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 상생방송을 보고

저는 1961년 신축년생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때 성당에서 떡과 사탕을 주는 맛에 친구들과 어울려 몇 번 다녔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고 13세에 어머님께서 작고하시고
가세가 더욱 기울어져 중학교도 다니기 힘든 형편에 친구와 함안 뚝에서 잠깐 쉬면서
그날 치루었던 시험지를 펴고 서로 맞추어 보던 중 한 아가씨가 다가와 통일교 나오면 영어,
수학을 가르쳐 준다기에 그 시절에 학원 다닐 형편도 안되고 하여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통일교에서 영어, 수학을 배웠지만 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 마저도 병세가 악화되어 부산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고등학교 입학 하기전 금속 회사에 취직하여 1년 정도 다니다
아버님 마저도 제가 17세때 별세 하시고 힘든 하루 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야간고등학교를 입학하여
주경야독으로 정신없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지쳐 갈 무렵의 어느 날
회수권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버스 차장 아가씨가 회수권을 주며 하나님 말씀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펴 보니 마태복음 구절 “내일을 위하여 걱정하지 말 것이요,
내일 일은 내일 걱정 할 것이요, 한낱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리라.”는 구절이 있어 그 때부터
나 자신을 원망 않고 오늘 하루를 위해 열심히 살다가 죽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직장 선배님께서 “해는 내일도 떠” 이 말씀을 듣고 나니
과연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건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고등학교 동창이 “우리 해병대나 지원할까?” 하여 쾌히 승낙하고 자원 하러 갔으나
나는 양친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서류도 접수 못하고 친구는 접수하여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실망을 하고,
다시 둘이서 특전사를 지원하였으나 저는 그 곳에서도 서류 접수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육군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고 육군은 입대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나도 이제 대한의 남아로써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진정으로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구나
생각하고 군생활을 열심히 하던 중, 군대는 팔도의 인간이 다 모인 곳인지라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 한 내무반에서 24시간 같이 생활하다보니
교회 다니는 전우는 좀 이기주의고 자기 중심적이라 교인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불교 군종이신 스님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 자연적으로 불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제대 후 계속 불교만 최고의 종교라고 믿고 아내와 같이 불교를 열심히 신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성당, 통일교, 기독교, 불교를 두로 다닌 적이 있어 여러 종교방송을 보았으나
잠만 오고 재미가 없어 채널을 돌리던 중,
어느 날 하루는 TV종교방송을 보다가 상생방송을 접하게 되어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보면 볼수록 심취되어
약 6개월가량 보다가 자막에 무료로 책자를 보내준다기에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천지성공 책을 보내주어 다 읽고 나니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생겨
다시 전화하여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하니 고양마두 도장을 소개받아 전화 후 찾아가니
너무나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개벽실제상황’을 읽어보라 권해주셔서 집에 와서 잠도 안자고 다 읽고 나니
이번엔 ‘춘생추살’, ‘증산도의 진리’를 또 권해주셔서 다 읽고는
우리나라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그 분이 바로 참 하느님 증산상제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인류 최초문화 시원국의 자손 됨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입문하지 않을 수 없어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1일정성수행을 끝마치고 계속해서 교육을 받을 때도
이제야 조상님께서 나를 증산도로 인도하기 위하여 무던히도 공을 들였구나 생각하니
열심히 신앙생활 하여 가르침대로 잘 따르리라 결심하여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