이
중국이 자신들의 사서기록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 제후국으로 왜곡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반대였다.
고조선, 그리고 그 이전 환웅의 배달국 환인의 환국시대까지 우리 겨레는,
9천여 년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하늘의 최고신을 ‘삼신상제(三神上帝)’라고 받드는
최초의 뿌리종교를 믿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나라의 통치자가 하늘의 상제의 뜻을 받들어
덕을 닦아 상제의 뜻을 백성에게 펴는 ‘천자(天子)’문화를 최초로 열었다.
고조선대까지 아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며 선진문물을 주변 민족과 국가들에게
전수해왔던 ‘천자국’의 시발 민족이었다.
 
또한 고구려는 망하기 전까지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으면서
수당의 수차에 걸친 대대적인 침략에서 그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던 동북아의 강성대국이었다.
 
중국 한족은 이와 같이 우리 배달겨레와의 문화와 힘의 경쟁에서
항상 문화를 수입하고 지배받고 깨지던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중화사관으로 무장하여 역사를 왜곡 기술하였던 것이다.
(먼저 고대 우리 겨레의 조상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둔갑시켰다.)
 
나아가 신라정통을 따라오던 우리의 학자들이 역사기술의 근거자료로서
중국의 사서들을 주체성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 겨레의 중국에 대한 사대성은
더욱 고착화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일제가 우리 겨레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우리 겨레가 주체의식을 망각토록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사대적인 사서 일부만을 남긴 채
나머지 자주적 사서들은 강압적으로 모조리 수거해서 불태우거나 자국으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넷째는 아직도 우리의 주류 관변 사학계가 일제식민사학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삼국유사>가 중국에 대해 사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서 일연스님을 탓할 수만은 없다.
왜냐? 스님으로서 그리고 과거 신라 땅의 출신으로서의 편견에,
그리고 <삼국사기> 저작 시기(1145년)부터 고려자체가 사대의 분위기에 이미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저작 후 약 140여년 후
<삼국유사> 저작) 욕을 먹어야 할 나쁜 사람은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며,
우리의 역사현실이 이러할진대도 과거 식민사학의 그늘에 앉아 안락을 구가하고 있는 관변 사학자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인 것이다.
 
오히려 일연스님은 현재와 같이 우리 겨레의 고대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문화의 보고를 만들어 준 데 대해서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삼국유사>의 각종 주(註)를 보면 그는 나름대로 여러 사료들을 취합하여
객관적 기술을 기하고자 노력을 했음을 느낄 수 있다.
 
단지 후대 사대주의 사학자들이 대중화(중국)에 대한 소중화를 자처하며
우리의 영토와 국제관계의 틀을 스스로 축소해 왔던 것이다.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드러내 주는 책 <환단고기> 
 
그러나 진실은 묻히는 법이 없다.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다행이도 늦게나마 우리 배달겨레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역사서가 나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란 책이다. 이 <환단고기>는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발간되어 있다.
또 만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 겨레의 진정한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이 <환단고기>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배달겨레와 인류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책 <개벽 실제상황>
 
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아우르며,
그 내면의 정신세계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 우리 겨레의 미래 비전까지 밝히고 있는 책이 최근 간행되었다.
바로 <개벽 실제상황>이란 책이다.
 
이 책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2부 ‘대한의 문’과 3부 ‘새 역사의 문’에서
우리 역사의 왜곡과정, 중국과 일본과의 역사전쟁의 실체, 그리고 한민족의 잃어버린
고대의 진실된 역사의 참모습과 그 내면 정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 고대사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는 단지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우리의 고대 뿌리역사를 밝혀가다 보면 인류의 시원역사와 만나게 된다.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은,
세계 4대문명은 물론 아메리카의 아즈텍 잉카문명을 형성한 뿌리가 되었고,
 
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 등 줄기종교 이전의,
종교의 원형, 상제 하나님 부처 신선문화의 원형이 된 ‘상제문화, 천자문화의 종주국’이었음을 알게 된다.
 
환인 환웅 단군은 지금과 같은 단순한 정치적 통치자만이 아니었다.
자연과 호흡하며 몸과 마음 신도(神道)를 닦는 수행을 통해 얻은 덕(德)과 신성(神性)을 바탕으로
하늘의 삼신상제님과 조우하여 그 상제님의 뜻을 인간세계에 펼치려 했던
종교적 지도자를 겸한 ‘대신성(大神聖)’들이었던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문명충돌,
동양과 서양의 갈등 이 모든 것을 풀어내는 열쇠,
세계를 진정 조화로운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사상이 바로 숨겨진
우리 고대사 속에 간직되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겨레는 하늘의 절대자를 삼신상제(三神上帝)라 불러왔다.
한 분의 상제님을 왜 삼신(三神), 세 분의 신이라고 표현해 온 것인가?
 
이는 이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작용 할 때는 ‘낳고(造化) 기르고(敎化) 다스리는(治化) 세 가지로 작용을 한다’고 해서
삼신이란 이름을 덧붙였던 것이다.
 
이 삼신(三神) 일체(一體), 일체 삼신의 작용원리를 알았기에
고조선 또한 하나의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체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고조선을 강탈해 그 맥을 이었다는 위만은 진한 마한 번한 중 요서지역에 위치해 있던
번한의 왕 준왕을 몰아내고 번한의 부단군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에 얽힌 진실이다.
 
고조선을 이어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여 국통을 계승하고
북부여에서 나온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여 그 맥을 계승하고 그의 아들 중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여
고구려와 백제는 사실 그대로 형제국이 됐다. 우리나라의 국통맥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후 자연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다.
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휴식하는 1년 사계절의 자연섭리가 있듯이 인류 역사의 모습도 크게는
그러한 자연의 변화주기에 맞게 변화해간다. 나무의 씨앗과 뿌리는 몸체의 기원이 되지만,
그 모습은 땅 속에 숨어 세상에 그 모습을 감추기 마련이다.
 
그리고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갈레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열매를 맺으면서 그 열매는 그 나무 전체를 형성한 씨앗과 뿌리의 본 모습을 회복한다.
인류의 역사 또한 그와 같다. <개벽 실제상황>은 이 원리를 열매 간(艮)자를 써서
‘간도수(艮度數)의 섭리’라 한다.
 
E.H.Carr는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사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미래를 창조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 했다.
 
<개벽 실제상황>은 현재 우리 민족은 물론
인류가 처한 자연적 문명적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과거 인류의 뿌리 문명을 열었던 주체민족 우리 배달겨레의 정체가 하늘의 삼신상제를 대행하는
최초의 ‘천자국(天子國)’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자연의 변화섭리와 간도수라는 역사 섭리에 의해 드디어,
우리 배달겨레가 인류의 모든 위기를 극복하여 천자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의 종주국이 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