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肉身證三昧待慈氏下生)"

미륵불의 조화세계를 염원한 구카이(空海) 스님


홍법 대사弘法大師 구카이(空海, 774~835)는
어린 시절부터 불도에 뜻을 두고 승려의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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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가장 큰 공덕은 [훔자의 훔字義]라는 저서를 통해,
가을 개벽기에 인간 세상에 오시는 미륵님의 인류 구원의 중심 주제를

세상에 밝혀 주었다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불교 진리의 총체적 정수를

'훔' 한 글자에 담아서 미륵님의 지상 용화낙원 건설의 길을 여는 불멸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재 구카이스님이 잠들어 있는 고야산高野山은

일찍이 국가를 경영한 역대 일본 제왕들과 전국시대 때 쟁쟁했던 장군들과 그 가족,

또는 근대 이후 20세기 정치인, 성공한 재벌들, 경제인 등 유명인사들이 그들 사후에 가장 존경받는

이 스님의 열반 기운을 받아 돌아가고 싶은 역사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5백년 이상 된 수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묘지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일본 고대 역사와 근대 역사의 거대한 숲속을 거니는 것 같습니다.
먼저 그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1> 탄생과 유소년 시절


구카이는 일본 나라시대 말기,

사누키국<지금의 카가와현>의 호족인 사에키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구카이의 양친의 성씨는 한반도 귀화계로 주장되고 있습니다.


구카이의 어릴 때의 이름은 마오<眞魚>인데,

그 어머니가 인도의 고승이 몸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은 그는 5-6세살 때 여덟 개의 연꼿 잎 위에서 여러부처,

보살들과 이야기하는 꿈을 자주 꾸었으며, 또 조정에서 온 칙사가 아이들과 놀고 있는

그의 주변에 사천왕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부처의 화신이라 하여 그에게 예를 표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7살 때 그는 절벽 위에서 큰 서원을

세우고 "저는 불법을 익혀 앞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이 이루진다면 부처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어 주시고,

만일 저에게 그 자격이 없다면 이 몸을 부처님에게 바칩니다." 라고 하며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이 때 자색 구름을 탄 천녀가 나타나 몸을

감싸주면서"일생성불-生成<살아서 부처가 되리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구도생활


마오는 열다섯 살 때, 당시 왕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외숙부를 따라

수도 나가오카경<지금의 교토부 나가오카교시 등 지역>으로 유학하고, 그곳에서 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속의 명리를 추구하는 학문에 회의를 느낀 그는 1년 만에 대학을 그만두고,


어느 수행자로부터 "허공장보살구문지법'虛空藏菩薩求聞持法'을 백만 번 외우면
모든 가르침의 참뜻을 알 수 있고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출가의 뜻을 궅혔습니다.

이로부터 마오는 산야를 주유하면서 혹독한 수련을 합니다.


어느날 그가 무로토사키라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암벽 위에서 밤을 새워 수련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금성이 그의 입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금성은 허공장보살이 화化한 것으로, 그는 금성을 삼키자마자 산천과 하나 되는 큰 경험을 하였습니다.


22살 때인 795년, 마오는 나라의 동대사에서

승려로서 구족계를 받고 법명을 구카이空海라 지었습니다.

21일을 기약하고 집중 기도에 들어간 구카이는 21일째 되는 밤,

꿈에서<대비로사나경=대일경>을 찾을는 신교를 받습니다.


경전을 찾아 헤매든 구카이는 나라현에는 있는

구메데라<久米寺>에서 <대비로사나경>을 찾아 읽고 밀교의 가르침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일본에 밀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쳐 줄 스승이 없음을 알고 31세 되던 804년,20년을 작정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장안에 도착한 구카이는 범어<산스크리트어>를 3개월 만에 완전히 익힌 뒤,
약 6개월 동안 바라문교의 사상,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습득하고 최종 목적지인 밀교의 성지,

청룡사靑龍寺로 갑니다.


당시 청룡사의 주지는 혜과惠果스님으로 <대일경大日經>을 중심으로

하는 태장계와 금강정경을 중심으로 하는 금강계로 나뉜 중국 밀교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쪽을 전수받은 인물이었습니다.


혜과스님은 구카이를 보자 "당신이 올것을 오래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가르칠 만한 제자가 없었습니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청룡사에는 승려가 약 천 명이 있었는데,

혜과스님은 그들을 제치고 구카이를 후계자로 삼은 것입니다.


구카이는 구도에 정진하여 3개월 만에 밀교의 모든 것을

전수받과 '편조금강遍照金剛'이라는 '관정명灌頂名'<밀교의 법명>을 받습니다.


구카이는 정통 밀교의 제8대조가 되어

혜과스님의 지도 아래 밀교 의식에 필요한 성물들을 만들고,
'금강저金剛杵'등 밀교의 정통 도구들을 전수합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혜과스님이 입적하자,

혜과스님의 장례를 마친 구카이는 유학 온 지 1년 반 만에 밀교의 수많은 보물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하지만 일본 왕실은 제멋대로 유학을 짧게 마치고

온 구카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카이는 얼마 동안 다자이후 <지금의 후쿠오카현>의

관세음사에 머물며<어청내목록>을 저술하여 일왕에게 바쳤습니다.

그 공덕으로 구카이는 교토의 타카오산사<지금의 신호사>의 주지로 임명을 받습니다.


그 무렵, 후지와라노 구스코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사가일왕<786-842>은 구카이에게 난이 진정되도록 법회를 열어 달라 부탁하였고,

구카이가 법회를 열자 신기하게도 난이 진압되었습니다. 이로써 구카이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사가일왕과의 관계도 돈독해졌습니다.


816년, 사가일왕으로부터 고야산을

하사받은 구카이는 그곳을 진언밀교 호법의 근본도장으로 삼고,
금강봉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곳의 지형이 여덟 잎의 연꽃 모양이었습니다.

어릴 적 꿈속에서 여덟 잎의 연꽃 위에서 부처들과 이야기하던 게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후,  구카이는 전국을 순회하며 여러 행적을 남겼습니다.


시코쿠<구카이의 고향이 속한 섬>에는

구카이가 개척한'시코쿠88개영장'이라는 불교 성지 순례길이 있는데,
이는 번호가 붙은 88개의 절을 순서대로 돌아 사시 1번 절로 돌아오는 1,200킬로미터의 장거리 순례길입니다.


이 절들 가운데는 미륵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구카이스님의 발걸음을 좇는 순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말라죽자

구카이가 기우제를 지냈더니 3일 동안 전국에 비가 내렸다거나,

메뚜기 떼가 몰려와서 농작물이 많은 피해를 입자 구카이가 단을 쌓고 그 위에서 밀교의 법을 폈더니

하루아침에 메뚜기 떼가 사라졌다는 등 기적과 같은 그의 행적에 관한 다양한 일화가 전해옵니다.


823년에는 사사일왕으로부터 평안경<지금의 교토>을 수호하기 위해 세운

동사를 하사받아'교왕호국사'라고 개명한 뒤 진언밀교의 근본도장으로 삼고 진언종을 확립합니다.


이후 58세인 832년, 건강이 악화되자

고야산 금강봉사에 들어가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834년에는 칙명을 받아
궁중에 진언원을 세우고, 다음해 1월 8일부터 7일간 교왕호국사에서 천황과 국가의 안녕을 비는

법회<고시치니치미시호>를 엽니다. 이 행사는 지금도 매년 이뤄지는 진언종의 주요 행사입니다.



3>구카이의 유언과 업적



구카이는 자신이 835년 3월 21일 인시에 입정할 것이라 선언하고,
일주일 전부터 섭식을 금하고 손에 대일여래의 인을 맺고 '좌선관법座禪觀法'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3월 21일에 입정을 한 구카이는 15일째 되는 날 입정한 모습 그대로 오쿠노인에 모셔졌습니다.

그리고 921년에 홍법대사라는 시호를 하사 받았습니다.


그는 입정할 떄 제자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육신은 삼매를 증험하였고, 나의 소망은 미륵님이 인간 세상에 오시기를 고대함이라.
(肉身證三昧待慈氏下生)

오쿠노인의 구카이 사당 간판에서 이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구카이는 비록 밀교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젊었을 때부터 미륵신앙이 매우 두터웠습니다.
도솔천에 계신 미륵불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적도 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자존원이라는 절을 세우고 직접 미륵불상을 만들어 본존불로 모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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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의 상락사에도 구카이가 직접 세운 미륵불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그가 저술한<훔자의>를 보면 "훔자는 법신法身, 보신保身, 응신應身,화신化身의 사신四身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훔자는 일체의 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훔' 이라는 한 글자 속에는
네 가지 우주의 근본 음이 들어 있다고 훔을 사신불 체계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훔'에서 우주가 태어나고'훔'에서 모든 인간의 몸과 정신이 나오고

'훔'에 궁극의 깨달음이 온다는 뜻입니다. 불교사전에서도 '모든 깨달음의 결론은 하나'라고 하였다.


구카이 스님은 불교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훔'이라는 단 한 글자로 압축하고 그 뜻을 풀어낸 것이다.


훔은 우주 조화의 근원자리,
대우주 시공간이 열려 나가는 우주 생명 본체 자리 대우주 생명의 핵이다.


그것을 대자연의 소리로 상징할 때 '훔'이며

그 '훔'은 모든 소리를 머금고 만물과 생명의 모든 소리를 낳는 근원소리입니다.


우주 생명의 소리 세계의 원음이다.

장차 미륵님이 오셔서 여시는 가을 우주의 진리 주재, 개벽의 주제,

새 역사의 근본주제가 바로 '훔'입니다.


구카이는 '훔'자의 근본정신을 밝혀
미륵님이 여시는 가을 조화문명 세계를 여는 진리의 핵심을 드러내었고

인류에게 이 '훔'자 진언[만트라]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의 법명 공해란 말 뜻 자체가 생명의 바다, 우주의 율려 바다입니다.


이렇듯 불교 3천년 사에서 지극한

공덕을 세운  구카이스님은 미래 지상 용화낙원의 주인공이신 미륵님의 도를 사모하고,
미륵님의 새로운 진리 세계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열반에 든 것입니다.

<증산도의 진리 73-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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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입정할 때 제자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육신은 삼매를 증험하였고, 나의 소망은 미륵님이 인간세상에 오시기를 고대함이라.
"(肉身證三昧待慈氏下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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